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11
316화〉
짜 놓은 판2
바블레너는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맹한 표정.
“어때? 꽤 괜찮은 계획이지 않아?”
타타르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바블레너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전히 삭막하고 음침한 방이다.
마왕의 권속이라는 위치에 맞게 화려한 공예품이나 장식품, 위용을 드러낼 수 있는 걸 둘 법도 한데, 바블레너의 방은 무채색 그 자체였다.
가구라고는 이 딱딱한 의자와 테이블이 전부.
심지어 침대나 소파도 없었다.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살고 있는 거지.’
타타르는 마계에서 재배한 담뱃잎으로 만든 궐련을 입에 물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탁한 연기와 뇌를 자극하는 니코틴이 그의 정신을 맑게 했다.
“바블레너,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돼. 나 혼자 할 거니까. 하지만 권속이 민시우를 죽이면 그 권속의 마왕이 다른 마왕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만 명심해라.”
“명심해라아···?”
“히카탄네 제2계 마왕님이나, 내가 섬기는 제3계 마왕님 중 누가 제4계 마왕님을 종으로 삼아도 원망 말라고. 그렇게 되면 너는 벌레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타타르가 담배 연기를 허공에 후, 내뱉었다.
같은 마왕끼리도 급이 나누어지는 판에 권속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권속끼리도 주종 관계가 성립될 터.
‘물론 제4계 마왕을 종으로 삼을 마왕은 없겠지만.’
다른 마왕들 모두 ‘최후의 마왕’에 가장 근접한 제1계 마왕을 종으로 삼을 것임이 당연했다.
크라켄.
그를 부리는 자가 ‘최후의 마왕’으로 오를 것이다.
같은 권속이지만, 마계 내에서 크라켄의 위상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압도적 강함.
타타르나 히카탄, 솔라소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크라켄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니.
‘하물며 바블레너는··· 대치 자체가 성립이 안 되겠지.’
결국 민시우를 가장 먼저 처치하는 자가 크라켄을 손에 넣고 승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1계 마왕하고 주종 계약을 맺으면 제2계 마왕이나 제4계 마왕은 손쉽게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부로 히카탄, 솔라소, 바블레너는 없어질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할 거냐. 민시우 처리하는 곳 같이 안 갈 거야? 제4계 마왕님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도 없냐, 너는?”
“충성시임···.”
“싫으면 말아라. 나 혼자 가서 싹 정리하고 끝낼 테니까. 나중에 내 밑으로 들어오면 섭섭지 않게 대해 주마.”
의자에서 일어난 타타르가 입구로 향했다.
“갈게에···.”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바블레너가 그를 붙잡았다.
‘킬킬킬.’
타타르는 궐련을 힘껏 빨아들였다.
***
수라멸망꽃.
꽃감관으로 일하는 할락궁이가 저승 ‘서천꽃밭’에서 키운 꽃 이름이다.
신화 속에서 자청비는 천계에 반란이 일어나자 저 꽃으로 3만이 넘는 병사를 일격에 즉사시켰다.
자청비를 한국 신화에서 가장 강한 인물로 만든 능력.
최강율의 몸에서 파죽지세로 끓어오른 마력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자청비 : 수라멸망꽃]일순간 자청비가 현현한 것 같은 신화급의 격과 기세가 레디아크를 짓누를 듯 덮쳐 왔다.
‘이건··· 위험하다.’
흑갑을 두른 레디아크가 최강율에게서 뻗쳐 나오는 힘을 보며 경악했다.
분명 그보다 약한 마력을 지녔을 터인데, 지금 상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은 그를 압도하고도 남은 것이다.
“먼저 뒈져라, 인간!!”
그가 장창 글레이브에 마기를 그러모으더니 최강율을 향해 찔러 넣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
창이 놈의 목덜미로 짓쳐 들어간다.
숨통이 끊어지고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마족이나 악마가 아닌 이상엔 말이다.
그러나 글레이브의 뾰족한 날은 최강율의 목에 닿지 못했다.
쿠그그그그그그그···!!
사납게 뻗어 나온 짙은 녹색의 기운이 글레이브를 통째로 녹여 낸다.
