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36
341화〉
신에게 버림받은 자2
“빌어먹을··· 놈. 일찍도 온다···.”
최대수는 가물가물해지는 시야 속에서 시우의 목소리를 붙잡고 의식을 일깨우려 했다.
한때는 라이벌이었던 상대를 구원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고, 또 너무 치켜세우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인류의 희망이라는 점에선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최대수 자신조차도 시우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콰지ㅡㅡㅡㅡㅡㅡㅡ익!!
시우가 들이닥치는 괴물의 혓바닥을 잘라 내고 전방에 마법을 구현했다.
새까만 하늘에서 뇌운이 번쩍인다.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섬격이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고 시우가 계산한 좌표에 정확히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샛노란 섬광이 천지를 물들였다.
마치 천벌이 내린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
타들어 가는 냄새와 희부옇게 올라오는 연기 사이로 밉살맞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거 저런 거 하느라 늦었다. 넌 왜 또 처맞고 누워 있냐?”
시우가 최대수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한 최대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최대수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하필 가장 좋지 못한 모습을, 제일 보이기 싫은 상대에게 보이고야 말았다.
“하··· 죽어도 네놈한테는···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늦었다. 혹시 사진 찍어도 되냐? 기념으로 갖고 있게.”
“죽여··· 죽여 버린다···!”
최대수가 고개만 들어서 시우를 향해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멋스럽던 중년의 사내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가 앞에 있는 것 같다.
근육 빵빵한 거지.
“죽일 힘은 고사하고 일어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애꿎은 에너지 소모하지 마라.”
“크윽··· 얼른 치료나··· 해 달라고.”
“뭐, 그러지.”
시우는 상대를 배려해 더 이상의 이죽거림은 하지 않았다.
두ㅡㅡㅡㅡㅡㅡㅡㅡ웅!!
단전에서 웅대한 마력이 힘껏 솟구쳐 오르며 시우의 손끝을 물들인다.
무섭도록 농후한 힘이 손바닥에서 피어나더니 곧이어 샛노란 마법진을 구현한다.
금빛 찬란한 섬광이 부근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최대수의 몸을 따듯하게 감싸 안았다.
깊숙한 상처부터 자잘한 생채기까지 자연스럽게 아문다.
“허어.”
핼쑥하던 얼굴에 살이 차오르고 바닥났던 체력과 에너지가 밀물처럼 몸속을 채워 간다.
최대수는 명료해진 정신으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정상으로 돌아온 정도가 아니라 전성기 시절의 그로 되돌려 놓은 듯 몸에서 홧홧한 열기마저 느껴졌다.
흘러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피가 더워진 것처럼 말이다.
“대단하군, 진심으로.”
최대수가 시우를 바라보며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이건 치유를 넘은 재생, 재생을 넘은 리바이벌에 가까웠다.
“이게 바로 생령술사의 본 실력인가?”
“뭐, 비슷한 거지.”
“상처를 수복시키는 것까진 봤어도··· 이건 인간의 능력을 훌쩍 넘는군.”
“생명력을 함부로 남발할 순 없으니까.”
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평소에 힐을 사용하는 경우는 대개 급박한 부상을 치료할 때이다.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많은 양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마력과 달리 생명 에너지는 그야말로 생(生)의 근원 같은 것.
따라서 시우는 아무에게나 그런 치료를 남발하지 않았다.
“지금은 해도 되는 때인가?”
“네 전력은 필요할 테니, 충전을 시켜 놓는 게 나로선 편하지.”
“충전이라···. 내키는 표현은 아니지만, 빚을 진 입장이라 반박은 하지 않겠다.”
최대수가 화르르 타오르는 열기를 그러모으며 입꼬리를 설핏 올렸다.
사실 이 ‘생령’은 시우가 이계로 간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생령’을 다루려면 먼저 다른 생물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는 [라이프 스틸]이란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인간보다 에너지가 높은 생물이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생령’을 얻기 위해 구태여 움직이지 않았을 테지만, 마왕과 싸워야 하는 때를 위해선 그 힘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계에는 아인종 외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었고, 그 덕분에 시우는 그곳에서 충분한 만큼의 에너지를 보충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저 괴물을 상대하러 가지.”
최대수가 자신을 날려 버렸던 타천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시우의 뇌격을 맞고 상당한 대미지를 입은 것 같은 놈은 다시 얼굴을 벌려 혓바닥을 빼는 중이었다.
징그러운 걸 넘어 역겹게 생긴 모습.
최대수의 시선이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이 변한다.
“형니이임!! 무사하셨습니까!”
그때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은 사이로 을지바타르가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도 반가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시우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꼈다.
“형니임!! 사라졌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맙다. 네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지.”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게 있겠습니까. 그저 형님께서 얼른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 기다려 줘서 고맙다.”
“다른 사람들도 형님 돌아오신 걸 알고 있습니까?”
“음, 몇 명은 만났어. 나머지도 이제 만나야지. 아무튼 살아서 다시 보니 반갑다.”
시우가 을지바타르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에게도 최대수와 마찬가지로 힐과 생령을 불어넣어 주었다.
몇 주 동안 제대로 된 끼니도 식수도 공급받지 못한 그의 육체는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상태였다.
야위었던 을지바타르의 몸에 황금빛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전신의 근육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와··· 가, 감사합니다, 형님···.”
시우의 회복 능력으로 부상이 치료된 적은 있지만, 이런 회복은 처음 겪는 일.
