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97
301화〉
포효 2
새 벽, 페루의 수도 리마.
한적하고 조용한 해안, 규칙적으로 들리는 파도의 찰싹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안한 시간이었다.
해안경비대는 레이더 탐지를 켜 놓은 채 잠에 흠뻑 취한 상태였다.
그의 머리맡에는 미지근한 커피와 반쯤 먹다 남긴 아로즈 콘 파토(arroz con pato) 가 다 식은 채 놓여 있었다.
“으음···.”
이따금 삐져나오는 잠꼬대 소리.
고요하고 잔잔하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편린.
쏴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달빛마저 삼켜 버린 새까만 바다 너머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온다.
그건 아주 커다란 크기의 거북이였다.
– 크르르릉.
서울을 침공했던 현무보다 몇 배는 커다란 거북이 떼가 리마 해안에 차근차근 상륙을 시도한다.
그들은 느릿하게 발을 움직이며 모래사장 위로 올라왔고, 그때마다 바다가 출렁이며 거센 소리를 일으켰다.
푸르르르!
거북이들이 눈을 깜빡이며 몸에 있는 물기를 털어 냈다.
그리고 거북이 등껍질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그림자가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은 부단히 연습했는지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기민하고 재빠른 움직임.
푸슉!! 푸욱!!
“ㅡㅡㅡㅡ!”
“컥···!!”
비몽사몽 경비를 서던 자들과 내부 경비 대원이 피를 흩뿌리며 순식간에 나자빠졌다.
곳곳에서 짧은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칼과 창을 휘두르는 손길에 망설임이나 자비심 따원 존재하지 않았다.
“1층은 정리됐습니다.”
“2층도 정리됐습니다.”
침입했던 존재, 마족들이 순차적으로 누군가에게 보고하며 다음 층으로 전진했다.
사람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상황이 급속도로 정리되었다.
마족들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다른 건물로 빠르게 이동했다.
수도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데에는 그리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각하!! 각하!! 큰일 났습니다!”
페루의 대통령 니콜라스는 비서진 중 누군가 다급히 깨우는 소리에 혼비백산 정신을 차렸다.
“무, 무슨 일인가···?!”
“수도 리마가 함락되기 직전입니다!!”
“뭐라?! 대, 대체 누구한테 말인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상황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통령 관저에 비치된 상황판에는 수많은 경고가 떠 있었고, 야간 업무를 보고 있던 비서진과 경호원들은 사색이 되어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전쟁이라도 터진 겐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전쟁에 준하는 테러가 아닐까, 생각하고는 있는데···.”
“국방부 장관이랑 국무총리! 그리고 경찰청장한테 다 연락 넣었나?”
“네, 연락은 했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응답은 없습니다.”
“대체 어이가 없구먼!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에도 메시지 넣어! 아니, 핫라인으로 바로 연락해 보게!”
니콜라스는 초조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상황판과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콰ㅡㅡㅡㅡㅡㅡㅡㅡ앙!!
그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건물이 뒤흔들리고 불빛이 다 나가 버렸다.
갑작스러운 정전에 니콜라스와 다른 사람들은 침묵을 이은 채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끼익, 끼익, 끼익.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서 녹슨 마찰음이 들려온다.
진정이 된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라이트를 사방에 비췄다.
“어떻게 할까요, 각하.”
“일단 피, 피신부터 하시죠···. 다 같이.”
“아니면 지하 벙커로 들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헬기를 띄우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니콜라스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침음을 삼켰다.
만약 이것이 전쟁이나 테러가 아니라 단순한 해프닝이라면, 이번 일의 대처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큰 영향을 주게 될 터.
그는 다음 정권을 생각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아.”
그때 수행원 중 하나가 핏기 없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부들부들 떠는 정도가 아니라 곧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라이트가 한 곳으로 집중됐다.
기괴하게 생긴 소의 얼굴.
타오르듯 붉은 안광.
우락부락하고 다부진 몸.
경호원조차 몸이 굳어선 어찌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소머리를 뒤집어쓴 남자의 팔이 움직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원을 그린 금쇄봉의 궤적을 따라 어마어마한 핏물이 방 안을 적셨다.
상반신을 죄다 잃어버린 사람들의 하반신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끼익, 끼익, 끼익.
기다란 풍압에 샹들리에가 다시 흔들린다.
크라켄은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다음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만월(滿月)이 스산한 새벽을 일깨운다.
***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국경 지대.
형식적인 절차의 경계와 뻔한 방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
콜롬비아 측 초소에 있던 군인들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대고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이따금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국경 검문소 쪽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온다.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가!!
그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일대를 뒤덮었다.
단순히 차량이 터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폭격이라도 쏟아진 것처럼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었다.
초소에 있던 군인들과 헌터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에콰도르 쪽에서 들린 거 아냐?!”
그들은 당황하며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헌터들은 마력 감지를 펼쳤고, 일반 군인들은 망원경과 장비를 동원해 에콰도르 진영을 살폈다.
그때 가장 넓은 탐지 범위를 지닌 헌터가 사색이 된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호르헤, 왜 그래! 너 정신 괜찮냐?”
“야! 의무병 있어? 호르헤가 갑자기 침을 질질 흘리고 경기를 일으킨다! 누가 좀 불러와 봐!”
“기, 기, 기, 괴··· 괴···.”
호르헤의 바지를 적시며 오줌이 흘러내렸다.
“기?? 괴?? 뭐라고 하는 거야!”
“괴······물······.”
