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95
299화〉
일촉즉발
〈아가페 종단〉의 특별 면회실.
이곳은 오직 종단의 최고 고위직인 아리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시우는 간다르바와 나미르를 대동한 채 면회실 소파에 앉아 상대를 기다렸다.
〈아가페 종단〉은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였는데, 아리아의 면회실은 그보다 더 단순했다.
아무런 장식조차 없었고 방안엔 소파와 테이블, 화병에 꽂힌 연분홍 작약꽃이 전부.
“주인님, 과연 아리아가 멀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까요?”
“글쎄. 차원의 문이 열리는 걸 알 정도니까 멀린의 위치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시우가 심드렁한 얼굴로 나미르의 말에 대답했다.
사실 그도 큰 기대를 갖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아 멀린의 연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
차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노려 훼방을 놓거나 아니면 차원의 문을 역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시우는 멀린의 연구실을 발견하지 못할 것을 전제로 작전을 몇 개 구상 중이었다.
물론 잘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아리아와 그녀의 수행원인 시야라은이 들어왔다.
새하얀 단발에 검은색 실크 안대를 쓴 성녀(聖女).
“오랜만입니다, 민시우 헌터님.”
그녀가 먼저 시우를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저도 오랜만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민시우 헌터님이 직접 오셨는데 제가 직접 환대를 해야죠.”
아리아는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차를 능숙하게 들고 마셨다.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막힘없는 움직임.
“옆에 계신 분들은··· ‘미스틸 테인’이신가요?”
“나는 간다르바야, 성녀님.”
“새 멤버가 된 나미르라고 합니다. 반마족의 왕이기도 하고요”
그녀들의 소개에 아리아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두 분 다 올곧은 파장을 지니고 계시네요.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을 이끄는 아리아라고 합니다.”
아리아는 조금 떨어져 있는 그녀들을 향해서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그나저나 민시우 헌터님이 직접 이곳에 오셨다는 건··· 멀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빙빙 돌려서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후후. 시우 님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멀린의 소재는 저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꼭꼭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아리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차원의 문이 위험하단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리아였기에, 종단에서는 특별팀까지 구성해 멀린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세계 최고의 대마도사.
대체 마법을 몇 중으로 걸어 놓았는지 이제는 차원의 문 아티팩트마저 그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탐지 헌터를 고용해 사방팔방으로 뒤져 봤지만, 멀린의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
“시우 님, 얼마 전에 크렘린 궁에서 대규모 약탈이 있었던 건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확인해 보려 했더니 HMCS의 도움은 거절하더군요.”
“불법으로 탈취한 아티팩트가 많아서 러시아 정부로서도 공식 절차를 밟기엔 무리였을 거예요. 다른 나라의 보물급 아이템도 많고, 대체로 획득 경로를 설명 못할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아리아 님은 사건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가 보군요.”
시우가 커피를 들이켜며 물었다.
“네. 종단을 따르는 힐러들은 전 세계 어디든 다 있거든요. 그들이 제 눈과 귀가 되어 주죠.”
그녀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실크 안대를 쓰다듬었다.
“아무튼 시우 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탈취 사건이 멀린의 소행인 것 같다는 사실뿐입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대답이네요. 확실하진 않은 모양이죠?”
“증거도, 증인도, CCTV도 없으니 단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가 봐요. 다만 차원의 문과 관련된 아티팩트만 사라졌다는 점, 그리고 수십 명의 헌터가 일격에 죽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래서 멀린이군요. 마력흔은 분석 안 했답니까?”
“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공간 이동한 흔적도 별로 남지 않았고, 공격용 마법도 마력이 별로 안 남았나 봐요. 엄청난 고수인 셈이죠.”
시우와 아리아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미르는 군말 없이 옆에서 시우를 지켜봤고, 간다르바는 시우의 어깨에 기대 잠에 빠졌다.
“어차피 지명 수배에 실린 몸이니 수단에 거침이 없나 보네요.”
“저희 종단에서는 아티팩트와 멀린의 문제로 마족에게 항의하고 싶었는데, UN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어요. 아직도 대다수의 국가 정상은 평화가 지속되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아리아 님이 항의한다고 들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마족에게 컴플레인을 넣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다.
〈판데모니엄〉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일방적 추종이라고 하면 그만인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리아라는 여자가 그런 것도 모르고 행동했을 리는 만무할 터.
“그럼요. 항의는 표면적인 이유죠. 마족이 제 의견에 귀 기울일 존재도 아니고요. 그저 마족이 뒤에서 헛짓거리하고 있다는 뉘앙스만 풍겨도 만족합니다.”
시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가페 종단〉이 직접 마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 그 무게감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아쉬운 건 이런 일을 진작 했어야 했다는 거지.’
지금으로서는 늦은 감이 있는 작전이었다.
“알겠습니다. 종단은 종단 나름대로 다가올 그때를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멀린 문제는 보류해야겠군요.”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예상대로 멀린의 추적은 할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덕분에 뭐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흐엡! 뭐야, 끝났어?”
시우가 일어나는 바람에 잠에서 깬 간다르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리아 님은 차원의 문이 열릴 것 같으면 곧장 제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
‘민시우를 암살하라···.’
