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72
276화〉
생 제르맹3
시우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수백 미터 너머까지 마력 감지가 펼쳐지며 주위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마력과 마기를 지닌 모든 존재의 좌표가 생성된다.
수가 너무 많고 복잡하지만, 멈출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 자식은 미친 과학자이자 연금술사다.
〈판데모니엄〉은 그동안엔 김은주를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하이브리드 인간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IZIZ 멤버와 싸웠던 경우나 지난번 시우가 싸웠던 경우 모두 갑작스럽게 치러진 비공식 전투.
다시 말해 지금 이 상황은 생 제르맹에게 일종의 데뷔 무대이자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인 셈일 것이다.
자신의 모국에서 국가적인 기념일을 골라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일으킨 참사.
이건 절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다.
철저히 계획된 그의 실험 결과 발표 자리인 것이다.
그런 중요한 장면을 과연 집에서 화면으로 보고 있을까?
아니다.
시우는 생 제르맹이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마력 감지의 범위를 점차 늘려 나갔다.
거리가 늘어날수록 정보량이 늘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찌릿.
시우는 마침내 강렬한 마기가 느껴지는 곳을 파악하고는 곧장 마력 감지를 해제한 뒤 그곳으로 발을 박찼다.
에펠탑을 지나 센강 너머, 트로카데로 광장.
아수라장인 그곳 역시도 수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우는 그 가운데서 광장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클래식한 슈트 차림에 금발 머리를 푹 숙인 남자.
그리고 그의 옆에 선 검은 로브 차림의 두 사람.
“못 본 사이에 마기가 더욱 짙어지셨군. 이제 인간이기를 포기한 건가?”
시우가 양손에 샷건을 구현한 채 그를 향해 다가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섬찟하리만치 매섭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반마족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과연 일반적인 인간이 마왕을 숭상하고 힘을 부여받았다는 것만으로 이만한 마기를 지닐 수 있는 것인가.
『오랜만이군요, 제 실험체가 될 신의 선물이신 분.』
단순한 목소리에 불과할진대.
그 순간 트로카데로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바닥에 짓눌리며 구토를 시작했다.
절대 인간이 낼 수 없는 음성.
예전에 마주했던 발록이나 오로바스가 떠오른다.
걸쭉하면서 찐득하고 흉흉하기 짝이 없는 삿된 기운.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진짜 인간이길 포기했군.”
시우가 상대의 기세를 받아 내며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생 제르맹이 천천히 얼굴을 들더니 시우와 눈을 마주쳤다.
창백하던 우윳빛 흰 피부는 어디론가 가고 회색빛이 감도는 피부와 도드라진 검붉은 혈관이 눈에 띈다.
『당신의 말엔 어폐가 있군요. 저는 인간이길 포기한 게 아니라, 지금 이 모습을 선택한 거예요.』
생 제르맹은 푸르렀던 안광 대신 새빨간 눈빛을 빛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불과 얼마 전에 보았던 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현재의 모습에 시우는 불쾌함마저 느꼈다.
이것도 실험이나 연구의 결과인 것일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아니, 애초에 사람이기는 한가?”
시우가 검은 로브를 걸친 자들을 향해 물었다.
똑바로 서 있기는 했으나, 그들에게선 왠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이 감지되지 않았다.
설령 신인류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괴물이라 할지라도 미동이 있거나, 뭔가 기운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들에겐 그런 것도 없었다.
마치 마을 입구에 선 장승처럼 우두커니 생 제르맹 옆에 서 있기만 할 뿐.
『후후후. 현재 광장에 푼 것들은 프로토타입이죠. 하지만 제 옆에 있는 이분들은··· 말하자면 신인류 프로젝트의 완성형입니다. 당신이 상대했었던 김은주, 그 이상이죠.』
완성형이라.
시우는 비집고 나오려는 한숨을 참아야 했다.
그때 싸웠던 김은주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인 발록이나 오로바스보다 훨씬 강했었고, 에테르의 힘을 사용하는 걸 넘어 반룡의 술까지 사용해서 제압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괴물이 두 마리나 더 있는 데다가 분명 더 강해졌을 생 제르맹까지 생각하면···.
‘골치 꽤 아프겠는데.’
시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적들의 전력을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혼자서 셋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박을 하기도 애매하고.’
평범한 적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저래 보여도 상대는 전직 ‘미스틸 테인’이다.
시우 혼자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수많은 인파가 밀집된 곳에서 무턱대고 운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그때였다.
쿠ㅡㅡㅡㅡㅡㅡㅡ웅!!
이제는 낯익은 착지음과 함께 간다르바가 시우 바로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가, 무슨 자신감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지?!”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생 제르맹을 향해 물었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목을 꺾어 버릴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이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합이군요. 민시우와 간다르바라니. 사실 민시우, 당신이 온다면 최대수··· 그러니까 현 야차가 함께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내가 의외로 최대수랑 별로 안 친해서 말이지. 요즘은 간다르바랑 친하게 지내고 있어.”
『후후후. 그렇군요. 〈판데모니엄〉으로선 당신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모든 계획을 다 헝클어트리고 방해하는 특이한 존재였으니까요.』
“이 개자식아! 〈판데모니엄〉 주제에 ‘미스틸 테인’에 들어와 동료 행세하니까 좋았냐?! 너 말고 다른 1위계 새끼들도 조만간 뒈질 줄 알아!! 알았어?!”
『간다르바···. 당신은 언제나 한결같군요. 단순해서 대화가 통화는 타입이 아니었죠. 애초에 당신이 우리의 사상을 이해해 주길 바란 적은 없었습니다.』
생 제르맹은 말을 잇던 와중에 옆에 선 자들을 향해 자동 주사기를 꽂았다.
푸슉!
