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진입
서릿발 같은 살기가 집무실을 할퀴고 사위의 여백을 불꽃처럼 장악했다.
최대수는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세에 기쁜 듯 웃음 지었다.
옛 전장에서의 그리운 감각이다.
흥분으로 콸콸 솟구치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10년간 느끼기 어려웠던, 죽음에 성큼 다가간 압박.
그 짜릿한 쾌감에 심장이 고동친다.
“오랜만이군, 민시우.”
“그러게, 최대수.”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에서 상대에 대한 적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고요한 빙벽처럼 둘 사이를 가른다.
차갑고, 서늘하다.
잔잔한 격의 흐름이 날카롭게 공기를 찌른다.
최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더니 짐짓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디 보자. 사망한 지 햇수로 10, 11년 정도 됐나? 아니지. 돌아왔으니 행방불명이라 해야겠네.”
“고마운걸. 대통령 표 조작하는데 분주했을 분이 그딴 것도 세어 주고.”
시우의 이죽거림에 최대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굴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가 뻘겋게 물든다.
“크크크. 그런데 희한하군. 분명 ‘이 세상’에 없다고 추적 헌터들이 그랬었는데 말이야. 그 자식들이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면ㅡ.”
“내가 ‘저세상’에 있었기 때문인가 보지.”
“그렇군, 저세상이라. 그럼 그곳에서 꼬랑지 처박고 쭉 살지 여긴 어떻게 다시 왔을까.”
최대수는 손끝으로 자신의 집무실 바닥을 쿡쿡 가리키며 물었다.
“글쎄. 내가 돌아오는데 네 허락을 받아야 하나?”
“······그건 아니지. 저승에서 살아올 줄 알았으면 환영식이라도 준비할 걸 그랬군.”
“고맙지만 사양하지. 내가 개밥은 먹지 않아서.”
침묵이 흘렀다.
피아노 줄처럼 팽팽히 당겨진 긴장감이 곧 끊어질 듯했다.
누구 하나가 약간의 마력을 움직이기만 해도 전투가 시작될 것 같은 아슬함.
숨 막히는 적막이 그들 사이에서 찐득하니 흘러내렸다.
뚜벅.
“그나저나.”
한 걸음 디딘 구둣발. 굵고 허스키한 음성.
최대수가 먼저 적막을 깨트렸다.
“넌 얼굴에 나이가 안 묻었군. 10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질 않을 정도야.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빨아먹고 다녀서 그런가.”
“글쎄. 네 좆같은 상판대기를 안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시우의 차가운 이죽거림.
“크흐흐흐. 좋군, 아주 좋아. 그 망할 주둥아리는 여전하구먼. 따분하던 차에 잘 됐어.”
최대수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마력을 끌어 올렸다.
콰드드드득!
뿜어진 마력이 전신을 활주하며 심장 박동과 혈류량을 증폭시킨다.
발을 딛고 있던 지반이 아이스크림처럼 으깨지고, 그 기세에 공간이 팽창하듯 어그러진다.
당대 최고의 괴물, 전투의 신이라 불린 자가 자신의 격 중 일부를 해방한 것이다.
시우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단전에서 뽑아 올린 마력이 순식간에 근육 곳곳에 퍼지며 새파란 질주를 했다.
아직 50%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은 컨디션이지만, 시우는 전투 헌터로서의 본능을 아끼지 않았다.
쩌적··· 쩌저저적···!!
막대한 두 격이 서로 격돌한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부딪히고 마력의 강세가 둘 사이를 에워싼다.
공간에 균열이 가듯, 시우와 최대수 사이에 형성된 보이지 않는 파열이 대기를 짓이겼다.
둘 다 맹수의 이빨을 들이밀듯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크하하핫! 미친개 어디 안 갔구만!”
“지랄. 대가리 빠개 줄까?”
“할 수 있다면! 크흐흐흐. 대신 네 모가지도 비틀어 뽑아 광화문에 걸어 주지!”
그렇게 두 막대한 격의 파동이 부딪히려는 순간,
“가, 각하!!”
“움직이지 마!!”
“괜찮으십니까?!”
일런의 소란이 몰려들며 열댓이 넘는 사람들이 총과 헌터 전용 무기를 들고 시우를 에워쌌다.
과연, 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 라고 해야 하나.
그 뻔한 움직임에 시우는 한숨이 나왔다.
요즘 전투 헌터의 기량이 이만큼이나 떨어졌단 말인가.
나 같으면 먼저 힘줄을 다 끊어 놓고 혀를 깨물지 못하게 입 안에 수건을 욱여넣었을 텐데.
헌터 싸움에 경고?
“병신들 놀고 있네.”
“뭐??”
쿠ㅡㅡ웅!
흐릿하던 관념이 구체적인 틀을 갖추며 술식을 전개하고, 마력이 그 흐름과 기호를 따라 알맞게 채워진다.
