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26
331화〉
이계의 존재
“하, 시발 뒈질 뻔했네.”
류지환이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도망친 건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정신을 차려 마주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일촉즉발의 상황.
만약 진도화가 조금이라도 늦게 스킬을 구현했더라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죽었을 것이었다.
아자젤이나 마스테마, 나아가서 바알제불이란 규격 외의 대악마는 격 자체가 높고 마기의 총량이 많아 강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놈은 달랐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공포.
그 농밀하고 짙은 피폐의 늪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빠져나오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것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놈과 마주친다면 바닥없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다들 무사한 거지?”
류지환이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모두 파리한 안색에 지쳐 보이는 모습.
IZIZ 멤버들은 코앞까지 닥쳤던 죽음의 기운을 상기했다.
괴물이 밑도 끝도 없이 뿜어내던 가공할 힘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건··· 본 적 없는 ‘것’이었지?”
누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생각하는 것조차 소름 끼치는 괴물의 외형.
몬스터에 대해 빠삭한 류지환도 그런 놈은 처음 보는 종류의 ‘무언가’였다.
S급 게이트 안에서도 본 적 없는 이형의 존재.
“네 덕분에 살았다, 진도화.”
“염병헐. 다 뒤질 뻔 봤네. 뭐 그딴 게 다 있당가.”
진도화도 혀를 내두르며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떨치려 했다.
[기이활화]와 동시에 환술을 사용한 그의 판단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평소처럼 합죽선에 그린 묵화(墨晝)로 만족했다면 그 괴물의 밥이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진도화 덕분에 살긴 했지. 그래서 알비노가 멀린도 데려올 수 있었고.”
크로우가 가리킨 곳에는 정말 기절한 멀린이 있었다.
사실 우연에 가까운 좋은 타이밍이 한몫했다.
연구실 안에서 ‘차원의 문’이 열리고 모두가 정신없는 틈에 가까이 접근했던 알비노가 멀린을 기절시키고 몰래 데려왔던 것이다.
어차피 대악마들이나 이계에서 넘어온 존재들이 멀린을 챙길 리 만무했기 때문.
“흑흑··· 신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흑흑흑.”
“수고했다, 알비노.”
류지환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기절한 멀린을 지그시 노려봤다.
‘만약 문이 열렸다면 2차 계획이 시작된 것이니 멀린을 데려가 살려만 두라’고 한 시우의 말이 떠올랐다.
“보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칼레오가 둥근 로이드테 안경을 고쳐 쓰며 류지환에게 물었다.
같은 ‘이지 고아원’ 출신인 크로우, 호저, 이반, 라펠, 칼레오가 류지환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 어쩌기는.”
류지환이 인간의 것이 아닌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서늘한 안광을 피워 올렸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줘야지.”
***
“스승님, 괜찮으실까.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려나.”
강여화가 안개 짙은 밤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루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사매. 이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스승일 거다.”
“제자로서 스승 걱정 좀 하고 살아라. 맨날 아밍, 시온만 챙기지 말고, 이 시스콘아.”
“시스······?!”
루안은 심각한 충격을 받은 듯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눈만 부릅떴다.
“멀린의 ‘차원의 문’을 해제할 거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실패할 확률이 높나 봐. 형이 해결 못 하면···.”
민시준은 뒷말을 굳이 잇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형에게 너무 의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가장 의지하고 있는 건 바로 민시준 본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우는 히어로 그 자체였다.
위험한 순간엔 여지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구해 주는 영웅 중의 영웅.
그래서 이번에도 어렴풋이 시우가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준아, 스승님이 알아서 다 하실 거야. 우리는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도하자.”
“···사매. 나한테는 시스콘이라고 하더니, 스승님에 대해선 너무 관대한 거 아닌가?”
“뭐래. 어딜 감히 스승님하고 너 따위를 비교해?”
강여화가 루안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사장님이 말한 1차 계획이 실패하면, 우리는 2차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한태치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을 보며 물었다.
현재 그들은 바다가 보이는 강원도의 한 빌딩 위에 있었다.
원래는 돌아가면서 경계 근무를 섰는데, 시우가 며칠 동안은 다 같이 서라고 지시해서 모여 있는 중이었다.
‘차원의 문’을 통해 이계의 그 무엇이 넘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주의를 요구한 것.
“···하지만 의문이긴 하군. 스승은 이계를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거야 우리 스승님이니까 그렇지!”
“···사매의 대답은 도움이 안 되는군.”
“형이 드래곤의 코어가 어쩌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어.”
“문제는 ‘원하는 이계에 도착할 수 있느냐’와 ‘그곳 존재들이 도와줄 것인가’가 되겠지. 만약 거절하면 그거에 대한 대비책도 가지고 계신 건가.”
루안이 질문을 던지자 민시준이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그냥··· 두들겨 패면 된다던데.”
“······.”
“······.”
제자들은 스승이 어떤 자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 같은 말에도 쉽게 납득했다.
그때였다.
“···뭔가 온다.”
마력 감지가 제일 뛰어난 루안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자욱한 안개가 펼쳐진 차디찬 동해의 파도 소리 위에서 어슴푸레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다들 준비m 뭐야, 저건···.”
스태프를 겨누던 민시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했다.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아주 ‘거대한’ 생물이 바다를 헤치며 을씨년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
“폐, 폐, 폐하··· 목숨만 사, 살려 주신다면···.”
“이 꽉 깨물어라. 턱 나가니까.”
빠가아아아아아아악!!!
