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00
304화〉
전쟁2
제1계 마왕의 사념체에서 노기가 피어올랐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발언이 생각 이상으로 무례하고 그의 심기를 거스른 탓.
세상의 반을 달라는 건 그야말로 지금까지 이뤄 농은 마족의 모든 업적에 숟가락만 얹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마왕들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10년간 심어 온 씨앗이 이제 싹틔울 시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아무런 희생도 하지 않은 악마족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의 절반을 요구한 것이다.
악마들이 능동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처음에 차원 이동으로 지구에 와서 인간과 싸울 때, 전쟁에서 보조한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방관하던 것들이 이제 와 권리를 요구하는 건 어 불성설.
『대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여. 농담이 지나친 것 같소. 우리 마족과 악마가 동맹을 맺은 건 맞지만, 그게 세상의 반을 내어 줄 만큼의 결속력을 지닌 것 같진 않은데.』
제1계 마왕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다못해 제4계 마왕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이해라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그런 요구를 할 자격이 없었다.
심지어 대악마들은 지구에 와서 전투를 치른 적도 전무.
희생은커녕 최소한의 참여조차 하지 않은 자들이 바라기엔, 이 지구의 절반은 너무 커다란 보상이었다.
『제1계 마왕이여. 방금 전에는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소. 그 요구가 합리적이라는 기준에서 말이오.』
『마치 제가 터무니없는 걸 바라기라도 했다는 듯한 말투시군요.』
메피스토펠레스가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같은 태도에 제1계 마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감히 용납할 수 없는 태도.
『터무니없는 걸 넘어서서 기가 찰 뿐이오, 메피스토펠레스. 내가 그런 요구를 들어 줄 리도 없거니와, 악마들이 그만큼의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지도 않소.』
『마족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충분히 손길을 내밀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장난하시오? 그대들이 아무런 의욕을 보이지 않으니 마족이 그때마다 재촉한 것뿐이잖소. 우리가 10년간 피를 흘릴 때 악마들은 대체 뭘 하시었소?』
『무얼 했느냐···라.』
메피스토펠레스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듯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이미 대답할 말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한껏 즐기며 침묵을 이어 나갔다.
그 조용한 정적에 숨이 막힌 건 제1계 마왕 쪽이었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소, 메피스토펠레스여. 이번 제안은 없었던 걸로ㅡ』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려던 제1계 마왕의 사념체를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 붙잡았다.
『세상의 반을 내놓기 싫어서 ‘최후의 마왕’을 포기하겠단 말씀이군요.』
『방금 뭐라고···!!』
제1계 마왕이 분노에 가득 찬 매서운 안광으로 상대를 노려봤다.
조금 전에 발산하던 노기와는 그 결부터가 다른 어마어마한 기세.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둠 속에서 히죽거리더니 찬찬히 말을 이었다.
『대가가 없다면 우리 악마는 당장에라도 인간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메피스토···! 이 빌어먹을···!!』
『아니면 가장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는 마왕에게 협력할 수도 있죠. 대악마 셋이 가담한다는데 싫어할 마왕이 있을까 싶습니다.』
제1계 마왕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악마의 수는 전체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대악마들은 적으로 돌려선 절대 안 되는 상대였다.
그들의 강함은 마왕들과 견줄 정도.
만약 여기서 대악마 셋이 다른 마왕을 밀어주기라도 한다면, 제1계 마왕은 결코 ‘최후의 마왕’이 될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수적 우세로 마족이 이길 확률이 높았으나, 이긴다 하더라도 그 피해는 결단코 적지 않을 것이었으니.
‘이 악마 새끼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나?’
제1계 마왕은 입술을 짓씹으며 메피스토펠레스를 노려보았다.
철저한 외통수.
『흐흐.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서로 좋은 계약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치 않는다면 저는 다른 마왕에게 같은 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여···. 이 제안을 받은 것이 내가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제1계 마왕이시여.』
『상당히 영악하시오···. 정말 눈 뜨고 코 베인 상황이군.』
『흐흐흐.』
어둠이 커다랗게 들썩거렸다.
