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84
288화〉
룩스 3
간다르바의 장갑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태양의 힘을 실어 활용할 수 있게 만든 특수 소재의 장갑은 복잡한 마법 회로가 수십 개 이상 새겨진 마법 공학의 정수 그 자체였다.
거기다 실사용자가 그저 그런 헌터도 아니고 ‘미스틸 테인’의 간다르바라고 하니, 마법 공학 연구소 직원들은 몇 날 며칠을 꼬박 밤새워 가며 술식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일명 ‘아그니(Agni)의 권능’.
간다르바는 새빨개진 두 주먹을 쥐고 사콘과 야콘에게 달려들었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질 법도 한데, 장갑은 붉은빛을 내뿜기만 하며 열기는 침착하게 가두었다.
복잡하게 얽힌 수십 개의 회로가 그녀의 스킬이 낭비되지 않도록 열기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
사콘과 야콘은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세가 격변하자 전신에서 마기를 힘껏 끌어 올렸다.
지난번 마주했던 부르데오스나 해럴드 블룸과는 결이 다른 느낌의 마기가 폭주하듯이 솟구치더니 날카롭게 벼린 어둠이 찌를 듯이 튀어나왔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득!!
바닥을 헤집으며 수백 개의 채찍처럼 어둠이 몰아친다.
생각으로 알아채기도 전에 간다르바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허리를 꺾어 날아오는 공격을 잇따라 피해 냈고, 번개처럼 앞으로 박차고 나가 야콘의 옆구리에 주먹을 있는 힘껏 때려 박았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억!!
돌벽이 부서지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아그니의 권능’ 일부가 발동하며 이글거리는 열기가 야콘의 전신을 휘감고 새빨간 불꽃을 일으켰다.
화르르르르르륵!!
“야콘!!”
어마어마한 화염이 야콘을 집어삼키자 사콘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목걸이에 차고 있던 구슬 하나를 빼서 입에 넣고 와그작 씹었다.
사콘의 앞에 거대한 술식 하나가 생겨났고, 마법진에서 새파란 물줄기가 솟아나며 야콘에게 붙은 불을 휘감아 올렸다.
이윽고 화염을 모조리 빨아들인 물결은 곧장 간다르바에게 달려들었다.
“고작 이따위 물로 덤비는 거냐?”
그녀는 조소하다가 두 주먹을 서로 맞부딪혔다.
파지지지지지지지···!!
작은 태양이 무시무시하게 밝은 섬전과 함께 타오르더니 그녀의 앞으로 솟구쳐 올랐다.
지금까지 가둬 두었던 열기를 한꺼번에 개방하기라도 한 듯, 이글거리는 열기가 내뿜어지며 사위의 온도가 급격히 치솟았다.
“꺼져라, 태양!”
사콘이 일갈했다.
새하얀 빛 덩어리와 물결이 서로 격돌하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수증기가 일대에 발생했다.
간다르바는 마력 실드를 펼쳐 충격에서 벗어나며 적들의 마기를 감지하여 위치를 찾았다.
그런데 적들의 기운이 조금 전이랑 판이했다.
‘이건 둘··· 아니, 분명 하나인데···?’
간다르바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야콘과 사콘의 기운이 뒤섞여서 이상하게 감지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욱하게 낀 수증기를 사이에 두고 적을 향해 발을 박찼다.
적을 몰아붙였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려 했던 것.
그리고 그런 간다르바의 눈앞에 나타난 건 그녀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이상한 생김새의 괴물이었다.
아드드드득!
괴물은 목에 걸린 구슬을 한 번에 몇 개나 씹어 삼켰다.
그리고 나타난 간다르바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꽈아아아아아앙!!!
사위의 지형이 초토화되고 그녀가 서 있던 곳이 깊게 파이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미간에 눈이 세로로 하나만 달린 괴물은 아무렇게나 자란 이빨을 드러내며 간다르바를 찾았다.
그녀는 주먹이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피해 대미지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없지는 않았다.
“이··· 넌 뭐 하는 새끼야···!”
