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사냥
“끄아아아악!!”
티그르는 자신의 맨살을 살라먹는 불꽃에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상대를 이겼다고 생각해 마력을 두르지 않은 것이 큰 화근이었다.
“잘 가게나.”
커다란 불길이 티그르를 향해 다시 한번 혀를 날름거린다.
순간, 커다란 마력 파동과 함께 불길이 손쉽게 사그라들었다.
적귀는 파동이 시작된 지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영감, 안 죽고 살아 있었군.”
그리즐리가 주먹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얼굴엔 기쁨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포커페이스.
“끌끌끌. 네깟 놈보다 먼저 죽을 수야 있나.”
푸릇한 안광이 어둠의 한편을 밝힌다.
적귀는 옛 동료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우와ㅡ 할아버지, 오랜만이야!”
울버린이 워 해머를 든 손을 흔들었다.
그러던 찰나, 퓨마의 팔시온이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적귀가 있는 자리로 떨어졌다.
콰과아아!
동굴 바닥이 깊이 파이며 돌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날렸다.
적귀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의 양손에 술식이 배열되며 두 개의 마법진이 광채를 흩뿌렸다.
파지지지지직!
마치 굵은 뱀처럼 꿈틀거리던 전격 마법이 적들을 향해 섬전처럼 쏘아졌다.
퓨마는 팔시온에 마력을 둘러 전격을 베어 내려 했다.
‘내가 마음먹고 마력을 집중하면 도경후와도 한판 뜰 수 있는 사람인데!’
검 끝이 푸르스름하게 물들며 전격을 흩어내려는 찰나,
적귀가 수인을 맺어 마법의 형상을 뒤바꿨고,
“그거거거거적···.”
퓨마는 전격에 휩쓸리며 게거품을 물고 말았다.
이어서 그리즐리를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가는 마법의 향연.
“흥.”
그 모습을 본 그리즐리는 땅바닥에 주먹을 꽂더니 무언가를 재빨리 뽑아냈다.
그의 키만 한 돌덩이가 솟아오르며 전격을 상쇄시킨 것이다.
“그따위 잔재주로 사수귀를 이길 줄 알았나. 영감도 늙어서 맛탱이가 갔군.”
“끌끌끌. 아직 시작도 안 했단다, 애송아.”
그리즐리의 도발에 적귀는 지팡이 헤드를 치켜들었다.
검보라색 마력이 맺히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줄이 땅속에서 솟구쳐 나와 그리즐리의 사지를 묶었다.
“크윽!”
결박당한 그는 몸부림쳤지만, 이내 줄이 조여들며 온몸을 꽁꽁 싸매게 됐다.
일반적인 구속 마법이었다면 손쉽게 끊어 버렸을 것이었다.
‘씨발 늙은이! 주구를 썼잖아!’
그러나 적귀는 마법 아이템을 제 수족처럼 다루는 능수능란한 마법사.
게다가 오랜 세월 킬러로서 활동한 경험과 베스티아 동료에 대한 정보도 방대한 수준.
따라서 그는 상대를 골라 알맞은 주구 능력을 쓴 것이었다.
“흐읍···!”
그리즐리는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줄을 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온몸의 근육이 터질 듯 꿈틀거렸다.
하지만 힘을 주면 줄수록 구속 마법은 더 커다란 힘으로 그의 몸을 옥죄었다.
“끌끌. 날 원망 말게나. 이 바닥이 원래 이런 법이니까.”
그리즐리의 몸을 가르기 위한 마력이 한 점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사수귀 중 하나가 허무하게 당하려는데,
“히히, 할아버지 나랑 놀자!”
울버린이 워 해머로 십자 포물선을 그렸다. 붉은 궤적이 따라 나타나더니 허공을 불태웠다.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구나. 합!”
적귀는 허리춤에 찬 수리검 하나를 꺼내 울버린에게 던졌다.
“히히히. 할아버지 너무 느려!”
제자리에서 껑충 뛰어 피해 버린 울버린. 그녀는 다시 한번 워 해머를 휘두르려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런데
쩌저적···!
땅에 박힌 수리검이 얼어붙는다.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 마법이 솟구치더니 울버린의 등에 직격한다.
콰아앙!
“커헉!”
울버린은 저 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마력을 공격에만 집중한 탓에 방어에는 신경 쓰지 못한 것이었다.
“끌끌. 새 주인이 만들어 준 주구들이 성능이 좋구나.”
적귀는 조금은 놀란 듯하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가 쓰는 모든 주구들은 시우가 만들어 준 것들이었다.
