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훈련
대련실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워낙 커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대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제국]이라는 거대한 길드를 생각하면 충분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헌터 대련뿐 아니라 신체 대련을 위한 복싱 링과 옥타곤 케이지가 있었고, 마력을 써서 싸울 수 있는 투명한 쉴드 케이지도 있었다.
“따라 들어오시죠.”
시우는 김병국을 따라 쉴드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일반 링이나 옥타곤에 비해 서너 배는 넓은 곳이었다.
이곳은 마정석을 가공해 만든 곳으로, 마력을 이용한 공격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걸러 주는 케이지였다.
시우는 처음 보는 시설에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1세대 헌터 시절엔 마정석을 활용한 도구나 장비 같은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쫄았습니까? 여자 앞에서 함부로 객기 부리면 이런 꼴이 나는 거죠.”
김병국은 시우의 행동이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 주위로는 이미 수십여 명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트레이닝 룸에서 말싸움을 지켜봤던 헌터들과 대련하고 있던 헌터들이 우르르 모인 것이다.
김병국은 무의식적으로 면면을 훑어봤다.
그가 작업을 걸고 있거나 작업 걸 예정인 여자 헌터들이 더러 있었다.
‘이 자식을 개 패듯 때려눕혀서 점수 좀 따볼까? 오늘 저녁에 한 명 정도는 호텔 가겠는데.’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용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마음이 넓어서요.”
김병국은 손가락으로 링 위를 가리키며 시우를 도발했다.
여러 명의 시선을 받으면 능숙한 헌터라도 부담스러워 실수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헌터는 사람이 아닌 주로 몬스터와 싸운다.
애초에 헌터의 목적이 게이트를 깨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김병국은 달랐다.
그는 몬스터 잡는 중견 헌터이기도 했지만, 다른 헌터를 가르치는 트레이너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인전도 자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 모인 곳에서 격투기 선수처럼 싸워 본 경험은 없겠지.’
김병국은 다른 헌터들과 다르게 꾸준히 MMA나 무에타이 같은 격투술을 연마해 왔다.
따라서 룰을 갖춘 대련은 그에게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그나저나 심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후배 님, 처맞고 죽기 전에 말려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나 세워. 상관없으니까.”
시우는 김병국의 친구가 심판으로 서든, 친한 후배가 서든 상관없었다.
“심판은 내가 하지.”
그때 인파 너머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사람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놀란 듯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기, 길드장님?”
“민시준 길드장님이다!”
“야! 길 안 비키고 뭐 해!”
“길드장님 지나가신다! 옆으로 빠져!”
“여기에 길드장님이 웬일이시지?”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이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제국]의 수장 때문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물론 민시준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그가 보기 쉬운 사람도 아니었다.
언제나 업무로 바빴고, 대외적으로 길드를 관리했으며, 나아가서는 S급 헌터로서 게이트를 다녀왔으니 말이다.
민시준이 가끔 누군가를 가르쳐 주긴 했으나 그것도 옛날 일.
[제국 길드]가 급성장하며 수장이 된 지금엔 한가로이 누구를 가르치거나 후배들을 육성하지는 못했다.그러기에 각 길드마다 트레이너가 있고, 멘토가 있고, 선배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미, 민시준 길드장님!”
김병국은 때아닌 존재의 등장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랜만이네, 김 헌터.”
민시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엔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재밌는 일이 있다기에 달려와 봤지.”
이 말은 사실이었다.
보안 담당 부서에서 CCTV를 감독하는 와중, 트레이닝 룸과 대련실에서 소란이 일자 민시준의 비서인 윤승규 헌터에게 연락했던 것이다.
윤승규는 확인 후 곧장 민시준에게 전달했던 것이고.
“그리고··· 사람이 죽는 건 말려야지.”
민시준은 시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길드 내에서 길드원끼리 싸우면 정직이나 감봉, 심하면 업계에서 퇴출되는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것이 대련실.
물론 순수하게 서로의 기량을 높이고자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서 싸우는 경우도 부지기수.
– 트레이너 김병국 헌터가 대련실에 싸우러 가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서로 부상자 나오지 않게 적당히 관찰해 주세요.
– 그, 그런데··· 상대가 민시우 헌터님이라···.
– ???
민시준은 이 보고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자기 형이 누군가를 반병신으로 만들기 전에 말이다.
‘길드장님··· 내가 상대를 죽일까 봐 걱정돼서 오신 거구나. 드디어 내 실력도 인정받는 날이 오는군.’
하지만 김병국은 민시준의 웃음과 표현을 다르게 해석했다.
“괜찮습니다! 죽이지 않고 살살할 테니까요!”
