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34
339화〉
26일 3
시우는 제자들의 모습을 처음 마주하고 숨이 꺼질 것만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건 누구에 대한, 무엇에 대한 분노였을까.
루안은 왼팔이 보이지 않았다.
여화는 한쪽 눈을 중심으로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였다.
동생 시준이는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은 듯 다리를 절고 있었다.
셋 다 단전이 텅 비어 있었고, 마력 파장과 안색에서 그간의 고생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피가 덕지덕지 묻고 엉망이 된 옷가지들.
“하······.”
시우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감정을 최대한 꾹 눌러 담으며 삭혀 낸 욕지기를 한숨으로 치환했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터질 것 같다.
주먹이 절로 움켜쥐어진다.
일차적인 분노는 시우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이계로 가면 시간이 좀 걸릴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의 10년이 이계에서는 100년이 흐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더 서둘렀어야 했나.’
대륙 통일은 시우의 예상대로 이틀 만에 종결되었다.
정복의 과정은 가속도와 같아서 한번 추진력을 받으면 그 누구도 쉽사리 제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시우의 이름 아래 통솔된 부대는 일반 부대와 그 결이 달랐으니.
일개 장군도 아닌 제국의 황제가 몸소 최전방에 나가 싸우면 고무되지 않을 병사가 없었고, 용기가 샘솟지 않는 장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 만에 통일한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돌아오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알았지만···.’
여기서 갈 때는 멀린이 모은 아티팩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마기를 이용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그 둘 다 존재하지 않을 게 뻔할 터.
따라서 시우는 제국을 비롯한 대륙의 모든 아티팩트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한 나라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술식을 구상해서 대륙의 마법사와 주술사, 정령을 총동원해 술식을 개량하고 구축하여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마법을 사용하는 데 대륙에 존재하는 마정석의 절반을 소모.
결국 지구와 이계를 잇는 포털을 만들어 선발대와 함께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우의 예상으로는 이 모든 과정에 1년 남짓이 필요했고, 지구의 시간으로는 한두 달 정도 지나 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원래 계획보다는 빨리 왔는데.”
신하들이 열심히 해 준 덕분에 1년에 훨씬 못 미치는 기간에 포털이 완성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와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시우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는 건물들과 불빛이 사라진 거리.
쥐 죽은 듯 고요한 시내 한복판.
전국 팔도에 들끓는 마기의 기운까지.
물론 ‘생존자’는 듬성듬성 느껴지고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피해 지하 깊숙한 곳이나 건물의 후미진 곳에서 아주 얌전히 숨어 있는 것 같다.
시우는 거리를 뒤져 마지막으로 발행된 신문을 확인했다.
멀린의 ‘차원의 문’을 통해 나타난 것들이 세계 각지에 출몰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하.”
신문을 넘기니 희한한 기사들도 보인다.
〈’미스틸 테인’은대체 누구 편인가?〉
〈세계 랭킹 1위 헌터의 배신···〉
〈마왕에게 고개 숙인 헌터들〉
〈···민시우 헌터, 최악의 지명 수배자가 되기까지···〉
웃음이 나왔다.
“대단들 하네.”
코미디가 따로 없다.
하긴 〈판데모니엄〉이 붕괴됐다고 해서 마족이 다른 수를 쓰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 얼추 이해가 간다.
【오!! 사진에 나도 나온 것이다! 나도 이제 유명해진 것이다!】
품에서 나온 프레가 기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
자세히 보니 시우를 찍은 사진 구석에 프레의 모습이 얼핏 보이고 있었다.
정말 작게.
【나, 나 싸인 없는데 어떡하는 것이냐? 팬들이 나한테 싸인해 달라고 하면 곤란한 것이다!】
“···날개로 대충 그려 주지 그래?”
시우는 신문을 읽을 때보다 프레의 말이 더 어이가 없었다.
편의점 벽에 걸린 전자시계에 오늘 날짜가 깜빡거린다.
“25일··· 아니, 새벽이니까 26일인가.”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세상이 변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안 좋은 쪽으로.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한 ‘미스틸 테인’이나 다른 헌터들을 탓해야 할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 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르누아.”
“예, 폐하!”
황금빛 날개를 가진 르누아가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수하들을 시켜서 강한 마력이나 마기가 느껴지는 곳을 찾으라 일러라.”
“그리하겠습니다!”
그녀는 뱀파이어와 정령족을 불러 시우가 시킨 명령을 전달했다.
뱀파이어나 정령이나 둘 다 밤에도 낮처럼 훤히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마력 감지에도 탁월해 이런 명령에는 딱이었다.
그 덕분에 시우는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 이 씨발.”
그런데 마력과 마기가 충돌한다는 지점으로 와 봤더니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초주검이 되어 있는 제자들과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농락하고 있는 악마들.
시우는 리더로 보이는 악마를 제외하고 다른 두 악마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살려둔다거나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식의 이성적 판단을 할 틈이 없었다.
일단 눈앞에서 그들을 치우는 게 급선무.
“그래서···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시우가 악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물었다.
악마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시우를 노려봤다.
『너거들··· 나, 나한테 이러면 후회···.』
“아직도 개소리를 지껄이네.”
시우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다가온 커다란 덩치의 남자에게 말했다.
“처리해라, 티르칸.”
“명 받들겠습니다, 폐하!!”
호인족 두령 티르칸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악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상대의 머리에 달린 뾰족한 불에 두 손을 얹었다.
『노, 놓아라···!』
“우리 폐하 명령은 그게 아니던데. 힘주지 마라, 더 아프니까!!”
티르칸이 씩 웃더니 악마의 불을 맨손으로 비틀어 흔들었다.
