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77
281화〉
시체의 말2
실험실을 가득 채운 어둠이 뾰족한 살의를 드리운 채 진도화를 향해 날아갔다.
진도화는 들이닥치는 어둠을 살피지도 않았다.
그는 붓을 들어 합죽선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 넣더니 마력을 불어넣었다.
[환술사 전우치 : 기이활화(奇異活晝)]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거북이 세 마리가 나타나며 날아드는 어둠의 칼날을 등껍질로 막아 냈다.
실로 기묘하고 빠른 손놀림.
“내 공간에서 시답잖은 재주를 부리는군. 네놈도 입맛대로 요리해서 포르말린으로 절여 주지.”
박사가 탐탁지 않은 듯한 눈빛으로 거북이와 진도화를 노려보며 말했다.
“뭘 그라고 노려보쇼잉. 당신네들이 흉물스럽게 고로코롬 만든 것들보다 요놈이 더 귀엽지 않소잉? 나는 내 새깽이 역실로 그라고는 못 만들지라잉. 그라다 죄받소, 박사.”
“닥쳐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뭘 안다고 내게 이래라저래라 떠드는 거냐!! 실험과 연구에 대해 아무 이해도 못 하는 병신들이 어디서···!”
박사는 생 제르맹이 죽은 뒤로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제 〈판데모니엄〉의 계획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들이 꿈꿔 왔던 세상이 이 세계에 펼쳐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차원의 문 프로젝트도 많은 연구가 필요했고, 바바 야가의 룩스 프로젝트도 그러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멀린이 이번 달 내로 모든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는 지시를 내렸다.
자칫 잘못하다간 프로젝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생 제르맹이 죽는 바람에 많은 계획이 변경된 모양이었다.
최소 반년 이상은 더 지켜보고 차근차근 실험을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들인데,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들이 가동되면 그때는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인류와 마족의 전쟁은 무조건 진행될 것이며, 세상은 마왕의 지배 아래 돌아가게 될 터.
박사는 그 신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갈 작정이었다.
그동안 그를 무시해 온 학계와 동료 연구가, 내쫓은 대학, 뒤에서 비웃고 조롱한 수많은 사람.
박사는 그들의 얼굴과 자신이 받은 굴욕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켜켜이 쌓인 묵은 원한을 자신의 연구에 담아 이 세상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었고, 마왕이 세상을 다스리는 날, 그 또한 마족의 측근으로서 굴욕을 준 이들에게 복수하려 했다.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무시받는 것만큼 치욕적인 것도 없는 일.
“아따. 화가 많이 나는 갑소. 생 제르맹인지 맹꽁인지 하는 삼류 연금술사의 선생이라더니, 그 제자에 그 선생이 맞는 모양이쇼잉.”
진도화가 비아냥거 리며 박사를 도발했다.
그는 합죽선을 기다란 담뱃대로 바꾸더니 입에 물고는 흰 연기를 뭉게뭉게 내뿜었다.
박사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런 무식한 범죄자 놈에게 무시당하고 치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한때 세계 최고의 석학이자, 온 국민이 사랑했던 그였다.
지금은 무너져 내린 자존감에 이름마저 버리고 ‘박사’라는 호칭으로만 불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놈에게 수치를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선혈이 흘러내릴 만큼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이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이 나를···! 감히 나를···!!”
“잉~ 화나 부렀네, 화나 부렀어. 눈깔을 보니께 상당히 꼬랐는 게 비네. 우짜 쓰까잉.”
진도화는 전혀 놀라지 않은 투로 담배 연기를 입술 사이로 길게 뿜으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비해 다른 두 명의 IZIZ 멤버는 박사의 태도에 놀란 기색이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지막지한 살심과 방안을 가득 채우는 단단하고 밀도 높은 마기.
지난번 바바 야가의 고성에 쳐들어갔을 때보다는 위험도가 낮긴 하나, 지금 이 공간도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박사 역시도 〈판데모니엄〉의 2위계까지 오른 실력자 중의 실력자.
