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16
321화〉
복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이 무슨 말을 지껄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 설령 내뱉는 대답이 예상과 다르다고 해도 상관없다.
예기치 못한 말을 내던진다고 해도, 다시 한번 조롱을 일삼아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ㅡ
“내가 알아야 하나···?!”
“그래, 그렇게 지껄일 줄 알았다.
시우가 동공이 확장된 채 냉혹한 한기를 뿜어냈다.
쿠구그그그그그그ㅡ!!
그에게서 피어오르는 지독한 살기가 지반을 짓이기고 대기의 흐름을 비틀었다.
“크윽···!!”
시우의 매서운 눈빛에 멀린은 피부가 뜯겨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냥 쳐다보는 것뿐인데 칼로 저며지는 것처럼 뼈와 살이 발라지는 것 같다.
마왕이나 대악마를 마주했을 때와는 결이 다른 공포.
‘이것이···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살기란 말인가?’
멀린은 침음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자리에 있던 크로우와 류지환마저 시우에게서 밀려드는 압박감에 혀를 질끈 깨물었다.
정신을 바짝 차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리라.
“생 제르맹과 바바 야가는 내가 판단한 결과 ‘무죄’가 나왔다.”
“흐읍···! 큭!”
글자와 단어, 어절, 문장이 칼날처럼 틀어와 박힌다.
“너도 그럴 수 있을까?”
“크으으으으윽!! 네까짓 게 감히 날 정죄하려 드느냐!!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밖에 하지 않았어!”
“그래서 블랙맘바한테 의뢰해서 죽이라고 했냐고?”
“크허허허허허! 내게서 대답을 듣고 싶으냐? 그럼 날 실력으로 눌ㅡ”
“그럴 생각이다, 개자식아.”
빛의 속도로 들이닥친 시우가 멀린의 복부에 주먹을 내다 꽂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쩌어어어어엉!!!!
소닉붐이 일고 굉음이 뒤따라 울린다.
마력과 마기가 격돌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바닥이 으깨져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진다.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수십여 미터를 날아간 멀린이 암벽에 처박혔다.
“으거어어억···! 크어어억···!!”
바닥에 널브러진 채 피를 울컥울컥 토한 멀린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는 증오를 받아들여 마기가 전신을 아우르는 상태였다.
‘미스틸 테인’이었던 때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은 강력해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면 혼자서 ‘미스틸 테인’ 서너 명과도 한 번에 싸울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대체ㅡ
“이··· 우웨엑!! 쿨럭!! 이 괴물 같은 놈···! 고작 인간이 이, 이만한 실력을···!”
“마족 뒷구멍 빨아서 강해진 너 같은 놈은 이해할 수 없겠지.”
“뭐라···?! 이 오만방자한 놈!! 네까짓 놈이 나를 평가하지 마라!”
“평가하고 말 게 뭐가 있지? 마왕이 아니었으면 벌레처럼 살다가 뒈졌을 놈이.”
평소라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을 시우였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건조하고 삭막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이계에서 다시 돌아와 처음 들었던 비보.
그런 제자를 죽인 진범과 처음으로 가면을 벗고 마주했다.
그 때문에 시우에게는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크흑ㅡ! 내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민시우 그러는 너야말로 제4계 마왕님과 싸우다 도망치지 않았나?! 네가 나하고 뭐가 다르지? 같은 패배자가!”
시우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들에 대한 부채 의식 중 저 부분이 제일 컸는데, 그 점을 상대가 걸고넘어진 탓.
만약 제자들이 저 부분으로 그를 원망하고 미워한다면 시우는 대꾸할 말이 없었을 것이었다.
부모처럼 그를 따르던 애들이다.
사실 시우가 잘못한 부분은 없다.
피치 못할 상황이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스승이란 위치에서는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었다.
“그래, 나는 제자들을 두고 멀리 떠날 수밖에 없었지.”
시우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마족 앞잡이가 함부로 떠들 일은 아니지. 더군다나 암살을 지시한 새끼가 말이야.”