『끄아아아아악!! 끄어어어억!!』
악마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무너진 도심 한가운데서 절절히 울려 퍼졌다.
“후, 됐다.”
비명이 멈춘 건 티르칸이 악마의 불을 뽑아내 그 머리뼈에 커다란 구멍 두 개를 만들었을 때였다.
“폐하, 이 뿔은 기념으로 가져도 됩니까?”
티르칸이 양손에 든 불을 내려다보며 시우에게 물었다.
“마음대로 해라.”
시우는 짤막하게 대꾸한 뒤에 제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초췌하게 야윈 몰골.
안쓰러운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오른다.
왠지 자신의 잘못인 것 같은 죄책감에 눈을 마주하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시우는 어떤 표정으로 그들을 마주해야 할지 몰라 그저 제자들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독하게 보이는 흉터와 핏물이 채 지지도 않은 붕대가 보인다.
“어휴, 처맞고 다니지 말랬더니.”
시우는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부터 내뱉었다.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시우를 바라보는 제자들도 똑같았다.
“혀어엉!!”
가장 먼저 동생 시준이 시우를 향해 발을 옮겼다.
동생의 절뚝거리는 걸음이 눈에 밟힌다.
“넌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고 하지 마라. 맨날 맞기만 하냐.”
“아··· 남은 기껏 걱정돼서 뛰어왔더니만···!”
“누가 누굴 걱정하냐, 인마.”
시우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스승님!!”
그때 강여화가 달려와 시우를 와락 껴안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미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너는 건강하게··· 지낸 것 같진 않구나.”
“···스승. 무사했군요.”
루안이 다가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전할 말이 많습니다. 상황 자체도 긍정적이지 않고. 스승도 하고픈 말이 많겠지만···.”
루안은 시우의 뒤로 보이는 수많은 이종족들을 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건지 하나하나 엄청난 마력을 소지하고 있었다.
특히 각 종족의 리더로 보이는 자들은 ‘미스틸 테인’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 보였다.
“그래 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시우는 제자들을 일별하더니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두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웅!!
그에게서 눈부신 섬광이 피어오르며 금빛 찬란한 마법진이 그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민시준의 뻥 뚫린 허벅지도, 강여화의 눈도, 루안의 잘린 왼팔도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치료된다.
“역시, 폐하십니다!”
르누아가 싱글싱글 웃으며 한껏 아부하는 투로 말했다.
시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르누아를 응시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폐하?”
“왠지 네가 하는 말은 가식 같아서.”
“예?! 제가 폐하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충성심이 큰 신하를 꼽으라면 제가 1위일 거예요!”
“키클이면 몰라도 너는··· 양심도 없냐?”
옆에 있던 키클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르누아가 볼을 크게 부풀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마력이 더 강해지셨어요?”
그때 얼굴에 두른 붕대를 풀어 낸 강여화가 시우에게 물었다.
이런 고난도의 술식을 아무런 예비 동작도 없이, 그것도 세 명에게 동시에 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출력된 마력량에서 이미 시우의 기술은 최상위 헌터들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강해졌나?”
시우는 강여화의 물음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나도 마냥 놀다 온 건 아니니까.”
***
마족의 맹공은 갈수록 더해 갔다.
낮에는 무시무시한 수의 마족 병사와 악마들이 들이닥치고, 밤에는 ‘그게’ 나왔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내부의 균열.
SSS급 헌터를 지명 수배에 올리질 않나 ‘미스틸 테인’과 〈헌터 협회〉를 규제하려 들지를 않나.
가장 큰 적은 마왕이 아니라 UN의 이사회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거기다 수많은 대기업과 권력자들마저 그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언론사와 각종 IT 기업에서 작정하고 민시우와 ‘미스틸 테인’ 및 HMCS, 헌터를 비판하고 나서자 여론은 금방 물들었다.
이 모든 일이 ‘빌더버그 클럽’의 손아래 벌어진 일.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고, 국가의 연대는 손쉽게 끊어졌다.
인류가 세운 가치와 균형, 발전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후우ㅡ”
최대수가 시가 연기를 내뿜었다.
이틀째 물을 마시지 못했더니 입 안이 텁텁하다 못해 바싹 마른 느낌이다.
그는 갈라지고 깨진 몽골 평원을 바라보며 멍한 눈빛을 했다.
사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이 짓거리를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 걸까.
그의 시선이 다시 평원을 향했다.
원래는 푸르렀을 평원이건만 이제 피와 시체로 흠뻑 물들어 빨간 호수를 연상케 했다.
“빌어먹을, 위스키가 당기는군.”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모래알처럼 흘러나온다.
조용한 바람 소리가 평원을 가로지르고 그의 볼에 닿았다.
이런 평화가 얼마나 갈는지.
최대수는 핏물로 끈적거리는 손을 움직여 시가의 재를 털어 냈다.
“여기 계셨습니까?”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아, 을지바타르인가.”
최대수가 상대를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러는 자네야말로ㅡ 몰골이 말이 아니군.”
을지바타르는 여기저기 커다란 자상이 있었고, 온몸이 붕대에 휘감기다시피 했다.
“어젯밤에 쳐들어온 악마한테 죽을 뻔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언젠간··· 끝날 테니까.”
“···예.”
최대수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래 봤자 혀에도 물기는 없었지만 말이다.
『야하하하핫! 인간들 찾았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공중에서 들려왔다.
예전 같으면 흠칫 놀랄 상황이었지만, 최대수와 을지바타르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얼굴로 주섬주섬 무기를 들었다.
“저놈 핏물로 입가심이나 해야겠군.”
“저도 거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