지금 1위계인 두 명의 ‘미스틸 테인’을 제외하면 〈판데모니엄〉에서 가장 높은 인물이 바로 박사일 것이다.
그런 자를 그냥 도발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엿을 먹였으니 슬슬 뒷감당에 대해서 걱정이 드는 것도 당연지사.
“저 사람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글쎄. 나도 같이 일하는 건 처음이라서.”
가면을 쓴 자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진도화에 대해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때 박사가 지팡이를 지하실 바닥에 찍더니 옆에 있던 마도서를 들었다.
“이제 너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한 뒤에 해럴드 블룸처럼 인형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고는 마도서를 펼쳐 음산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와 음절 같은 것이 박사의 입에서 뱀의 꼬리처럼 줄줄줄 흘러나왔다.
“제가 말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진식이 품에서 평면구속된 코팅지 하나를 풀어 박사에게 던졌다.
쩌어ㅡㅡㅡㅡㅡㅡㅡㅡ억!!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었지만, 박사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가지 않았다.
그에게 대미지가 가기도 전에 사방에서 그물처럼 내려온 어둠이 여진식의 평면구속 공격을 막아 냈기 때문.
“코팅지에 담아 놓은 게 뭐였어?”
옆에 있던 남자, 칼레오가 물었다.
“비카타울의 주먹질을 담은 겁니다만···.”
비카타울의 파괴력은 IZIZ 멤버 중에서도 가장 위력적이었다.
그게 통하지 않았다면 다른 공격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
“아니면 호저의 사이드 일격이 있는데, 사용할까요?”
“아니. 닿지 않을 것 같다. 진도화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우린 잠자코 있자.”
칼레오는 이 상황에서도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는 진도화를 보며 중얼거렸다.
진도화는 무식하게 힘으로 밀고 싸우는 타입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내용으로 움직이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뒤에 공략하는 전략가 스타일.
“쿠헬헬헬! 어리석은 놈! 지금 이 주문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군! 아니면 또 박쥐처럼 들러붙으면 살아 남을 줄 아는 거냐?!”
“아그들이 공격하는 거 본께 먹히지도 않는 것 같고. 영감 마지막 발악인 것 같은디 아무 찌끼나 함 해 보쇼잉.”
“손쓸 방도가 없어 포기한다는 말을 길게 나불거리는군! 해럴드 블룸이 어떻게 죽었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해라!!”
박사는 마도서를 계속해서 읊어 나갔다.
이윽고 그를 중심으로 어둠이 끓어올랐다.
사방의 공간이 뒤틀리고 마치 프랙털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춤을 추듯이 방향 감각을 전부 앗아갔다.
박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자신의 승리였다.
이제 도착한 곳엔 수백의 마족과 크라켄이 있을 것이고 진도화와 저 IZIZ는 쉼 없는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찰나의 이동이 끝나고 두 발바닥에 지면의 감촉이 닿았다.
박사는 지팡이로 땅을 짚은 뒤 넘어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아 냈다.
나이 탓인지 시야가 순간적으로 까매졌고, 귀에서는 삐ㅡ 하는 이명이 울리고 있었다.
“쿠헬헬! 크라켄 님이시여! 저놈에게 마족의 무서움을 보여 주소서!!”
그는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삼키며 지팡이로 진도화가 있던 방향을 가리켜 소리쳤다.
차츰 이명이 가라앉았다.
예상했던 전투 소리나 신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시야가 점점 돌아왔다.
그제야 박사는 자신이 있는 곳이 마계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십수 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미스틸 테인’의 회의석.
그들은 제각기 다른 감정을 시선에 품은 채 박사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낄낄낄. 대체 뭐야, 저 빌어먹을 늙은이는.”
빌리 더 키드가 모자챙을 만지작대며 조소했다.
