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27
332화〉
이계의 존재2
대륙 통일은 제국의 염원이기도 했다.
제국이라는 엄청난 세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대륙의 패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인접국들은 제국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며 서로가 연계하고 지냈다.
이 대륙에는 주인이 없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치우치는 걸 극도로 꺼린 인접국의 왕들은 제국의 성장을 계속 방해했다.
사실 이 대륙에는 지금껏 전 지역을 통일한 왕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힘이 강대해지면 다른 국가의 왕들이 합심해 그 국가를 막아서는 식으로 견제해 왔던 것.
수십 개가 넘는 국가와 국가급 전력에 맞먹는 다양한 부족이 서로의 감시자가 되어 수백 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 힘의 균형이 딱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었다.
용살자(龍殺者) 뇌황(雷皇).
갑작스레 나타나 우레와 같은 속도로 대륙을 초토화한 괴물.
그의 등장에 대륙은 약 일백 년 동안 조용할 틈이 없었다.
이 어마어마한 땅이 단 한 명에게 휘둘리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왕국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수많은 부족이 뇌황에게 철저히 박살 나고 그의 휘하로 들어갔다.
파편처럼 어수선하게 널려 있던 주변의 왕국들도 차츰차츰 기세가 꺾여 나갔다.
결국 이 대륙 최초로 연합국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현 제국이 된 것이다.
물론 시우가 지구로 돌아간 뒤에는 제국의 영토 확장도 물거품이 되었지만 말이다.
“갑옷이 좀 변했네?”
시우는 뇌황으로 불리던 시절 전쟁터에서 즐겨 입던 갑옷을 가져오게 시켰다.
이계에서 가장 튼튼하다는 금속과 처음 잡았던 드래곤의 비닐을 섞어 만든 아이템.
그런데 흘러나오는 마력도 그렇고 겉모습이 좀 달라져 있었다.
“예, 폐하께서 드래곤을 잡을 때마다 갑주에 비늘을 덧대었다고 합니다. 드워프 장인이 직접 세공하고 벼려 낸 것이라 현재는 제국을 넘어 대륙에서 손꼽히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시우는 주로 제국을 만들기 위한 전쟁터에서만 갑옷을 착용했고, 훗날 드래곤을 잡는 ‘개인적 볼일’에는 갑옷을 입지 않았었다.
따라서 그 후에 갑옷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능이 올라갔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아무도 사용 안 하고 있었어?”
“그렇습니다!”
“왜? 키클, 너라도 사용하고 있지.”
시우의 말에 키클이 황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폐하의 갑옷을 신하가 함부로 입을 수 없습니다. 또한 드워프 장인의 말로는 아무나 착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이거 어떻게 입냐?”
찬찬히 살피던 시우는 갑옷에 이음새도 없고 분리되는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통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외형.
“음,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드래곤을 잡은 ‘용살자’의 힘을 증명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용살자의 힘?”
시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드워프 장인이라면 그 늙은이일 텐데, 또 희한한 걸 만들었군.’
수백에 달하는 드워프 중에서도 장인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드워프의 지도자는 따로 있었지만, 가장 존경받고 정점에 이른 자는 명장(名匠) ‘젤프카’였다.
‘젤프카라면 어설프게 만들진 않았을 테고. 용살자의 힘을 증명하라니···.’
시우는 우선 갑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번엔 마력을 천천히 내뿜었다.
단전에서 흘러나온 선선한 기운이 갑옷에 닿았다.
“아니군.”
그러나 갑옷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것인지···. 폐하, 젤프카를 부르라 이르겠습니다!”
“아니, 됐어. 오란다고 오기나 할까?”
시우는 그 옹고집쟁이인 괴팍한 노인을 떠올렸다.
망치로 쇠를 두들길 때마다 피어오르는 불꽃에 반해, 부인이고 자식이고 다 내팽개치고 평생 대장간 안에서 산 외골수다.
왕명이건 황명이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안하무인.