무시무시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최강율은 서늘하게 벼린 눈으로 레디아크를 노려보며 오른 주먹에 푸른 기운을 욱여넣었다.
“죽어라, 마족.”
최강율의 주먹이 있는 힘껏 앞으로 휘둘러진다.
“크하하하핫!! 크라켄 님, 먼저 갑니다!”
레디아크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숲의 어둠을 찢어발기며 청록의 섬광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쿠가가가가가가가가!!!
소닉붐이 지반을 으깨고 뒤늦게 굉음이 울린다.
“헉··· 헉··· 헉···.”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레디아크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멍이 생성되었다.
간다르바와 로키, 나미르가 그의 강격을 보고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으나, 자청비의 힘을 빌린 최강율의 격이 그들을 상회했기 때문.
“대단하다···.”
간다르바가 소리 내 중얼거렸다.
지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미스틸 테인’ 셋이 싸워도 쓰러트리지 못한 적이다.
“후ㅡ 까딱 잘못했다간 여기서 다 죽을 뻔했네.”
로키가 몸에 뒤집어쓴 먼지를 털어 냈다.
그녀는 문득 나미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디아크의 음파를 맞고 날아갔던 나미르는 입에서 피를 게워 내고 있었다.
“헤ㅡ 벌써 일어났어? 더 누워 있지.”
“괜찮아요. 주인님한테 받았던 훈련에 비하면 이까짓 거 상처도 아니에요.”
“흠ㅡ 그건 그래. 시우 씨 훈련이 터프하긴 하더라. 나도 몇 번이나 맞고 기절했는지 몰라.”
‘미스틸 테인’은 번갈아 가며 틈틈이 시우에게 트레이닝을 받아 왔다.
말이 트레이닝이지 거의 고문에 가까운 극악의 지옥 훈련이었지만, 그 덕분에 대부분의 멤버가 자신의 벽을 깨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보다 다섯 배는 더 심하셨어요. 요즘 많이 순해지셨더라고요.”
나미르가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냈다.
“야! 야! 정신 차려!”
짝, 짝, 짝!
그때 박수 소리 비슷한 찰진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간다르바가 기절한 최강율의 뺨을 거침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로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ㅡ 그게 더 아프겠다. 그냥 업어서 데리고 가면 되지.”
“그래? 그럼 네가 업을래?”
간다르바가 묻자 로키가 잠시 고민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히ㅡ 얼른 안 깨우고 뭐 해?”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낮고 무거운 발걸음.
적막한 복도를 울리는 유일한 소리에 조명이 파르르 떨린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기다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이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우중충하고 핏기 없는 얼굴.
그는 목표한 출입문에 도착하자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멈추시죠.”
그 순간 복도 저 끝에서 눈을 가린 앳된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상대방에게 경고를 던졌고, 말이 끝나자마자 십수 명의 사람들이 뛰쳐 들어가 흑색 로브의 주위를 포위했다.
“허허허···. 어린애가 싸돌아다니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오?”
“어린애라니, 무례하군요. 그리고 그 어린애를 질타하기 전에 남의 공간에 무단으로 침입한 걸 부끄러워하셔야죠.”
“이런, 실례했소. 그리고 계속 실례할 것 같소, 아리아.”
“제 종단에 온 걸 환영합니다, 멀린.”
이름을 들은 멀린이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뒤로 젖혔다.
“앞이 안 보이는 게 맞소, 성녀?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는 사기꾼 같소만.”
“수배자 생활이 힘드셨나 보네요. 깔끔하던 수염도 너저분하고, 얼굴도 피폐해지셨네요.”
“허허허. 다른 사람들이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고 사니 본인이 정말 잘난 줄 아는 모양이오. 내가 볼 땐 창부와 다름없어 보이는데.”
“세계적인 대마법사라 하시더니 하는 짓은 삼류 잡범과 다를 바가 없네요. 훔치는 것 말고는 재주가 없으신가 보죠?”
어린 나이에 성녀라 불리고 지금껏 홀로 종단을 꾸려 온 그녀였다.
