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28
333화〉
이계의 존재3
제2계 마왕은 눈을 부릅떴다.
평소에 멍청하게만 보이던 바블레너가 막대한 힘으로 제3계 마왕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바블레너···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고는 있는 것이냐?』
노여움 가득한 음성으로 제2계 마왕이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마족이라는 거대한 사회를 이끄는 네 명의 수장.
추천이나 인맥으로 오른 자리가 아니라 오로지 실력 하나로 얻어 낸 ‘마왕’이란 칭호.
다시 말해서 네 마왕은 마계에서 가장 강한 넷이란 뜻과도 같았다.
『제4계가 그리하라고 시켰냐?』
제2계 마왕이 핏발이 잔뜩 선 안광으로 바블레너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두 마왕을 상대하러 오면서 군단도 아니고 고작 권속 둘이 쳐들어왔다.
이건 일생에 다신 없을 수치이자 치욕.
제2계 마왕의 손끝에서 벼락같은 기세가 빠르게 방사된다.
파지지지지지··· 지지지지직!!!
시야를 새빨갛게 물들이는 강력한 마기가 사방에 진동했다.
제2계 마왕의 특기인 적뢰가 목표물을 탐지하고는 곧장 들이닥쳤다.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새 떼가 동시에 날갯짓하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쿠과ㅡㅡㅡㅡㅡㅡㅡ콰가가가가!!!
바블레너 주위로 수천 가닥의 섬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제2계 마왕은 이 자리에서 바블레너와 크라켄을 일거에 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크라켄은 가장 걸리적거리던 놈이었고, 제4계 마왕은 하루빨리 치우려고 했던 경쟁자이니 그의 권속을 죽이는 것도 순서상 괜찮은 일.
‘제1계 마왕이 어떻게 된 건지는ㅡ 놈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일.’
그는 마기를 조종해 수천 가닥의 적뢰를 단 하나의 번개로 응축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쩌어어어어억!!!
하늘이 온통 새빨간 번개에 물들고 귀청을 찢을 것 같은 뇌성이 천지에 울려 퍼졌다.
거대한 섬격에 반경 20~30m가 증발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이 정도 위력이면 마족 내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가 별로 없을 터.
바블레너의 능력치는 알지 못하지만, 놈이 크라켄 정도의 방어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이 강격으로 재가 되었거나, 치명상에 가까운 대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대체 어쩌다 제4계 마왕 쪽과 크라켄이 손을 잡은 거지? 아니면 제1계 마왕과 제4계 마왕이 손을 잡고··· 어디선가 나와 제3계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의 시선이 제3계 마왕에게 향했다.
『커허억··· 허억!』
『이번이 두 번째다, 3계여. 너는 내게 두 번의 목숨을 빚진 것이다.』
제2계 마왕이 바블레너를 공격했기 때문인지 제3계 마왕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강한 대미지를 받은 탓인지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크으으윽··· 허억···.』
제3계 마왕은 입으로 피를 울컥울컥 쏟으며 뒤틀린 사지를 고쳐 보려 애썼다.
근육과 피부를 찢고 튀어나온 뼈들이 그녀가 몸을 제대로 운신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그 찰나, 으깨진 지반을 뚫고 크라켄이 뛰어올랐다.
그가 나타난 곳은 제3계 마왕이 있는 지근거리.
으드득.
금쇄봉의 손잡이를 꽉 그러쥔 크라켄의 팔뚝 위로 혈관이 불거진다.
무시무시한 격과 기세가 크라켄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온다.
『크흐읍···!!』
제3계 마왕은 정신을 차리고 얼른 그의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의 공격이 너무도 빨랐으니.
빠가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아아악!!!
크라켄의 단단한 쇠몽둥이가 제3계 마왕의 머리를 야구공처럼 날려 버렸다.
『뭐어··· 이 무슨 미친···!!』
온통 바블레너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제2계 마왕은 느닷없이 튀어나와 금쇄봉을 휘두른 크라켄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그녀 대신 공격을 막아 주기엔 크라켄의 속도나 파괴력이 상정 외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불가능했다.
