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40
345화>
전쟁의 서막
“후우─”
새하얀 연기가 서늘한 공기 사이로 흩어진다.
류지환은 담배를 문 채 날카로운 눈으로 저 너머를 바라봤다.
수시로 날아드는 벌레 자식들.
그는 망해 버린 이 세상을 떠올리면서 한숨 같은 연기를 다시 내뱉었다.
착잡함이 겨울 찬바람처럼 몸을 휘감는다.
IZIZ 실력으로는 대악마나 타천사를 한꺼번에 대항하긴 역부족이었다.
놈들은 ‘미스틸 테인’을 훨씬 웃도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기운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절망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그 당시에 진도화가 활로를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의 IZIZ 멤버는 죽었을 것이다.
혹은 전부 죽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 세상 갑갑하네. 대체 언제쯤 망할 전쟁이 끝나는 건지.”
그는 푸석푸석해진 얼굴을 마른세수하며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금 곱씹었다.
민시우가 사라진 뒤에 전황은 악화일로를 거듭하더니 결국 사태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붕괴되었다.
IZIZ는 전력을 회복한 다음 마족과 악마, 네피림을 꾸준히 잡아 죽였지만, 이건 언 발의 오줌 누기밖에 되지 못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수반되지 않으면 마족 찌꺼기를 백 마리든 천 마리든 죽여 봤자 해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씨발, 거지 같은 괴물 새끼들.”
그리고 그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란 각 종족 수뇌부들의 척살뿐.
메피스토펠레스, 바블레너, 슬라임(적그리스도).
이 우두머리 셋 때문에 전 세계가 대혼돈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몇억? 몇십억?
아무도 모른다.
그걸 세고 있을 여유도 여력도 없으니까.
각국의 수장이란 작자들은 허구한 날 회의한답시고 모여 의견 하나 제대로 모으지 못한 채 시간만 축내고 있다.
“보나 마나 어디서 돈 처먹거나 마족이랑 손잡고 그런 거겠지.”
류지환은 혼잣말처럼 현 사태를 꼬집었다.
희망이 없다.
‘미스틸 테인’과 하이 랭커들이 분발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방어선의 개념.
저 세 축 중에서 하나의 축이라도 먼저 무너트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모두 죽거나 노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럴 수 있을까.
“민시우 이 새끼… 돌아오긴 하는 거냐.”
류지환은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딱히 그가 민시우에게 전우애를 느낀다거나, 혹은 민시우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요하다고는 생각했다.
지금 이 시점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민시우 외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그건 ‘미스틸 테인’ 전부를 합쳐도 마찬가지일 터.
“보스, 협곡 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여진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협곡이면 진도화가 설치해 놓은 트랩이 있을 텐데?”
“맞습니다. 그런데….”
“아따, 어떤 놈인지 모르겄는디 내 결계를 죄다 부숴 놨으야.”
어느새 나타난 진도화가 옆에서 여진식의 말을 거들었다.
“SS급이 쳐 놓은 결계를 누가 파괴했다고?”
“뭐, 나가 쳐 놓은 결계라고는 혀도 요러코롬 멀리 떨어져 있는디, 위력이 강하진 않재.”
“그것도 그렇네. 얼마나 강한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아니지만서도… 나보다는 강혀.”
진도화의 대답에 류지환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그들 무리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진도화였다.
전투 타입의 헌터는 아니었지만, 투신 최대수와 맞붙어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자였다.
그런 사람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확언하는 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었다.
류지환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멤버들 다 깨워. 그리고 일단 내부에서 진 치고 기다리자. 운 좋게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지금 IZIZ는 산 중턱에 있는 동굴을 아지트 삼아 지내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진도화가 결계를 펼쳐 놓아 적들이 접근하지 못해 나름 안전한 곳.
간혹 네피림 정도 되는 녀석들이 들이닥치면 결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진도화가 이렇게 대놓고 강하다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
“우선 알비노와 비카타울을 전방으로 보낼까?”
“글씨. 나도 순간적으로 느낀 기운이라 뭐라 말은 못 하겄는디, 보내 봤자 금방 뒤질 것이여.”
“그럼 역시 동굴 안에서 대기를─”
“아따, 씨발 거! 코앞까지 닥친 것 같은디!”
그때 대화를 나누던 진도화가 다급한 표정을 짓더니 품에서 합죽선을 꺼내 들었다.
단전에서 모아진 마력이 합죽선에서 분출되며 전방으로 힘껏 뿌려졌다.
쩌──────────억!!!
“…이게 뭐시당가.”
이글이글 타오를 듯한 진도화의 공격이 상대의 기세에 통째로 잡아먹히며 불씨 꺼진 재처럼 흩날렸다.
진도화는 놀라 도망가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자신보다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수준 차이가 극명할 만큼 결이 다른 적은 처음이었다.
이건 도망가는 게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즘, 희뿌연 연기 너머에서 상대가 나타났다.
흑빛처럼 새까만 갑옷을 두른 기사.
그 갑옷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도 엄청났지만, 문제는 그가 들고 있는 검이었다.
이 세상을 반으로 갈라낼 것처럼 끔찍한 마력이 흉흉하게 흐르고 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이빨을 들이민 채 노려보는 것만 같다.
“씨발… 저건 뭐야. 타천사인가?”
류지환이 경악으로 물든 눈빛을 했다.
여차하면 IZIZ 멤버들과 합심해 공격하려 했으나, 마주한 적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세 합? 아니, 한 합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순간 동굴 안에 있던 IZIZ의 다른 멤버들이 밖으로 나와 그들 곁에 섰다.
“보스… 싸우실 겁니까?”
칼레오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
류지환은 대답할 수 없었다.
