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35
340화〉
신에게 버림받은 자
악마와 마족의 공격은 치열했다.
최대수는 양손에 건틀릿을 구현한 뒤 들이닥치는 놈들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고, 을지바타르는 몽골 기병대가 사용하던 만곡도를 들고 옆에서 최대수를 거들었다.
날붙이 부딪히는 소리와 뭔가 터져 나가는 파쇄음, 죽어 나가는 병사들의 단말마가 평원을 물들인다.
“크윽···! 죽여도 죽여도 바퀴벌레처럼 끝없이 나오는군!”
최대수가 옅은 숨을 헐떡거리며 적들을 노려봤다.
그의 발아래엔 이미 수십여 구의 마족 사체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건틀릿에 묻은 피가 굳어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펴는 일도 뻐근하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3주 이상 매일 힘겨운 전투를 벌여 왔더니 관절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 있다.
그 때문에 더 아릿하게 느껴지는 듯도 하다.
“후우ㅡ 야차님, 여기서 쓰러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을지바타르가 최대수를 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그가 쓰러지면 전방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되는 셈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버텨 왔던 모든 게 무너지게 된다.
그들의 뒤에 있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마족의 손에 장난감처럼 죽어 나가게 될 터.
이미 그런 꼴을 ‘몇 군데’나 봐 왔기에, 헌터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족을 막아 내려 했다.
“빡빡하구만···. 몽골 최강의 헌터는 원래 이렇게 가차 없나?”
“지금 여기서 야차님이 쓰러지면 족히 수십만 명은 죽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죽으려 해도 죽지 말아라, 이거군.”
“좋게 표현하자면 살아도 같이 살자, 겠죠.”
최대수는 큭큭 웃으며 시가를 마족의 시체 더미에 던졌다.
“하여간 민시우 옆에 있는 것들은 죄다 의욕이 넘친단 말이지.”
“그건 야차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난 그놈 옆에 있는게 아니야.”
최대수가 기다란 검 한 자루를 구현하며 말을 이었다.
“그놈이 내 옆에 있는 거지.”
콰가ㅡㅡㅡㅡㅡㅡㅡㅡㅡ아!!!
무시무시한 파괴음이 휘날리며 사방으로 섬전이 뿜어졌다.
비록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지만, 최대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투 헌터.
마치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란 것처럼 그의 신형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가 망가진 덤프트럭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최대수의 롱소드가 전장을 휘젓는다.
칼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네댓 개의 목이 잘려 나간다.
『고작 저딴 놈 하나 죽이지를 못하다니.』
고고한 낯으로 최대수와 을지바타르를 내려다보던 악마가 마기를 그러모았다.
확실히 이죽거릴 정도의 실력은 되는지 모이는 마기의 농도가 심상치가 않다.
“어이, 조심해라.”
최대수가 을지바타르에게 경고를 날렸다.
저건 어지간한 마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성싶었다.
“저는 어차피 막아 내지 못합니다. 헌터님께서 해 주셔야 합니다.”
“하, 빌어먹을. 그러면 옆에 있는 것들이나 잘 치우고 있어라.”
어금니를 꽉 깨문 최대수가 악마를 향해 롱소드를 겨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기세가 그의 단전을 중심으로 사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달아오르는 최대수의 격은 누가 보아도 단단하고 예리했다.
악마는 호적수를 마주한 것처럼 입꼬리를 기다랗게 올렸다.
『야하하하하핫! 생각보다 재밌는 놈이군! 네놈의 시체는 맛있게 먹어 주마!!』
응축된 마기가 높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만약 이 강격이 지면을 강타한다면 이 몽골 평원은 그대로 초토화될 것이다.
그야말로 낙하하는 운석과도 같은 파괴력.
최대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있는 힘껏 롱소드를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살.
ㅡㅡㅡㅡㅡㅡㅡㅡ쿠가가가가가가각!!!
소닉붐이 이는 공격 뒤로 한 박자 늦게 굉음이 울려 퍼졌다.
웅혼한 마력과 불길한 마기가 공중에서 맞닿으며 요란한 섬광을 내뿜고, 막대한 후폭풍이 몰아친다.
지반이 뒤집히고 대기가 뒤틀린다.
