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41
346화>
전쟁의 서막2
샤말은 고개를 갸웃했다.
“부나방이라─ 제 형체도 없이 흐느적대는 주제에 인간한테 벌레 같다고 말할 자격이 있소?”
그의 시선을 온전히 마주한 메피스토펠레스는 샤말이 풍기는 은은한 조소를 느꼈다.
『인간 따위가 나를 내려다보며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는 인간은 멀린 같은 놈들뿐이었다.
아니, 멀린은 그나마 악마와 견줄 만큼 강하기라도 했다.
1위계 미만의 놈들은 메피스토펠레스 입장에서 벌레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약해 빠졌었다.
따라서 인간이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인간 따위라─ 그렇다면 앞으로 그 ‘인간 따위’한테 죽게 됐을 땐 뭐라 지껄일지 궁금하오.”
『걱정하지 마라, 부나방.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네 무덤에 침을 뱉어 주마.』
넓게 뿌려진 안개처럼 거대한 그의 몸이 꿈틀거린다.
마치 램프 속에서 알라딘이 뛰쳐나오듯 하늘 높이 솟구친 새까만 안개가 샤말에게 몰아쳤다.
후와아아아아아악!!!
전후좌우 할 거 없이 사방으로 몰아붙이는 마기의 격렬한 기세에 별빛마저 가려진다.
“후─”
샤말은 공중에 뜬 채 반가좌하고 앉아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지의 기운이 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이윽고 창공에 복잡한 술식이 구현되었다.
쿠───────────아앙!!
샤말을 중심으로 엄청난 중력이 가해진다.
달려들던 새까만 안개가 메마른 땅바닥에 곧장 처박혔다.
『네놈…!!!』
일대를 뒤덮는 무시무시한 중력에 메피스토펠레스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안개화를 너무 넓게 한 탓에 힘이 분산돼 중력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한껏 응축시켰다.
코끼리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자 중력을 수월하게 이겨 낼 힘이 그러모아졌다.
『이제 사지를 뜯어─』
쿠과가가가가가가가가각!!!
그 순간 웅대한 마력이 메피스토펠레스의 몸통에 직격했다.
샤말의 광범위한 공격과는 달리 한 점을 노리고 들이닥친 속수무책의 섬광.
대악마는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통과 함께 지반 깊숙이 처박혔다.
그는 몸에 느껴진 대미지보다도 자신에게 이만한 공격을 가한 적에게 의문이 들었다.
인간의 마력은 악마와 마족의 마기를 웃돌 수 없다.
명백한 하위 호환의 개념인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메피스토펠레스는 새빨간 안광을 부라리며 안개 같은 몸을 일렁거렸다.
이건 그의 상식을 뒤집는 일종의 규칙 위반 같은 거였다.
“어떻게는, 이 새끼야! 인간님의 복수다!”
작은 체구에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겉모습과 다르게 상스러운 말투를 가진 헌터.
간다르바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놀랍군…. 인간 암컷이 이런 힘을 내다니. 전력을 쥐어짜 낸 건가.』
대악마의 혼잣말에 간다르바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전력이라.
“미안한데, 아직 시작 안 했거든?!”
간다르바는 이 전투에 전부를 쏟아부을 각오로 임했다.
화르르르르륵!
그녀의 아티팩트 ‘이그니의 권능’에 붉은 화염이 타오른다.
처음부터 장갑의 모드를 ‘마기 반응’으로 켜 놓았다.
시우 덕분에 모든 상태가 최전성기에 버금간 덕분.
마력을 더 빨리 소비하더라도 이 방법이 옳을 것이다.
“너흰 오늘 다 뒈졌어.”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소.”
인도 역사상 최고, 최강인 두 헌터, 간다르바와 샤말이 메피스토펠레스를 향해 마력을 쏟아부었다.
* * *
거친 바다를 헤치고 괴물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왔다.