거대하고 진득한 어둠이 몽글몽글 맺히며 허연 이빨을 드러냈다.
『선택하시겠습니까. 반을 내놓을지, 자멸할지.』
***
호주가 불에 타오르고 모든 것들이 황폐해져 갔다.
이제 서쪽이 점령당하는 것도 시간문제.
마족들은 약에 취한 것처럼 중상을 입어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에게 있어 공포란 적들에게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크라켄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아 죽는 것이었다.
“죽여라! 인간들의 씨를 말려라!”
“마족의 깃발을 꽂아라! 적들의 피로 목을 축여라!”
“이 세상의 지배자가 마왕님이란 것을 깨닫게 하자!”
마족들은 공부기로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하며 죽음도 불사하지 않고 적들에게 돌진했다.
타타르는 멀찌감치서 그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기습에는 장사가 없는 건가.
이번 작전을 총지휘한 크라켄의 안목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최대한 많은 땅을 정복한다···. 마족과 전쟁하자는 쪽과 다시 조약을 맺자는 쪽으로 나뉘어 결정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거라더니, 그 말이 맞겠군.’
크라켄은 다른 무엇보다 인류의 정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몇몇 국가에 로비를 해 놓아서 의견은 절대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것이었다.
지도자가 국가별로 나뉘어 있고,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으로 얽혀 있는 것을 이용한 셈.
‘불편하게들 산다. 당장 불길이 코앞에 닥쳐오는데도 회의나 하고 자빠졌으니.’
타타르는 인간들의 행동이 좀체 이해되질 않았다.
만약 역으로 상정해서 마족에게 다른 종족의 무리가 쳐들어왔다면, 마족은 곧장 창칼을 앞세워 적의 목부터 찔렀을 것이다.
적어도 네 명의 마왕은 이런 일로 의견 다툼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
그때 낯익은 기운 두 개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타, 타타르! 아직도 저, 정복을 끝내지 못한 거냐!”
“맞아! 우리는 이미 뉴질랜드 정부를 무력화하고 왔는데! 왔는데! 왔는데!”
“여ㅡ 히카탄과 솔라소.”
“이, 이렇게 여유 부리고 이, 있을 때가 아닐 텐데! 크, 크라켄 님이 오늘까지 끄, 끝 내라고 했잖아!”
“얼른 움직여! 너 때문에 우리도 혼나기 싫으니까, 이 멍청아! 멍청아! 멍청아!”
타타르는 나무에 걸터앉은 채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애초에 크라켄은 상사가 아니라 같은 권속이다.
물론 그의 격이 더 높고 그들보다 훨씬 강하기에 함부로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타타르나 히카탄, 솔라소 역시도 마왕의 권속이었다.
따라서 크라켄에게 그들을 죽이거나 때릴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
타타르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이 병신들아. 너희들이 그러니까 평생 가도 크라켄 똥구멍이나 쳐다보고 있는 거야.”
“뭐, 뭐, 뭐야?! 이 비, 빌어먹을 타, 타타, 타타르 새끼가!”
히카탄의 보라색 피부가 검보라색으로 물들며 마기가 꿈틀거렸다.
“왜? 죽이고 싶으면 죽여 보시든가.”
“히카탄, 그러다가 우리 마왕님은 물론 제3계 마왕님께 혼나니까 멈춰! 멈춰! 멈춰!”
히카탄은 솔라소의 만류를 듣고 나서 마기를 거두어들였다.
타타르는 히죽 웃더니 여유로운 얼굴로 그들을 일별했다.
“킬킬킬. 거봐, 못 죽이지?”
“이, 이, 자식이!”
“너만 그러냐? 크라켄도 마찬가지야.”
“···뭐?”
순간 히카탄의 분노가 가라앉더니 솔라소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크라켄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못 죽인다고, 이 자식들아. 같은 권속 아니냐? 그런데 왜 씨발 멋대로 쫄아서 혼나느니 어쩌느니 개소리를 하냐고.”
서로 죽일 수 없다면 그렇게까지 겁먹을 상대는 아니었다.