어차피 불러와서 설명을 요청해 봤자,
– 흥! 갑옷이 반응하지 않는 건 내 탓이 아니오 용살자의 힘이 부족한 게지. 또한 식칼을 샀는 데 요리가 뜻대로 안 된다고 대장장이를 부르진 않소! 다음에는 직접 찾아오도록 하시오, 폐하!
이따위 말이나 내뱉을 게 뻔했다.
실제로 과거에 비슷한 상황이 두어 번 있었고 그때마다 충신들은 드워프를 처벌하자고 했었다.
시우는 저런 성격을 좋아하기에 웃으며 넘겼지만.
“그렇다면 설마 이건가.”
마력을 거둔 그는 이번엔 코어를 열었다.
서늘하다 못해 말초 신경까지 시리게 만드는 냉기가 전신을 훑고 지난다.
시우는 에테르의 힘을 손바닥에 모은 채 갑옷에 가져다 댔다.
우ㅡㅡㅡ웅.
그 순간 에테르와 반응한 갑옷이 조각조각 분해되더니 저절로 시우의 몸에 알맞은 형태로 재조립되었다.
“오오오···.”
“역시, 폐하!”
“저걸 진짜 다루실 수 있으시군요!”
주위에 있던 자들이 시우가 갑옷을 착용하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용살자’ 외에는 입을 수 없다고 알려진 갑주가 너무도 쉽게 주인의 품에 돌아가니 감탄이 절로 나온 것.
“하, 이거 좋은데.”
시우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며 흡족한 투로 말했다.
단단하고 육중해 보이는 칠흑의 갑주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다.
심지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를 둘러싸고 어마어마한 기세와 격을 뿜어냈는데, 그 위용이 마치 한 마리의 고룡(古龍)과도 같았다.
용족들은 그 아우라에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고, 다른 종족들은 감히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
“거, 검을 가, 가져왔습니다.”
그때 용족 두 명이 낑낑거리며 시우가 자주 사용하던 무기를 들고 왔다.
뇌황의 용살검(龍殺劍).
“이것도 달라졌네.”
용족 둘이 들어도 버거운 검을 시우가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사실 시우는 이 검으로 용을 죽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용살검이라 불리는 건 이 무기로 용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용의 부산물로 이 검을 제작했기 때문.
“예, 그렇습니다. 갑옷과 결이 맞아야 한다며··· 폐하께서 잡은 ‘마지막 흑룡’을 사용해 젤프카가 만들었습니다.”
“아··· 그때 그 흑룡. 그런데 내가 죽인 거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았지?”
시우가 키클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이계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싸웠던 흑룡.
본래 같으면 용을 죽인 뒤 커다란 잔치를 벌이고 제국은 물론 전 대륙에 무용을 퍼뜨려야 했으나, 그 당시 시우는 용을 죽이자마자 지구로 돌아가 버렸다.
시우의 목적은 처음부터 어디까지나 귀환이었고, 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그 용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었을 터.
하지만 키클은 심히 당황스럽다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더니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이 대륙에서는 흑룡을 죽일 수 있는 자도 없거니와··· 설령 죽였다 치더라도 그 사체를 쓰레기처럼 버리고 가진 않을 겁니다. 용의 부산물을 전부 팔면 제국의 1년 예산보다 많습니다.”
대체 그 누가 흑룡을 죽인 다음 심장만 빼서 가겠는가.
게다가 〈제국 황실 마법사단〉이 파견한 조사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 전투는 흑룡과 다른 존재의 일대일 싸움이었다고 한다.
그 같은 고룡을 잡기 위해선 한 나라의 기사단과 마법 부대, 그리고 이름난 전사들이 모조리 투입되어야 한다.
만약 키클이나 르누아, 티르칸, 아르카엘, 소피넬르 정도의 실력자들로만 구성한다면 고룡 아랫급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폐하께서 괜히 ‘용살자’로 전 대륙에 이름을 떨치시는 게 아닙니다. 전사 일생에 단 한 마리도 잡기 힘들다는 드래곤을 일곱이나 잡으셨으니···.”