쿠ㅡㅡㅡㅡ웅!!
크라켄이 금쇄봉의 끝을 바닥에 내리꽂고 긴 숨을 내쉰다.
그 옆으로 제3계 마왕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며 목에서 피를 콸콸 쏟아 냈다.
『고작 권속 따위가 건방지게 마왕에게ㅡ!!』
제2계 마왕이 노기를 발하며 크라켄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파지지지지직!!!
새빨간 섬전이 그의 손끝에서 번쩍이며 웅혼한 힘이 그러모아진다.
그러나 크라켄은 금쇄봉의 손잡이에 두 손을 올려놓은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몫은 끝났다는 듯이.
그 순간,
빠가가가가가가가가ㅡ!!!
무지막지한 힘이 제2계 마왕의 몸을 잡아채더니 마치 캔을 구겨 버리듯 그의 몸을 짓눌렀다.
『크허억!! 바, 바블레너어!!』
그는 자신이 지신 모든 마기를 힘껏 방출했다.
사위를 압박해 오던 압력에 그의 마기가 맞서며 간신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더라면 제3계 마왕처럼 전신이 비틀려 죽었을 것이다.
너무 허무하게 죽어 버린 제3계 마왕을 속으로 비웃었던 그는, 막상 바블레너의 힘을 경험하고 나자 웃을 수가 없었다.
마왕인 자신이 지닌 모든 마기를 동원했음에도 뿌리칠 수 없는 압박감.
『네, 네놈에게서 어떻게··· 이, 이만한 힘이···!』
제2계 마왕은 분노와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마왕을 짓이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마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크라켄과 비견되었을 터.
하지만 바블레너에 대한 소문이나 평가는 히카탄보다도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감정.
게다가 누구도 그의 진짜 실력과 능력을 알지 못했다.
철저히 비밀에 싸인 탓에 이런저런 추측만 난무한 상태였건만, 설마하니 이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
바블레너는 제2계 마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말은 할 수 있는 것인가.
『고, 고작··· 제4계 따위가··· 뭘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2계 마왕이 방출한 마기를 적뢰로 변환시키며 힘겹게 뱉어 냈다.
『고작이라.』
그때 처음으로 바블레너의 입이 열렸다.
단순한 음성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긴 기묘한 격은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주춤한 사이에 적뢰로 뒤바뀌려던 마기가 삽시간에 흩어져 입자로 돌아갔다.
『크허어억!!!』
바블레너의 힘이 제2계 마왕의 온몸을 걸레처럼 쥐어짜며 피를 쏟아 내게 했다.
『너희들에게 나는 ‘고작’으로 표현되는 존재였군.』
바블레너에게서 소름 끼칠 듯한 살기와 마기가 뿜어져 솟구친다.
제2계 마왕은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4, 4계··· 네, 네가 어째서···!』
가장 얕잡아 보았던 상대의 예측 불허 행동.
제2계는 대체 언제부터 일이 이렇게 꼬인 건지 알고 싶었다.
그가 아는 4계는 분명 민시우에게 당한 뒤로 전성기만큼 회복을 못 한 상태였기 때문.
『뭐든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군. 심지어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말이지.』
바블레너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빈정거렸다.
『자, 잠깐···! 네, 네 종이 되겠다··· 주, 죽이지만 말아··· 다오.』
제2계 마왕이 전신에서 피를 꿀렁꿀렁 쏟아 내며 간절한 음성으로 부탁했다.
바블레너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살게 될 것이다.』
제2계 마왕이 안도의 눈빛을 지었다.
『고, 고맙···.』
『내 안에서 말이지.』
그 순간 짙은 그림자가 솟구치며 제2계 마왕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
시우는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제국의 국경 지대로 향했다.
이동에는 말이 아니라 제국의 자랑인 〈제국 창공 기사단〉의 와이번을 이용했다.