제3계 마왕의 권속인 타타르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예전에 민시우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벌벌 떠는 마족, 그것도 마왕의 권속을 상대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살기를 내뿜던 인간.
지구란 곳에 와서 타타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낀 공포였다.
그 강대한 기억은 뇌리 깊숙이 박혀 떠나질 않았고, 타타르는 적어도 민시우에 대한 일에는 끼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3계 마왕에게 전언이 내려왔다.
– 후후후. 내 사랑스러운 권속 타타르. 지난번에 당했던 수치를 갚아 줄 시간이 왔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민시우를 없애도록 하세요.
자유롭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마계였지만, 상위 마족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하아ㅡ”
타타르는 마계에서 자란 담뱃잎으로 만든 시가를 피웠다.
새까만 연기가 허공에 흩날린다.
분명 그의 마기와 힘은 시우와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상승해 있었다.
크라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 마계에서 타타르의 역량은 무시 못 할 정도가 되었 음이 틀림없는 사실.
“이 씨발 하필이면.”
그러나 그러는 동안 민시우는 가만히 있었을까?
들려오는 소식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민시우는 이제 크라켄 정도는 되어야 붙을 수 있었다.
인류 최강의 전력이라던 ‘미스틸 테인’마저 한 수 아래로 만드는 실력인데 마계라고 해서 그 실력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쯧, 어떡한담. 혼자서는 절대 무리인데.”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잘 넘어가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 만들고 싶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테고, 제3계 마왕이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하면 자신은 개죽음당할 게 틀림없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가 필요했다.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하면서 제3계 마왕이 패자(覇者)로 우뚝 설, 그런 상황.
“아무래도 히카탄과 솔라소를 끌어들여야겠어. 그리고 이참에··· 정리를 하는 게 낫겠는걸.”
타타르는 머 릿속으로 흉계를 차근차근 계획하기 시작했다.
***
“하아압!!”
수천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며 짧게 끊어진다.
기개 넘치고 절도 있는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올 법하다.
앞으로 내지르는 창과 후방에서 쏘아 대는 수백의 화살 세례.
그 움직임에 군더더기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퍼거거거거거거거걱!!
– 꾸이이이익!
대형 몬스터가 화살 세례를 견디지 못하며 자리에 쓰러졌다.
최전방에서 몬스터의 목을 끊는 돌격대원들은 각자의 마기를 몸에 두른 채 무시무시한 스킬을 내뿜으며 쓰러진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몬스터의 목에서 핏물이 솟구치고 끔찍한 비명이 난무한다.
“마법 발동!!”
현장 지휘관이 소리치자 후방에 있던 마법사들이 전방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
뒤이어 돌진하던 몬스터들이 마법에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몬스터들을 상대로 펼치는 마계의 훈련 현장.
연대나 팀워크라는 걸 모르는 마족의 연계 플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돈되고 부드러운 합공이었다.
“흠.”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첨탑 위에서 바라보는 한 존재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수하 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서며 인사했다.
소머리를 뒤집어쓴 크라켄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크라켄님께서는 여전히 전투를 직접 지휘하시는군요.”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크라켄이 있었다.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피나는 연계를 독려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게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는 말을 듣지 않거나 명령에 불복종하는 마족을 거침없이 때려죽였다.
크라켄의 금쇄봉에는 시종일관 피와 살점이 묻어 있었고, 마족들은 흉흉한 살기를 피워 올리는 크라켄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직책이니까.”
크라켄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쇠를 긁는 듯이 걸쭉하고 탁한 음성.
“존경스럽습니다.”
수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아부성 발언을 내뱉었다.
크라켄은 그를 흘끗 바라보더니 불필요한 말을 걷어 내고 원하는 질문만 던졌다.
“민시우는?”
“현재 여기저기 다니고 있긴 한데, 실력을 자만해서인지 경호는 따로 없습니다. 간혹 ‘미스틸 테인’이 함께 다니는 걸 빼면 늘 혼자입니다.”
“그건 자만이 아니다. 실력이지.”
“아, 알겠습니다.”
단순히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결단코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마족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무시했고, 제대로 겨뤄 보지도 않았으면서 실력 있는 인간조차 깔보기 일쑤였다.
크라켄은 그러지 않았다.
비록 민시우와 한 번도 붙어 보진 않았지만, 그가 과거 제4계 마왕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 마왕은 단순히 핏줄이나 영향력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무자비한 실력, 그 하나만이 마왕을 결정짓는다.
비록 100% 힘이 복구된 상태가 아니었다지만, 제4계 마왕은 강한 마족이었다.
그런 자를 죽일 뻔했다는 것 자체가 민시우의 강함을 보여 주는 큰 사례였다.
크라켄은 과거를 반복하는 우행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수하들의 보고는 반쯤 흘려들었다.
“계속 감시해라. 때가 되면 직접 치러 갈 테니.”
“저··· 크라켄 님이 직접 말입니까? 수하들을 시키시는 것이···.”
“그래서 성공한 자가 있었나?”
붉은 안광이 번뜩이자 수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최후의 마왕이 될 분은, 내 손으로 만들 것이다.”
크라켄이 무시무시한 음성으로 짓씹듯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