괴물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거대한 몸뚱어리를 뒤흔들고 포효를 내질렀다.
– 꾸워어어어어어어어어
수백 마리의 동물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든다.
땅이 진동하고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쿠───────웅!
놈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축이 뒤집히는 것처럼 요동친다.
빌딩 몇 채를 합친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몸집.
베헤모스(bəhēmōt).
그 거대한 죽음은 땅바닥까지 늘어트린 단단한 상아를 앞세우며 폭군처럼 나아갔다.
앞에 그 무엇이 있든 베헤모스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한 쌍의 기다란 상아를 뒤흔들면 건물이 파괴되었고, 발을 구르면 주변 지형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災殃).
베헤모스는 탐욕에 이끌려 도시를 방황했다.
이미 멸망한 도시에는 불빛 하나조차 남지 않았고, 그저 을씨년스러운 어둠과 들짐승 소리만이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괴물은 모든 걸 파괴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고 유일한 목적이란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베헤모스는 본능에 끌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모조리 부수고 짓밟아 터뜨리고 상아로 찢어발기고 싶었다.
– 쿠으으으으으
가까운 곳에서 생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베헤모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쳐라.”
그 순간 수백 개의 낙뢰가 어둠을 샛노랗게 물들이며 창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쩌저저어어어어어엉!!
하나하나의 위력은 크지 않았지만, 수백 개의 섬전이 모이니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가격당한 베헤모스의 근육이 경직된다.
느닷없는 공격에 놀란 베헤모스는 이내 고개를 정신없이 휘둘렀다.
입에 달린 기다란 상아가 사방팔방에 부딪히며 모든 걸 닥치는 대로 부쉈다.
쿠가가가가가가가가────!!
베헤모스의 단단하고 거친 기운이 마구잡이로 날뛰더니 삽시간에 일대가 초토화되며 풍비박산이 난다.
하지만 공중에서 그 같은 모습을 보고 있던 키클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베헤모스의 빈틈을 노린 채 주위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다시 조준. 쳐라.”
쩌───────────엉!!
고막을 찢는 굉음이 상공 가득 울려 퍼진다.
근육이 경직되어 자리에 멈춘 베헤모스를 키클이 지그시 응시했다.
황제를 따라 이곳에 온 키클은 처음에 주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폐하가 질 수도 있는 존재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제국의 전사들을 이곳에 데리고 오기 위해 뱉은 농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시우의 무위는 이미 대륙에서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구라는 곳에 와서 그가 느낀 감정은 ‘이 우주는 너무도 넓다’는 것이었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괴물들이 득시글했고 지독한 마기는 폐를 갉아먹을 듯 지독했다.
심지어 황제의 제자들과 동료들도 그의 예상을 웃돌았다.
키클은 이곳에 따라올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고인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늘 한계에 부딪쳤던 자신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훈련장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폐하께 경의를, 제국에 영광을, 적에겐 죽음을.”
그는 자신의 배틀엑스에 마력을 가득 담았다.
제국 최강이라 일컫는 기사단장의 끓어오르는 열기가 날붙이에 흡수되며 장대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베헤모스는 고개를 들어 상공을 바라봤다.
예기치 못한 강한 기운이 한곳으로 응집되고 있었다.
베헤모스는 흉흉한 마기를 입 안 가득 그러모았다.
끔찍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이다.
키클은 괴물의 격을 가늠하며 도끼를 수직으로 휘둘렀다.
────────꽈가가가가가가가!!!
사위가 섬광으로 물든다.
* * *
시우는 머릿속으로 전황을 시뮬레이션했다.
벌써 수십 번째 반복하는 작업이지만, 매번 처음 하는 작업인 듯 진지하게 고민했다.
‘예상과 현실은 다르다. 변수란 건 언제나 존재하는 거니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르누아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항상 당차고 누구에게나 거침없이 말하는 르누아였지만, 유일하게 시우 앞에서만은 겁먹은 토끼처럼 굴었다.
