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54
258화〉
출항3
타이론은 자신의 옆에서 불어닥치는 한기에 몸이 뻣뻣이 굳는 걸 느꼈다.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 드는 생각이 아니라 몸에서 그에게 본능적으로 경고음을 내보냈다.
대체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살기인 거지.
그는 생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체내에서 흠뻑 뿜어지는 도파민에 강한 쾌감과 저릿한 흥분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군지는 몰라도 옆에 있는 상대는 자신이 이만한 도파민을 분출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단 뜻일 터.
타이론은 몸에서 보내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함께 있는 힘껏 상체를 비틀었다.
곧이어 그의 예상대로 상대의 공격이 타이론의 옆구리를 물어뜯듯이 들이닥쳤다.
콰드드드드득!!
타이론은 홧홧하게 퍼지는 강한 통증에 이를 악 깨물고 천장에 주먹을 내질렀다.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천장이 출렁이며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타격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투우ㅡㅡㅡㅡㅡㅡㅡ웅!!
타이론의 특기는 자신의 마력을 통해 닿은 것들을 매질로 변환시키고 파동을 퍼뜨리는 것.
파동은 충격이 될 수도 있었고, 자신이 직접 파동이 되어 이동을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능력의 장점은 그가 파동이 되어 움직이는 동안엔 상대가 마력 감지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었고, 회피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는 데 있었다.
시우는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속을 뒤흔들고 지나는 타이론의 공격에 인상을 와락 구겼다.
단순히 속이 진탕되는 정도가 아니라 신경 마디마디를 움켜쥐었다가 풀어놓은 듯이 기분 나쁘고 역겨운 감각이 들었다.
시우는 허리춤에 찬 발뭉을 뽑아 재빨리 타이론이 있는 곳을 향해 휘둘렀다.
카ㅡㅡㅡㅡㅡ앙!!
하지만 그의 몸은 진작 천장을 파고들어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마력 감지에 걸리지 않을 정도면 살기나 격으로도 파악할 수 없다는 소리니까.”
시우가 일행을 보며 경고했다.
“넌 괜찮냐?”
“끄떡없습니다.”
벽에 처박혔던 루안이 몸을 털고 다가오더니 성난 기운을 감추지 않은 채 말했다.
아무래도 열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너보다 상위 격의 상대니까 상대가 되긴 어려울 거다. 저래 보여도 ‘여섯 손가락’ 중에서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에다가 전투력도 최고인 놈이거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수하들을 처리하도록 하죠.”
시우 나름의 위로에 루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스킬을 구현했다.
[미후왕·아수라 : 백갑창천무위화]신화 속 제천대성의 모습처럼 찬란한 백색 갑옷이 그의 몸을 감싸고 단단한 기세를 내뿜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타이론과 1 대 1로 겨뤄 보고도 싶었지만, 단 한 합의 격돌로 상대와의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대강 알았기에 시우에게 배턴을 넘긴 것.
만일 목숨 걸고 싸운다면 최소한 치명상 정도는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능력의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타이론의 스킬 활용력이 생각 이상이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개인적 호승심이 먼저가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각자의 역할에 맞춰 싸워야 할 때니까.’
루안은 자신의 스승이 잘 처리할 것이라 믿으며 건물 밖에서 총을 난사하고 있는 타이론의 부하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미르, 베네딕트. 너희 둘도 나가서 루안을 도와줘.”
“하지만 주인님··· 타이론을 상대로 혼자서 상대하시려고요?”
“아니. 여기 영감님이랑 둘이 할 거야.”
“···자네랑 나랑 말인가?”
시우의 말에 놀란 건 오히려 세이겐이었다.
지금 모여 있는 자들 중에서 헌터 랭킹과 격이 가장 낮은 이가 다름 아닌 세이겐이었기 때문.
“네. 제가 영감님의 ‘사철’을 무척 좋아해서요.”
세이겐은 잠시 그의 말을 곱씹어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때 이후로 두 번째로구먼.”
그는 지팡이를 앞으로 겨누어 무시무시한 마력을 응집시켰다.
[이와나가히메 : 시테츠추우조오]사위에 있는 사철을 그러모아 형태를 조작하는 스킬.
