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57
261화〉
진도화
합죽선이 머금은 먹물이 점에서 선이 되고, 선과 선들이 이어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진도화는 합죽선을 옆으로 들어 부채질했다.
촤르르르르ㅡ!!
합죽선이 만들어 낸 바람을 따라 먹물이 공중에 풀어 헤쳐진다.
수백, 수천의 먹물 방울이 기다랗게 늘어지며 진도화가 그려 냈던 그림이 현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네 마리의 집채만 한 범.
“호래이가 솔찬하재? 다들 산 몇 개씩은 다스릴 정도의 산군급이니깨, 조심하드라고.”
진도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족히 4m는 될 법한 크기의 호랑이들이 최대수를 향해 이빨을 내밀고 달려들었다.
“이런 잔재주를.”
최대수는 시가를 깨물었다.
이미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던 그는 왼발을 땅에 딛고 허리를 틀었다.
– 크르르르르릉!
성인 남성 하나 정도는 한입에 통째로 씹어 먹을 것 같은 호랑이의 입이 벌어진다.
최대수가 오른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콰아아아앙!!!
거대한 마력파가 전방을 초토화시키고 순식간에 호랑이 두 마리를 지워 버렸다.
최대수는 잇따라 주먹을 뻗어 남은 두 마리의 호랑이마저 목을 비틀고, 척추를 주먹으로 내리쳐 먹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하이고~ 징해라. 누가 야차 아니라고 할 깨비 티 내는 거여? 잔인하기도 해 쌌네.”
“이딴 장난감으로는 내 주먹을 멈출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진도화.”
“잉, 나도 잘 알제. 그란디 환쟁이가 별거 있나? 그림 끄작그리믄서 노는 것이제.”
“신화급 스킬인 [환술사 전우치]를 쓰는 놈이 말이 많군.”
최대수가 발을 박차더니 눈 깜짝할 새에 진도화의 앞으로 달려가 건틀렛을 휘둘렀다.
“참말로 급한 성격은 여전하구마이.”
진도화는 백자기에 담겨 있던 술을 입에 머금더니 앞으로 내뿜었고, 내뿜은 술은 곧장 새파란 불길로 변해 최대수를 덮쳤다.
“크윽ㅡ! 이까짓 불 따위로!”
최대수는 피하지 않으며 팔을 X자로 교차해 화염을 뚫고 나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강격을 진도화가 합죽선으로 쳐올렸다.
콰ㅡㅡㅡㅡㅡㅡㅡㅡ앙!!
“내 건틀렛을 고작 부채 따위로 막아?!”
“섭섭한 소리를 허네. 이거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값비쌘 합죽선이여.
“어련하실까. 우선은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부터 막아야겠군.”
“뭐, 그라시든가.”
최대수의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휘둘러진다.
진도화가 합죽선으로 쳐 내려 주먹의 궤도를 비튼다.
마력을 듬뿍 실은 발차기가 채찍처럼 진도화에게 날아든다.
갓이 부서지고 상투를 튼 머리가 풀어져 나부낀다.
진도화가 사인참사검을 꺼내 벼락처럼 내리긋는다.
사인검은 사귀를 베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신물.
그 능력 중 하나가 상대의 마력과 마기를 일순간 흐트러트려 무장 해제를 시키는 것이었다.
“제기랄ㅡ!”
최대수의 입에서 외마디 욕설이 터져 나왔다.
“장군이여.”
진도화가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합죽선을 접어 앞으로 쭉 내밀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쿠우우우웅!!
합죽선 끝에서 발한 짙은 마력이 최대수의 무방비한 몸을 통째로 밀치고 솟구치듯 날아갔다.
진도화는 합죽선을 담뱃대로 바꿔 입에 문 뒤에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질긴 인연이여. 안 그려?”
“이런 건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진도화.”
최대수가 풀풀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에서 짓씹듯이 내뱉었다.
“워매. 그래도 너랑 나랑은 옛날 같은 ‘국가 안보군’ 소속 아니었냐. 세월이 참 빨라야?”