어중간한 실력이나 성격으로는 수많은 사람 틈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고, 정상에서 군림할 수도 없다.
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린 여자가 우두머리에 앉아 있으니, 물밑에서 그녀를 인형처럼 조종하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건 당연지사.
아리아는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처럼 사람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속을 들쑤셔 평정심을 잃게 하는 법 또한 도가 튼 상태.
“허···.”
서로 독설을 주고받다 말문이 먼저 닫힌 쪽은 멀린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바닥에 툭툭 두드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혹은 분노를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껏 마족한테 붙으셔 놓고 하시는 일은 조직 말단과 다를 바 없네요. 그런 취급받으시려고 범죄를 저지르신 건가요, 배신자 씨?”
“이 요망한 계집이 뚫린 주둥아리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인내심이 끊긴 멀린의 입에서 기어이 분노가 표출되었다.
그는 어둡고 끈적이는 안광으로 아리아를 노려봤다.
짙고 탁한 살의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막으세요.”
아리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멀린이 지팡이로 복도 바닥을 쿵, 하고 내려찍었다.
그러자 강대한 마력파가 멀린을 중심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아리아의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와 스킬로 방어막을 펼쳤다.
쿠과아아ㅡㅡㅡㅡㅡㅡㅡㅡ!!!
파리하고 수척해진 안색 탓에 실력까지 줄어든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저력은 여전했다.
“크윽···!! 성녀님,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린의 공격이 너무 강합니다!”
경호원들이 다급히 그녀에게 말했다.
“허허. 수하들을 사지로 밀어 넣고 도망가야 쓰나.”
멀린의 지팡이가 앞으로 겨눠진다.
그를 덮쳤던 종단의 전투 헌터가 그 자리에서 짓이겨지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벽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앙!!
“여전히··· 천외천의 실력을 갖고 계시는군요.”
“이제 와서 내게 그런 미사여구를 붙이지 마시오, 성녀 아리아. 내 들었던 모욕 그대로 당신의 몸에 철저히 알려 줄 터이니.”
“제가 언제 당신에게 미사여구를 붙였죠? 어차피 그 실력도 마족한테 빌붙어서 얻은 실력일 텐데.”
“이ㅡ!!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이년!!”
멀린은 제 치부를 드러낸 사람처럼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아리아는 별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내용은 사실이었다.
멀린은 과거 천재 소리를 듣던 마법사였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각성한 그의 실력은 좀체 나아지지를 못했고, 급기야는 신인 헌터들에게까지 밀리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결국 멀린은 금지된 약물에 손을 댔다가 폐인이 되고 말았는데, 그런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민 것이 마족이었다.
그는 마왕에게 평생 복종하는 것을 대가로 힘을 얻어 냈다.
막대한 힘 덕에 ‘미스틸 테인’까지 올랐고, 세계적인 대마법사 칭호마저 생겼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곳에선 이 모든 게 자신의 힘이 아니란 콤플렉스가 있었다.
마족이 아니었다면ㅡ 과연 이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 같은 물음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그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이건 내 힘이야!! 내가 일군 힘이라고!!”
멀린의 목에 핏대가 세워졌다.
그가 지팡이로 발한 힘이 복도 끝에 있는 아리아를 향해 솟구쳐 나갔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득!!!
건물을 그대로 박살 낼 것 같은 파괴력.
하지만 성녀라는 칭호 역시도 거저 얻어 낸 것이 아니었으니.
“크읍!!”
아리아가 펼쳐 낸 마법이 멀린의 마법을 막아 냈다.
“오늘부로 이 종단은 내 손에 전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렇겐··· 안 될 겁니다!!”
“안 되면? 네년이 막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후후··· 설마요 저는 전투 헌터가 아니라서···. 저분이 해 주실 겁니다.”
“저분??”
멀린의 고개가 황급히 뒤로 돌아갔고.
그 순간 묵직한 주먹이 그의 얼굴을 내리갈겼다.
뻐어ㅡㅡㅡㅡㅡㅡㅡ억!!
“거, 노인 학대 아닌가 모르겠네.”
시우가 멀린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