시우에게서 거친 폭풍우 같은 기세가 퍼부어졌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멀린이 정민준의 암살을 의뢰했다는 것.
이 사실 외에 시우에게 와닿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땅을 박차고 달려 예고도 없이 멀린에게 칼을 휘둘렀다.
콰아아아ㅡㅡㅡㅡㅡㅡㅡ!!!
“끄으으으으으아아악!”
멀린은 지팡이를 들어 시우의 무라마사를 막아 냈다.
강대한 충격이 그의 어깨와 손목을 짓이길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시우가 멀린의 지팡이를 칼로 튕겨 내며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무라마사가 상대를 향해 짓쳐 들어간다.
무자비한 섬광이 폭발하고 일대의 지반이 마구잡이로 튀어 오른다.
멀린의 입과 부상 당한 자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크아아아아악! 나는 절대로, 절대로 지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의 정상에 우뚝 설 것이다!!”
“꿈도 야무지네.”
시우가 그의 복부에 뒤돌려 차기를 후려갈겼다.
뻐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억!!
갈비 明가 으스러지는 감촉이 그의 발끝을 타고 오른다.
빠가가가가가가가가가···!!!
땅바닥에 갈리듯이 나갈 떨어진 멀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배를 부여잡고 입을 벌렸다.
“ㅡㅡㅡㅡㅡㅡㅡ흐억···!!”
숨이 쉬어지지를 않는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파고들어 숨을 쉴 수가 없다.
호흡을 들이마시면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린다.
“하악···.”
멀린은 괴로운 듯 땅바닥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모래 알갱이가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간다.
“감히 내 제자를 죽여 놓고 무사하기를 바랐어?”
그 순간 섬뜩한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멀린은 간신히 얼굴을 들어 시우를 올려다봤다.
방금까지 남아 있던 자신감과 용기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멀린의 가슴속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흐엑···!”
죽음이 물결치며 파도처럼 그를 덮쳐 온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싶다.
평생 속죄하고 살 테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되겠냐고 빌고 싶다.
애초에 그는 살아남고자, 더 누리고자 마족에게 빌붙고 자신을 의탁한 것이었으니 생존 본능이 발휘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상대와 타이밍은 최악이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가리 똑바로 안 벌려?”
마치 귀신과 같이 흉신악살의 얼굴을 한 시우가 멀린의 턱을 잡더니 그대로 뜯어 버렸다.
“히···! 히···!!”
멀린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르려고 했지만, 목구멍에 새어 나온 건 의미도 뜻도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멀린은 손을 덜덜 떨며 자신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하관이 통째로 사라진 자리엔 기묘한 공허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통증이 자리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모를 거야.”
그때 시우가 쪼그려 앉더니 멀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멀린은 마법을 쓰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마법은 시전자의 의지와 상상력을 마력으로 구체화시키는 고도의 정신 작업.
마법에 능숙해지면 최소한의 정신력만 소모해서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다.
전투 헌터에게 필요한 능력이 체력이듯, 마법사에게 필요한 능력은 이성적 차분함.
그러나 지금 멀린은 침착할 수도, 이성적일 수도, 정신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흐이··· 하으···!”
그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또한 시우는 상대의 눈에 깃든 어둠과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죽을 것 같으면 말해. 힐로 치료해 줄 테니까.”
“흐아··· 흐··· 아으으···.”
빠ㅡㅡㅡㅡㅡㅡㅡ악!! 빠가아아아아아아악!!!
에테르의 힘을 뒤섞은 시우의 주먹이 멀린의 전신에 폭포수처럼 내리꽂혔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진다.
주먹 한 방 한 방이 몸을 두들길 때마다 쇠망치로 힘껏 처맞는 듯한 고통이 치밀어 올랐다.
태어나 이렇게 커다란 통증을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 뇌를 기름에다 튀기는 기분.
“끄거어어억···!”