“어······ 그래 주시면 고맙겠네요.”
민시준은 언제든지 말릴 준비를 하고 시합을 개시했다.
“내 팬들이 많아서 대충하지는 않겠습니다!”
김병국은 총알처럼 튀어 나가 플라잉니킥을 시도했다.
다른 곳도 아닌 마력 사용이 가능한 곳에서의 대결이다.
그는 단숨에 상대의 기를 죽여 놓기 위해, 그리고 민시준의 눈에 들기 위해 손속을 두지 않았다.
마력을 둘러 신체 강화된 육체는 바위처럼 단단했고, 말처럼 튼튼했다.
뻐억!
시우는 두 손을 포개 니킥을 막았다.
김병국은 착지하는 순간 훅을 번갈아 내질렀다.
주먹이 시우의 머리 위를 스치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이래서 신지수 헌터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자, 자신에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김병국은 더욱 도발적으로 나갔다.
발길질과 주먹질이 연이어 쏘아진다.
시우는 적당히 흘리거나 가드로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럴수록 상대의 공격은 더욱 매서워졌다.
머리 쪽으로 하이킥이 올라오자 시우는 백 스텝으로 벽 쪽에 붙었다.
“야, 들개.”
“네?”
시우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지수를 불렀다.
“마력 운용은 헌터 싸움의 기본이다. 한 방울의 마력도 헛되이 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다뤄. 상대와 같은 마나량을 가졌어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출력도 효율도 다르다.”
“네··· 아, 알겠···.”
“하! 대결 중에 시시덕대나요? 사람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김병국은 자신을 무시하고 노가리, 그것도 신지수와 떠드는 걸 보자 자존심이 구겨졌다.
마력을 다리에 집중시킨 그는 미들킥으로 시우의 옆구리를 채찍처럼 휘갈겼다.
푸욱!
“끄아아악!”
시우는 손가락 하나만 들어 발차기를 막았다.
마력 밀도가 높은 탓에 그의 손가락이 다리에 박혔지만 말이다.
김병국이 소리를 내지르며 다리를 빼냈다.
“봤지? 마력은 이렇게 다루는 거야.”
“네······.”
“같잖은 재주를!”
김병국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곳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온전한 지혈이나 치료는 아니었지만, 잠깐이나마 통증을 줄여 주고 피를 잠깐 멈춰 주긴 할 거다.
김병국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스킬을 시전하려 했다.
마력이 뱃속에서 들끓으며 그의 팔에 수려한 마법진이 생성된다.
츠즈즈즛ㅡ
기이한 소리가 나더니 김병국의 양팔이 묵색으로 물들었다.
“벌레처럼 바닥을 기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시우를 향해 번개처럼 손날을 휘둘렀다.
카가앙!
마치 잘 벼린 칼이 후려친 것처럼 쉴드와 부딪힌 곳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약삭빠르시군요!”
김병국은 미친 듯이 팔을 휘둘렀다.
카아앙! 카앙! 카가강! 캉!
시우는 상대가 휘두르는 공격을 가뿐하게 피했다.
계산 없이 막무가내로 지르기만 하는 건, 복서가 럭키 펀치를 기대하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과 똑같았다.
거기다 상대의 발과 어깨, 그리고 리치만 관찰해도 이런 공격은 무난하게 피할 수 있기도 했고.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겁니까! 제 팬들이 당신을 욕하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김병국은 시우가 피하기만 해서 열받기도 했지만 반쯤 신나기도 했다.
자신의 스킬 때문에 상대가 아무것도 못 하고 쩔쩔매는 꼴을 길드장이 보고 있지 않은가.
이로써 그의 입지는 한층 더 두터워질 터였다.
‘한동안 길드 내에서 내 이름 좀 오르내리겠는데? 여자애들도 뿅 갈 테고.’
상대를 밟고 나면 신입 헌터들의 존경은 물론, 비슷한 급 헌터들의 인정도 받고 신망도 얻을 것이다.
더불어 신지수라는 좋은 전리품도 딸려 올 테고.
김병국은 쉴드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신지수에게 느끼한 미소를 던졌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시선은 김병국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
‘뭔··· 어딜 보는 거야? 나한테 반쯤 넘어온 거 아니었어?’
신지수는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병국은 저도 모르게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왔다.
구겨진 자존심에 분노가 솟구친 것.
“자, 신체 강화는 혈액이 순환하는 느낌으로 마력을 곳곳에 돌리면 돼. 같은 빠르기로, 신체에 균일하게.”
“네에···.”
신지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가르침을 말하는 그가 신기했다.