시우 주위로 원과 직선, 삼각형, 사각형, 별 모양의 도형이 수백 개 이상 생겨나 광채를 흩부린다.
“이, 이게 무슨ㅡ!!”
“제압ㅡ!”
그러나 경호원의 문장이 채 완성되기도 전,
크허어······.
허으윽······.
그들은 마른 나뭇잎처럼 생기를 잃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몸이 말라 가는 상황.
시우가 술식을 전개하고 고작 1초 만에 열댓의 인원이 전부 나뒹굴게 된 것이다.
최대수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빌어먹을, 죽이진 마라. 저래 보여도 나라 녹 먹고 사는 경호원들이야.”
“요즘 헌터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졌네. 우리 때였으면 진작 뒈졌겠는데.”
“크흐흐. 요즘은 그때를 1세대라 부르지. 차원이 다르니까. 그건 그렇고 이 새끼들 때문에 흥이 식어 버렸군.”
최대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모처럼 몸이나 풀려 했던 그는 분위기가 달라지자 기세를 거뒀다.
시우 또한 마력을 해제했다.
어차피 죽이려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거 하나 물어보려고 직접 행차하신 건가?”
최대수는 서랍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 헤드 끝을 잘라 내고 불을 붙였다.
시가의 끝이 분홍색으로 타들어 가며 재로 바뀌었다.
시가의 바닐라와 견과류 향이 바람을 타고 시우에게로 향했다.
“다시 제대로 묻지.”
“······”
“민준이, 네가 시켜서 죽였냐.”
최대수는 시가를 힘껏 빨아들였다.
타오르는 연기가 그의 눈빛을 미묘하게 가렸다.
“아니, 내가시키지 않았다.”
시우는 그에게서 나오는 마력을 한참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마력 파장이 은은하게 물결치며 같은 형상을 유지했다.
거짓말은··· 아니군.
물론 최대수란 인간을 100% 믿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가 시킨 것은 아니란 게 분명해졌다.
“그래. 아니라면 됐다.”
시우는 발을 돌려 〈베스티아〉가 모이는 회담 장소로 가려 했다.
너무 늦으면 다른 일행들이 곤란할 터이니.
그런데 최대수의 목소리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크흐흐. 민시우,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진 모르겠지만, 10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안 될 거다.”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뭐가 달라졌지?”
시우는 정말 관심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너나 도경후와는 달리 나는 SS급이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하이 랭커라고. ‘벽’을 뛰어넘었다 이거야.”
“내가 대한민국 1위다. 네가 아니라.”
“······.”
“······그래. 너 많이 해 먹어라.”
시우는 기도 안 찬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최대수를 찾아온 이유는 그가 진범일 가능성은 낮지만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또한 시우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최대수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한 것도 포함.
아마 시준이에게 더는 허튼짓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블랙맘바라는 녀석한테 물어볼 차례.
“민시우.”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뒤통수가 얼얼해질 정도로 느껴지는 분노.
“난 아직도 이 ‘잃어버린 눈’을 기억하고 있다.”
최대수는 자신의 가죽 안대를 툭툭 쳤다.
마치 시우를 향한 열등감, 분노, 질투 같은 것들이 그 안에서 응어리진 것 같았다.
그 문장을 뒤로하고, 시우는 말없이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그리고
“가, 각하! 대체 무슨일이···!”
수십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다급히 들어왔다.
그들은 반파된 집무실과 쓰러져 있는 수십의 경호원들을 보며 당황한 얼굴을 했다.
최대수는 남은 시가를 빨아들인 뒤 비웃듯 내뱉었다.
“전우의 방문이다. 괜찮으니 뒤처리나 하도록.”
1세대 시절 칼날처럼 날카롭던 민시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각이 다 닳아 손톱도 못 깎을 만큼 무뎌진 놈이 나타났다.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건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기세는 꺾여 있었다.
솔직히 얼굴을 보자마자 주먹이라도 먼저 날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광견이 대화를 나누다니.
‘큭큭큭, 이거 재밌게 됐군. 나중에 자리를 마련할 테니 원 없이 처맞아 보라고. 대한민국에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주지.’
최대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시우는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왔다.
마력을 다리에 때려 박고 뛴 덕분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도착하고 보니 적귀, 볼크, 추하민, 황정구는 각기 다른 자세로 마력을 운용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시우의 모습을 본 그들은 눈치껏 일어나 들어갈 태세를 했다.
“그럼 계획대로 들어간다. 출입구는 총 다섯. 각자 하나씩 맡아서 들어가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가 나타나거나 ‘블랙맘바’라는 놈이 나타나면 나한테 무전 치도록. 이상.”
간단한 임무 지침을 내리고,
시우의 손짓에 그들은 각자 맡은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우두둑.
시우는 자신의 목을 꺾었다.