을지바타르는 너무도 달라진 자신의 컨디션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상태라면 혼자서 악마하고도 싸워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목숨 바쳐서 형님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기껏 살려 놨는데 왜 목숨을 바쳐, 인마.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라.”
“예? 예··· 알겠습니다.”
“나는 저 덩치 새끼 도우러 갔다 올게.”
시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최대수가 전투를 펼치고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타천사’가 수십 가닥으로 나뉜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최대수의 접근을 막고 있다.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작!!
눈을 깜빡하는 찰나에 십여 합의 공방이 이루어진다.
혓바닥이 스치는 곳마다 칼로 내리그은 듯 궤적이 생긴다.
단 한 순간의 방심이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
하지만 최대수는 조금 전처럼 핀치에 몰려 허덕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 살기등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놈에게 날릴 한 방을 준비하는 모습.
“복수를 하고픈 모양인데, 내가 엄호하지.”
“큭큭큭. 역시 눈치가 빠른 놈이랑 일하는 건 편하군.”
최대수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마력을 그러모았다.
세계 최강의 전투 헌터라는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갔으니, 한 방 먹여 주고픈 마음도 이해가 간다.
– 키리리, 히히히히히
갈라진 괴물의 얼굴에서 기이한 소리가 난다.
비웃음 같기도 하고, 목을 긁는 숨소리 같기도 하다.
놈의 갈라진 혓바닥이 송곳처럼 파고든다.
“존나 빠르긴 하네.”
중얼거린 시우가 품에서 무라마사를 뽑았다.
가히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휘둘러진 칼날이 한 가닥 빛살을 그리며 날아드는 혓바닥을 모조리 잘라 낸다.
이건 타천사로서도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감히 자신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쉽게.
괴물의 시선이 시우에게 향한다.
낙뢰가 범상치 않은 공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검술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바였다.
괴물은 딜레이가 필요한 마법사보다는 근접 전투 헌터인 최대수를 경계했던 것.
잘린 단면에서 피가 솟구치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것이 있었다.
“우선은 한 방!!”
최대수의 손에 새롭게 구현된 거대한 해머가 놈을 짓뭉갤 것처럼 휘둘러진다.
쩌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엉!!!
공기를 가른 육중한 쇠붙이가 타천사의 이마에 직격했다.
– 크햐아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녀석의 입에서 새까만 핏물이 토해진다.
반으로 갈라졌던 얼굴이 하나로 합쳐지며 턱 밑으로 핏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괴물은 벌건 혈관이 돋아난 눈으로 최대수를 노려봤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벼린 눈빛.
“큭큭큭, 날 노려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지만 최대수는 그 같은 괴물의 태도에 오히려 비웃음을 머금었다.
괴물은 불길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늦었어.”
그곳엔 에테르의 힘을 손에 그러쥔 시우의 모습이 있었다.
용의 비늘처럼 뾰족하고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인 시우의 주먹이 놈의 머리로 향했다.
– 키히히
괴물은 웃음도 뭣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주먹 끝에서 섬광이 솟구쳐 나간다.
땅바닥이 죄다 짓이겨지고 공기의 흐름이 뒤틀린다.
소리의 파도가 주변을 뒤덮는다.
“끝났네.”
시우가 힘을 해제하며 주위를 일별했다.
타천사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네놈은 어딜 다녀오기만 하면 괴물이 되어 있군.”
최대수가 품에서 시가를 꺼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 있는 진정한 괴물.
최대수에게 있어서 시우는 라이벌 그 이상의 존재였다.
“괴물이라니.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그런 표현조차도 아깝다. 넌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어.”
“마치 너는 인간의 영역에 있다는 듯이 말하네.”
“후우ㅡ 나 정도면 인간이다. 너 같은 거랑 엮지 마라.”
최대수는 시가 연기를 길게 흘려 내며 걸음을 옮겼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을지바타르가 시우를 향해 뛰어오며 물었다.
그 역시도 시우의 기세에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고작 한 놈인데 뭘.”
“아니··· 그 한 놈이 국가 하나를 무너트리기도 했는데···.”
을지바타르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하기야 일격에 타천사를 보내 버리는 사람에게 무얼 설명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음··· 이제 다른 지역으로 가 봐야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을지바타르가 각오를 다잡은 듯한 얼굴로 외쳤다.
이런 격정적인 전투를 보고도 피가 끓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전사가 아닐 터.
그의 굳은 결심을 본 시우는 가볍게 웃으며 을지바타르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이런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히 격려가 되고 힘이 된다.
하지만 아직은 ‘전력 외’다.
“을지바타르. 마음은 고마운데, 너한테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어.”
“그게··· 그게 뭡니까, 형님.”
“뭐긴. 여길 지켜야지.”
타천사나 상위 마족은 시우가 곧 처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것은 아니었고, 제국의 병사들과 ‘미스틸 테인’이 함께할 예정.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몇몇 곳에서 공백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을지바타르처럼 지역 곳곳에 포진해 사람들을 지킬 헌터가 필요했다.
“저도 전방에서 싸우고 싶습니다. 안 됩니까?”
“네가 쉘터를 무사히 수호해야 전방에서 싸우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
“그건···.”
을지바타르는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치기 어린 판단을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야, 네 진심은 충분히 알겠다. 목숨 걸고 싸우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아닙니다, 형님.”
“나중에··· 조금 나중에는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지 모르니까. 그때까진 여기서 버텨라.”
시우의 말에 을지바타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 그러면 이제 다음 계획을 진행해 보실까. 어이, 최대수. 이동 가능하지?”
“어디로?”
“다른 ‘미스틸 테인’ 건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