“이런 외딴섬에 공간 이동 마법이냥? 뭔가 수상한 것이냥. 좌표를 어떻게 찍어야 여기로 오는 것이냥.”
이번엔 아누비스가 금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모두 수상쩍다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상대의 저력이 하잘것없어 보였기 때문.
“허허허. 갑자기 채근하는 것도 압박이 될 수 있으니, 우선 조금 쉬게 한 뒤에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나. 이동 마법을 하다 실수하는 경우도 간혹 있고 하니.”
때마침 멀린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미스틸 테인’ 사람들에게 좋은 의도인 것처럼 말을 꺼냈다.
그런 뒤 다른 이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박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였다.
“크라켄 님. 마족의 위대함. 갑자기 나타나서 지껄인다는 소리치고는 상당히 듣기 거북하군. 영감탱이, 정체가 뭐냐?”
최대수가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잘근잘근 씹으며 은은한 살기를 발산했다.
“햐ㅡ 저도 들었어요. 그리고 저 사람 손에 들린 책에서 마기가 미약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옆에 있던 로키가 최대수를 거들고 나섰고,
“나 저 얼굴 알아. 저거 〈판데모니엄〉 2위계인 박사야. 해럴드 블룸이 실종되기 직전에 찍은 영상이 HMCS 서버실에 있었는데, 시우가 보여 줬었거든.”
마지막으로 간다르바가 그 의견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멀린은 박사에게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는 척하며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가 다른 포털로 도망치게 하려 했거늘.
저 세 사람으로 인해 회의장 내부 분위기가 순식간에 뜨거운 적의로 뒤바뀌었다.
“〈판데모니엄〉의 개새끼 따위가 미치신 거예요, 아니면 뒈지고 싶으신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신 거예요?”
치우가 허리춤에 찬 파산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살기를 내뿜었다.
“생 제르맹 이후 우리 ‘미스틸 테인’은 환골탈태했다. 모두 너희 덕분이다. 마족을 섬기는 버러지들.”
키플라갓도 박사를 보며 벼린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박사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꼴에 처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늘 하던 대로 마도서에 쓰인 주문을 읊고 공간 이동을 했을 뿐인데, 왜 평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게 적진 한복판에 떨어진 것일까.
그는 진도화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건 고스란히 적의 계략에 넘어간 것일 터.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이 존재할까.
고작 이렇게 개죽음당하려고 그 세월을 버티며 살아왔다는 게 박사로서는 믿어지질 않았다.
그는 멀린과 바바 야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바 야가는 호선을 그린 눈으로 웃고 있었고, 멀린은 차디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ㅡ”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멀린의 지팡이에서 마력파가 쏘아지더니 그의 머리통을 으깨 버렸다.
“아니, 이보쇼, 멀린. 잡아다 취조를 해야 할 거 아뇨.”
키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입을 벌리길래 스킬을 사용하는 줄 알았네.”
멀린은 짐짓 미안한 얼굴을 하며 바닥에 흐르는 박사의 피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
“어디로 날려 보낸 겁니까?”
여진식이 갑자기 사라진 박사의 자리를 보며 진도화에게 물었다.
“잉. 저짝으로다가 보내 부렀지.”
“원래 우리와 함께 날아가는 주문 아니었습니까? 의도가 그래 보이던데.”
“보니께 마계로 날아갈라고 하는 모양이드만”
“마계···. 갔으면 우리 셋 다 죽었겠네.”
칼레오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런데 진도화 두목께서는 어떻게 막으신 건가요?”
여진식은 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허. 영업 비밀이여, 영업 비밀. 잉? 문자 왔네잉.”
말을 멈춘 진도화가 문자를 확인하더 니 씩 입꼬리를 올렸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잉. 박사가 뒈져 부렀다는구먼.”
“네? 누구한테요? 그 문자는 누가 보낸 건데요?”
진도화는 담뱃대를 물고 흰 연기를 내뿜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칼레오와 여진식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있어. 옛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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