뻐근함이 조금 풀렸다.
조금 전 최대수와 마주하며 곳곳에 흘렸던 마력들이 아직도 몸속에서 곤두서 있는 게 느껴졌다.
호흡과 함께 그것들을 가지런히 순환시켰다.
선선한 감각이 신경 하나하나를 타고 몸을 각성시키는 듯했다.
시우는 터벅터벅 걸어 숨겨진 문 앞에 섰다.
적귀 영감 말에 따르면 이 장소는 일종의 지하 동굴이었고, 회담은 내부 공동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오랜만에 스위치 좀 넣을까.”
봐줄 필요도 없을뿐더러 일말의 동정도 가지 않는 놈들이다.
저들의 비즈니스가 사람 죽이는 일인 것처럼,
시우의 비즈니스는 저런 놈들을 죽이는 것이다.
끼이익.
문을 열고 걸음을 옮겼다.
미약한 불빛이 듬성듬성 이어진 널따란 동굴.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마력을 흩뿌리지 않아도 그들이 거친 살기를 내뿜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우는 망설이지 않고 달렸다.
그의 몸놀림은 섬전처럼 동굴을 가로질렀다.
회담의 경비를 맡고 있었을 말단 킬러들은 입구 쪽에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걸 깨달았고,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ㅡ
빠가악!!
시우의 발길질에 한 놈의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졌다.
두 번째 놈은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어···!!”
콰지익!!
뒤돌려차기에 목뼈가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시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내달렸다.
그가 지나간 곳엔 아득한 파열음과 어리숙한 범죄자들의 단말마가 바람처럼 남겨졌다.
가장 경비가 삼엄하다는 제3 입구.
때문에 시우가 들어가겠다고 자청한 곳이었다.
이 탁하고 어두운 곳을 지나면 베스티아 놈들이 나올 터.
그러나 순간,
콰아앙!!
바닥이 어그러지며 돌 부스러기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이미 드넓게 마력을 펼치고 있던 시우는 진작 걸음을 멈춰 세웠다.
저 멀리서부터 광대한 마력이 땅속을 헤집고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웬 쥐새끼가 들어왔군.”
거대한 체형의 남자가 어둠 속에서 이를 드러냈다.
온몸을 까만 갑옷으로 둘러싼 남자는 거친 마력을 풀풀 피워 댔다.
방금까지 보던 조무래기와는 사뭇 다른 위압이다.
“사지를 결박하고 내장을 꺼내 줄까, 아니면 전신의 뼈를 다 가루로 만들어 줄까.”
남자의 비웃음이 미약한 등불에 엇비친다.
시우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냥 와, 좆밥아.”
***
중앙 공동의 회의장.
공동 천장에 달린 초록색 마력 램프가 서늘한 분위기를 비추고 있다.
거대한 원형 테이블과 그것을 둘러싼 열 개의 의자.
그리고 자리에 앉은 여덟 명의 사람들.
그들은 각자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느긋하게 회의가 진행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히히, 모임은 다 참석했네. 설마하니 지난번처럼 다섯 명만 나오는 줄 알았거든.”
울버린이 작고 앙증맞은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멍청, 멍청아. 적귀랑 볼크가 없잖아.”
“어차피 배신한 놈들이다. 인원에 넣는 것조차 불결하지.”
각각 호크아이와 퓨마의 말.
“그런데 그들은 왜 배신한 거래? 볼크도 열심이었고 적귀도 중견 간부였잖아. 단장 빼고는 터치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말야.”
호저는 턱을 괴더니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만.”
묵직하고 걸걸한 음성이 다른 대화를 내리누른다.
사수귀 중 하나인 티그르였다.
“배신자에 대한 언급은 금한다.”
그의 말에 조잘조잘 떠들던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사수귀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
끼ㅡ익
그때 공동 안쪽의 문이 열리며 단장인 크로우가 들어왔다.
크로우는 새까만 로브를 펄럭이며 테이블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오랜만이네, 다들.”
크로우는 미성의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했다.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는 듯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동공 전체에 느껴지는 그의 압박감.
크로우는 자리에 앉더니 빈 의자 두 개에서 시선을 멈췄다.
적귀와 볼크.
조직을 위해 많은 피를 묻혔던 그들이 갑자기 배신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끝은 죽음뿐이란 것을 알 터인데.
단장을 바라보는 사수귀들의 표정에서 은근한 분노가 느껴진다.
티그르, 그리즐리, 앨리게이터, 블랙맘바.
크로우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자, 배신한 것들의 목을 누가 따올지 가위바위보나 할까?”
해맑고 티 없는 목소리.
그런데 그 음성을 비집고,
퉁! 또르르륵···.
무언가가 원형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이건 뭐ㅡ.”
파아아아앙!!
강렬한 빛살이 공동을 흠뻑 물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