“네 입으로 떠들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쪼까 거시기 허네. 우리 우정이 고로코롬 쉽게 날아가 불 정도로 개븐 것은 아닐 거인디.”
“후우. 우리 사이에 우정이란 단어가 쓰였던 적도 있었지. 네가 한순간에 깨부순 것이지만 말이야.”
“나가 말이여? 섭섭한 소릴 지껄이네. 난 내 소신을 지킨 것뿐이여.”
“그럼 나도 내 소신을 지킨 것뿐이다, 진도화.”
최대수가 자신의 격을 개방했다.
콰지지지지지지지···!!
지반이 뒤집히고 공기의 떨림이 멎질 않는다.
‘미스틸 테인’으로 진급하는 이의 압도적인 기세가 사방을 들쑤시며 가히 충격적일 만큼의 역량을 보였다.
“···이건 나로서도 상대하기가 벅차겄는디.”
진도화가 담뱃대를 빼서 합죽선으로 바꾸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같은 소속이었을 때 보았던 최대수의 기량보다 현재의 모습이 월등히 높아져 있었다.
***
‘국가 안보군’.
그건 시우가 이계로 가기 전에 창설된 대통령 직속 조직이었다.
안기부나 외국의 비밀경찰처럼 국가라는 조직을 위해 일하고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일종의 초법적인 특수 기관이었던 것이다.
진도화와 최대수는 그곳 소속이었다.
당시는 전시에 준하는 상태였고, 마족에다가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괴물, 체계가 잡히지 않은 각성자 시스템, 온갖 곳에서 일어나는 범죄 때문에 정부 측에선 ‘국가 안보군’의 필요성이 절실했었다.
그들은 국가의 개가 되어 필요한 일들을 했다.
주로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했거나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들을 뒤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일들이었다.
특히 진도화와 최대수의 활약은 압도적이었고, 그들은 각각 한 중대를 이끄는 중대장이 되었다.
“아따, 대수 이놈이 또 내 실적을 앞지르려고 하는 것 좀 보소잉. 욕심 좀 고만 내라, 이 너꾸리 같은 놈아.”
“큭큭큭. 네 실적 따위는 반나절이면 앞지를 수 있다. 이따 저녁에 술이나 한잔 어떠냐, 도화.”
“나야 좋제. 대수 네가 사는 겨?”
“나보다 급도 높은 녀석이 왜 자꾸 얻어먹으려 하는 거냐.”
“나가 돈이 있어야 말이제. 우리 중대 아그들헌티 다 뜯기고 없어야.”
진도화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빈 호주머 니를 들추어 보였다.
최대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따 보자.”라는 말만 남기고는 다 구겨진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러운 일을 하는 날이 많았고, ‘국가 안보군’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던 진도화는 최대수에게 담배를 배웠고, 술을 즐기지 않던 최대수는 진도화에게 술을 배웠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그들은 밤마다 술에 취했고, 수시로 담배를 피웠다.
그러던 찰나 그들에게 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한 대기업 회장이 정치인들과 유착해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정보였다.
“이번엔 대어가 걸려 부렀네이. 싹 다 잡아다가 조사 불믄 한동안 대한민국이 시끌시끌하겄어. 대수 너는 이름값 올라가니께 시꾸란 게 더 좋냐?”
“큭큭. 상관없다. 어차피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 지금 내가 벌인 일쯤이야 일도 아닐 테니까. 너는 정치에 관심 없냐?”
“나는 그란 거 관심 읎다. 조용한 곳에 집이나 짓고 마누라랑 오손도손 사는 게 꿈 아니겄냐.”
“여자 친구부터 만들고 마누라 타령을 해라.”
“왜 남의 꿈에다가 빙초산을 뿌리고 지랄해 쌌나.”
진도화는 증거를 잡겠다며 먼저 수사에 착수했고, 최대수는 뒤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가 얼마 뒤에 상부에 불려갔다.
수사 종료 지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대장님?”