김병국이 여자한테 껄떡대고 느끼한 짓을 잘하는 헌터이긴 했어도, 나름 A급의 [제국 길드] 소속 중견 헌터였다.
적어도 실력으로는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다는 뜻.
“마력 순환이 잘된 육체는 스킬을 발현한 상태보다 강할 수도 있다.”
“지랄하고 있군요!!”
“이렇게 말이지.”
시우는 달려오는 김병국을 향해 카프킥을 날렸다.
화살처럼 날아간 발이 상대의 종아리뼈를 후려갈겼고, 김병국의 몸은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크어어어억!”
“봤지? 물론 스킬화된 양팔도 공격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마력을 집중해야 하지.”
김병국은 절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다리엔 구멍이 뚫렸고, 다른 한쪽 다리는 카프킥에 맞아 금이 간 상태였다.
“이 새끼!! 죽여 버린다!!”
분명 전력은 자신이 우세했고 상대방은 도망치거나 피하기 바빴는데,
두 번이나 나자빠진 건 시우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씨발, 내가 방심해서!’
김병국은 남은 마력을 단전에서 긁어모아 두 팔에 집중시켰다.
츠즛즛즛···.
묵색으로 물들었던 팔이 선명한 어둠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시끄러우니 이번 수업은 여기까지 할까.”
시우는 발을 놀려 김병국 앞까지 몸을 붙였다.
“이 새끼 빠르ㅡ!”
“가드 올려라.”
낮고 서늘한 음성.
주먹을 휘두르려던 김병국은 저도 모르게 가드를 올렸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단 걸 느낀 것이다.
빠아아악!
스킬과 마력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팔이 저릿하게 아려 온다.
쇠붙이나 대검조차도 막아 내는 스킬이었다.
“크읍!”
그러나 김병국은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드 내리면 얼굴 나간다.”
다시 주먹이 짓쳐들어온다.
빠아악! 빠아악! 빠아아악ㅡ!
“크윽! 커억! 크윽!”
송곳처럼 후벼파고, 불길처럼 번져 오는 충격에 김병국은 눈이 돌아갔다.
이를 어찌나 꽉 물었는지 핏물이 느껴졌다.
시우는 프로 격투기 선수가 스파링 상대를 제압하듯, 그를 구석에 몰아놓고 주먹을 연거푸 내질렀다.
“크억! 크읍! 제! 제발! 그! 그마안! 크윽!”
김병국은 점점 허리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몸이 숙여질 때마다 시우의 펀치가 교묘하게 그의 몸을 일으켰다.
뻐어어억!
묵색의 팔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뼈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겉면에 금이 가고 있는 것.
“그냥 주먹질로 스킬이 깨지기도 하냐?”
“씨발, 나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
“근데 저사람 누구야?”
“김병국 헌터님이 그냥 털리네···.”
“어? 저 사람 그때 추하민 헌터랑 싸웠던 강사인데?”
“야, 추하민이 개 이름이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자빠졌어.”
그들의 대결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양새로 놀랐다.
개중에는 일일 강의 때 시우를 봤던 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킬러 집단을 궤멸시켜 주가가 치솟고 있는 추하민이었지만, 한동안 여러 길드 내에서 수군댔기 때문이다.
“씨! 씨발! 커억! 그! 그마안! 쌰앙! 크윽!”
시우는 마력을 최소한으로만 운용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제는 격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였다.
민시준은 말릴까 말까, 옆에서 고민했다.
김병국은 종종 초급 헌터들의 컴플레인을 받는 헌터였다.
운동을 빌미로 여자들한테 껄떡거리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에 자기 분수를 알았으면 좀 좋겠는데.’
시우는 상대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기절한 건 아니었으나, 힘이 다했는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을 더 때리려던 그는 김병국의 얼굴이 이미 팅팅 부은데다가 피투성이인 걸 확인하고 내려 놨다.
“회복시키고 더 패면 안 되나?”
“······안 됩니다.”
시우가 묻자, 민시준은 참아 달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신지수는 머뭇거리며 시우에게 말했다.
“그··· 고생하셨어요.”
“뭘?”
“다른 헌터랑 싸우느라···?”
그게 왜 고생이지.
시우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HMCS도 그렇고 대련실도 그렇고 합법적으로 사람을 패도 되는 일이 아닌가.
저렇게 깝죽거리는 애들은 더 신나게 팰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너 훈련시키러 가지.”
“···길드 건물 밖에서요?”
“거기도 안은 안이야.”
신지수는 갈수록 불안해지는 마음에 목소리가 움츠러들었다.
“어,어디 안이요?”
시우는 재밌다는 듯 웃었지만 말이다.
“게이트 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