굳이 일대일로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닌데 뭐하러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나.
“그, 그래서 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희들이 민시우를 죽여. 그동안 내가 바블레너를 처리한다.”
“뭐?! 너 미친 거야? 방금 권속끼리 죽이면 안 된다고 네 입으로 떠들었잖아! 떠들었잖아! 떠들었잖아!”
솔라소가 기겁하며 타타르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제4계 마왕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마왕은 마왕.
그의 권속인 바블레너를 다른 권속들이 죽인 것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킬킬킬, 순해 빠져서는. 바블레너를 민시우가 죽인 것처럼 꾸미면 되잖아. 우리는 그런 민시우를 처리한 거고.”
“그, 그런데 우리가 미, 민시우를 처리하면 너한테 아, 안 좋은 거 아냐?”
민시우를 처리한 권속의 마왕은 다른 마왕을 주종으로 삼을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이게 이번 내기의 주제였다.
만약 히카탄과 솔라소가 민시우를 없애면 자연스럽게 제2계 마왕이 그 권한을 얻게 될 터.
“그러니까 바블레너를 처리하는 거야. 그러면 제4계 마왕의 세력은 약해질 거고, 너희들이 제2계 마왕님께 부탁해서 제1계 마왕님을 수족으로 삼아. 그러면 크라켄과 싸우지 않아도 놈을 부릴 수가 있잖아.”
타타르의 작전을 들은 히카탄과 솔라소의 눈에 이채가 빛났다.
확실히 그럴싸한 작전이었다.
본인들의 마왕이 제1계 마왕을 수족으로 삼으면 크라켄과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타타르가 바블레너를 처리하면 제4계 마왕은 더 열세가 될 것이었다.
한마디로 일석이조인 상황.
“작전은 너무 좋은데··· 아무래도 네 꿍꿍이가 수상해, 수상해, 수상해.”
“킬킬킬. 나는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어. 그냥 보험을 여러 개 들어 두는 것뿐이야.”
“보험···?”
“나중에 제2계 마왕님이 ‘최후의 마왕’이 되면 너희들이 말해서 내 목숨을 보장해 주면 돼. 반대로 제3계 마왕님이 ‘최후의 마왕’이 되면 너희들의 목숨은 내가 보장해 주지.”
정말 너무나도 뜻밖의 제안이었다.
단 한 번도 저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히카탄과 솔라소는 잠시 멈칫하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반면 타타르는 느긋한 미소를 머금은 채 팔베개하고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조, 좋아. 그 제안 스, 승낙하겠다. 우, 우리가 민시우를 제거하면 제1계 마왕을 수, 수족으로 두라고 권하겠다. 네 모, 목숨에 대한 보장도 하고.”
“그래? 그러면 거래 성립인가?”
타타르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히카탄이 머뭇거리더니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하지만 명심해, 배신하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옆에 있던 솔라소가 칼날 같은 눈빛을 벼리며 타타르에게 경고를 날렸다.
타타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봐, 우리 모두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여기서 배신할 게 뭐가 있어. 너희야말로 나중에 날 모른 척하지나 말지.”
“그, 그럴 일은 없, 없다. 우, 우리는 거, 거짓말은 안 하니까.”
“킬킬킬.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거나 가지고 가라.”
타타르가 웬 팔찌 하나를 그들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위치 추적 장치라도 되냐? 되냐? 되냐?”
“그딴 비효율적인 기계가 아니야. 공간 이동 술식이 걸린 아티팩트다.”
“그걸 왜 우리한테 주는 거야? 거야? 거야?”
“아, 이건 페어야. 한 짝으로 구동되는 거지. 내가 민시우를 발견하면 너희 쪽으로 보낼 수 있는 거다. 나중에 민시우 처리하고 나면 버려도 돼.”
히카탄은 팔찌에 걸린 술식을 유심히 살폈다.
“타, 타타르의 말이 맞아. 고, 공간 이동 아티팩트다.”
“킬킬킬. 오늘 계약 서로 잊지 말자고.”
타타르가 그들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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