티르칸의 턱뼈가 송두리째 바스러졌다.
절반은 호랑이의 신체를 닮았기에 구조상으로 여느 인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한 몸을 가진 티르칸이었으나, 시우의 주먹 앞에선 평등한 몸뚱이가 될 뿐이었다.
“기절했네. 다음.”
“폐하, 제가 잘못했음다! 저는 정령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제부터는 폐하의 전속 정령이 되겠음다!”
“그건 내가 정해. 너도 이빨 꽉 깨물어라.”
마력으로 이루어진 정령왕 소피넬르는 물리적 타격을 받지 않는 존재였다.
마력 내성도 어마어마하게 높아서 어지간한 마법이나 마력 공격엔 끄떡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의 마력은 그런 정령왕의 몸을 갈가리 찢을 정도로 밀도가 높았으니.
소피넬르는 ‘온몸이 터져 나가는’ 이미지를 상상했고, 그의 정신과 마력은 그 이미지를 구체화 했다.
시우의 주먹맛이 어떤지 아는 소피넬르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도 상상될 수밖에 없는 공격.
콰드드드드드드득!!
“끄야아아악!”
물론 그만큼 고통을 느끼고 파괴가 되었다 뿐이지, 정령은 죽지 않지만 말이다.
시우는 회의석에 앉은 십수 명의 대신들을 똑같이 반쯤 죽여 놨다.
“키클.”
“예, 폐하!”
“회의 참석 안 한 놈들 전부 체포해 와.”
“알겠습니다!”
시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키클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불참한 대신들을 끌고 왔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성내 곳곳에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수월히 잡아들일 수 있었던 것.
“아니, 너무한 것 아니오, 키클 단장! 고작 회의 하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체포를 하다니!”
“이건 횡포다! 용족의 횡포다!! 나는 이 문제를 제국법에 따라 정식으로 고소할 것이다!”
“딸꾹 나는 진짜 아파서··· 딸꾹 모, 못 간 거··· 으어···.”
영문도 모른 채 키클에게 강제로 연행되어 온 고위직 장관과 관료들은 포승줄에 묶인 상태로 불만을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회의장에 들어온 순간 낮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그 한숨 소리에 흠칫 놀란 자들은 지금 들어온 대신들이 아니라 시우에게 처맞고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대신들이었다.
그들은 참교육을 잘 받은 덕에 공손히 무릎까지 꿇고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니··· 티르칸 두령, 아르카엘 수장··· 대체 어째서.”
연행된 대신들은 난장판이 된 회의장과 피투성이 몰골을 한 자들을 보며 눈을 홉떴다.
지금 이 제국에 쿠데타라도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르누아 재상···! 이게 대체 무슨 일······ 폐, 폐하?!”
그때 뒤늦게서야 상석에 앉아 있는 자를 눈치챈 대신 하나가 놀라 물었다.
시우의 모습은 과거 황제로 군림했을 때와 풍기는 아우라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드러워지고, 유순해진m
“꿇어, 이 새끼들아.”
···것은 아니었다.
초대 황제를 알아본 대신들은 그 즉시 땅에 납작 엎드리며 벌벌 떨었다.
제국 신하들에게 초대 황제는 거의 파괴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 미친놈들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는데 쌩깠다, 이거지.”
살기가 뚝뚝 묻어나는 서슬푸른 안광이 그들 하나하나를 찔러 죽일 듯 섬광을 뿜었다.
제국답게 커다랗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회의장이었지만, 지금 그곳엔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르누아.”
“예, 폐하.”
“다 죽여라.”
“폐하!! 살려 주시옵소서!!”
“소, 소신이 잘못했사옵니다!”
“용서해 주세요, 폐하!”
시우의 명령이 떨어지려는 찰나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돌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잘못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면 목숨은 잠시 살려 주겠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대신에 앞으로 치러질 전투에서 최전방에 선다.”
“예···?!”
“총 열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목숨을 살려 주도록 하지.”
그 말인즉 앞으로 최소 열 번의 총알받이를 해야 한단 뜻이었다.
전장에서 몸을 아끼거나 뒤로 빠지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시우였다.
그의 성격상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모든 자들을 감시할 게 뻔한 일.
결국 몸을 사리지 않고 열 번을 죽어라 싸워야만 했다.
【흐아아암. 잘 잔 것이다.】
그때 시우의 품에서 프레가 바스락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넌 진짜 온종일 자는구나.”
【오오··· 우리 도착한 것이냐? 어?! 반가운 얼굴들인 것이다!】
프레가 폴짝폴짝 뛰며 아는 자들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그러나 프레를 본 자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 옆에 물음표를 띄웠다.
처음 보는 생물이 아는 척을 하니 그럴 수밖에 .
“야, 쟤들은 너 몰라.”
【어라? 왜 이 몸을 모르는 것이냐!】
“너, 내 몸 밖으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사실 프레가 느끼는 반가움은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었다.
당연하게도 프레와 이야기를 나눠 본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날 안 반기는 것이다! 너무 섭섭한 것이다! 다들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ㅡ 뀨웅!】
시우는 프레 때문에 자신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을 깨닫고는 프레를 휴지처럼 구겨 도로 안주머니에 넣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얘기하겠다.”
“말씀하십시오, 폐하.”
키클이 깎듯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이틀 안에 제국 주변을 청소할 거다.”
“예ㅡ? 설마 대륙 통일을···?”
“대충 비슷하다. 그리고 그다음엔···.”
잠시 뜸을 들이던 시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서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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