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81
285화〉
거래3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시우가 멀린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뒤이어 아누비스와 간다르바가 시우의 좌우에 나란히 앉으며 자연스럽게 멀린과 바바 야가와 대치하는 구도가 되었다.
“왜 그렇게 화내는 것이냥? ‘미스틸 테인’이 게이트 처리하러 가면 안 되는 것이냥?”
아누비스가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멀린을 바라보았다.
“어머나. 설마 멀린이 그런 것 때문에 화를 내겠어요. 그렇죠, 멀린?”
멀린의 정신을 깨운 건 옆에 있던 바바 야가였다.
그녀의 말에 아차 싶었던 멀린은 황급히 표정을 고치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화를 내다니, 그런 것은 아니네. 다들 게이트 처리를 하러 갔다니 대단하구먼. 단지 내가 기분이 조금 나빴던 것은 민시우 헌터가 ‘명령’을 했다기에 그런 것이라네. 우리 ‘미스틸 테인’이 누구한테 명령을 들을 위치는 아니지 않은가.”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평상시의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긴급회의를 소집했는데 내게는 말도 없이 자네의 의견을 먼저 따랐다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군. 최소한 회의를 거친 뒤에 가도 됐지 않겠나?”
“늦죠, 많이. 회의가 얼마나 지지부진해질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허허허. 왜···.”
“누가 어느 나라에 갈지, 혹은 어디가 더 급하고 어디가 인구가 밀집되어 위험한지, 아니면 외교적으로 어떤 문제가 없는지. 이런저런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며 시간을 끌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말에 가시가 있군, 자네. 대체 누가 시간을 끈다는 것인가. 지금 ‘미스틸 테인’의 노장을 의심하는 것인가?”
멀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시우를 향해 노기를 발했다.
시우는 대답 대신에 들고 온 가방에서 큼지막한 서류철을 꺼내 테이블 위로 밀어서 건넸다.
“···이게 무엇인가?”
멀린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서류철을 천천히 넘겼다.
그건 일종의 회의록으로 보였다.
“최근 5년 이내 ‘미스틸 테인’에서 있었던 회의 내용을 수기로 옮긴 회의록입니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발언을 멀린, 당신께서 하셨더군요.”
“아무래도 내가 제일 연장자이기도 하고 경험도 많고 하니, 젊은 친구들이 양보를 많이 해 주는 편이지.”
“그리고 아까 말한 외교 문제, 지역 문제, 중립 문제를 꺼내서 ‘미스틸 테인’의 참여 를 항상 불발시킨 사람이 당신이기도 하고요.”
“···뭔···.”
멀린은 대꾸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미 우리도 읽어 볼 만큼 읽어 봤다냥. 지난번 아시아에 발생한 S급 게이트 사건이나 독일 아티팩트 박람회 게이트, 강원도 S급 게이트, 그밖에 무수한 〈판데모니엄〉 테러 사건. 모두 당신이 ‘미스틸 테인’의 참여를 막지 않았냥.”
“그랬지. 나나 키플라갓이나 이자나미가 가자고 하면 언제나 멀린이나 바바 야가가 말리고는 했으니까.”
아누비스의 말에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다르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멀린은 회의록을 슬며시 다시 내려놨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여기 있는 두 명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스틸 테인’ 전부에게 회의록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말을 듣지 못하게 하고 민시우, 자네 말을 듣게 한 건가?”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이군요, 멀린.”
“오해는 내가 아니라 자네들이 하는 것이지!!”
그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역정을 냈다.
“설마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미스틸 테인’의 출진을 지지부진하게 만든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날 몰아세우려고 온 것인가?!”
“고작 그거 때문은 아닙니다.”
시우는 품에서 지퍼 백 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들어 보였다.
“이게 뭔 줄 아십니까?”
“그게 무엇인가?”
“룩스라는 마약입니다.”
일순간 아주 미묘하게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마약이라. 설마 우리가 마약을 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사실 이 약이 기존 마약을 대체하고 시장을 장악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는데, 수사하다가 재밌는 걸 발견해서요.”
“재밌는 거라니···?”