시우 덕분에 생기가 흘러넘치게 된 까닭인지, 세이겐은 평소보다 서너 배는 더 많은 양의 사철을 그러모아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온 공간에 퍼뜨렸다.
“이 정도면 되겠나?”
“예전 실력 어디 안 가는군요.”
시우는 만족한 듯 웃으며 이윽고 자신 또한 스킬을 구현해 세이겐의 사철에 능력을 덧씌웠다.
[뇌전 : 불꽃놀이]불꽃놀이는 전압 자체가 낮아서 공격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기술이다.
특히 이번에는 수천 개의 사철 각각의 좌표를 계산해 뇌전을 입혔기에 그 위력이 평소보다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건 일종의 ‘센서’ 역할로 깔아 둔 덫에 불과하니까.
시우는 눈을 감고 단전을 열어 마력을 온몸에 휘감았다.
공회전하는 스포츠카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력이 몸속을 질주하며 그의 근육과 오감을 하나하나 일깨우기 시작한다.
까드드드득···!!
그것은 SSS급 헌터가 가진 방대한 격을 풀어놓은 것도 아니었고,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찐득한 살기를 머금은 것도 아니었으며, 에테르의 힘이나 반룡의 술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고 단순하리만치 간단한 마력의 활용.
시우는 한껏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기감을 열어 놓은 채 전신으로 흐르는 마력에 집중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잔잔한 긴장이 흐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타이론은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치 얼른 덤벼 보라는 듯 덫을 깔아 놓고 눈까지 감고 있는 모양새는 포식자로서 그냥 두고 넘어가기 힘든 유혹이었다.
‘놈은 강하다. SSS급이라고 하더니만 확실히 예전에 싸웠던 SS급 놈들과는 뭔가 달랐어. 그나저나 이런 감각은 오랜만이군. 곱상하게 생긴 얼굴로 밤새 비명을 토하게 만들어 주마.’
타이론은 머릿속에서 솟구치는 도파민에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의 가학적 본능이 꿈틀거리며 시우에게 전해 주고픈 고통의 목록 수백여 가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력을 통해 지반이 매질이 되고, 타이론의 몸이 파동이 되어 순식간에 이동한다.
쿠르르르르르!
시우의 뒤에서 거대한 백상아리처럼 타이론이 솟구친다.
세이겐의 사철에 덧댄 뇌전이 연달아 번쩍이며 타이론의 몸에 공격을 가한다.
“크하하하하! 내 장난감으로 만들어 주마!!”
타이론의 주먹에 막대한 마력이 뭉쳐지더니 시우의 등에 내리꽂히려는 순간.
“후우ㅡ”
나지막한 한숨.
그런데 한 공간에 있던 타이론과 세이겐은 그 한숨 소리와 함께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들리던 총격 음도, 여기저기 부서지고 터지는 굉음도, 뇌전이 울리며 살짝 풍기던 그을음도.
모든 것들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하다.
시우의 몸이 천천히 돌아선다.
그의 시선을 마주한 타이론은 저도 모르게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시간이 멈춘 까닭에 그의 턱은 움직이지 않았고, 내질러진 강권은 허공에 붙박인 듯 멈춰 있었다.
그 순간 시리도록 푸른 시우의 안광이 타이론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타이론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죽음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간조차 비틀어 버릴 것 같은 주먹이 휘둘러지더니 타이론의 전신이 흔적도 없이 폭발했다.
***
빠아아아아아악! 빠아아아아아아악!!
손도끼의 두툼한 날이 상대의 몸통과 머리에 몇 번씩 박히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커신은 날에 들러붙은 내장 조각과 살점을 손으로 대충 털어 냈다.
그의 상의는 구룡채성을 오르는 동안 진작 찢겨 애초에 버린 상태.
피와 작은 생채기로 범벅된 우커신의 상반신엔 호랑이와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싸우는 문신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두목, 저쪽도 대강 끝났습니다.”
“아아ㅡ 생각보다 저항하는 놈들이 많군. 밥만 주면 주인인 줄 아는 놈들은 죽어도 싸지.”
그는 터벅터벅 걸어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구룡채성의 모든 사람을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각 층의 관리자나 두목급이 어디 있는지 찾으러 다닐 수도 없다.