용족으로 이루어진 창공 기사단은 와이번 무리를 길들여 그것을 타고 전투하는 공군 전력.
말을 타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면 모를까.
혈혈단신으로 싸우려는 시우에게 말보다 기동력이 좋은 와이번이 훨씬 편했기 때문.
게다가 ‘지치지 않는 말’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 크와아아아악!!
국경을 넘어 적국 수도 인근 땅에 착륙한 와이번이 고개를 쳐들고 울음을 내질렀다.
포악함이나 성질머리는 용과 무척 닮았지만, 그 크기나 신체 능력은 용보다 떨어지는 존재.
와이번 등에서 내린 시우가 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지, 잘했다.”
– 크르르르르릉!!
와이번은 기분 좋은 듯 그르렁대며 시우의 몸에 머리를 비볐다.
더러운 성격의 와이번일지라도 자신보다 막강한 자 앞에선 꼬리를 내릴 줄 알기 마련.
“정말 혼자서 가실 생각이십니까?”
키클이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너희들은 적당히 떨어져서 따라와라. 뒈지지 말고.”
시우가 멀찍한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족의 우두머리들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우의 무위는 굳이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충분히 겪어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홀로 대륙을 종횡무진 횡단하고 다닌 천상천하 유아독존.
‘견학’이라는 명분으로 부족의 우두머리들을 데리고 온 건 시우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경고였다.
또 한 번 다른 마음을 먹으면 너희 부족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무언의 협박 말이다.
“그럼 다녀오마.”
시우가 푸르미르를 소환했다.
-히히히히잉!!
잿빛 몸통에 바람을 닮은 털을 지닌 푸르미르가 모습을 드러내며 두 발을 위로 쳐들었다.
오랜만에 나온 게 기쁜 모양이었다.
시우는 푸르미르 위에 올라탄 뒤에 마력을 힘껏 불어넣었다.
사실 와이번 위에 올라 창공에서 공격하는 게 더 눈에 띌 수 있었지만, 시우가 주고 싶은 인상은 공포였다.
와이번 위에서 마법을 갈겨 봐야 ‘제국인으로 추정되는 마법사가 침입했다.’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흑갑으로 몸을 두른 기사가 홀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터.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 테니 말이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
수도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이 운석에라도 맞은 것처럼 엄청난 굉음을 내뿜었다.
흙먼지가 비산한다.
허둥지둥하는 성벽 경비병들을 뚫고 새까만 무언가가 빠르게 진격한다.
쩌저어어어ㅡㅡㅡㅡㅡㅡㅡ엉!!!
단순한 일격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마력이 왕궁이 있는 내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치, 침입자다!!!”
“모두 놈을 막아라!!”
“긴급 경보를 울려!”
수도를 사수하던 경비병들은 긴급 경보 알람을 울리고 해당 소식을 마법으로 왕성에 전했다.
– 대체 적이 몇 명이라고···?
소식을 접한 왕궁 기사단장이 되물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게··· 하, 한 명입니다···.”
수도 경비 대장이 더듬거리며 기사단장의 질문에 답했다.
말하는 본인조차도 믿어지질 않는데, 하물며 전해 들은 상대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 경비대장은 지금 그걸 대답이라고 하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 선봉이 한 명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서 적의 숫자가 대체 얼마라는 거냐?
“···죄송합니다. 하, 한 명입니다.”
– 이 병신 같은 게!!
기사단장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마법 수정구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 그 한 명을 못 막아서 연락을 해?! 그것도 쳐들어온 놈이 이 왕궁을 향하고 있다고?!!
기사단장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수도 경비 대장을 문책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경비 소홀로 목을 치고 싶었지만, 그건 모든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해도 늦지 않은 일.
– 자네는 성벽 보수와 경비병들을 수습하고, 후발대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수도 경비 대장은 통화를 끝낸 뒤 의문의 적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진격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팔뚝에 솟은 닭살을 쓸어내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분명···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