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37
342화〉
배신자
세계 정부 회의.
예전 UN 회의랑 비슷한 구도로 보이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회의장 중앙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그리고 그곳에 앉은 다섯 사람.
그들은 제각기 다른 할로윈 마스크를 쓴 채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가면을 쓴 남자가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병째 입에 들이켠다.
“흐흐흐. 오늘은 무슨 날인가? 생각보다 많이 모였네.”
그는 원형으로 앉아 있는 좌중을 둘러보며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이봐, 벌써 잊은 거야? 오늘 그놈 재판하는 날이잖아.”
늑대인간 가면을 쓴 남자가 노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ㅡ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런 머저리라도 쓸데가 있다니까. 이런 쇼 타임도 보여 주고 말이지.”
“말 좀 가려서 하세요. 다른 회원국들이 보고 있잖아요.”
역병 의사의 까마귀 가면을 쓴 여자가 그들을 보며 핀잔을 던졌다.
그녀의 말에 프랑켄슈타인 가면이 사위를 둘러보았다.
일백여 명이 넘는 각국의 대표들.
하지만 그 수많은 대표 중 그들에게 뭐라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침묵으로 일관한 채 멀거니 바라만 볼 뿐.
제이슨 가면을 쓴 자가 입가에 뚫은 구멍으로 담배를 피우며 혀를 찼다.
“쯧쯧쯧. 당신네들이 너무 조용하면 우리가 염병할 독재자 같잖아. 웃든지 야유를 보내든지 해야 할 거 아냐.”
그가 타박하듯 말하자 몇몇 사람이 억지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그렇게 강압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겁을 먹잖나. 댁이 쓴 제이슨 가면이 얼마나 무서운데.”
“어이, 프랑켄슈타인. 이 얼굴이 무섭다니. 이건 미학적으로 완벽한 얼굴이야.”
“다시 말하지만, 조용히 좀 하세요.”
역병 의사 가면이 둘의 대화를 끊어 냈다.
“오늘따라 예민하시군. 뭐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지.”
“얼른 ‘그놈’이나 부르자고. 그나저나 배고파 죽겠는데 내가 시킨 스테이크는 언제 나오는 거야!”
늑대인간 가면이 들고 있던 포크로 테이블을 찍으며 씨근거렸다.
그 모습에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던 자들이 흠칫 놀라더니 주방에다 서둘러 무선을 쳤다.
철컹.
그때 두툼한 철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수갑을 찬 초췌한 몰골의 남성과 그를 끌고 오는 간수들.
간수들은 테이블에 앉은 다섯 명을 향해 경례한 뒤에 끌고 온 남자를 허름한 철제 의자에 앉혔다.
짤그랑.
묵직한 수갑과 의자가 부딪치며 쇳소리가 난다.
남자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심한 꼴을 당한 모양인지 그의 옷은 피투성이에다 얼굴도 여기저기가 퉁퉁 부어 있었다.
다섯 개의 가면이 오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마치 우수한 종이 열등한 종을 굽어보듯 거만한 태도.
“흐흐흐. 이거, 이거 오랜만이오. 그간 잘 지내셨소?”
“······.”
“낯빛을 보아하니 영 좋지 않은 대접을 받고 지낸 모양이군. 이리 와 포도주라도 한잔 들지 않겠소?”
프랑켄슈타인 가면이 와인병을 빙글빙글 돌리며 낄낄 웃었다.
“으하하! 때마침 내 스테이크가 나왔네! 어이, 블랙우드 백작! 예전보다 많이 야윈 것 같은데, 한 덩어리 줄까?”
늑대인간 가면의 남자가 두툼한 스테이크 한 덩어리를 포크로 찍어 들어 올렸다.
에드워드 C. 블랙우드.
〈HMCS 국제 총본부〉 회장인 에드워드가 고개를 들었다.
한쪽 눈두덩이는 찢기고 부어 뜰 수조차 없었고, 다른 한쪽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부르튼 입술을 간신히 움직였다.
“당신들은··· 보일 낯짝도 없지 않나? 가면으로 감춘다고··· 내면의 추악함까지 가려지는 건··· 아니지.”
에드워드의 입에서 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역병 의사 가면이 다리를 꼬았다.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시는군요. 패배자들의 전형적인 물타기죠. 역사는 승자의 것입니다.”
