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01
305화〉
전쟁3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마족들은 현재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로는 마족이 조금 우세한 상황이긴 했지만, 전황이란 언제 어느 때 변할지 모르기에 늘 긴장하며 예의 주시해야 했다.
크라켄은 의자에 앉아 금쇄봉을 세워 두 손을 올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북쪽으로 진격할지, 아니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한 뒤에 기반을 다질지 고심하던 것.
툭. 툭. 툭
손가락으로 금쇄봉의 손잡이를 두들긴다.
지금은 마족들만으로 싸우고 있지만,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면 마왕들도 전부 출격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흐름을 더 상승시켜야 한다.
‘아직도 헌터 협회나 HMCS가 조용한 것을 보면 회의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일 터. 이때 최대한 많은 국가를 전복해 놔야 할 텐데.’
그는 생각을 펼쳐 놓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대비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흐름은 나쁘지 않다.
소강상태라고는 해도 밀리거나 반격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총사령관님!”
그때 부하 중 하나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콜롬비아 메데인 너머 파나마 쪽에서 ‘미스틸 테인’이 나타났습니다!”
“벌써?”
크라켄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북상하려던 전력이 묶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선 좁은 길목과도 같은 국가들을 통과해야 했다.
파나마부터 시작해서 과테말라, 멕시코를 지나야 하는 여정.
그런데 콜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나마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크라켄은 다시 손가락으로 금쇄봉을 두드리며 상념에 잠겼다.
아무래도 놈들은 이 이상의 진격을 저지할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면 미스틸 테인을 치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적의 전력은 얼마나 되나?”
“그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미스틸 테인’이 여러 명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른 병력도 헌터 위주인 듯합니다.”
“여러 명? ‘미스틸 테인’ 한 명이 아니라?”
크라켄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재차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한 명이 아닙니다, 총사령관님”
“분명 회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거늘.”
아직 UN에서 협의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미스틸 테인’이 병력을 이끌고 왔다고 하니 크라켄으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만약 출병으로 의견이 모였다면 심어 놨던 프락치들이 그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 없다.
“독단으로 진행한 일일 터.”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그가 아는 한 민시우밖에 없었다.
“북상은 포기한다. 당분간은 놈들을 경계하며 주둔지의 방어를 강화한다.”
“예,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순간 다른 부하가 그의 막사에 다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저, 적들이···!”
“파나마에서 말인가? 그건 이미 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와 가이아나에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마족이 처음으로 점령한 칠레 옆에 붙어 있었고, 가이아나는 마지막으로 점령한 베네수엘라 옆에 붙어 있었다.
위, 아래, 그리고 전진하려는 파나마까지.
총 세 곳에서 적들이 들이닥치려는 형국이었다.
“아르헨티나와 가이아나에 있는 적들의 규모는?”
“헌터와 군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제는 ‘미스틸 테인’과 하이 랭커들이라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크라켄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적들의 반격이 매우 빠르고 신속했다.
최소 사나흘은 더 있어야 부딪힐 거라 예상했는데, 아무래도 민시우의 과감한 추진력을 우습게 본 모양이었다.
“재밌군, 재밌어.”
크라켄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제1계 마왕의 휘하로 있으면서 지금껏 호적수를 만난 적이 없는 그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걸 내걸고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 같아 크라켄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거북이들은 잘 가고 있나?”
“예! 현재 무사히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파나마 쪽은 무시해라. 나는 가이아나로 향하겠다. 부사령관 ‘레디아크’에게 전해라. 아르헨티나의 첫 출전을 허락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크라켄은 금쇄봉을 들어 어깨에 짊어지고는 붉은 안광을 빛냈다.
***
오스트레일리아는 점령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족의 수적 우세와 적극적인 공격 앞에 자국 군인들과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
이건 역전 가능한 데드라인을 넘어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지막 남은 지역인 ‘퍼스’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배를 타고 도망가려는 사람들과 집에서 덜덜 떨며 기도하는 사람들, 이때다 싶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까지.
도시는 아비규환이었고 퍼스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과 헌터들의 눈빛도 자포자기한 듯했다.
들리는 속보에 따르면 UN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신은 우리를 버리셨군.”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 하워드가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캔버라에 있다가 마족의 습격으로 이곳 퍼스까지 도망쳐 온 상황.