꽈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굉음이 짓쳐 오르며 에콰도르의 툴칸 지역에서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다.
깜깜한 어둠을 찢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섬광의 번쩍임이 콜롬비아 국경수비대 눈으로 들어왔다.
“이게 뭐냐···.”
“씨발, 내전이야? 왜 국경 지역에서···.”
“야! 상부에 보고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저, 저기 봐!!”
그 찰나 누군가 손가락으로 콜롬비아 국경 지대 근처를 가리켰다.
수백, 수천의 마족이 국경 너머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웬 괴물 한 마리가 등장했다.
그 괴물, 흉측한 소머리의 마족이 금쇄봉을 치켜올렸다.
ㅡㅡㅡㅡㅡㅡㅡ쩌저저저저적!!!
수직으로 내려찍은 곳의 지반이 터져 나가고 샛노란 섬전이 사위를 폭파했다.
일격 한 번에 마법 방위가 가득 깔린 국경이 초토화된다.
헌터들은 그 광경을 멀거니 바라보며 모두 할 말을 잊었다.
이 재앙에 가까운 참사를 보며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도, 도망치자.”
그렇게 멈칫하는 사이,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 인원은 이곳의 허접한 국경 수비대로 막아 내기엔 터무니없이 많았다.
괜한 개죽음 당하느니 차라리 도망쳐서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
“나는··· 먼저 간다!”
누군가의 입에서 저 말이 튀어나오자 모두 다리를 움직였고, 그 순간 사방에서 날아 든 창칼에 몸이 난도질당했다.
“커어어억!!”
“끄아악!”
“크허억··· 끄억···.”
그리고 가장 먼저 도망친 헌터의 눈앞으로 조금 전의 괴물이 나타났다.
“히, 히이이익···! 사, 살려···.”
“벌레에게 자비란 없다.”
콰지이이ㅡㅡㅡㅡ익!
금쇄봉이 피로 물든다.
크라켄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마족을 보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모조리 불태워라! 핏물을 흩뿌려라! 적들을 학살하라!!!”
그의 섬뜩한 음성이 콜롬비아의 시내까지 울려 퍼지며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
마족의 기습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페루,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까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저 다섯 개 나라를 정복하고 단단한 진지를 구축했다.
인접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북쪽에 있는 과테말라, 멕시코, 나아가서는 미국과 캐나다마저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입니까!
미국을 필두로 한 G20 국가의 수장들이 긴급 화상 회의를 진행하며 열띤 발언을 쏟아 냈다.
– 아니, 마족들이 죄다 미친 건가? 갑자기 전쟁이라니!
– 잘 지내다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러다가는 라틴아메리카가 통째로 마족에게 넘어갈 것 같은데요.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해요.
– 제기랄! 저 나라들은 침략당하는 동안 뭐 했단 말입니까? 처음에 습격당했을 때 주변국에 S.O.S를 보냈어야지!
그들은 한탄스러운 듯 이쪽저쪽에 책임을 떠넘기며 사태에 대해 떠들었다.
– 협회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헌터들은 준비가 됐습니까?
– 아, 이 사람이!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도 각자 국가가 있는데, 그들을 왜 준비시킵니까! 자기네 나라에서 대기해야지!
– 뭐요?! 그럼 라틴아메리카가 마족에게 다 넘어가도 좋다 이 말이오!!
각국의 수장들은 전부 자신의 국익을 생각하며 맞서 싸운다는 전제를 반대했다.
그 어떤 사람도 전쟁을 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전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나 마족의 인접 지역에 사는 국가의 수장들은 조속한 헌터의 투입을 주장했고, 거리가 떨어져 있는 수장들은 각자의 국방을 충실히 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결코 서로를 위해 굽히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외교란 건 타국의 이익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베르나도테 후작은 핼쑥하게 야윈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공연히 한쪽의 편을 들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되기 때문.
– 베르나도테 협회장!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의견을 주시지요!
– 그··· 저는···.
– 아니면 HMCS의 에드워드 회장이 말씀하시겠습니까?
에드워드는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아오자 잠시 멈칫거렸다.
– 말씀 감사하지만, 사실 우리가 의견을 물어볼 대상은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 누구 말이오? UN?
– 직접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 말입니다.
그 말에 각국 수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시선을 어색하게 돌렸다.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못한 탓.
– 그럼 이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회의에 참석시키겠습니다.
에드워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누군가를 초대했다.
“오랜만입니다.”
시우는 기다리고 있다가 에드워드의 연락을 받고 곧장 화면을 켰다.
– 민시우 헌터···.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다른 대통령이나 총리는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화면만 응시했다.
지금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기세가 좋고 입김이 강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우였다.
사실 이 회의에 그가 있다면 그의 발언권이 가장 클 것임을 알기에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었다.
“전쟁을 논하면서 세계 랭킹 0위는 빼고 회의를 하시네요.”
시우가 각국 정상을 노려보며 빈정거렸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가 선진국 행정부 수반이었음에도 시우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회의 결과를 통보해 주려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 서,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민시우 헌터님께서 바쁠까 봐 초대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제가 회의에 초대하자고 했었는데, 유럽 쪽에서 반대했습니다.
– 어허!! 당신은 남미 지역이니까 헌터들 사지로 몰아넣고 싶은 거잖아!
다시 소란이 일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우는 테이블을 탕탕 두드렸다.
“지금 그딴 싸움할 때입니까? 미치셨어요?”
시우가 미간을 찌푸리자 두 대통령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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