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조우
달빛이 어둠을 걷어 내고 창문에 출렁이는 저녁.
시우는 거실에 앉아 마력을 회전시켰다.
단전에서부터 심장으로, 심장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두 팔로, 두 팔에서 두 다리로.
마나가 흐르는 길인 마맥을 타고 온몸에 뿌리처럼 마력이 뻗어 나간다.
서늘하면서 따스하고, 청량하면서 꽉 막힌 감응이 피부에 닿는 촉감처럼 선연히 느껴진다.
마치 풀잎에 맺힌 이슬이 똑똑 떨어지듯,
팔에 놓은 링거가 한 방울씩 흘러 들어오듯.
극도로 섬세한 제어력을 통해 컨트롤되는 마력 입자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만큼 세밀한 운용을 할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힐 것이다.
숨을 고르고,
후우ㅡ
천천히 내쉰다.
시우는 아주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듯 마력을 촘촘히 흘리다가 이내 다시 되감아 단전에 쓸어 담았다.
몸 상태가 처음보단 많이 좋아졌군.
시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처음 지구에 돌아왔을 때보다 몸의 컨디션이나 마력 운용력이 훨씬 상승했다.
아직 100%가 되려면 멀었지만··· 이제 한 50% 되었을까.
그만한 힘이 필요한 적은 아직까지 없었으니.
【그래 봐야 좁밥이다.】
“······.”
【얼른 치느님이나 바치거라, 허접아.】
“좀 닥쳐.”
띵동.
초인종이 울린다.
이 집에 손님도 오나.
시우는 터벅터벅 현관으로 향했다.
혹시 침입자?
하긴 침입자라면 애초에 초인종도 안 눌렀겠지만.
벌컥.
“넌 뭐냐.”
“안녕하십니까.”
문을 연 곳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일일 강사 때 개같이 처맞았던 A+급 헌터.
[백사자]의 추하민.“왜? 한판 뜨려고?”
시우는 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아니, 본인이 생각한 용건을 물은 것이다.
“아, 아닙니다!”
반말에서 경어로 바뀐 말투.
추하민은 바로 손사래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냐. 들어와라.”
그의 손에 들린 과일바구니를 보아하니 사과하러 온 것 같다.
듣자 하니 HMCS와 [백사자 길드] 간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하기도 했고.
백건호가 황정구를 통해서 ‘굳이 만나 줄 필요는 없다.’라고 했지만, 어차피 정치적 문제는 별 관심이 없는 부분.
시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은 다 나았냐.”
“예! 거의 다 나았습니다.”
쥐어팰 때, 대충 치료하면서 패긴 했으나 깔끔하게 재생시켜 주진 않았다.
개긴 대가다.
【좁밥, 너보다 더 좁밥이 맛있어 보이는 과일 가져왔다. 나에게 바쳐라.】
“그래서. 용건은?”
“우선 저희 길드장인 최성일 헌터님이 가 보라고 했습니다. 꼭 사죄드리라고 하시면서.”
추하민은 무릎 꿇고 두 주먹을 바닥에 대며 절하듯 몸을 숙였다.
무슨 야쿠자도 아니고.
“그리고?”
“예??”
“네가 ‘우선’이라며. 그럼 다음 용건도 있다는 거 아니냐.”
“아······.”
그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사실 사죄보다는 지금 말하려는 용건 때문에 저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우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저를··· 제자로 키워 주십시오!”
【얼른 과일을 바치거라!】
“······.”
하, 짜증 나.
저번에 종자로 거둬들인 애들도 귀찮아 죽겠는데. 얘는 또 뭐야.
시우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낀 탓인지, 추하민은 필사적으로 본인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길드가 어쩌고, 자기 부하가 저쩌고, 최성일이 뭐라며 주절주절.
“ㅡ따라서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신다면 후회시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스승님께 충성을ㅡ.”
“야, 닥쳐.”
“···옙.”
대충 요약하자면 시우의 강함에 반했고, 평생 스승으로 섬기며 살고 싶다는 말.
주종과 제자는 또 다르기에, 어찌 보면 충분히 거절하고 내쫓아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좋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싸움박질(일방적인 주먹질에 가깝지만)한 사이에 예의 차릴 필요도 없고.
그러나 시우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단순한 손익이 아닌 훗날을 위한 예측.
“흐음.”
게다가 자신에게 싸구려 도발을 해 오던 모습과 현재 모습이 사뭇 달랐다.