충분히 외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그였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로서 국민을 버리고 도망칠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가 목도한 것은 모든 것이 사그라지고 있는 자국의 마지막이었다.
이미 퍼스 공항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바람에 비행기 이륙이 전부 취소되었고, 항구는 쏟아지는 사람 탓에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정말 끝까지 남아 계실 겁니까?”
수석비서관이 하워드 총리에게 물었다.
“이봐, 알버트. 내가 바라던 삶의 마지막은 이런 게 아니었어.”
“······.”
“손주들한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가고 싶었는데. 밖을 봐 보게. 저 울부짖는 사람들.”
“총리님···.”
“나는 죄인이야, 저들을 비참하게 만든 죄인.”
하워드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창문을 어루만졌다.
그의 목소리에선 슬픔과 비참함이 골고루 묻어 있었다.
일국의 수장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굴욕과 비루한 패배.
“총리님··· 우선은 같이 도망가시죠. 뭘 도모하더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알버트. 자네만 가게. 나는 여기서 최후를 맞이하겠네.”
“총리님···!”
“마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걸로도 모자라 국민을 버린 지도자로까지 남고 싶지는 않아. 적어도 여기서 죽게 해 주게나, 부탁일세.”
하워드 총리가 씁슬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알버트는 그의 굳은 결심을 마주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떠나겠습니까.”
“아니, 자네는 어서 가라니까?”
“전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혼자 남으시는 것보다는 둘이 남는 게 덜 심심하겠죠.”
“이 사람이···! 자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살아남아야지!”
“부모님한테 저는 애물단지라 상관없··· 응?!”
그때 창밖을 바라보던 알버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워드 총리는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내다봤다.
“왜, 왜 그러나? 놈들이 쳐들어온 건가?”
“그게 아니 라··· 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는···.”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지금 이런 오스트레일리아에 누군가 도움을 주러 올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알버트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방금 보았던 사람을 떠올렸다.
***
서쪽으로, 서쪽으로.
퍼스의 초입에 들어선 마족들은 건물을 때려 부수고 막아서는 군인과 헌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크아아악!!”
“마, 막아! 이곳을 사수해라!”
“빌어먹을, 마족 새끼들아!!”
그들은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서 마족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배에 타서 도망갈 때까지.
뼈와 살을 내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을 붙잡고 버텨야 한다.
“총리께서는 대피하셨나?!”
“그게··· 여기서 함께 죽겠다고··· 남으셨습니다.”
“으으윽···!! 버텨, 씨발, 버텨!!”
평소 애국심이 그리 많지 않던 사람조차도 총리의 결정을 듣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또 싸웠다.
마력이 떨어지면 총을 들었고, 총탄이 떨어지면 칼을 들었다.
그러나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마족을 상대로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전선의 한 곳이 무너졌다.
마족들은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희망이 점차 깎여 나간다.
패기 넘치던 군인과 헌터들의 표정에도 점차 절망과 좌절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끝났···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눈앞으로 마족의 사나운 이빨이 들이 닥친다.
그때 높은 상공에서 한줄기 빛살이떨어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콰가가가가가가가!!!
굉음이 일더니 지반이 뒤집히며 거대한 마력파가 사방을 때렸고, 백여 두(頭) 이상 의 마족이 그 자리에서 갈가리 찢겨 나갔다.
진격하던 마족들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올렸다.
“뭐··· 뭐야, 도대체?”
“미사일 같은 건가?!”
군인들과 헌터들이 웅성거리며 정체를 추측하는 찰나,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날카로운 인상에 한껏 귀찮다는 듯한 표정.
“빌어먹을 마족 새끼들이 구더기처럼 바글바글하네.”
시우가 고개를 두둑 꺾으며 전방을 훑어보았다.
【저놈들 보니 내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얼른 다 죽이는 것이다!】
프레가 웬일로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소리쳤다.
“네가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다. 심심하면 너도 마법 좀 쓰지 그러냐?”
【그래? 나도 써도 되는 것이냐?】
말을 마친 프레의 정면으로 수천 개의 술식이 자로 잰 듯 그려지더니 붉은 마법진이 구현되었다.
“야! 누가 이렇게 큰 거를ㅡ”
시우가 놀란 듯 다급히 외쳤고, 그 순간 마법진에서 새빨간 화염이 용솟음치며 적들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마가 순식간에 마족 진영을 초토화했다.
