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53
257화〉
출항2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는 뜻.
그야말로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십수 명의 헌터들 목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동안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최대수마저도 무엇에 홀린 것처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후ㅡ우.”
진도화는 한 점의 수묵화처럼 새까만 도포 자락과 짙은 담배 연기 사이에서 우윳빛 얼굴을 말갛게 드러냈다.
“어째 반응들이 영 뜨뜻미지근허네. 뭐 풍악이라도 울려야 정신머리가 드는개벼.”
“진도화ㅡ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미친 짓이나.”
“아따, 정신이 드셨는갑소?”
진도화가 최대수를 보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이딴 짓을 저지르고도 설마 무사히 살아서 걸어 나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투신을 앞에 두고 그러기야 하겄는가? 이 진도화는 누구맨키로 피하거나 숨는 짓는 안 허니께, 걱정하들 말고.”
“그 누구가··· 나를 말하는 건가 보군.”
“아이고,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네잉. 하기사 예전부터 이해력은 징그럽게 좋았지. 그러니 대통령까지 해 먹고 그런 거 아니겄어.”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최대수는 혀를 쯧 차더니 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예전부터 싫어하는 놈이 딱 두 명 있었지. 하나가 민시우, 다른 하나가 진도화, 너다.”
“그려? 니보다 잘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건가 보재?”
“재수 없는 새끼들이라 싫어하는 거다.”
“그라고 말함 내가 할 말이 읎재.”
상대의 빈정거림인지 이죽거림인지 모를 말을 들으며, 최대수는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반지와 팔찌를 천천히 꺼내 착용했다.
“아따, 시방 함 해보자는 겨?”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진도화.”
“원망하면 쓰간. 그라믄 두 SS급이 모냥 빠지게 여서 이라지 말구, 넓은 뜨럭에서 함 노는 게 좋겠구마잉.”
최대수가 진도화에게 들이닥치려는 찰나, 진도화의 담뱃대가 합죽선으로 변했다.
그는 합죽선을 오므려 겉대를 손바닥에 찰싹 부딪혔다.
탁!!
마치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형형색색의 프랙탈과 오감을 잔뜩 자극하는 찬란한 마력의 향연이 최대수의 사위를 감싸며 빙글빙글 춤추기 시작한다.
“ㅡㅡ!!!”
최대수는 볼 안쪽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과 함께 욱신거리는 고통이 느껴지며 그의 정신이 번쩍이는 섬광 속에서 빠져나왔다.
“···퉤엣!”
최대수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일별했다.
승급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느새 널따란 들판으로 이동해 있었다.
과연 그들이 이동한 것인지, 장소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 장소에 있었던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게 착각인 것인지, 최대수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그 빌어먹을 실력은 건재하군.”
세계 최고의 환술사, 진도화.
“고작 장소 쪼까 바꾼 것인디, 요로코롬 비행기를 태워 불믄 민망하제이.”
“‘미스틸 테인’의 승급을 앞둔 사람한테 환술을 걸어서 성공시킬 정도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은데.”
“긍께 별거 아니라고 안 하냐. 후딱 싸우기나 하자고.”
진도화가 합죽선을 펼쳐 들더니 최대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최대수의 몸에서 사위를 압도하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마력과 기세가 피어오르며 살기가 오롯이 한곳을 향했다.
“큭큭큭, 고맙다. ‘미스틸 테인’이 되기 전에 원 없이 싸우고 가겠구나.”
그의 손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기다란 장검이 구현되었다.
“아따, 솔찬히 무섭구마잉.”
최대수의 신형이 사라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울리며 마력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쩌ㅡㅡㅡㅡㅡㅡㅡㅡㅡ엉!!
최대수의 강격을 가로막은 진도화의 무단 날붙이.
단순히 검의 강도나 날카로움을 따진다면 최대수의 것이 월등했으나, 최대수는 감히 자신의 검을 강하게 들이밀 수 없었다.