그때는 과장된 마력 파장이 흘러나왔는데, 지금은 차분하고 안정된 마력 파장이 나오고 있다.
말인즉, 단순하고 저돌적인 모습은 페이크라는 것.
실제 성격은 머리 좀 굴릴 줄 알고 신중한 편인 것 같은데.
“너 싸움 좀 하냐?”
“예??”
난데없는 질문에 추하민은 눈을 깜빡였다.
자신한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예, 그··· [백사자]의 아수라라고 하면 한국에선 어느 정도 알아줍니다만···.”
“그래? 왜?”
“A+급 헌터입니다··· 나름.”
이런 말도 처음 듣는다.
아니,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긴 하다.
“네 전(前) 스승은 뭐라든.”
샤오롱에게.
“가능성은 있지만, 최강이 되진 못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약하다고요.”
“지금도 연락하냐?”
“현재는 아닙니다. 수년 전에 한 11개월 정도만 배웠고, 그 뒤에 사부님은 중국으로 가셨습니다.”
“거의 일 년을 배운 게 그 모양이야?”
“예···. 그리고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제 사부님하곤 사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추하민은 참다 참다 결국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샤오롱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 눈빛이 달라지던 시우의 표정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사이.”
“헌터님이 [아수라 : 금강난무]와 비슷한 기술을 쓰시는 걸 보면 스승님과 사형이나 사제가 되시는 것 같은데···.”
“샤오롱이 본인 스승에 대해선 뭐라 하든?”
시우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되물었다.
추하민은 되레 받은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떠오른 몇 안 되는 기억을 말했다.
“그냥 엄청난 괴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최대수와 싸워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좀 과장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도경후도 한 수 접는다고 하는 최대수 아닙니까.”
“그래? 도경후가?”
최대수가 확실히 입지를 굳히긴 했네.
정말 그만큼 강해진 건지, 언론 플레이를 잘한 건지.
“저는 강한 전투 헌터에 대한 존경심이 있습니다. 부디 시우 헌터님 제자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제발 부탁ㅡ 예??”
“그러라고.”
시우는 손쉽게 받아들였다.
그놈이 가능성 있다고 했으니 나도 한번 봐야지.
그리고 이번 ‘일’을 위해선 인원이 조금 필요하기도 하다.
“대신에 나하고 일 하나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사숙(사부의 사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니지.”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추하민이 가져온 과일을 하나 건넸다.
“사숙이 아니라 사조(사부의 사부)다.”
***
시간은 흘러 회담의 날.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우는 약속장소에 모인 자신의 ‘협력자’들을 보았다.
적귀 영감, 볼크, 추하민 그리고 황정구.
넷은 서로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 것인지 약간 어색한 얼굴이었다.
특히 황정구는 이 멤버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울리는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는 시우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다.
“서, 선배님?? 저거 도망쳤던 볼크 아닙니까?? 저 노인분은 또 누구고요? 아니, 게다가 [백사자] 추하민은 선배님이 팼던 애잖습니까. 이게 다 뭡니까?”
【다 내 부하 좁밥들인 거다!】
“······그냥 같이 한다는 것만 알고 있어.”
시우는 마지막 멤버로 황정구를 데려왔다.
자기 뒤치다꺼리하느라 미안하기도 하고.
큰 건수 하나 물려서 인지도도 올려 주고.
들킬 일은 없지만, 혹여나 외부에서 알게 되면 면피가 필요했다.
‘사망자’가 꽤 나올 텐데, 시우 독단으로 일을 했다고 하기보단 팀장의 명령으로 했다는 게 그럴싸할 테니까.
“주인님. 회담까지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회담이 시작되고 30분 뒤에 저희도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계획에 대한 건 적귀 영감이 알려 주도록 해.”
“사조님은 저희랑 같이 안 있으십니까?”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추하민이 물었다.
“어, 난 잠깐 볼일이 있어서. 시간 안에 올게.”
***
청와대 대통령집무실.
‘거한’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은 한 사내가 위엄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성인 남성 세 명을 합친 것 같은 굵은 몸통.
한쪽 눈에 씌워진 검은 안대와 곳곳에 난 흉터.
마치 아프리카 대륙의 야생 바바리 사자를 연상케 하는 단단한 육체.
“처리해야 할 일이 많군. 가서 전부 죽여 버리면 안 되겠지.”
그르렁거리는 듯한 굵은 음성.