불길에 맞은 적들은 비명 한번 질러 보지도 못한 채 새까맣게 녹아내렸고, 무시무시한 화염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뻗어 흘러갔다.
“이 미친놈아!!”
【음하하하! 이게 바로 내 진정한 실력인 것이다! 다시 한번 놈들에게 징벌을··· 꾸앙!!】
시우가 프레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딱, 소리 나게 때렸다.
【왜, 왜 때리는 것이냐?!】
프레가 날개로 이마를 매만지며 글썽글썽한 눈으로 따져 물었다.
“누가 내 마력을 함부로 그렇게 쓰래?”
【네가 쓰라고 한 것이다! 나는 잘못한 거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제한을 걸지 않은 네 탓인 것이다!】
“···아오. 아무튼 이제부터 마력 적게 드는 걸로 써. 알았어?!”
【구두쇠. 노랭이. 쫌생이. 멍게. 아, 알았다! 안 까부는 것이다!】
프레는 시우가 다시 노려보자 황급히 이마를 가리며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우는 이 쥐방울만 한 동료를 차마 더 때릴 수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 이제 슬슬 난장을 까 볼까. 더 적게 죽이는 쪽이 오늘 밥 사는 거 어때?”
【좋은 것이다! 술도 시키는 것이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 간다!”
시우가 발을 박차며 불길이 치솟고 있는 전방으로 향했다.
마족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허둥지둥 전황을 가다듬었다.
촤ㅡㅡㅡㅡㅡㅡㅡ악!!
그리고 그 틈으로 무라마사의 검날이 사정없이 내질러지며 사방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306호〉
반격
새하얀 검격이 거미줄처럼 사방에 흩뿌려진다.
마족들은 불길 너머에서 달려든 공격에 맥을 추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잘게 쪼개졌다.
“으갸윽···!”
“쿠아아악!!”
“인간이다! 죽여ㅡ 끄아악!!”
그들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자리에 하나둘 쓰러져 죽어 나갔다.
시우는 비어 있는 왼손에 소드 오프 샷건을 구현했다.
철컥.
콰ㅡㅡㅡㅡㅡ앙!! 콰ㅡㅡㅡㅡㅡ앙!!
응집된 마력이 산탄 하더니 달려드는 마족의 상반신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오른손으로는 가까이 다가온 적의 목과 심장을 무라마사로 쑤셔 박고, 왼손으로는 멀찌감치 떨어진 적의 대갈통을 샷건으로 날려 버린다.
마족들은 혼비백산했다.
무지막지한 화염 공격이 퍼부어지나 싶더니, 이제는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에 쳐들어와 난장을 피우고 있다.
그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한 마리의 야수.
“고작 한 명이다! 마법 부대, 공격해!”
“하지만 근처에 아군이···.”
“지금은 저 인간을 죽이는 게 먼저다!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부대 지휘관이 닦달하자 마법 부대원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시우를 향해 마법진을 구축했다.
콰과가가가가가가가!!
순식간에 시우 주위로 엄청난 양의 마법이 난사되며 주변 지형을 뒤틀었다.
마기로 구현한 마법이었으니, 보통의 인간 헌터라면 마력이 상쇄되어 사망하거나 못해도 커다란 부상을 입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만!!”
지휘관은 마법 발사를 중지시켰다.
이미 뒈졌거나 최소한 앞으로 뒈질 놈의 얼굴은 봐 두고 싶었다.
그는 마법의 여파로 뽀얀 먼지가 흩날리는 포격 지점으로 다가갔다.
“끌끌끌. 이미 시체조차 남지 않은 것인가?”
지휘관은 움푹 파여 있는 중심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분명 있어야 할 적의 잔해가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있었다.
마법 부대의 공격은 생각 이상으로 강한 편이었다.
듣기로 인간으로 따지면 S급 이상의 헌터들로 구성된 부대와 다름없다는 것 같았다.
S급 헌터란 게 얼마나 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흔한 편은 아니라고 했다.
“놈은 죽었으니 이제 전방으로 돌아ㅡ 쿠허어어업! 끄게에엑···!”
말을 잇던 지휘관의 입에서 진득한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시우의 검날이 놈의 옆구리를 타고 폐와 다른 장기들을 후벼파고 있었다.
그는 생채기 하나 없는 반반한 낯으로 지휘관의 뒤편에 시서 칼의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꾸르르르르···! 끄야아아아악···!! 꺼어억!”