쿠그그그그그그···!!
땅이 흔들리고 칼바람이 불며 주위에 있던 마족 병사들을 난도질했다.
최대수와 을지바타르는 마력 실드를 펼쳐 덮쳐 오는 바람을 막아 냈다.
“크윽···! 야차님, 다른 헌터를 더 데려올까요?!”
“조금만 더 버터라. 이제 곧 죽일 테니까.”
최대수가 턱에 힘을 가득 주더니 반지 하나에 마력을 듬뿍 실었다.
록히드마틴에서 최대수를 위해 만들어 주었던 지대공 미사일 ‘블랙아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을지바타르는 느닷없이 나타난 거대한 무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차님··· 그게 대체 뭡니까?”
“후ㅡ 하늘에다 쏘는 대포다.”
그의 비유는 딱히 틀린 게 없었다.
최대수는 블랙아이를 어깨에 견착한 뒤 안테나를 통해 악마의 위치를 파악했다.
일반 지대공 미사일처럼 적외선으로 적을 탐색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인된 술식을 바탕으로 마력과 마기를 지닌 대상을 찾아 안테나에 표시하는 방식.
철컥.
위력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지만 자주 사용할 수는 없다.
24시간에 한 발만 사용할 수 있는 미친 쿨타임 때문.
위이이이이이잉ㅡ!
마치 이륙하려는 비행기 엔진이 돌아가듯이 맹렬한 기세로 블랙아이가 가동됐다.
최대수는 안테나에 감지된 악마를 향해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휘파람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상공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야차님··· 대단하시군요.”
커다란 폭발과 함께 악마의 모습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을지바타르는 ‘이런 대단한 기술을 여태껏 숨기셨습니까?’ 하는 눈빛으로 최대수를 바라봤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후우ㅡ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위력이 대단하단 건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는 뜻이다.
일단 이런 능력은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인내심.
최대수처럼 근접 공격 위주의 헌터는 원거리, 특히 상공에서 공격하는 적을 만나면 무척 치명적이다.
잠깐이나마 날 수 있는 기술도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상대의 필드가 아니라 자신의 필드에서 싸워야 했다.
따라서 공중 요격이 가능한 이런 능력은 최대한 아꼈다가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방대한 양의 마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탓에 뒷일도 고려해야 하는 건 필수.
“하아··· 잠깐 쉬어야겠군.”
“예,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조금 전에 불어닥친 마력 후폭풍에 악마뿐만 아니라 꽤 많은 마족이 사라졌다.
남은 마족 병사 정도는 을지바타르 혼자 처리해도 될 만한 숫자.
“제기랄. 진짜 저놈들 피로 목을 축여야 하나.”
최대수는 타는 듯한 갈증에 나오지도 않는 침을 삼켰다.
이따 저녁이 되면 ‘그것’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컨디션을 올려놔야 한다.
그런데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갈증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을지바타르한테 가까운 협곡에라도 가자고 해야겠군.’
원래라면 식량과 식수, 포션을 정기적으로 받았을 텐데, 벌써 2주 전부터 그 지급이 끊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쉘터’를 비롯한 각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의 몫도 없을 테니.
그나마 각성자는 보통 사람보다 신체 능력이 좋아 갈증과 굶주림을 오래 버틸 수 있었고, 여차하면 직접 구하러 갈 수도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잘하고 있는 건가.”
최대수가 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현재 ‘미스틸 테인’은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초반에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통신이 먹통이 된 곳도 있었고 이래저래 목숨 건 사투를 벌이다 보니 모두 연락이 끊기고야 말았다.
그저 서로 잘 버티고 있다 여기며 믿는 수밖에 없는 상황.
‘그나저나 민시우 놈은 어떻게 된 거지. 이계로 간다더니···. 제기랄, 놈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져서 짜증 나는군.’
최대수는 매캐한 시가 연기를 날숨으로 내뱉었다.
만약 민시우가 있었다면 지금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밉살맞은 놈이긴 해도 실력만큼은 전 세계 최고이니 그의 복귀가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쿠ㅡㅡㅡㅡㅡㅡㅡㅡ웅.