공격 자체는 스킬도 아닌 단순한 주먹질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증오는 여과 없이 멀린의 육신을 짓밟았다.
‘미스틸 테인’급인 자신이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좌절감이 들기도 잠시.
멀린은 제 의식이 삽시간에 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시우는 졸도한 멀린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피로 낭자한 그의 상태는 이미 죽었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시작이야, 씨발 놈아.”
그러나 시우는 아직 10분의 1도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
금빛 찬란한 술식이 펼쳐지며 멀린의 부러진 뼈와 터지고 찢긴 상처를 수복시켰다.
뜯겨 나갔던 턱도 생기고, 갈비뼈가 박혔던 폐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꼴을 얌전히 보고 있을 시우가 아니었으니.
푸우우우욱!!
손가락을 가슴 깊이 찔러 넣어 폐에 구멍을 뚫었다.
“히ㅡㅡㅡㅡ익!!”
기절했던 멀린은 갑작스러운 격통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상황을 재확인했다.
분명 어마어마한 고문을 받다가 죽을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그의 육체는 멀쩡했다.
방금 뚫린 허파만 빼고.
시우는 엉거주춤한 멀린을 향해 벼린 칼날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내 허락 없이 죽고 싶어도 못 죽어.”
멀린은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대체 일이 왜 이렇게 꼬였는지 알고 싶었다.
***
“야! 너희 엄마는 괴물이랑 흘레붙어서 널 낳았다며!”
놀이터에서 얌전히 놀고 있던 어린 꼬마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자기보다 서너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동네 소년들이 그를 향해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 아니야···. 우, 우리 아빠 사, 사람이야.”
“웃기시네! ‘그 집’에서 사는 애들은 다 괴물 자식이라고 했어!”
소년들은 꼬마를 빙빙 둘러싸더니 위협적인 포즈로 그를 내려다봤다.
꼬마는 더욱 의기소침해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우리 삼촌도 그랬어! 그 집 새끼들은 전부 마족이 버린 애들이라고!”
“맞아, 우리 부모님도 절대 같이 놀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흘레붙는 게 뭐야?”
“나도 몰라. 나쁜 거라던데?”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순수한 악의를 꼬마에게 내던졌다.
“아무튼 부모가 내다 버린 건 확실해. 그러니 고아원에서 살고 있지.”
“우,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버, 버린 게 아니야···.”
“아닌데 왜 고아원에서 사냐, 병신아!”
“버, 버리지 않았어···.”
“고아가 말대꾸?”
소년 중 하나가 손에 든 막대기로 꼬마를 때렸다.
따악!!
“악! 아, 아파···.”
“어쩌라고! 아프라고 때렸는데!”
“하, 하지 마···. 우리 형이 가, 가만 안 둘 거야···.”
“흥! 어차피 네 친형도 아니잖아! 같은 고아 새끼들이 형제는 무슨!”
“낄낄낄. 그래?”
그 순간 이상한 웃음소리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소년들은 어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아아악!!
그리곤 느닷없는 주먹에 막대기를 휘둘렀던 소년이 뒤로 고꾸라졌다.
“아아아악! 피, 피 났어! 흐아아아앙!!”
“애새끼가 고작 코피 조금 난 거로 유난이네.”
그들보다는 조금 어려 보이는 꼬마가 더러워 보이는 눈매로 그들을 노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너, 너 가만 안 둬! 우리 부모님한테 다 이를 거야!”
“그러셔? 그럼 어차피 혼날 거 존나 더 패야겠다!”
빠아아악! 빡! 빠가악!
소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엉엉 울며 도망쳤다.
“혀, 형아···.”
쭈그리고 앉아 있던 꼬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에게 안겼다.
“인마!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패라니까!”
“그, 그치만··· 나, 나는 싸움 못 해···.”
“에라이. 그럼 차라리 그때마다 나를 불러. 알았어?”
꼬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지환이 형아.”
“그래. 가자, 민준아.”
류지환과 정민준은 자신들의 집인 ‘이지 고아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