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5
35화〉
게이트
신지수는 게이트에 들어가 본 경험이 없었다.
아직 얻은 스킬을 활용할 방법도 찾지 못했고, 그녀를 가르쳐 줄 멘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멘토나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은 초급 헌터들은 한두 번씩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실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스킬’ 좀 쓸 줄 아는 초보자들이나 가능한 일.
시우는 [제국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영구 게이트 중 가장 등급이 낮은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지구와 다른 차원을 잇게 해 주는 일종의 포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안에는 약해 빠진 잡몹부터, 존재 자체가 재앙의 근원이 될 무지막지한 괴물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만약 그것들만 있었다면 인류의 레이드는 활발하지 않았을 것.
그러나 게이트엔 인류의 새로운 자원이 된 마정석부터 각종 보물이 즐비했고, 심지어 특정 몬스터는 가죽과 코어, 피, 고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이트는 인류의 새로운 신세계였다.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경쟁은 불 보듯 뻔했고, 그 경쟁심이 모여 [길드]라는 모임을 형성케 했으며, 강한 [길드]는 곧 상급 게이트의 차지를 통해 더 큰 보상을 헌터들에게 약속했다.
무법천지의 1세대가 끝난 뒤.
1.5세대 그리고 2세대의 등장으로 게이트는 사업화되었다.
예전에는 아무나 들어가기 바빴던 게이트가 돈으로 사는 ‘구역’이 되었고, 몬스터는 더 이상 재앙이 아니라 돈줄이 되었다.
“뭐지? 그··· 어··· 시우님? 아냐, 멘토님? 사부님? 선생님?”
“뭐 하냐.”
“호칭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서요. 언제까지 ‘저기요’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너무 거리감 느껴지기도 하고.”
“딱히 너랑 나랑 가까운 거리는 아니잖아.”
“혹시 학창 시절에 정서적 학대나 감정적 트라우마라도 겪으셨어요?? 사람이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신지수는 쫑알쫑알 불만을 늘어놓았다.
왜 그렇게 사람이 차갑냐는 둥, 사람이 정이 있어야 한다는 둥.
시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목적지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발바닥이 아파질 때쯤 신지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저씨, 언제 도착해요?”
“······뭔 씨?”
시우가 눈을 치켜떴다.
“아, 아니, 그럼 호칭을 정해 주세요. 시우 헌터님이라고 부를까요?”
호칭이라.
보통 1세대 헌터들은 그를 광견이라 불렀다. 혹은 우리말로 미친개라 하든가.
하지만 대놓고 그 호칭을 부를 수 있는 헌터들은 손에 꼽을 정도.
“······스승님이라 불러.”
“네! 스승님.”
어차피 추하민도 있으니, 제자 하나 느는 게 큰 상관은 없나.
“바, 바로 게이트에 들어가요?”
“그럼 몬스터 상대로 스킬 연습을 어떻게 하려고.”
“아니··· 몬스터한테 바로 써먹기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차라리 사람한테 써먹으면 안 되나요?”
“누구? 나? 써 볼래?”
“······아뇨. 들어갈게요.”
신지수는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쁘장한 얼굴은 억울한 감정마저도 귀엽게 표현이 됐다.
뭇 남성들이라면 그런 얼굴에 녹아내렸겠지만··· 시우에겐 아니었다.
그들이 마주한 게이트는 가장 낮은 F급 게이트.
옅은 하늘색을 띤 아주 평범하고 낮은 등급의 게이트였다.
현재까지 나타난 게이트의 등급은 F부터 S까지.
“튜토리얼 탑이랑 비교하면 F등급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땐 그쪽··· 이 아니라, 스승님이 다 하셨잖아요. 저는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
“괜찮아.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시우는 필요 없는 말은 굳이 뱉지 않고, 신지수가 듣기 좋을 말만 골라서 했다.
신지수는 그 말에 배시시 웃더니 게이트 앞에 섰다.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뒤, 다시 내뱉는다.
손끝이 떨린다.
이 앞은 어떤 풍경일까.
게이트가 처음인 그녀로서는 이 자체가 엄청난 도전.
그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스스로를 독려했다.
“좋아. 할 수 있어 신지수 넌 A급 스킬을 가진 헌터야! 셋 세면 들어가는 거야. 넌 혼자가 아니잖아. 할 수 있다! 자, 하나ㅡ”
“닥치고 들어가.”
툭.
시우는 신지수의 등을 떠밀었다.
“꺄아악!”
지ㅡ이ㅡ잉
기이한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포털을 통과할 때 흔히 느끼는 이상 감각과 약간의 멀미.
시우는 제법 오랜만에 느껴 보는 이 감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계에서 지구로 오는 포털은 이런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마치 커다란 세탁기 안에서 몇 시간 탈수가 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가벼운 놀이 기구를 탄 느낌이다.
재밌네.