“후··· 그래? 그렇다면··· 내 평가는 후하겠군···.”
“왜죠?”
그녀가 발끝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그야··· 너희들이··· 패배할 테니··· 말이지.”
“흐흐흐. 이보쇼, 블랙우드 백작.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를 마구 지껄이는데, 이미 전세는 한참 전에 우리 쪽으로 기울었소. 마왕님께 충성한 자들이 권세를 잡았다, 이 말이오.”
프랑켄슈타인의 말에 다른 가면들도 웃기 시작했다.
“자, 자. 그만 약 올리지, 프랑켄슈타인. 이러다 우리 백작님이 기분 상하시면 안 되니까 말이야. 보쇼, 백작 나리.”
제이슨이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에드워드를 바라봤다.
“대답만 한번 해 주면 될 일을, 왜 사서 고생하고 그러쇼.”
“···대답?”
“쯧쯧, 또 모른 척하시네. 우리가 매번 하던 질문 있지 않습니까? 그 대답 하나면 하면 다시 복권시켜 준다니까는.”
“후···.”
제이슨 가면 너머로 욕심이 가득 찬 안광이 번뜩였다.
“민시우, 그 인류의 반역자가 어디로 갔는지 말하쇼.”
“크흑··· 큭큭. 미치겠군···.”
“뭐가 그리 웃기쇼?”
에드워드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자 제이슨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물었다.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제이슨을 비롯한 다른 가면들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에드워드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가면 속에서 웃기까지 했으니.
“인류의 반역을··· 너희들이 논하니까···.”
“허ㅡ”
“시우가 오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흐흐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블랙우드 백작.”
대화를 듣고 있던 프랑켄슈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에드워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민시우는 지금 전 세계 지명 수배자요. 댁이 아무리 바라 봤자 놈은 이 회의장은커녕 대로를 거닐 수도 없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마족분들께서 바로 죽일 거거든.”
그는 바로 맞은편에 서서 거만한 눈빛으로 에드워드를 내려다봤다.
“자, 이제 마지막 기회요, 블랙우드 백작. 지금이라도 놈이 어디 숨었는지 말해 주면 HMCS 회장으로 다시 복권시켜 주리다. 물론 통제는 우리 다섯이 하겠지만.”
그의 말에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다른 가면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백여 명의 수장들은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개중에는 같은 ‘빌더버그 클럽’으로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자도 있었고, 힘이 없어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에드워드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피 섞인 침이 기다랗게 늘어지며 그의 턱을 따라 흘렀다.
“회장으로··· 복권이라···.”
“흐흐흐. 어때, 끌리지 않소? 이제 이런 취조 따위는 안 받아도 된다오. 우리 명령에 따라 다른 이들을 취조하게 되겠지만.”
“내가 독단으로··· 처벌할 권리는··· 없는 건가?”
“오ㅡ 원한다면 허락해 드리지. 누구를 하고 싶은데?”
프랑켄슈타인이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긴··· 너희 다섯 대가리지···.”
짜증 섞인 한숨이 가면 너머에서 튀어나온다.
프랑켄슈타인은 에드워드의 팔을 덥석 잡아 올렸다.
“당신은 선을 넘었어. 애초에 기억을 읽는 헌터 새끼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지도 않았을 텐데.”
‘거짓말 탐지 헌터’인 깅, 캉, 텅은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췄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에드워드가 대피시켰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것 또한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일.
마왕의 권세를 주워 먹고사는 ‘빌더버그 클럽’ 최고위 5인은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필요한 일들을 해 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민시우의 행방.
이 임무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마족 내에서도 가장 우선시되는 사항이었는데, 때문에 공적을 올리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단 왼손을 자르도록 하지. 다음에 오른손. 그리고 양쪽 발목을 잘라 내겠다.”
“퉤···!”
“흐흐흐. 사지가 얼마만큼 남았을 때 진실을 뱉어 내려나 모르겠군. 부디 죽기 전에 대답하길 바라지.”
부하에게 칼을 건네받은 프랑켄슈타인이 에드워드의 손목을 꽉 쥐더니 칼을 높이 들었다.
칼날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인다.
“우선 이 왼손을 잘라ㅡ 크아아악!!”
그 순간 프랑켄슈타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털썩 무릎 꿇었다.
칼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그의 옆에 나뒹군다.