심지어 누가 관리자나 간부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커신은 그냥 가장 꼭대기까지 오르기로 했다.
과거 그 역시도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방을 사용했었으니, 지금 구룡채성의 주인이란 놈도 분명 그런 짓을 하고 있을 터였다.
“저건 뭐냐, 대체···?”
구룡채성의 주민들은 아래층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란에 아까부터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끔찍한 몰골이 포착되었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의 피를 묻히고 귀신 같은 안광을 빛내는 우커신의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라 여길 만했다.
“주인이 왔다. 길을 비키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이겠다.”
우커신은 흉신악살의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보통 이 정도의 살기와 기세를 받게 되면 물러나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회로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구룡채성의 주민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면서도 그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알겠다. 죽어라.”
그의 몸이 한 줄기 벼락처럼 쏘아지며 일련의 무리를 휘저었다.
우커신이 든 도끼는 유우토나 진도화가 사용하는 것처럼 이름난 전설급 무기도 아니었고, 뛰어난 장인이 만든 아티팩트도 아니었다.
그저 동네 철물점에서 파는 평범한 손도끼.
그러나 우커신이 손에 쥔 순간, 그 둔기는 그 어떤 날붙이보다 아찔한 흉기로 변하여 사람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머리통과 몸통을 부수며 주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시체가 산을 이루며 일대에 비릿한 혈 향이 물큰하게 풍겼다.
그는 도끼를 들어 손끝으로 날을 확인하더니 혀를 차고는 옆에다 던져 버렸다.
마력으로 둘러싸 사용했다고 해도, 단시간에 사람 가죽과 뼈를 하도 찍어 댔더니 도끼날이 금방 나가 버린 것이다.
우커신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무기를 한 번씩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이게 마음에 드는군.”
그는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크기의 새까만 손도끼 두 자루를 새로 손에 쥐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한 번씩 다시 내리찍었다.
쩌어어어억!! 쩌어어어어억!!
죽은 척을 하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고, 혹 죽은 척이 아니라도 우연히 목숨을 부지했다가 나중에 복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쿨럭···! 우커신··· 두목이었군···.”
그가 도끼로 누군가의 머리를 내려찍으려는 찰나 상대가 피를 토하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기억하는 주민인가?”
“아아···. 당신 밑에 있던··· 말단이다···.”
“그러한가? 그런데 왜 주인이 돌아왔는데 칼을 들고 거부하는 것이지?”
“그것은··· 쿨럭!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커신은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에 상대의 무릎을 도끼로 찍었다.
콰지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악!!”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군. 현재 구룡채성 거주민들의 충성심이 갑자기 올라갔든가, 아니면 지금의 주인이란 놈이 나보다 강할 거라 판단했든가.”
“끄으으으윽···!”
“하지만 더러운 이 슬럼가에서 우정이니 충성이니 의리니 하는 게 있을 리는 만무하고. 지금 주인이란 놈이 누구냐? 누구길래 이 우커신에게 대적하는 걸 택한 거지?”
“크으으··· 아,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주인은··· 이기지 못할···.”
“그래서 누구냐고.”.
우커신은 이번엔 상대의 넓적다리에 도끼날을 쑤셔 박았다.
쩌어어어어억!!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우커신의 차갑고 서늘한 눈빛이 한 마리의 뱀처럼 그의 목덜미를 휘감고 천천히 내려왔다.
“이름.”
“커헉··· 당신도··· 들어 봤을··· 거다.”
“내가 아는 인물이라고?”
“크···립···.”
남자는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쥐어짜듯이 한마디를 외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크립? 전 세계 어둠의 왕이라는···? 실체가 없는 허구의 인물이지 않나.”
우커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낄낄낄. 실체가 없다니, 서운할 소리를.”
그 순간, 무지막지한 기운이 구룡채성의 건물을 뒤흔들며 우커신의 목을 조일 듯이 들이닥쳤다.
“크흑···! 다, 당신은···!”
“반갑네, 구룡채성의 전 주인이여. 난 현 주인인 크립이라고 하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미스틸 테인’의 빌리 더 키드라고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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