“더럽게 시끄러운 놈이네. 언제까지 꽥꽥거릴 셈이지?”
시우가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휘관은 피와 비명을 토해 내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고, 시우는 칼날을 빼며 놈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이딴 게 부대를 통솔하니 개판이지.”
만약 시우였다면 마법을 내갈긴 시점에 근접 공격이 뛰어난 병사를 대기시켜 마법이 끝나자마자 곧장 들이닥치게 했을 것이다.
적의 주검을 발견하기 전까진 살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 과신과 오만은 패퇴하는 지름길이자 죽기 딱 좋은 자세.
시우는 무라마사를 허공에 휘둘러 핏물을 털어 냈다.
“부대장님 적은 어떻게··· 허억!!”
그때 마족 하나가 가까이 다가오다가 시우를 발견하고는 숨을 헉 들이마셨고.
서거ㅡㅡㅡㅡㅡ억!
그것이 마족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시우는 터벅터벅 걸어서 아직도 매캐한 먼지를 뿜어내고 있는 피격 지점을 벗어났다.
“노, 놈이 살아 있다!!”
“마법 부대! 다시 공격 준비!!”
“부대장님은?!”
시우를 발견한 마족들이 재차 공격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시우가 아니었으니.
“뜸 들이지 말고 날려 버려.”
【안 그래도 그럴 참인 것이다! 놈들은 단 하나도 살려 두지 않는 것이다!】
프레의 전방에 술식이 전개되며 금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구현되었다.
좌표를 계산한 프레가 마력을 불어넣자 곧이어 샛노란 섬격이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마구잡이로 내리꽂혔다.
콰과가가가가가강!! 꽈과가가가가가강!!
우레와 같은 굉음이 일대를 짓누르며 무지막지한 번개가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방사된 전격에 맞은 마족들은 그대로 새까망게 타올라 신음 하나 내지 못하고 죽었고, 사위는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종네. [일섬굉화]를 연속으로 사용한 건가?”
시우가 휘파람을 불며 물었다.
【그런 것이다! 네 마나맥이 정돈된 덕에 적은 마력으로 더 강한 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에테르의 힘을 사용하며 찢기고 수복되는 걸 반복한 시우의 마나맥은 부드럽게 길이 난 상태였다.
물론 시우가 따로 마나맥을 정돈한 것도 큰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마력 소비는 적어서 다행이네.”
시우가 소모된 마력을 체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기 전부 죽을 뻔했어요!”
“그런데 실례지만 누구신지···? 지원이 아무도 안 오는 줄 알았거든요.”
그때 시우의 활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헌터와 군인들이 시우에게 다가왔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옆에서 돕는다거나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시우 혼자서 반 이상을 쓸어버렸기 때문에 돕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
“HMCS 특급 요원 민시우라고 합니다.”
시우가 짧고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누구인지 장황하게 설명해 봤자 관심 없는 사람은 전혀 모를 테니,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소속과 이름을 듣고 곧장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SSS급 헌터인 그분?!”
“죄송합니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세계 랭킹 0위께서 직접 오시다니요? 그러면 UN에서 전쟁하기로 마음을 먹은 겁니까?”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며 시우를 향해 감격 어린 눈빛을 보냈다.
시우는 그중에서도 마지막 질문에만 대답했다.
“아니요. UN은 아직 논의 중입니다. 아마 마족 측에서 미리 손을 써 놓은 국가가 있겠죠.”
“크윽···! 아니, 그렇다면 민시우 헌터님께서는 UN의 결정 없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오신 겁니까? 그것도 혼자서···?!”
“네. 그러면 안 되나요?”
시우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아닙니다! 너무, 너무 감사해서 여쭤본 것입니다!”
“이곳 퍼스에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만 시간을 끌어 주시면 저희가 사람들을 대피토록 하겠습니다.”
“대피?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예···?!”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시우를 쳐다봤다.
시우는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오연한 말투로 내뱉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마족들 전부 조질 거니까요.”
***
아르헨티나 정부와 연합한 헌터 협회의 반격에 칠레에 있던 마족들은 맥을 추리지 못했다.
반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개중에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헌터들도 있어서 대응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마족들은 그 헌터들이 ‘미스틸 테인’이란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내가 다시 공격하겠다.”
키플라갓이 타원형의 가면을 쓰더니 적들의 진영으로 돌진했다.