분수처럼 솟구친 피가 프랑켄슈타인의 상반신을 흠뻑 적셨다.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떤 미친놈이 우리를 공격해?!”
제이슨과 늑대인간이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회의장이 어수선해진다.
그렇게 싸해진 공기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못 본 사이에 구더기들이 늘었네.”
터벅. 터벅. 터벅.
낮은 발걸음 소리가 거대한 회의장을 울린다.
“미ㅡ 민시우! 민시우다!!”
그때 시우를 알아본 누군가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 외침에 모든 시선이 시우에게 동시에 쏠렸다.
“저게 민시우···? 제 발로 자수하러 오기라도 한 건가?”
“뭔 얼빠진 소리를 하고 있어요 경비는 대체 뭐 하는 거야!!”
제이슨의 혼잣말에 역병 의사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크윽···!! 빌어먹을 수배자 놈이···!”
자신의 팔목을 감싼 채 프랑켄슈타인이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지금에 와서 감히 자신에게 대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어느 나라 총리든, 대통령이든, 왕이든 마찬가지.
전 세계에서 ‘빌더버그 클럽’ 최고위 5인은 실질적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민시우는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일개 개미에 지나지 않았으니.
“누가 내 친구한테 칼을 들이밀어?”
시우가 코앞까지 다가와서는 서늘하고 냉랭한 눈빛으로 프랑켄슈타인을 내려다봤다.
“이 미친놈이···! 넌 전 세계 범죄자야! 알고나 있어?! 감히 내게 칼을 들이밀다니···!!”
“죄명이 뭔데?”
“인류에 대한 반역이다! 이 배신자 자식아!!”
그 순간 회의장 곳곳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치며 시우를 둘러쌌다.
모두 ‘빌더버그 클럽’의 회유에 넘어간 헌터들.
“흐흐흐. 네놈 실력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마왕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항복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ㅡ”
푸우우욱!!
그때 무라마사의 새하얀 검날이 프랑켄슈타인의 미간을 꿰뚫었다.
“끄게엑ㅡ?!”
“말이 많아.”
시우가 칼을 빼내자 가면 밖으로 피가 퐁퐁 쏟아졌다.
일순간 회의장에 적막이 흘렀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야··· 늦었다···.”
“미안. 그래도 타이밍 맞춰서 왔잖아.”
“후··· 말이나 못 하면···. 고블린··· 편도 결석··· 같은 자식아.”
에드워드의 욕설에 시우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며 황금빛 마력이 에드워드의 몸을 감쌌다.
“이제 멀쩡해졌냐?”
“뭐 덕분에, 이 트롤 코딱지 같은 놈아.”
혈색이 돌아온 에드워드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요! 지명 수배자가 세계 정부 요직을 죽이다니!”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난 역병 의사가 시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민시우랑 에드워드를 반란 혐의로 잡지 않고!!”
그 옆에 있던 제이슨이 회장에 포진해 있는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주춤주춤하던 헌터들이 시우를 향해 마력을 그러모았다.
“웃기는 소리를 지껄이네.”
시우가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긴가요? 반란군 혐의가 된 게?!”
“아니, 법과 원칙을 지키려 하는 게.”
“후후후. 이럴 때일수록 법과 원칙을 지켜야 그 당위성이 인정받는 거랍니다.”
“그래? 정말?”
“······.”
시우가 되묻는 물음에 역병 의사는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법과 원칙을 따라 HMCS 국제법에 의거, 마족과 내통한 자들을 처단하도록 하지.”
“후후후.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요. 당신은 지명 수배자라 HMCS 회장이 아닙니다!”
“아하. 그럼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역병 의사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에드워드.
“난 정식으로 ‘파면’된 적이 없어서. HMCS 회장으로서 너희들을 즉결 처분하는 걸 허락하지.”
“아니!! 당신은 우리 5인방이 파면시켰잖아요!”
역병 의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시우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HMCS 회장의 파면과 복권을 말하지?”
“그거야 우리가 세계 정부를 대표하니ㅡ”
“HMCS 회장은 HMCS의 상급 이상 헌터와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다른 회장인 내 의견은 필수고.”
“뭐, 뭐라고···!”
“쉽게 말해서 무효라고.”
“잠, 잠깐!! 이건ㅡ!”
그녀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 무라마사의 검날이 새하얀 궤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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