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42
347화>
전쟁의 서막3
마족 최대의 요충지.
이곳과 맞닿은 접경지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날마다 이어지는 총격과 폭발음, 지대를 뒤엎는 마력파와 마법과 마법의 격돌.
그 탓에 헌터와 군인, 그들을 돕는 민간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매일 같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마족의 군사적 최대 요충지란 다른 말로 하자면 인류에게도 최대 요충지란 뜻.
“대대장님, 오늘도 안 주무십니까?”
간이 막사에 중대장이 들어오며 물었다.
이곳 요충지를 되찾는 임무에 대대장을 맡게 된 도경후가 부하를 바라봤다.
“잠이 올 리가 없지 않은가. 며칠 전 기습도 있었고.”
도경후는 관리하지 않아 제멋대로 길게 자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쌓여 가는 근심처럼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진다.
벌써 오늘만 해도 사상자가 일곱이나 된다.
이대로는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빌어먹을 거지 같구먼.”
도경후는 싸구려 맥주를 들이켜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방어가 수월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요충지를 차지하는 게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전황이 날마다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새끼들… 완전히 말려 죽이려고.”
그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벌어지는 땅따먹기가 마뜩하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작은 승리가 반복되고 큰 패배가 뒤따라온다.
상급 지휘부는 그 ‘작은 승리’에 매몰돼 병력과 물자를 끊임없이 지원했고, 결국 이곳은 지금 사상자가 가장 많은 전쟁터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차라리 병력을 빼서 다른 곳에 배치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 버린 상태.
초기와는 달라진 전황에 이제는 병력을 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계속 전투를 반복할 수도 없었다.
놈들은 언제나 이쪽보다 ‘약간’ 더 약한 병력을 갖고 전장에 섰다.
도경후가 생각하기에 그건 일종의 ‘희망 고문’이었으니.
놈들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량한 희망을 인류에게 주기 위해 날마다 간발의 차로 패배하는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윗대가리들은 그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보며 최전방의 헌터들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라고 재촉했다.
왜 더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냐, 며 말이다.
도경후는 이 뭣 같은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었다.
농락당하는 게 뻔한데 놈들의 작전에 장단 맞춰 주는 꼴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대대장님, 식사라도 꼭 챙기십시오. 쓰러지시면 저희는 누구와 함께 싸우란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 중대장이 식판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식판 위에는 딱딱하게 굳은 빵과 캔에 든 소시지, 반쪽짜리 사과가 올려져 있었다.
도경후는 씁쓸한 얼굴로 사과를 들어 와삭 베어 먹었다.
현장을 박차고 나가 혼자서 자유롭게 싸우고픈 그가 이곳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전우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도경후 하나를 따라 이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휘관에서 이탈해 버리면 헌터들이 누구를 의지하고 싸우겠는가.
도경후는 밀려드는 책임감에 익사할 지경이었다.
숱한 관리자 위치에 앉아 봤던 그조차도 이런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책임지는 일엔 익숙하지 않았던 터.
차라리 모든 헌터와 병사들이 전부 탈주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었다.
그렇게 돼서 오롯이 혼자 남아 전장에서 싸울 수 있게 말이다.
도경후는 병사들로 인해 오히려 적의 농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 때문에라도 전쟁에서 이기고 싶었다.
적의 희롱과 수작질을 넘어서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싶었다.
‘저 요충지… 우리가 반드시 접수한다. 그렇기 위해선 더 많은 병력… 아니, 소수라도 좋으니 강한 사람이 필요한데.’
현재 전쟁터에서 쓸 만한 실력을 지닌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선 도경후, 그리고 몇 명의 중대장과 소대장 정도였는데, 그들도 전부 강한 것은 아니었다.
쓸데없는 희생을 늘리지 않으면서 요충지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수의 그저 그런 헌터가 아니라, 격이 다른 소수의 헌터뿐.
지금으로선 도경후와 아래 있는 병사들로만은 마족의 계략에서 승리할 방도가 없었다.
도경후는 오늘 전투 보고를 위해 상부에 전화를 걸었다.
– 어, 도 대대장 아닌가. 오늘은 승리했나?
“대령님. 물자와 인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싸울 수 있는 전투 병력을 보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거, 이상하네. 보내 준 지 며칠 안 지난 것 같은데.
“일주일 지났습니다. 그때 보내 주신 병력에 두 배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급합니다.”
도경후가 화를 꾹꾹 억누른 채 상대방과 통화를 이어 갔다.
– 벌써 두 배나 잃었다고?
“적들이 우리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전력을 상회할 수 있는 병사를 모아 한 번에 몰아붙여야 합니다.”
– 이봐, 도경후 헌터. 얼마 전까진 연전연승하지 않았나?
“그건 놈들의 계략입니다. 우리 전력을 조금씩 깎아 내기 위한 짓거리죠.”
수화기 너머로 대령의 한숨이 들려온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자 상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어이, 도경후 대대장.
“예.”
– 일단 있는 놈들부터 써먹으라고.
“병사 수가 부족한─”
– 걔들 대충 총알받이로 세우고 적들 힘 빠진 것 같으면 그때 자네가 좀 해치워. 그럼 되잖아.
도경후는 상대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총알받─!!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요?! 뭐? 총알받이?!”
– 뭐? 야! 도경후!! 너 이 자식, 얻다 대고 그런 말버르장머리를…!
“내가 씨발 진짜 당신 부하인 줄 알아?! 그리고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쓰라고?? 내가 네놈 멱살 잡고 고기 방패로 써 줄까!! 어?!!”