도망친다는 말을 적이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과연 전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때 다가오던 흑기사가 걸음을 멈췄다.
팽팽하게 당긴 피아노 줄처럼 서늘한 긴장감이 그들을 옥죄었다.
“뭐야, 아는 얼굴이네.”
친근하진 않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우가 흑갑과 검을 해제하고는 그들을 바라봤다.
* * *
“그냥 얌전히 오면 될 것이지, 결계는 부수고 지랄이야.”
“그럼 노크라도 하고 들어오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릴 지껄이고 있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류지환이 시우에게 따지듯 말하자, 시우 역시도 험한 말로 되받아쳤다.
“하하하. 보스, 그냥 반가우면 반갑다고 하지 그래? 자기라서 다행이지, 타천사였으면 우리 다 죽었을 텐데.”
“꺼져, 크로우! 반갑긴 염병! 그리고 저 새끼한테 왜 자꾸 자기라고 불러?!”
“그거야… 마음에 드니까?”
크로우가 시우 옆에 걸터앉으며 싱긋 웃었다.
“워매. 민시우 헌터랑 크로우랑 찐한 사인가 벼. 안방이라도 잠깐 내줘야 하는 거 아녀?”
“진도화, 시끄러워.”
“아따. 왜 류 보스가 성을 내고 그러싼대.”
진도화가 청자 술병을 홀짝이며 실실거렸고, 류지환은 못마땅한 듯 그를 바라보다가 시우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찾아낸 거냐? 진도화가 결계로 우리 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게 막아 뒀을 텐데.”
“사실 너희를 찾으려 한 건 아니고. 기본적인 준비도 다 갖췄겠다… 마지막으로 그 새끼 시체가 있나 뒤져 보다가 얻어걸린 거야.”
“아… 그 새끼.”
류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 죽었으니까 볼 거냐?”
“그러지.”
그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동굴의 깊숙한 안쪽이었다.
어설프게 동굴 곳곳에 박힌 쇠말뚝과 그것과 연결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멀린.”
시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멀린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다만 그 상태는 온전하지 않았으니.
“환술을 걸었군.”
시우가 진도화를 보며 추측했다.
“보자마자 눈치챘는 갑네.”
“네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멀린의 몸에 낙서처럼 그려진 것들은 전부 진도화가 붓으로 그린 자신의 술식이었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은 다시 회복할 수 없지.”
눈에 독기가 가득하던 멀린은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한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시우는 그런 멀린을 지그시 노려봤다.
“용케 안 죽이고 있었네.”
“뭐, 너랑 한 약속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진도화가 말하기를, 편안한 환술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무슨 환술인데?”
“일종의 지옥에 빠트린 것이여. 보통 사람은 일주일만 놔둬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 버리는구먼.”
들어 본 적이 있다.
뛰어난 환술사는 적을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풀어 주지 않는다고.
자세히 보니 미세하지만 멀린의 근육은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서운 걸 보기라도 한 듯 일그러진 표정도 함께 말이다.
“당분간은 이걸로 만족하지.”
시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진도화와 류지환을 바라봤다.
살아서 고통받고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 *
으스스한 저녁.
이따금 밤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리는 벌판.
마치 그림자가 일렁이듯 어둠 한편이 꿈틀대며 으슥한 공기를 일깨운다.
처음에는 작은 조각 하나만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내 거대한 파도처럼 어둠 전체가 꿀렁거리기 시작한다.
새까만 잉크가 흰옷에 번지듯 수천의 그림자가 바람을 가르고 나타난다.
악질적인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조용하고 빠르다.
마족과 악마, 그리고 타천사의 네피림으로 이루어진 군세.
그들은 하나의 탐욕이자 여러 개의 공포였다.
죽은 자가 내달리듯 고요하고 피에 굶주린 짐승같이 살기가 가득하다.
목적은 벌판 너머에 감춰진 쉘터.
전쟁을 피해 숨은 인간들의 피난처였다.
그들은 포식자가 먹잇감을 유린하듯 동이 틀 때까지 인간들을 물고 뜯어 죽일 작정이었다.
밤새 비명에 취해 폭력과 죽음을 흩뿌리고 싶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쿠구구구구!!!!
그 순간 그림자 중앙에 어마어마한 섬광이 빗발쳤다.
사방에서 마력파가 치솟고 장대한 술식이 연이어 어둠을 가로질렀다.
“크갸아아아악!”
“적습이다!! 적습!”
– 그갸갸갸갹가가각
마족과 네피림이 허공에 울부짖었다.
인간들의 공격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 기습은 그전에 겪었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기세와 격이 한층 더 높았던 것.
“그 더러운 발을─ 내가 허용할 것 같소?”
그때 드높은 상공에서 고아한 목소리가 퍼졌다.
마족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한다.
허공에 둥둥 떠서 그들을 굽어보고 있는 인간.
“오늘 저녁엔─ 붉은 비가 내릴 것 같소.”
본인 의지로 ‘미스틸 테인’에 오르지 않은 세계 랭킹 1위 헌터, 샤말이 눈을 빛냈다.
그의 둘째 손가락이 위에서 아래로 까딱 움직인다.
그 순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곳에서 새까만 점들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수백 발의 미사일과 폭탄.
쿠과───────가가가가가가가!!!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 믿기지 않을 공격에 수천의 군세가 초토화되었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승리였지만, 샤말은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연기 사이를 노려보더니 슬며시 입을 열었다.
“숨지 말고─ 나오시는 게 어떻소?”
대꾸라도 하듯 옅은 바람이 분다.
그리고 새까만 안개가 꿈틀거리며 한곳으로 뭉치더니 웅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심하고 덤벼드는 부나방 같군.』
대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샤말을 보며 새빨간 눈알을 번뜩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