그 순간 섬찟한 기운이 어둠처럼 사위에 내려앉았다.
최대수는 본능적으로 단전에서 마력을 재빨리 끌어 올려 전신에 순환시켰다.
이 더럽고 축축한 느낌은 놈들의 것이었다.
‘타천사’
불길한 아우라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팔뚝에 오소소 돋는 소름이 그들의 강함을 대신 말해 주는 것만 같다.
“야차님 아직 저녁이 안 됐는데 놈들이ㅡ!”
“나도 느꼈어. 빌어먹을, 재수 오지게 없는 날이구만.”
“크윽··· 어떻게 할까요? 지금 저희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버거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조금 물러나서 다른 헌터들과 합류하는 것이···?”
을지바타르의 의견은 옳은 판단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일 경우엔 말이다.
“아니, 안 된다. 놈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등을 보이면 안 돼.”
최대수라고 놈들과 붙고 싶은 건 아니었다.
며칠째 밥도 먹지 못했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
취침?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시각각 목숨을 노리고 오는 적진 한복판에서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갉아 연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
얼른 후방으로 빠져 씻고, 먹고, 자고, 쉬고 싶은 게 당연했지만, 놈들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대피소로 쳐들어가면 지금껏 싸워 온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가 막는다. 좆같은 상황을 보니 때가 되었나 보군.”
“무슨 때··· 말씀이십니까?”
“뭐긴. 인류가 뒈지거나.”
최대수가 금빛 갑주를 구현하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 뒈지거나.”
– 그워어어어어어어!!!
그 순간 기괴한 울음소리가 온 평야를 뒤흔들었다.
소리를 거꾸로 들이마시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기묘한 굉음.
무기를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까가가가각. 까가가가각.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인 걸까.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아직 밤도 아니건만,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고 일대에 적막이 고여 간다.
– 헤엑, 헤엑, 헤엑, 헤엑
그 칠흑 너머, 하반신은 사람이고 상반신은 개, 얼굴은 노인인 괴물이 혓바닥을 길게 늘어트리며 나타났다.
괴물은 개처럼 네발로 터벅터벅 걸어 최대수와 을지바타르를 마주했다.
“으윽···!!”
“역겹게도 생겼군, 괴물 새끼.”
– 헤엑, 헤엑, 헤엑, 헤엑
노인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가느다래진다.
쩌억.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며 단면 전체에 톱니처럼 자란 수백 개의 이빨이 눈에 들어온다.
썩은 과육처럼 축 늘어져 있던 혓바닥이 십여 미터 이상 자라나더니 그곳에서 수십 개의 뾰족한 가시가 돋아났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혓바닥이 번개처럼 휘둘러진다.
얼마나 빨랐던지 을지바타르는 최대수가 막아 주기 전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터어어어어엉!!
최대수가 든 방패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빌어먹을!! 우라지게도 강하네!!”
방패를 든 왼팔이 저릿저릿 아려 왔다.
괴물이 씩 웃는다.
쩌저··· 억.
혓바닥이 여러 가닥으로 나뉘며 최대수와 을지바타르를 향해 덮쳐 왔다.
최대수는 이를 꽉 깨물고 적의 공격을 막아 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을지바타르 또한 입가에 피를 흘리며 공격을 뿌리쳤다.
“크흐읍!”
그러나 이 같은 공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려 있던 그들은 괴물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만 급급.
역공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럴수록 육체에 가해지는 대미지는 쌓여만 갔다.
“제기랄···! 너라도 도망쳐라···! 내가 틈을 만들 테니!”
“무슨 소리십니까?! 이 을지바타르 사전에 ‘혼자 도망’은 없습니다!”
“이 고집불통 자식이···!”
최대수는 숨을 헐떡거리다가 단전의 마력이 모두 고갈된 것을 느꼈다.
마력을 보충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빠아ㅡㅡㅡㅡㅡㅡ악!!
“최, 최대수 헌터님!”
나가떨어진 최대수는 멍하니 누워 흐릿해진 시야를 깜빡였다.
이젠 일어날 기력조차 없다.
혓바닥이 들이닥치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아··· 민시우··· 개자식.”
“왜 욕하고 지랄이야.”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최대수의 정신을 깨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