“이 마약을 주술로 만들었더라고요.”
시우가 대답하며 멀린과 바바 야가를 번갈아 쳐다봤다.
바바 야가는 새빨간 입꼬리를 올린 채 변함없이 시우를 보며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주술로 만들었으니까 뭘 어쩌라는 건가? 이 세상에 주술사는 많다네.”
듣고 있던 멀린이 시우의 의견을 일축했다.
“후후후. HMCS 특급 요원씩이나 되시는 분이 심증만으로 저를 잡으러 오시진 않았겠죠. 제 주술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바바 야가가 턱을 괴고서는 시우가 할 말을 선수 치듯이 먼저 물었다.
“낄낄낄.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군.”
그때, 휴게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검은 코트에 검은 부츠, 검은 카우보이모자를 쓴 빌리 더 키드.
그는 웬 보따리를 등에 걸치고 나타나더니 그걸 시우에게 넘겨주고는 조금 떨어진 의자에 가서 앉았다.
“키드. 자네는 게이트에 가지 않았나?”
몇몇 ‘미스틸 테인’은 아마 예전부터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멀린은 키드가 선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나 계급 같은 것은 모르나, 뒷세계에 속한 사람이란 것도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바.
〈판데모니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통해 몇 번 시도도 했었다.
그러나 키드는 악에 서 있으면서도 마족의 손을 잡는 것은 굳이 거부하는 특이한 자였다.
협박을 하기도 해 보고 어르기도 해 보고 힘이나 돈을 이용해 거래도 제안해 봤지만, 키드는 그 어느 것에도 응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시도는 지금 ‘미스틸 테인’에 있는 모든 이에게도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미스틸 테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정의감이 투철하니 그렇다 치지만, 키드는 그런 것도 전혀 없으면서 거절하는 것이 상당히 의아했었다.
“게이트? 가지 않았습니다. 알다시피 제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주의라서요.”
키드는 테이블에 발을 올리더니 입매를 비틀었다.
“그렇구먼. 하면 그건 그렇다 치고, 민시우에게 건넨 것은 무엇인가?”
“조금 전에 바바 야가의 주술이라는 증거가 있냐고 물어보시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을 위해 준비한 세 가지 증명 단계 중 하나입니다.”
키드 대신에 시우가 입을 열었다.
“어머나, 무슨 단계 말이죠?”
“첫 번째는 약의 제조 공장.”
“······.”
“두 번째는 약의 중간 유통 허브.”
“하.”
“세 번째는 주술을 역으로 추출할 수 있을 만큼의 약 분량.”
지금껏 계속 미소 짓고 있던 바바 야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녀는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완전한 억측에 불과한 소리군요. 그 어느 것 하나 증명해 내지 못할 거예요.”
“그런가요?”
“이 바바 야가, ‘미스틸 테인’으로서 부끄럽게 살지 않았어요. 만약 억측으로 드러나면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을 거예요, 민시우 헌터님.”
“당연하죠. 응당 그 책임을 질 겁니다. 하지만 당신 또한 드러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생 제르맹처럼.”
“······.”
시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테이블 중앙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화상 전화였다.
“도착했냐?”
– 도착해서 둘러보고 있다.
화면 속에서는 최대수가 웬 고성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주술에 사용된 항아리와 마도서, 그리고 각종 불법 재료들이 가득하군. 마법 마약 단속반이랑 함께 나왔는데, 불법투성이라고 한다.
“그 고성의 소유주가 누구지?”
– 바바 야가라고 하더군.
“하, 웃기고 있군요!”
바바 야가가 헛웃음 치며 노골적으로 그들의 대화를 비웃었다.
“이런 같잖은 짜고 치는 연극에 놀아나길 바라는 건가요?! 저 성이 제 소유라는 증거ㅡ”
“얼마 전에 저기서 IZIZ와 싸웠죠?”
“뭐?”
“그들이 증언했습니다.”
“자, 잠깐만요. 설마 범죄자의 증언을···?”
“그들이 범죄자라는 것과 증언의 신빙성은 별개니까요.”
바바 야가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명백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
“그리고 두 번째, 유통 허브.”
