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90
294화〉
리버스 게이트3
시우의 외형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팔뚝에 돋은 흙빛 용의 비늘과 어깨에 솟구친 새파란 용의 비늘은 그 형상만으로도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주인님···?”
나미르가 무척이나 놀란 눈빛으로 시우를 불렀다.
“보아하니 늦진 않은 모양이네.”
시우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이거··· 굉장하군. 마, 마력이··· 자네는 인간이 맞나?”
세이겐이 시우에게서 흘러넘치는 광대한 마력을 보며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었다.
“바바 야가가 생각보다 강해서 말이죠. 저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면 이제껏 안 써 왔을 리 없다.
대개의 위력적인 스킬이 그러하듯, 시우가 사용한 능력 또한 신화적 존재인 나가를 한 방에 죽여 버릴 정도인 만큼 그 부담감도 어마어마할 터.
“이제 ‘미스틸 테인’도 자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가 보구먼. 아니, 이런 마력을 지녔는데 상대가 되는 게 이상하겠군.”
“웬일로 칭찬을 다 하십니까. 그런데 ‘미스틸 테인’은 확실히 급이 다르긴 하더군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보통은 싸울 때 다 전력을 낸다네.”
세이겐은 헛웃음을 지었다.
‘미스틸 테인’을 상대로 온 힘을 다하지 않고 이기려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인류의 정점이라고 칭송받는 천외천의 존재에게 전력을 내지 않으면 대체 누구에게 낸단 말인가.
“그렇다면 〈판데모니엄〉은 멀린 하나만 남은 것입니까?”
최성일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 인물인데··· 우선은 리버스 게이트부터 처리하고 생각하도록 하죠.”
시우는 다시 다음 게이트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온몸의 신경이 난자당하는 것 같고 근육이 무딘 칼날에 짓이겨지는 기분이었지만, 게이트를 다 부수려면 한참은 더 견뎌야 했다.
놈들의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게 할 것이다.
터억!
그때 누군가가 시우의 팔목을 잡았다.
나미르였다.
“주인님, 설마 다른 리버스 게이트도 가시려고요?”
“그래야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시우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요, 보내 드릴 수 없어요.”
세이겐과 최성일이 나미르의 행동에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시우였다.
“나미르···?”
“절대로 못 보내 드려요, 주인님.”
“······.”
나미르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시우의 의견에 반대한 적도, 그의 뜻을 거스른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시우의 말에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나선 것이다.
“모든 책임을 주인님 혼자 떠안으실 필요 없어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훈련시킨 자들과 다른 ‘미스틸 테인’을 조금 믿어 보세요. 그리고 우선 은 쉬셔야 해요. 이만한 능력을 쓰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나미르는 은빛 머리칼 사이로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시우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이 손을 놓치면 그가 떠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설핏 웃음을 흘렸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나미르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그러면 스킬을 해제할 테니까··· 한 시간쯤 뒤에 깨워 줄래? 이왕이면 이동 포털 근처까지는 데려다주고.”
“깨워 달라고요?”
시우는 ‘반룡의 술’을 해제했다.
선명하게 타오르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돋았던 비늘이 사라진다.
프레가 끊임없이 돌렸던 힐 덕분에 에테르의 힘을 사용하고도 육체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남은 건 오롯한 통증과 드래곤의 힘을 감당했던 몸에 걸린 과부하의 반작용.
울컥.
시우의 코와 입에서 죽은피가 한 바가지 쏟아져 흘러내렸다.
“ㅡㅡㅡ!!”
나미르가 놀랄 겨를도 없이 시우의 몸이 그녀에게로 쓰러졌다.
***
시우는 낯선 천장을 보고 흐릿한 눈을 깜빡였다.
몽롱한 감각이 그의 혈관을 따라 전신에 고루 퍼지고 있었다.
팔뚝에 꽂힌 바늘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링거 거치대에 이름 모를 앰플과 링거액이 다섯 개 정도 보였다.
그는 마치 꿈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으로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바바 야가를 없애고, 가장 가까운 리버스 게이트로 향해 나미르를 만나고··· 그리고···.
시우는 피를 게워 냈던 장면과 뇌가 녹아내릴 것 같은 통증에 기절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아···.”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시우는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일어나셨어요?”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미르가 물었다.
“내가 얼마나 잤지?”
“기절했던 시간으로부터 한나절 정도요.”
한나절이면 대여섯 시간은 지났다는 소리다.
“한 시간 정도 뒤에 깨우라니까.”
시우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한 시간 뒤에 싸우러 가라고 깨울 수 있겠어요?”
“그건 부상 때문에 흘린 피가 아니니까.”
“맞아요. 하지만 주인님이 몸을 지나치게 굴렸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기도 하죠.”
나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지근한 물을 떠다가 시우에게 건넸다.
“현재 게이트 상황은?”
“일어나자마자 그 걱정부터 하세요?”
“돌아가는 정황을 알아야 마음 놓고 쉬든 링거를 뽑고 싸우러 가든 할 테니까.”
“그러시겠죠. 하지만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그녀는 태블릿 PC를 가져와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뉴스를 열어 시우에게 보여 주었다.
– 바바 야가 사살과 함께 종료된 좀비 프로젝트
– ‘룩스’ 복용자들 전부 사망
– 리버스 게이트 막기 위해 모든 ‘미스틸 테인’ 출격
– 격파된 오스트레일리아의 게이트
– 추가로 격파되는 리버스 게이트, ‘미스틸 테인’의 참전이 불러온 순풍
– 각 인접 국가들의 적극 지원으로 하이 랭커들 대거 참여
기사를 훑어 나가던 시우는 그녀에게 태블릿 PC를 다시 건네주고 침대에 도로 누웠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위가 끊어진 것처럼 엄청난 탈력감이 시우를 덮쳐 왔다.