“윗선의 명이다. 너희들은 알 거 없어.”
대대장이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최대수는 먼저 조사를 나간 자신의 친구가 생각났다.
“설마 정치인이 껴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이 건방진 새끼가···! 까라면 까! 너 나중에 정치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그러면 새끼야! 악법도 법인 거 몰라? 네 입맛에 맞는 명령만 따를 거면 윗사람이 왜 필요해! 나중에 네 아랫사람도 그렇게 일 처리하면 넌 기분 좋겠냐!”
“···아닙니다.”
대대장의 악다구니에 최대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국가 안보군’이 하는 일은 정의로운 사회나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매끄러운 집행을 위해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었으니까.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다.
‘무엇’을 위한 일이다.
국가의 평화로운 존속.
최대수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겠단 마음으로 이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아. 국익이 우선이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게 윗선의 지시니까 너희도 그런 줄 알아. 진도화도 당장 들어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최대수는 대대장의 명령에 어금니를 까드득 깨물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대체 그들이 저지르는 불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개인의 범죄와 국익을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우선 진도화에게 연락했다.
“도화야. 대대장이 수사 종료 지시를 내렸다. 윗선에서 직접 내린 거라니까 부대로 돌아와.”
– 하아···. 윗선에서 그런다고?
진도화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최대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국익이 우선이라면서.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진도화는 한참이나 대꾸가 없었다.
“진도화? 내 말 듣고 있냐?”
– 킥킥킥. 국익이 어쩌고 어째야?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환장하겄다, 참말로.
그의 목소리는 술에 한껏 취한 것처럼 느릿느릿했고, 무언가에 젖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너 괜찮은 거냐? 우선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 야, 대수야.
“···왜?”
– 나는 말이여. 봐 부렀다.
“뭐를 말이냐?”
-킥킥킥. 워매, 씨벌거. 다 봐 부렀어 야.
진도화는 수화기 너머로 제정신이 아닌 듯 반쯤 웃으며, 그러나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 씨불 롬들이 말이여···. 반마족 어린 여자애한테 뭔 짓을 했는지··· 너는 상상이나 할 수 있겄냐?
최대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가 상상했던 범죄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내용의 범죄.
“그게 무슨··· 말이냐.”
–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디. 윗선? 지랄들 하고 자빠졌당께.
“야, 진도화. 일단 돌아와. 나하고 같이 의논하자. 너 혼자 해결할 일은 아니야.”
– 나는 말이여, 대수야. 너처럼 성공할라고 이 짓거리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런 놈들 살려 둘라고 이 짓하는 것도 아니여. 그동안 고마웠다이.
진도화는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고위급 정치인들과 정계 인사들이 하나씩 잔인하게 죽어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정말 끔찍하리만치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함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상부엔 비상이 걸렸고, ‘국가 안보군’은 각 정치인의 집에 기숙하며 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최대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진도화다.
그리고 상대가 진도화라면 대한민국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민시우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수 자신조차도 진도화와 1 대 1로 싸워 그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다.
그날 밤.
“꺄아아아아악!!”
최대수가 지키는 정치인의 저택에서 비명이 울렸다.
최대수는 황급히 마력을 두르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달빛이 스며드는 어슴푸레한 방 안.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머리를 산발한 남자 하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진도화···냐?”
최대수가 물었다.
서글서글했던 인상은 어디론가 가고, 칼날처럼 벼린 인상에 죽은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잉···. 대수냐?”
진도화가 손에 인형과 바늘을 든 채 입을 열었다.
정치인과 그의 마누라는 오들오들 떨면서 최대수와 진도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진도화, 너도 이게 의미 없는 짓이란 걸 알잖아. 진정해라.”
“하이고. 나가 은제 의미 찾을라고 이 짓거리했남?”
“그러면 왜냐?”
“대수 너는 바퀴벌레 죽이는 것에도 의미를 찾는갑재?”
진도화가 인형에 바늘을 꾹 꽂아 넣자, 정치인의 온몸에서 수십 개의 칼침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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