간다르바가 팔뚝을 매만지며 상대를 향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나는 사야콘. 이게 원래 내 본모습이다.”
그는 입 안 가득 거대한 마기를 머금더 니 간다르바를 향해 내뿜었다.
***
전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아직 리버스 게이트가 채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좀비 떼가 출몰한 것이다.
아니, 출몰했다기보다는 멀쩡했던 사람들이 좀비로 변했다.
평범했던 직장인이, 출근하던 아빠가, 아이를 돌보던 엄마가, 수업을 듣던 학생이, 회의를 주관하던 사장이, 신의 말씀을 전파하던 목사가.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키더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특히 상황이 심각한 곳은 마약 우범 지대와 빈민가, 갱스터 아지트, 새벽의 클럽, 마약 사범 구치소 같은 곳이었다.
넓지 않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닭장 속 닭들처 럼 갇혀 있는 장소일수록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수많은 국가에서 군대와 경찰, 헌터를 출동시키며 비상사태가 벌어졌고, 리버스 게이트와 좀비 사태가 한꺼번에 일어난 국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우리도 바로 이동한다. 마법 과학 수사대는 남고, HMCS와 헌터 협회는 출발한다.”
최대수는 바바 야가의 고성에서 키메라와 싸우다가 좀비가 출몰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리버스 게이트가 아직 발동하지 않은 곳이 있어서 먼저 이곳에 왔던 것인데, 이런 생뚱맞은 일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전투 헌터들을 데리고 곧장 인근의 포털로 향했다.
그리고 사태가 가장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곳 중 하나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지옥도의 한 폭과 다를 바 없었다.
한쪽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과 미사일을 쏘는 군부와 반대쪽에서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새까만 피부의 좀비 떼들.
거리 곳곳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고, 자동차 경고음과 창문 깨지는 소리, 누군가의 절규, 아기 울음소리, 불에 타는 그을린 시체 냄새, 화약 냄새 따위가 오감을 잔뜩 괴롭혔다.
최대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시가전이 싫은 이유는 이런 느낌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전쟁이로군.”
그는 시가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차 님, 명령을 내려 주십쇼.”
그때 최대수를 따라왔던 이들이 그를 보며 어떻게 할지 물었다.
“명령이라. ‘저것’에 관해 내려진 규정이나 지침이 있나?”
최대수가 좀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의미는 명확했다.
상부에서는 과연 ‘저걸’ 사람이라고 인식할까, 괴물이라고 인식할까.
만약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면 헌터들은 좀비를 제압해야 할 테고, 괴물이라고 인식한다면 죽여야 할 것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였다.
이 좀비들은 잠시 마법이나 저주로 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토록 이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인가.
만약 영원토록 이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라면, 이 좀비들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는 있는 것인가.
혹은 되돌릴 수 있는 스킬이나 마법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이 좀비들은 생물학적으로 죽은 상태라 움직일 수 없게 기능을 정지시켜도 살인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가.
당장 눈앞에 괴물이 들이닥치는 판국에 별걸 따진다고 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일반인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수많은 좀비를 죽여야 하는 헌터나 군인들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수십, 수백여 ‘좀비’를 죽이고 봤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몸만 지배당한 채 생각은 온전했던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좀비들이 모두 저주에서 풀려나 사람이 된다면.
그들은 명령에 따라서였다고는 하지만, 그 스스로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갈지도 모른다.
“규정··· 현장에서 지휘관 재량에 맡긴다고 합니다.”
좀비는 헌터들에게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큰 괴물이다.
최대수는 짧고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알았다. 명령은 단 두 가지다. 적군을 사살한다. 뒈지지 마라. 이 명령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이상.”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최대수는 이 명령이 절대적으로 옳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바바 야가의 주술이 풀리면 저자들이 다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
혹은 바바 야가가 죽으면 정상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추측.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지.”
최대수는 거기에 주안점을 두고 작전을 실행했다.
어차피 나머지 일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
기분 나쁠 정도로 짙고 역한 마기가 바바 야가의 등 뒤에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갔다.