더 적은 마력으로 더 강한 화력을 내뿜게 설계된 주구들은, 적귀가 지금껏 써 왔던 그 어떤 아이템들보다 성능이 좋았다.
여기에 요구되는 건 세밀한 마력 운용력.
따라서 볼크나 추하민, 황정구는 주구를 쓸 수 없었다.
자리 잡고 앉아서 천천히 운용하면 할 수도 있지만, 전투 중에 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
마치 전력 질주를 하며 바늘귀에 실을 집어넣는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적귀는 잠깐 숨을 돌렸다.
그의 눈에 멀찍이서 바라보는 단장과 블랙맘바의 얼굴이 비쳤다.
‘왕을 불러내기엔 아직 멀었나 보군.’
단장은 웃고 있었다.
칙칙한 조명과 로브 탓에 표정이 보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적귀의 눈에는 단장의 웃는 모습이 선연했다.
아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저 미친 전투광은.
예전부터 그랬다.
온갖 범죄 조직에 몰래 숨어 들어가 그들을 몰살하고 나온다든가, 아니면 잘 나가는 헌터들을 암살해서 딥웹에 올린다든가.
의뢰받지 않은 살인은 킬러로서 하지 않는 게 원칙이거늘.
단장은 심심하단 이유로 뻔뻔하게 자행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블랙맘바···.
녀석 또한 억제할 수 없는 괴물이다.
사수귀 중 포악함으로 따지면 앨리게이터나 티그르가 손꼽혔지만, 잔인함과 교활함은 블랙맘바가 최고였다.
지금 저리 태연하게 있는 것도 뱀 같은 지혜의 일환일 터.
그런 생각들이 짧게 스쳐 지나가는데, 단장이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적귀는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바라봤다.
“크아아아악!!”
티그르가 반쯤 화상 입은 몸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분노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듯, 티그르는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손끝에서 발한 강대한 마력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적귀는 스태프 하나를 소모해 쉴드를 쳤다.
그러나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
유리처럼 깨지는 쉴드 너머로 상대의 광포가 짓쳐들어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티그르는 싸움에 손속을 두었다.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는 전투라고 느꼈으니까.
그런데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가 무너지자 뒤에 있는 것들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대체 이만큼 치명상을 입은 게 얼마 만이던가.
“다 찢어 죽인다ㅡㅡ!!”
귀기 서린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사위의 공간을 어그러트렸다.
콰가가가가가!
***
반인반수형 늑대인간인 [이형계] 각성자.
볼크는 앨리게이터를 마주한 순간 [베어볼프] 모습으로 변했다.
사수귀인 앨리게이터는 그 흉포함만큼 실력도 대단한 킬러였기에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대의 역량이 훨씬 대단하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햐햐햐! 조금 더 분발하라고!”
[블링크 : 에어 점프]앨리게이터는 자신의 마력 범위 내에서 순간 이동했다.
텅! 텅! 텅!
발을 몇 번 구르자 순식간에 3m 위로 솟구쳤다.
“크르릉!”
볼크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가 서로 교차하며 공중에 마력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공격은 허공을 가로질렀고,
콰자아악!
뒤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앨리게이터의 손톱에 등이 찢겨 나갔다.
이미 몇 번이나 당한 패턴이다.
“크으윽!”
“흐햐햐! 아무래도 내 몸에 상처를 입히기엔 실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볼크는 이 사이로 피를 흘렸다.
이미 몸 군데군데는 성한 곳 없이 상처로 가득했다.
쉬이익一!
때마침 황정구가 나이프와 쇠구슬을 재빠르게 날렸다.
그러나,
타타탕탕!
“멍청 멍청아! 그 기술은 소용이 없다니까!”
호크아이의 화살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씨발··· 존나 강하네.”
황정구는 다리를 절뚝이며 볼크 옆에 섰다. 그의 허벅지는 새빨간 선혈로 흥건히 물들어 있었다.
앨리게이터의 전투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게다가 추측이지만··· 녀석은 전력을 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황정구는 다시 양손의 나이프를 역수로 쥐었다.
“HMCS 팀장 직함이 울겠군.”
손잡이를 타고 검날과 검 끝에 핏물이 흐른다. 앨리게이터의 공격을 막기만 해도 살이 찢겨 나간 탓이다.
“흐햐햐햣! 전력을 다한 게 이만큼이라니 실망인데.”
“전력이라니··· 우리 전력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거든.”
황정구가 마력을 재순환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크르릉! 너희 따위 씹어 먹고도 남지.”
“멍청 멍청이! 조직을 배신하고 기댄 곳이 고작 HMCS였어?”