“제가 말씀드렸죠? 믿으셔도 된다고.”
“그러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 잘해서··· 솔직히 힘이 빠지는데.”
“너무 잔뜩 힘주고 살지 마세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저희들에게 훈련을 시킨 것 아니었나요.”
그녀가 조금은 서운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시우는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모든 걸 떠안을 수 없기에 미리 다른 사람과 함께 전쟁을 준비하고 무기를 준비했다.
〈판데모니엄〉을 제거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미스틸 테인’이라는 우수한 전력을 얻기 위해 작전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결국 큰일이 터지면 여전히 홀로 동분서주하려 몸이 앞선다.
시우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모처럼 느껴 보는 이런 휴식이 어색한 탓에 마음이 불편했다.
【좁밥,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너 그런 소리는 대체 어디서···.”
【그렇게 혼자만 설레발치니 원래 있던 곳에서도 친구가 없었던 것이다.】
프레는 나미르가 깎아 놓은 사과를 아삭아삭 씹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계에서 날 좋아했던 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건 너한테 안 맞으려고 그런 것이다. 너 잘 때마다 뒤에서 네 욕 무지 했던 것이다.】
프레가 혓바닥을 메롱 내밀면서 시우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로 날아갔다.
“아오···! 저걸.”
“주인님, 그러고 보니 주인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동안 〈아가페 종단〉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종단에서? 누가?”
“아리아ㅡ 성녀라고 하더군요.”
“뭐라고 하는데?”
나미르는 시우가 병상을 박차고 뛰쳐나갈까 봐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차원의 문이 머지않아 열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
며칠 뒤.
신(新) 전쟁 대응 팀이자 ‘미스틸 테인’의 회의.
거대한 원탁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미스틸 테인’은 부유 섬인 프로페테스를 버리고 중립국으로 유명한 스위스에 새로운 본부를 만들었다.
지난번 사야콘과의 전투로 휴게실이 망가지기도 했지만, 배신자들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은 데다가 멀린이 좌표를 아는 곳이기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장소는 5중의 결계와 록히드 마틴에서 개발한 각종 보안 장치를 설치해서 보안 면에서는 이전 부유 섬보다 철저했다.
그때 뒤늦게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원탁의 테이블 가장 상석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처음 뵌 분들이 많군요. 민시우라고 합니다.”
시우가 인사하자 몇몇 사람이 웃으며 박수를 쳤고, 간다르바는 양팔을 들어 시우를 향해 신나게 흔들었다.
“우선 이 장소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냥. 사실 다들 찝찝해서 부유 섬으로 돌아가길 꺼려 했었다냥.”
아누비스가 먼저 시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애초에 그런 곳에서 작전을 벌인 저 때문에 휴게실이 부서지기도 했고, 마족이 뻔히 위치를 아는 마당에 거기 남아 있는 건 무모한 일이니까요.”
시우는 나중에 키드에게 그날 있었던 전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멀린을 죽일 수 있었던 찰나, 나타났던 존재.
소머리를 뒤집어쓰고 여태껏 본 적 없는 마기를 내뿜으며, 멀린이 굽신거리는 상위 마족.
크라켄.
멀린조차 죽일 수 있었던 키드가 한 번의 공격도 시도해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을 아지트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미스틸 테인’ 대신에 두 명의 배신자를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런 것도 모르고 놈들 손아귀에 놀아나 ‘미스틸 테인’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자나미가 머리를 숙이며 시우에게 사과했다.
“그동안 우리가 해야 했을 일을 대신해 혼자 마족과 싸우게 해서 미안하오. 이건 씻을 수 없는 수치이자 평생 갚아 나가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오.”
‘성난 말’이 이자나미의 의견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모두 민시우 헌터님에게 부채 의식이 있으신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리더는 당신이 해 주시는 거예요.”
테이블에 엎드린 채 느릿느릿한 말투로 치우가 말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미스틸 테인’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했다는 점.
그리고 그 배신자 때문에 강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들이 방관자가 되어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했다는 사실.
게다가 이 모든 사태의 해결을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다는 게 더욱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이다.
“맞아! 리더는 당연히 시우가 해야지! 어차피 리더 욕심 있는 사람도 없을걸?”
간다르바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득의양양하게 대답했다.
“리더 욕심이라···.”
시우는 고개를 틀어 누군가에게 시선을 향했다.
“난 관심 없으니 네놈이 해라.”
최대수가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씹으며 시우를 노려봤다.
“그래, 그러지.”
시우가 피식 웃으며 좌중을 일별했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생 제르맹과 바바 야가, 그리고 멀린이 빠져나가며 공백이 생겼고, 따라서 제 추천과 여러분의 동의를 얻어 새 ‘미스틸 테인’이 들어왔습니다.”
보통 같으면 멀린이 했던 대로 정부와 기나긴 줄다리기를 하고, 누가 더 나은지 어떤지 국가 정세를 따져 가며 회의해서 정했을 일.
하지만 시우는 천외천의 공백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며 두 명의 인물을 추천했다.
그리고 ‘미스틸 테인’ 멤버는 각자 솔직하게 찬성과 반대를 던졌고, 그 결과 두 명 모두 천외천의 자리에 새로 오르게 되었다.
시우의 눈빛을 받은 새 멤버가 차례대로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독일의 한스 슈뢰더라고 합니다.”
“반마족의 나미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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