물론 그 이유는 시우에게 하도 처맞아서 그런 거지만.
“크라라라라! 어이, 르누아! 똥 마려운 개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냐?”
진짜 사자처럼 엎드려 있던 판테레온이 그녀를 향해 속없이 말했다.
“이 멍청한 사자 새끼! 누구보고 개래! 너는 신하로서 너무 위기감이 없어!”
“응? 신하? 내가 누구 신하인데?”
판테레온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에게 물었다.
“…하.”
르누아는 병신이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어차피 말해 봐야 불필요한 입씨름만 하게 될 테니 답답해도 그녀 쪽에서 참는 게 속 편한 일.
“이봐, 폐하. 내가 누구 신하인 거야? 폐하는 알아?”
“…….”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시우는 르누아와 마찬가지로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래? 폐하도 모르면 대체 누가 아는 거지. 나중에 티르칸이나 키클에게 물어봐야겠군.”
판테레온이 계획을 세우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식량. 이 몸이 심심한 것이다. 뭔가 재밌는 일 없는 것이냐.】
시우의 머리 위에서 뒹굴거리던 프레가 그의 이마를 날개로 툭툭 때리며 물었다.
“심심하면 가서 푸르미르랑 놀아. 헛소리하지 말고.”
【푸르미르도 심심한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멍 때리고 있는 것이냐. 가서 싸우는 것이다.】
“멍 때리는 건 너지, 내가 아니거든. 르누아, 얘랑 좀 놀아 줘라.”
“예…? 저, 저기 뭐 하고 놀아 드려야 하나요…?”
“대충 잡고 흔들어서 던져.”
“예??”
르누아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프레에게 시선을 던졌다.
【뭐냐, 도마뱀족. 이 프레 님에게 도전하는 것이냐?】
새끼 메추리처럼 작달막한 크기의 인형이 그녀에게 물었다.
“하하하….”
그러나 그녀는 프레에게 어색한 미소만 흘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생긴 건 귀여운 털 뭉치로 보이지만, 그 실상은 시우의 마력을 공급받아 마법을 난사하는 괴물.
황제가 서로 다른 계열의 술식을 사용하고, 드래곤의 코어를 흡수할 수 있었던 요인이 프레라는 것을 알고 나자 르누아의 눈에는 프레가 거대한 악마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황제의 반쪽이나 마찬가지인 셈.
【왜 웃는 것이냐. 날 비웃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황제 폐하의 소유물을 비웃겠습니까. 하하하….”
【내가 소유물이 아니라 좁밥이 내 소유물인 것이다! 요놈! 요놈!】
프레가 다시 시우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렸다.
“…….”
【뭘 노려보는 것이냐! 얼른 내가 주인이라고 말을─ 꾸앙!】
프레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시우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진 채 르누아에게 던져졌다.
“걔 데리고 놀고 있어. 덧붙여서 입도 좀 다물게 해라.”
“예? 그─ 아, 알겠습니다, 폐하.”
시우는 시뮬레이션을 마저 돌렸다.
기우(杞憂)인가.
대체 어떻게 제4계 마왕이 모든 전권을 쥐게 되었는지 미스터리였다.
확실히 제4계가 강한 것은 맞지만, 다른 마왕들도 충분히 강할 터였다.
‘그런데 무슨 능력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전쟁 중에 사로잡은 마족과 악마를 통해 제4계에 대해 물었으나 아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마주쳐 본 적 없는 제4계의 권속인 ‘바블레너’.
시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가 더 나오지 않는 이상 맞부딪쳐 알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판테레온, 준비해라.”
“어라? 어디 가는 거야, 폐하?”
“이제 우리 차례다. 몸은 다 풀었지?”
시우의 물음에 판테레온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명령만 내려 준다면 마왕이란 놈 모가지라도 뜯어다 바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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