호크아이는 한심하다는 듯 볼크에게 물었다.
가깝지는 않더라도 나름 동료로 인정해 줬었는데.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볼 줄이야.
“흐햐햐햐! 그만해라 호크아이! 약자들은 원래 여기저기 기생하며 빌붙기 마련이니.”
앨리게이터는 비웃음을 머금고 스킬을 다시 발동했다.
텅! 텅! 텅! 텅!
허공을 딛는 기묘한 소리와 눈 깜빡임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킬러의 신형.
볼크와 황정구는 서로 등을 맞대고 갑자기 나타날 앨리게이터에 대비했다.
“흐햐햐! 잔뜩 쫄았네!”
상공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볼크와 황정구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반사적으로 마력을 가동해 공격할 자세까지 취했다.
그러나,
“흐햐!”
옆에서 나타난 앨리게이터는,
푸구우욱!!
양손으로 황정구와 볼크의 목을 꿰뚫었다.
핏줄기가 쏟아지며 두 사람의 몸이 바닥으로 기운다.
“커억··· 쿨럭!”
“그르르륵···.”
둘 다 목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울컥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막아 낼 순 없었다.
“흐햐햐, 너무 원망하지는 말라고. 배신자건 HMCS건 어차피 죽을 운명들 아닌가.”
“멍청 멍청이. 원래는 우리가 아니라 신입에게 죽을 거였어. 고마운 줄 알아.”
호크아이는 활촉으로 볼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흐햐햣! 신입이 완전 미친놈이거든. 단장도 마음대로 행동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볼크와 적귀를 대신해 새로 뽑은 신입 하나.
그들이 배신한 것을 알자마자 공석 하나를 메꾼 것이다.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하던 ‘모구라’라고 알지? 흐햐햐! 그리즐리랑 일대일로 싸웠던 놈! 그놈을 영입했더라고.”
볼크는 그 말에 감아지려는 눈을 홉떴다.
‘모구라’면 업계에서 이름 좀 날리는 킬러였다.
아니, 킬러라기보다는 고문 기술자에 가까운 놈이었지만, 주로 하는 일이 암살이라 킬러로서 알려지게 된 것.
싸웠던 그리즐리 말에 따르면 상당히 호전적이고 강한 놈이라고 했다.
“흐햐햐! 아마 네 일행 중 하나를 갖고 노는 중일 거다. 사람 괴롭히다 죽이는 게 취미던데.”
앨리게이터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콰드드드드드···.
순간 어디선가 돌에 갈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나고.
“마침 모구라가 오는구만.”
출입구에 까만 갑옷을 휘감은 장신의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멍청 멍청아! 신입 주제에 너무 늦어!”
“······.”
“??”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는,
쿠우웅!!
도끼질에 나무가 꺾이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이상한 등장에 여러 시선이 쏠렸다.
“하.”
그리고 웬 낯선 남자가 모구라의 등짝을 밟았다.
모구라는 미동조차 없었다.
남자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변명처럼 말했다.
“두더지 잡느라 좀 늦었다.”
***
“······저건 또 뭐야.”
앨리게이터는 쓰러진 모구라와 시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모구라의 흑갑은 여기저기 깨지고 구겨져 있었다.
그에 비해 시우의 몸은 먼지나 조금 묻은 정도?
“여러 명을 데리고 왔나? 흐햐햐 속전속결이다!”
앨리게이터의 신형이 사라지고,
텅! 터텅! 텅! 터엉!
사방에서 공기를 내딛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어지간한 눈으로는 어디서 나타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속도.
“흐햐햐햐햐! 겁에 질려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구나!”
시우가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본 앨리게이터는 광포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런 먹잇감이 좋았다. 벌벌 떨며 무기력하게 있는 초식 동물 같은 모습 말이다.
“이제 뒈져라!!”
앨리게이터는 시우의 몸통을 향해 칼날 같은 손톱을 내질렀다.
내장과 근육이 저며지는 감각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으아···.
그러나 그 같은 쾌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앨리게이터의 눈알이 덜덜 떨리며 아무렇게나 데굴데굴 굴렀다.
“크르으어그으으악······.”
어느새 나이프 한 자루가 앨리게이터의 목부터 두개골까지 꿰뚫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는.”
시우는 자신이 쑤셔 박은 나이프 손잡이를 짧은 잽으로 후려쳤다.
퍼거어억!!
앨리게이터의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지더니 몸통이 바닥을 뒹굴었다.
시우는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쯧, 하고 닦더니 다른 이들을 보며 뇌까리듯 말했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다 죽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