한쪽 칼날에 새겨진 28수의 별자리와 반대편에 입사한 29자의 신령스러운 주문.
“이 쥐새끼 같은 놈ㅡ! 사인참사검(四寅朝邪劍)이 네 손에 있었나?!”
“워매, 네 침이라도 발라 놨나? 아티팩트는 줏으면 임자 아니여?”
자타가 공인하는 ‘아티팩트 컬렉터’인 최대수의 눈이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금 진도화가 휘두르고 있는 검이 대한민국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인 ‘사인참사검’이었던 것.
“아무래도 네놈을 죽여서 그 검을 수중에 넣어야겠군.”
“징하네. 천부인의 청동검으로도 부족해서 남의 것까지 탐을 내 불믄 안 되는 것이제.”
“범죄자 손에서 탐탁지 않은 일에 쓰이느니, 욕심을 내더라도 내 손에 있는 것이 낫다.”
“고런 것이 자기합리화 아니겄나? 넘의 것 넹게다 보면 천벌 받는 것이여.”
최대수는 사인참사검이 망가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장검을 해제하고 묵색의 건틀렛을 구현했다.
그의 마력이 건틀렛에 잔뜩 압축되더니 저릿저릿한 기운을 내뿜었다.
“아따, 기똥차네. 그라믄 내도 엥간히 놀고 힘 좀 줘야 쓰겄네.”
상대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진도화가 입술을 길게 올리며 합죽선을 펼쳐 들었다.
“뻑적지근하게 술판이라도 벌이자고잉.”
그의 오른손에 들린 붓이 합죽선에 새까만 먹물을 흠뻑 묻힌다.
[환술사 전우치 : 기이활화(奇異活晝)]***
같은 시각, 미국.
〈HMCS 국제 총본부〉에서는 시우의 특급 요원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 짤막한 진급식과 함께 연회를 열었다.
에드워드나 시우나 고리타분한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급식은 최대한 간소화했다.
HMCS의 지휘관이 아닌 자가 얻은 최초의 ‘특급 요원’ 자리.
오직 실력과 기량,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압도적인 범인 검거를 통해 얻어 낸 결과였다.
국제 총본부의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임명장을 받고 진급식을 약식으로 넘긴 그들은 곧장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뭐 이렇게 많이 초대했냐.”
시우가 거대한 연회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보며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이 슬라임 지능처럼 순수한 친구를 보게. 내가 저 사람들을 다 초대한 것 같나? 전부 네 눈에 들기 위해서 직접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이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군. 내부 일 처리는 네가, 외부 일 처리는 내가 맡기로 했으니, 나머진 네가 맡도록 해라.”
“친애하는 내 오랜 벗이자 내 혼의 단짝이여. 이 자리의 주역은 내가 아니라 자네일세. 나 또한 오늘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네.”
에드워드는 시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억지로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로 그를 끌고 갔다.
비록 절차나 많은 것들을 간소화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HMCS의 ‘특급’이라는 칭호가 가지는 중대성 탓에 수많은 국빈이 참여했다.
각 국가 헌터 협회의 회장이나 총리, 내지는 부통령이나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경우도 있을 정도.
그만큼 HMCS의 ‘특급’ 자리는 가볍지 않았고,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였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대선생님~~! 이 불초 제자가 드디어 대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때 시우의 귓가에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롤프! 그리고··· 베네딕트로군.”
“아니!! 어째서 소선생님은 저를 그렇게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겁니까?! 오~~~ 내 친구 루안과 여왕님도 계셨군요.”
“···나는 네 녀석의 친구가 아니다만.”
“오랜만이군요, 베네딕트 님.”
【오!! 내 애제자가 온 것이다! 얘제자야!!】
시우의 안주머니에서 모습을 드러낸 프레가 금속 골무를 벗어 던지며 베네딕트를 향해 날아가 안겼다.
“대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내 애제자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감동적인 스승과 제자의 상봉.
“자, 바보들은 놔두고 우리는 하던 거 하면 돼.”