도경후가 작정하고 윽박지르자 대령은 당황한 듯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 군대와 헌터 협회, HMCS가 뒤섞여 전쟁터에 배치된 경우가 많았다.
계급 체계가 다르고 명령 이행자가 다르기에 임시로 군대에 소속해 명령 체계를 따르는 중인 것.
“씨발, 참다 참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처음이네! 이 개새끼야! 너 원래 소속이랑 상관이 누구야?!”
도경후가 으르렁대며 상대를 힐난하자 대령은 어버버하더니 수화기를 끊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썅놈의 새끼야!!”
대령이 통화를 끊어 버리자 도경후는 이미 끊긴 전화기에 대고 쌍욕을 퍼부었다.
그때 막사 문을 열고 중대장이 들어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 노, 놈들의 기습입니다!”
“제기랄, 가지가지 하는군. 비번인 놈들 포함해서 다 깨워. 5분 안에 집합하라고 해.”
“저─”
중대장의 표정을 바라본 도경후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평소 보던 중대장의 얼굴보다 파리한 안색.
“뭔가? 무슨 일이 있나?”
도경후가 그를 향해 물었다.
중대장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게… 선봉에 선 적이… 크라켄이라고 합니다.”
도경후는 헛숨을 들이마셨다.
마왕의 최강 권속, 마족 부대의 총사령관.
크라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모든 헌터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 그 이름.
‘미스틸 테인’을 상대로 호각을 이루었단 소문에 대해 그 누구도 ‘미스틸 테인’ 편을 들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사실이란 느낌이 든 탓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금엔 새로운 소문 하나가 추가되었는데, 크라켄이 선봉에 선 전장엔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도경후는 그 소문이 생각나 입술을 짓씹었다.
사기가 높을 땐 그딴 풍문 하나쯤 가십거리로 여기고 병사들끼리 술안주 삼아 떠들어 대면 그만이다.
해괴한 소문이란 어디든 한두 개쯤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연전연승, 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소한 전투에서의 승리뿐이었고, 이따금 겪은 패배는 너무도 커서 한 번에 몇십에서 몇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 상황에 나타난 명실상부 마족 최강의 전사는 도경후에게 죽음의 사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대장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도경후는 허리춤에 찬 검을 다시 점검했다.
“나도 선봉에 선다.”
“예?! 안 됩니다! 지휘관은 뒤에 있어야죠!”
“저놈도 지휘관인데 왜 앞에 나와 있겠나?”
중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놈이나 나나 싸우다 죽지 못한 귀신이 들러붙은 게지. 내 목숨을 걸고 녀석을 죽이도록 하겠다.”
“하지만, 최대수 헌터조차도 패배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안다. 그러니 내가 놈을 이겨서 최대수보다 낫다는 걸 증명해야지.”
“대대장님….”
“내가 크라켄과 동귀어진(同歸於盡)하면 자네는 꼭 최대수에게 이 말을 전해 주게.”
“예…. 무슨 말씀입니까?”
도경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전장을 향해 나가며 말했다.
“넌 나한테 진 거야, 이 등신아. 크하하하!”
* * *
전장은 이미 치열한 접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크라켄이 나온다는 말 때문인지 적들의 사기는 드높았고, 아군의 기세는 형편없었다.
이미 승리와 패배가 결정 나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
도경후가 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검술로는 이미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뛰어난 실력자.
“진정한 검을 보여 주마.”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적들을 향해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귀신의 눈 : 태산일섬]꽉 찬 마력이 검에서 뿜어지며 반월 형태로 솟구쳐 나아갔다.
바람보다 빠르고 번개보다 날카롭다.
콰지이───────익!!!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갈겨진 공격.
그를 향해 덤벼 오던 마족들의 몸이 볏짚처럼 갈라져 우수수 무너졌다.
일검으로 50에 가까운 마족이 목숨을 잃게 된 것.
도경후는 시우와의 훈련 덕분에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고 검의 경지가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일평생 목표로 했던 검술이 손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마족들은 그 살벌한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마족의 큰 승리’가 있는 날이었다.
어제까지 인간에게 ‘작은 승리’를 맛보여 줬으니, 오늘 본격적인 추수를 할 셈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합니까?”
마족 하나가 중간 지휘관에게 물었다.
“네, 네 생각은 어떠냐?”
“일단 도망갔다가… 크라켄 님이 오시면 그때 천천히 합류하는 게….”
“나도 그 생각이야. 여기서 개죽음당할 순 없─ 끄렉!!”
그 순간 도망갈 궁리를 꾀던 중간 지휘관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마족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그 사태의 중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웬 쇠몽둥이 하나가 지휘관의 머리를 뚫고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와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커다란 발소리가 들린다.
마족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의 주인공을 살폈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소머리.
크라켄.
놈은 마족 지휘관을 꿰뚫었던 금쇄봉을 들어 올렸다.
“전장에서 도망치면 죽인다.”
단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은 다른 지휘관 백 마디보다도 무거웠다.
이제 아무도 도망칠 생각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크라켄의 살기 어린 눈빛이 전방에 있는 인간에게 향했다.
“네가 이곳의 지휘관인가?”
쇠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가면 너머에서 흘러나온다.
그 음성을 들은 도경후는 상대의 역량을 얼핏 알아볼 수 있었다.
‘미친 괴물 자식.’
이건 강하다, 약하다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마주하기 전까지는 동귀어진하면 죽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었는지를 놈과 마주한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자신이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였다.
“너희들의 패배다, 인간. 이제부터 널 죽이겠다.”
크라켄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거렸다.
금쇄봉이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가며 거대한 마기가 도경후를 향해 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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