시우가 잡은 일곱 마리는 전부 고룡급.
그 때문에 대륙의 여러 왕국이 제국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뭔 대수라고. 키클, 너도 노력하면 잡을 수 있어.”
“아닐 것 같습니다만···.”
시우가 키클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자, 중년의 기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 검에다가는 무슨 장난질을 쳤나 봐 볼까.”
그러거나 말거나 시우는 받아 든 용살검에 에테르의 힘을 흘려 넣었다.
촤ㅡㅡㅡㅡㅡㅡㅡ악!!
마치 만개하는 꽃처럼 검이 표독스러운 칼날을 기다랗게 내뻗었다.
“이거ㅡ 흑룡의 이빨로 만들었구나.”
시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만약 살아 있는 생물이었다면, 어지간한 하이 랭커는 씹어 먹을 정도로 강했으리라.
“그럼 대륙 정벌하러 가자.”
“인원은 어떻게···?”
“각 부족의 우두머리 정도만 데려가지.”
“그렇다면 무구를 챙기라 이르겠습니다.”
“아, 아냐.”
시우는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키클이 이해하지 못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시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건 나 혼자다. 걔들은 그냥 견학이야.”
***
제2계 마왕과 제3계 마왕은 초조해졌다.
자신들의 권속과 연락이 끊겼고, 어째선지 제1계 마왕의 본궁이 파괴됐단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대체 마계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저도 모르겠네요. 제1계 마왕 쪽에선 연락이 없었나요?』
제2계 마왕의 거처에 찾아온 제3계 마왕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안 왔다. 설마 뒈져 버린 건가?』
『대체 누가 말이죠···?』
그녀의 말에 제2계 마왕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전성기에 비해 현저히 약해졌다고는 하나, 상대는 그 ‘발할라의 검’이다.
죽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소리.
‘이 마계 내에서 그만한 힘을 지닌 존재라고 하면··· 제3계나 크라켄 정도가 아닐까. 제4계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을 테고.’
제2계는 머릿속으로 여러 상황을 추론해 보기 시작했다.
『설마 제1계의 자작극은 아니겠죠?』
『글쎄···. 제1계는 여러모로 잔수작을 많이 부리니 알 수가 없군.』
끼이이익.
그때 제2계의 거처 문이 열리며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켄?! 제1계 마왕은 어떻게 된 거죠?』
흉측한 가면을 뒤집어쓴 마계 최고의 실력가.
제3계 마왕이 크라켄을 보며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
그러나 크라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안광을 빛내며 두 명의 마왕을 노려볼 뿐이었다.
『3계, 저놈이다!!』
크라켄에게서 피어오르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제2계 마왕이 다급히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마기가 솟구쳐오르며 크라켄을 향해 질주하듯 쏘아졌다.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가!!!
거처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지반이 폭발했다.
『크윽!! 이게 무슨 짓인가요, 2계!』
『제1계를 죽인 게 저놈이라고! 나 아니었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일 거다!』
『뭐라고요···?!』
그녀는 예기치 못한 발언에 흠칫하며 크라켄이 서 있던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은 이미 무너진 천장과 뒤집힌 지반으로 원형을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대체 크라켄이 그럴 이유가ㅡ』
그 순간 무시무시한 압력이 제3계 마왕의 전신을 옥죄었다.
마치 엄청난 급류에 휩쓸려 바다 깊숙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커허억···!!』
제3계 마왕도 실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만큼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상대가 쏟아붓는 이 무시무시한 힘에는 대항하기 어려웠다.
뿌드드드득!!!
온몸의 뼈가 뒤틀려 박살 나고 근육이 터져 나간다.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에서 피거품을 토해 냈다.
『너는··· 바블레너?!』
제2계 마왕이 힘이 솟구친 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제4계 마왕의 권속으로 알려진 바블레너가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