옆에서 바라보던 시우가 그들을 외면하며 롤프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음식이 차려진 곳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쟤들은 대화할 때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라 그리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를프는 혹시 로키를 만나 본 적이 있나?”
“의외의 이름이군요.”
시우의 질문에 롤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꾸했다.
“만나 본 적이야 있죠. 그녀가 독일의 헌터로 활동할 때도 제가 협회에 있었으니까요.”
“그래? 자주 봐 왔겠군. 로키는 어떤 사람이지?”
“음··· 애초에 질문이 조금 틀린 것 같습니다.”
“?”
롤프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표현을 고르려 애썼다.
“그녀는 어떤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뭐라고 해야 하려나···. 마치 신화에 나오는 ‘로키’ 그 자체 같다고나 해야 할까? 악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선의도 없는 인물입니다.”
“용케 그런 사람을 데리고 일을 했었네.”
“음··· 고양이 같은 존재입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했죠.”
시우는 롤프의 표정을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사람 좋은 영감은 로키의 모습에서 라일라를 투영해 보았을 테고, 그녀가 하고픈 대로 놔뒀을 것이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연회장의 문을 박차며 HMCS 직원 하나가 에드워드에게 뛰어갔다.
워낙 소란스럽게 들어온 탓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치러지는 최대수 헌터의 승급식에 괴한들이 난입했다는 소식입니다!”
“뭐···?!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미스틸 테인’으로 승급하는 헌터의 입도식 날 이 난리를···.”
“아무래도 ‘여섯 손가락’ 중 하나인 진도화로 보입니다!”
장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회에 방해가 될까 무음으로 해 놨던 핸드폰을 들어 현 상황을 파악하려 들었다.
“파티는 끝났다.”
사위를 둘러보던 시우가 정복 상의를 벗어 던지며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뭐?! 갑자기 왜 그래? 한국으로 가려고?”
“설마. 난 여기 남아서 ‘외부 일’을 맡아야지.”
“외부 일이라니···?”
“롤프, 미안하지만 에드워드를 지켜 줘. 나머지는 전투 준비해.”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부터 총이 격발하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했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세이겐 영감님도 힘 좀 빌려주시죠?”
시우가 저만치서 모른 척하고 있던 세이겐을 향해 말했다.
“하여간. 왜 자네하고만 엮이면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군. 오늘은 술이나 한잔하러 오라고 했던 것 아니었나?”
“일 다 끝나고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은 쉽구먼. 하지만 신세를 졌으면 빚은 갚아야겠지.”
세이겐은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시우 일행을 따라 소란이 이는 곳으로 향했다.
얼추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갱단이 HMCS 건물을 향해 집단으로 총과 스킬을 난사하고 있었다.
이미 1층에 있는 창문은 남아나지 않은 상태였고, 벽과 천장, 바닥은 쏟아진 총탄과 마력파의 흔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HMCS를 상대로 갱단의 습격이라니 이상하군요.”
여의를 소환한 루안이 바깥의 상태를 확인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저놈들은 그저 눈속임에 가까운 거겠지. 진도화가 최대수를 상대하고 있다면, 이쪽에는 타이론이라는 놈이 랭커 사냥을 시도하러 왔을 거다. 놈이 갱 두목이었으니까.”
“크흐흐, 정답이다!!”
그 순간 바닥이 꿀렁거리더니 물에서 뛰쳐나온 범고래처럼 타이론이 솟구쳐 오른다.
그의 오른발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루안의 몸통에 직격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꽈아아앙!!
루안의 몸이 거센 소리와 함께 내벽에 처박혔다.
다른 이들이 타이론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상태.
“이런, 내가 너무 빨랐나?”
어느새 이십여 미터 떨어진 천장에서 상반신만 내민 채 타이론이 히죽거렸다.
“아니. 딱 좋은 속도다.”
그리고 한 줄기 섬전이 타이론의 옆에서 번쩍이더니 서릿발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
시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