그와 동시에 그의 발아래 술식이 구축되며 마법진이 형성된다.
시우는 재빨리 샷건을 격발했다.
콰ㅡㅡㅡㅡㅡ앙!! 콰ㅡㅡㅡㅡㅡ앙!!
마력탄이 양측으로 쏘아지며 로브를 쓴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총알이 놈들의 머리를 날려 버리려는 찰나, 짙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듯 뿜어지며 마력탄을 가볍게 흐트러트렸다.
놈이 말한 완성형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김은주를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두 존재에게서 서슬 푸르게 흘러나왔다.
생 제르맹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더니 그들의 후드를 벗겼다.
“······.”
시우는 드러난 그들의 얼굴 중 하나를 보고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후후후. 민시우 헌터. 둘 다 낯이 익지 않나요? 당신과 인연이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낯이 익다마다.
하나는 멕시코에서 시우가 반쯤 죽여서 체포했던 부르데오스.
다른 하나는 〈판데모니엄〉을 수사하다가 집단으로 실종되었던 HMCS의 준특급 요원 해럴드 블룸이었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에 흰자위가 까맣게 물든 채로 전방을 바라보며 웃었다.
『크흐흐. 젠장 맞게도 낯이 익은 얼굴이 보이는군.』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마주하다니 아쉬울 따름. 하지만 나는 새 주인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인간을 죽일 따름.』
『어이, 씨팔 늙은이. 민시우는 내 몫이니까 건들지 말라고. 내 말 알아듣겠어?』
『너 따위 범죄자의 명령은 들을 가치조차 없을 따름.』
부르데오스와 해럴드는 마치 살아 있던 그 시절에 만나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김은주 때와 똑같다.
죽었지만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뭐야? 시우, 저놈들 아는 사이야?”
간다르바가 물었다.
“젊은 놈은 멕시코 범죄자였고, 나이 든 쪽은 같은 HMCS 요원이었는데 얼마 전에 〈판데모니엄〉 수사를 하다가 실종당했어.”
시우의 대답에 그녀가 해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불쌍하게 생각 안 해도 돼. 진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척하는 괴물이야.”
『후후후. 무척 냉정하군요, 민시우.』
“냉정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대화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군요. 혹시 다른 ‘미스틸 테인’이 올지도 모르니 시작할까요.』
생 제르맹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르데오스가 간다르바에게 들이닥쳤고 해럴드가 시우에게 몸을 날렸다.
검붉은 랜스가 구현되더니 번개와 같은 속도로 시우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시우는 샷건 대신에 무라마사를 뽑아 랜스의 공격을 흘려 냈다.
카드드드드드드드득!!
날붙이끼리 마찰을 일으키며 불꽃이 튄다.
시우는 곧장 안쪽으로 파고들어 해럴드의 심장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우우우우욱!!
해럴드가 몸을 비틀며 심장이 아닌 그의 목으로 무라마사가 파고들었다.
『민시우 헌터. 당신도 신인류가 되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기분이 되고 이런 것쯤은 아프지도 않게 될 따름.』
“고통을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망자 해럴드.”
시우가 한숨을 내쉬더니 검날을 옆으로 휘둘렀다.
해럴드는 목이 절반이나 잘려 나갔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울어진 목 상태로 다시 랜스를 휘둘렀다.
이전에도 초하이 랭커였던 해럴드라 그런지 그의 공격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매서웠다.
게다가 마기가 뒤섞인 상태라 스치기만 해도 닿은 곳이 불에 덴 것처럼 홧홧하게 아려 오고 수포가 차올랐다.
『민시우 헌터. 제대로 상대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을 따름.』
해럴드가 새까맣게 물든 안광을 번뜩이며 시우를 향해 경고를 날렸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우는 지금 그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 제르맹의 기세에 눌려 바닥에 깔린 수많은 인파.
그는 해럴드의 강격을 전부 흘려 내거나 몸으로 막아 내며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중이었다.
그런 사정은 간다르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어마어마한 돌풍이 불어닥치더니 바닥에 있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쓸어 다른 방향으로 몰기 시작했다.
부르데오스는 그 모습을 보더니 날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전격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땅에서부터 솟구친 굵은 나무뿌리가 거대한 방패를 이루어 그의 전격을 막아 냈다.
[나무 창성 : 대지의 수호]레오니, 라일라, 베네딕트, 한스가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친구.”
한스가 숨을 헐떡이며 그의 옆에 섰다.
“저쪽은 정리 끝났어?”
“나머지는 롤프와 필릭스, 그리고 이제 도착한 다른 헌터들이 정리 중이다.”
“소선생님, 해럴드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생 제르맹은 소선생님이 처리해 주십시오.”
베네딕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시우는 무라마사를 한 바퀴 휘두른 뒤에 생 제르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뭘 말이죠?』
“혹시 정민준이라는 헌터, 네가 암살 지시했냐?”
시우의 질문에 생 제르맹이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혹시 그 고대 역사학자 헌터 말인가요?』
처음이었다, 정민준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짚어 낸 놈은.
“네가··· 지시했냐?”
시우가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움켜쥐며 물었다.
『후후후. 글쎄요. 갑자기 살기가 엄청나게 올랐군요.』
“마지막으로 묻지. 너냐?”
시우의 질문을 들은 생 제르맹은 대답 대신 주사기 네 개를 꺼내더니 양쪽 허벅지에 쑤셔 박았다.
혈관이 도드라지고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린다.
악마의 피가 폭주하듯이 전신을 질주하며 내달린다.
이마에 뿔이 돋아났다.
생 제르맹은 입꼬리를 길게 찢어 올리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크크크. 저를 이기시면 알려 드리도록 하죠. 누가 암살을 지시했는지.』
그 말을 들은 시우가 벼락같은 속도로 몸을 내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