그 순간 그의 주위로 일백에 가까운 부족 전사들이 현현하며 마족 진영에 산개해 적들을 유린했다.
키플라갓이 소환한 전사들은 마치 잘 훈련된 부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여기는 저 사람한테 맡기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어때?”
간다르바가 키플라갓의 모습을 보더니 일행에게 물었다.
“저는 어디든 상관없어요. 주인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결과만 내면 되니까요.”
나미르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옆에 있던 로키가 그녀의 반응에 감탄했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헤ㅡ 민시우는 여복이 많네. 나미르도 그렇고 간다르바도 그렇고. 여자들이 좋다고 줄줄 따르는데?”
“뭐, 뭐, 뭐?! 내, 내가 언제 시우가 좋다고 따, 따라다녔어!”
“하ㅡ 간다르바. 그 빨개진 얼굴이나 숨기고 따지지?”
로키의 말에 간다르바가 고개를 획 돌리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확실히 달아오른 것처럼 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다른 진영으로 가는 게 어때요?”
나미르가 간다르바를 흘깃 노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 그러자고. 그나저나 움직였더니 어, 얼굴이 뜨겁네.”
“후ㅡ 이미 늦었어, 간다르바. 티를 안 낼 거면 회의 시간에 민시우 쳐다보면서 히죽히죽 웃는 것부터 고쳤어야지.”
“내, 내, 내가 언제!! 아니거든!”
“간다르바, 당신이 제 주인님을 보면서 소녀 같은 표정 짓는 거 모든 사람이 다 알아요.”
나미르가 심기 불편한 말투로 대신 대답했고, 간다르바는 조금 전보다 더욱 빨개진 낯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셋 다 말없이 전진하기를 몇 분.
가장 앞서가던 간다르바가 걸음을 멈추더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수신호였다.
“뭔가 이상해. 사방이 너무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숲속에서 벌레나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흠ㅡ 내가 찾아볼게.”
로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긴 호흡을 내뱉었다.
그녀의 금발이 미약한 바람에 나부끼더니 이윽고 그녀가 내뱉은 호흡에 마력이 실리며 숲속을 헤집었다.
고작 1~2초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되돌아온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헤ㅡ 흩어져!!”
로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들이 있던 자리가 썩어 문드러지더니 푹 꺼져 들어갔다.
“주술··· 그것도 질 떨어지는 흑마법이군요.”
나미르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마법에서 느껴진 기운을 파악하며 중얼거렸다.
흑마법은 일반 마법과 다르게 질척거리고 흉흉한 기운이 느껴져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일렁거리며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들의 기운을 눈치채다니, 대단한 계집이군.”
새까만 옷으로 몸을 둘둘 싸맨 자들이 붉은 안광을 부릅뜬 채 그녀들을 노려봤다.
짙은 마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마족이었다.
“실력이 보통이 아닌 자들이군요.”
나미르가 허리춤에서 레이피어를 꺼내며 사위를 일별했다.
풍기는 기세나 마기의 농도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잔챙이들과는 격이 다른 듯했다.
“우리는 부사령관인 레디아크 님의 전속 돌격 부대다. 주특기는 고문과 살인이지.”
“그딴 걸 자랑이랍시고 떠드는군요.”
“이 기운은··· 반편이군. 마족도 인간도 아닌 잡종.”
돌격 부대의 대표로 보이는 이가 나미르를 향해 경멸조로 말했다.
“지금 뭐라고 떠드셨죠···?”
“잡종이라고 떠들었다. 정식 마족이 되지 못해 인간한테 들러붙은 주제에 감히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다니. 카악, 퉤!!”
그는 마치 더러운 생물과 말을 섞었다는 듯이 바닥에 침까지 내뱉었다.
“이 자리에서 하찮은 인간종과 함께 죽여 주마. 그게 네 몸에 있는 반쪽짜리 마(魔)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어이가 없군요.”
나미르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반마족으로 태어나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저렇게 떠드는 게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해를 바라고 한 말도 아닐 것이다.
마족은 그 누구보다 자신들의 종족성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존재다.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하고 있으니, 벌레와 마족이 반반 섞인 나미르는 그들에게 있어서 흉물이나 다름없을 터.
“햐ㅡ 미친 것들 말 계속 들을 거야?”
그때 로키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미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미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마력을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아뇨. 얼른 저들의 혓바닥을 도려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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