“이보게 민시우 헌터. ‘미스틸 테인’인 바바 야가를 마약상 취급하면서 대화하는 게 불쾌하구만! 이런 식으로 대할 거면 우리도 변호사를 부르겠네!”
“멀린. HMCS의 권한이 겨우 이 정도가 아니란 건 본인이 잘 알 텐데요? 특급 요원의 수사 권한이 ‘미스틸 테인’을 어디까지 누를 수 있나 보여 드릴까요?”
멀린은 이빨을 뿌드득 갈았고, 시우는 덤덤한 말투로 다시금 말을 이어서 했다.
“사실 유통 허브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의외로 찾기 힘든 곳에 있어서 이건 전문가한테 의뢰했죠.”
“전문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흑천락〉에는··· ‘크립’으로.”
시우는 얼마 전에 록히드 마틴에서 주문한 물건을 받았을 때 따로 빼 둔 총을 가지고 키드를 찾아갔었다.
로키의 정보로 그가 ‘크립’인 걸 알고 있던 시우는 그에게 거래를 제안했고, 총과 ‘재미’를 주는 대가로 손을 잡기로 했었다.
키드는 시우와의 거래대로 부하들을 시켜 〈흑천락〉을 털었다.
그리고 마약을 분류하는 작업장과 유통 허브를 전부 발각했다.
이는 HMCS나 헌터 협회, 경찰들은 하기 힘든 작전이었다.
만약 정부 조직에서 이런 작전을 펼치려고 했다면 진작 정보가 새어 나갔거나 혹은 마킹이 되어 작전 실행 전에 전부 실패했을 것이다.
키드가 같은 범죄 조직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흑천락〉에 있던 룩스 분류 공장은 전부 발각되었습니다. 거기는 바바 야가의 이름 아래 보호되고 있는 곳이 맞죠?”
시우가 질문을 던졌고, 바바 야가는 입술을 짓씹었다.
안 그래도 새빨갛던 그녀의 입술이 핏빛으로 물들며 더욱 선명해졌다.
“잠깐, 민시우 헌터. 아무리 그녀의 이름 아래라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바바 야가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비약이 심하군.”
“그녀에 대한 보호가 심하군요, 멀린.”
“나는 ‘미스틸 테인’ 모두에 대한 애정이 있다네.”
“그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만”
시우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세 번째였죠.”
그는 보따리를 풀러 내용물이 모두에게 보이도록 했다.
바바 야가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시우에게 보였다.
“룩스입니다.”
얼추 보아도 수만 정은 넘어 보이는 무수히 많은 양의 룩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서 룩스와 그녀를 엮을 수는 없었다.
시우의 손에서 마력이 솟구쳐 흐르더니 술식이 공중에 가지런하게 빛을 뿜는다.
구현된 마법진이 마약을 서서히 분해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들이 입자로 돌아가더니 공중으로 흩어 사라진다.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경이로 차오른다.
이윽고 룩스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새까만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마기로 변하더니 바바 야가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어머나.”
그녀는 스태프를 전방에 휘둘렀다.
쩌어ㅡㅡㅡㅡㅡㅡㅡ엉!!
시우가 한발 앞서 실드를 구축했고, 재빨리 무라마사를 뽑아 앞으로 내리그었다.
투우우우 우우우웅!
하지만 이미 바바 야가의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주술이 발동된 뒤였다.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설마 키드가 저쪽에 붙을 줄은 몰랐네요.”
“낄낄낄. 재밌는 걸 보게 해 준다고 했거든.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데.”
“더 떠들고 싶지만, SSS급 헌터를 버틸 자신이 없어서. 그럼, 안녕.”
바바 야가는 수십 개의 마법진 안에서 모습을 감췄다.
시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간다르바와 아누비스가 이상한 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 제기랄!! 시우야, 멀린 이 새끼도 도망갔어!”
“우리가 이놈들을 붙잡고 있을게냥!”
“흠. 키드, 멀린을 쫒을 수 있겠나?”
“해 보도록 하지. 재밌겠군.”
시우는 그에게 지시를 내린 뒤 바바 야가를 쫒아 공간 이동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