고목나무 뿌리처럼 두툼한 손가락 사이로 만년필이 위태롭게 잉크를 흘려 냈다.
슥ㅡ슥ㅡ
빠각.
“어이쿠. 펜이 또 부러졌네. 힘 조절이 이렇게 안 돼서야.”
1세대 삼존 중 하나이자,
현 대한민국 헌터 랭킹 1위이며,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SS급 헌터,
투신 최대수.
그는 희끗거리는 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20L짜리 정수기 물통을 텀블러처럼 들어 마셨다.
벌컥벌컥, 벌컥.
쿵.
“하. 물컵이 좀 작군. 점심때 먹은 돼지 한 마리가 짰나.”
최대수는 순식간에 비워진 물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날도 좋은데 드라이브나 다녀올까.
대통령 짓도 따분하구만.
그때 수행 비서와 경호팀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지간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각하, 죄송합니다! 정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뭔데.”
“현재 집무실을 향해 침입자가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얼른 대피하셔야 합니다!”
최대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대낮에? 몇 명인가?”
“그게 하, 한 명이라고 합니다.”
비서의 대답에 절로 비웃음이 흘렀다.
최대수는 정장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고, 넥타이와 시계를 풀어 책상에 올려놨다.
와이셔츠를 찢고 나올 것 같은 탄탄한 근육이 그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거··· 업무 스트레스를 이렇게 푸는군.”
“가, 각하?!”
“패 죽일지 찢어 죽일지는 면상을 보고 정해야겠어.”
살벌한 기운이 점점 공간을 채워 나간다.
마치 붉고 탁한 기운이 칼날처럼 짓쳐오는 기분이다.
경호원들과 비서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콰아아아!
대통령 집무실 문이 과자처럼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최대수는 느긋한 자세로 소매를 풀어 걷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여유가 아닌, 하이 랭커 헌터로서의 여유.
경호원들은 일제히 마력을 운용해 자신의 스킬을 펼치려 했다.
그들 모두 A급 이상의 기량을 가진 뛰어난 헌터들.
각각의 마법진이 꽃처럼 만개하며 뭉쳐진 마력들이 침입자를 향해 직격할 준비를 한다.
뚜벅.
침입자가 한걸음 움직였다.
“멈춰!!!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즉각 사살한다!!”
“······.”
“너 이 새끼! IZIZ 헌터 테러 단체냐? 아니면 목적이 뭐야!”
경호팀장은 당장에라도 스킬을 발동할 것처럼 고래고래 외쳤다.
곧 범람할 것 같은 마력을 억지로 누른 채 상대를 노려보며 말이다.
그러나 침입자는 경호팀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예전에 비해 날파리들이 많이 늘었네. 성공했나 봐.”
대통령을 보더니 조소하듯 비웃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목적이 뭐야!!”
“너희들 대가리.”
“준비이이이이!!”
밀리세컨드 단위의 싸움이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어트린다.
먼지가 흩날리는 모습까지 슬로 모션처럼 눈에 들어온다.
파즈··· 즈즛···!
사람을 즉사시킬 몇몇의 스킬이 구현되며, 색색의 섬전과 함께 뿜어져 나간다.
모두의 시선이 번개처럼 뻗어가는 스킬로 향해 있다.
침입자는 받아칠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즉사할 터였다.
“하ㅡ.”
그 순간,
권태 가득한 음성이,
“꺼져.”
짧은 욕설과 뒤섞이며,
폭발적인 마력과 함께,
빛처럼 쏘아져 나갔다.
꾀ㅡㅡㅡㅡ아아아앙!!
집무실 한쪽 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바닥이 깨져 나가고 천장에 금이 갔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충격을 보호하는 아티팩트가 설치된 곳인데도 이 모양이다.
거대한 돌풍이 휘몰아친 자리엔, 뿜어내지 못한 마력이 역류해 피를 토한 경호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최대수는 그 침입자를 보며 눈도 감지 못했다.
분명 사라졌었다.
그리고 마력조차 찾지 못했다.
수많은 전문 헌터들을 고용해 추적했으나, 아무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졌던 자신의 유일한 숙적.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걸림돌.
광견.
민시우.
“하나만 묻자.”
시우의 몸에서 광포한 기운이 솟구친다.
최대수도 가만있지 않고 주먹을 까드득 쥐었다.
그 격류에 대리석 책상이 반으로 으깨진다.
“크흐흐. 뭘 말이냐.”
“VIP가 너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