쿠와ㅡㅡㅡㅡㅡㅡㅡ앙!!
천장이 뚫리고 높다란 하늘이 보인다.
그렇게 올라간 마기는 허공에서 수만 갈래로 나뉘어 전 세계에 암녹색 빗물처럼 쏟아졌다.
“후후후. 조금 일찍 왔어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룩스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먹었고, 제 주술은 지금 그려서 발동한 게 아니거든요.”
“미리 술식을 다 구축해 농고 마력만 붓지 않은 상태였나 본데.”
“정답이에요. 이런 건 준비성이 철저해야 하는 거잖아요. 뒤늦게 술식 그리다가 죽어 버리면, 억울해서 어떻게 사나요.”
바바 야가는 야릇한 눈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던 포션을 공중에 흩뿌렸다.
보라색 액체가 젤리처럼 출렁이며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흐느적거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배터리가··· 좀비라는 거지?”
“뭐, 세간에서는 좀비라고도 부르죠. 저는 제 펫이라고 부르지만.”
“그 좀비는 지금 죽은 상태인가?”
바바 야가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아~ 소리를 내며 웃었다.
“후후후.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빈틈이 없군요. 혼자서 모든 걸 다 해결하고 싶어요?”
“아니, 그럴 순 없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러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대답을 하지?”
“음ㅡ 글쎄요.”
그녀는 보라색 액체를 스태프로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시우는 대답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우선 무라마사를 뽑아 들었다.
스ㅡ릉!
달빛을 닮은 도신이 번쩍이며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성미가 급하시군요”
“보통 대답할 것 같지 않으면 팔이나 다리를 자르거든. 그러면 입을 열더라고”
“어머나, 잔인해라.”
“팔과 다리. 골라.”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의 팔다리도 자르시나요?”
“어.”
시우가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꾸하자, 바바 야가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몰라요. 이렇게 대형 주술을 쓴 적은 처음이라. 하지만 비슷한 주술을 소규모로 썼을 땐··· 죽었던 것 같군요.”
“그렇군. 네 머리를 쪼개면 주술이 풀리는 건가?”
그녀는 시우의 거침없는 표현이 재밌는지 큭큭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뭐, 그렇기야 하겠죠. 그런데 아무리 SSS급이라고 한다지만,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닌가요? 이래 봬도 ‘미스틸 테인’이자 〈판데모니엄〉의 1위계인데.”
“딱히 무시한 적은 없어. 그냥 날 상대하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말했을 뿐이야.”
“흐음, 마음에 들어요, 정말. 같은 〈판데모니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군. 넌 내 타입이 아니라서.”
말을 마친 시우가 무라마사에 마력을 듬뿍 싣더니 사선으로 힘껏 내리그었다.
콰가ㅡㅡㅡㅡㅡㅡㅡㅡㅡ아아아앙!
검기가 지나간 곳이 통째로 베어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바 야가의 마법진마저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시우는 살기 어린 눈으로 전방을 응시하다가 재빨리 실드를 구축했다.
콰지이이이이익!!
보라색 화살이 시우의 밀도 높은 실드를 반파하며 거의 살에 닿을 듯한 거리까지 꿰뚫었다.
실드를 조금이라도 늦게 구축했다면 화살촉에 꿰뚫렸을 터.
“어머나, 아쉬워라.”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음에는 실드를 부수고 심장에 맞춰 줄게요.”
“확실히 ‘미스틸 테인’쯤 올라가면 다들 자신감이 넘쳐흐르네.”
그때 시우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피곤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보이나요?”
“내가 리버스 게이트도 해결해야 하고. 룩스인지 좀비인지도 처리해야 하고. 게다가 〈판데모니엄〉 문서 정리도 해야 하거든.”
“후후후. 제가 제 전용 펫으로 만들어서 당신을 그 일들로부터 해방시켜 드리도록 할게요.”
“처맞고도 그 소리 하는지 보자.”
바바 야가는 시우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