하지만 그에 비하자면ㅡ
“으, 우엑!”
신지수는 옆에서 몸을 숙인 채 헛구역질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감각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조금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훈련의 일환.
“일어나.”
“자, 잠깐ㅡ 우엑!”
가지가지 하네.
시우는 신지수의 뒷덜미를 잡고 강제로 몸을 일으켰다.
“꺄아아!”
“똑바로 서.”
“근데 멀미가···.”
“단전에서 마력 뽑아. 그리고 머리 쪽으로 먼저 돌려.”
신지수는 억지로 구역질을 참고 시우가 알려 준 대로 단전에서 분출한 마력을 머리로 순환시켰다.
마나를 제대로 다뤄 본 적 없는 그녀인지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우와, 대박!”
“게이트에 들어갈 때는 항상 지금 상태를 유지해. 재수 없으면 입구에서부터 몬스터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사실 F등급에서는 그럴 확률이 거의 없다.
이 등급에서 나오는 몬스터라고 해 봐야 허접쓰레기인 잔챙이들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D등급 이상의 게이트를 가면 입구에서부터 진을 치고 있는 몬스터를 마주할 때가 있다.
헌터 싸움은 마력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법.
따라서 시우가 해 주는 조언은 가장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신지수의 상태가 괜찮아지자 시우는 장소를 옮겼다.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를 물색하려는 것이다.
“너 게이트 들어와 본 적 있어?”
“아, 아니요.”
“몬스터랑 싸워본 적은 있고?”
“그때 튜토리얼 탑에서랑 일일 강의 때 싸웠죠.”
“그······.”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갈 길이 너무 멀었다.
그건 정식 던전도 아니었고 연습용이었다.
몬스터들도 실제에 비교해서 능력이 반 이하 정도로 설정되어 있을 곳이다.
튜토리얼 탑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이었고.
“왜요? 그때 저 싸우는 거 보셨잖아요! 몬스터들 격파하는 모습!”
“언제?”
신지수는 대꾸하려 했지만, 시우의 표정이 대신 대답해 주고 있었다.
‘적당히 해라.’
그녀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요즘 헌터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1세대들에게 헌터란 일종의 생존이었건만.
지금 2세대 이하 헌터들을 보자니 그냥 커리큘럼이 있는 직업에 불과했다.
틀에 박힌 교육으로 찍어 낸 아카데미.
정해진 코스가 있는 튜토리얼의 탑.
각성한 뒤 등급을 얻으면 그에 맞는 값을 매기는 길드.
이런 작태는 큰 파도 한 번이면 모두 쓸려 나가 없어질 것들에 불과하다.
위험에 대비한 게 아닌, 평화를 얻어낸 승전국의 모습이 아닌가.
심지어 그 평화도 찌들어 총구에 녹이 슨 상태.
‘병사는 많은데 군인은 없는 꼴이라.’
시우는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제국 길드]조차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세계적인 거대한 기업 중 하나일 뿐.
그리고 그 기업을 일구는 사원들이 헌터란 것이고.
한 20분쯤 걸어 숲길을 지나자 평범한 언덕이 나타났다. 주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딱 알맞은 곳이네.”
“뭐가요?”
“시야가 트여 있잖아.”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옆에 놓인 돌멩이를 하나 주워 야구공을 쥐듯 그러잡았다.
부ㅡ웅
채찍처럼 휘둘러진 어깨.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이 날아간다.
뒤이어 퍽, 소리와 함께 뭔가가 쓰러졌다.
터벅터벅 그곳으로 간 시우는 쓰러진 걸 대충 질질 끌고 다시 자리로 왔다.
대충 보기에도 400kg는 족히 넘어 보이는 육중한 동물이었다.
“우와ㅡ 이거 진짜 엄청 크다. 이거 사슴 맞아요? 언뜻 봐도 무슨 작은 트럭만 한 것 같은데.”
“아니. 외뿔 엘크. 다른 차원에만 사는 동물이야.”
“아, 여기서만 사는 동물이구나. 그런데 이걸 지금 왜··· 배고프세요?”
“특정 몬스터들이 얘 피랑 내장에 환장하거든.”
엘크는 돌멩이 하나에 즉사했는지 머리 반쪽이 날아가고 없었다.
시우는 단도를 꺼냈다.
엘크의 복부에 칼을 꽂더니 뱃가죽을 한 번에 절개했다.
부욱, 찢어지며 속에서 뜨거운 내장이 피와 함께 후드득 쏟아져 나온다.
“꺄악!”
“이런 거 하나에 일일이 놀라지 마라.”
시우는 단도의 피를 닦지 않았다. 곧 다시 피를 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야. 너 마나는 좀 다루냐?”
“길드에서 전투 기초는 배웠어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정도 등급의 게이트에서는 일격에 죽을 확률도 희박했다.
급수가 낮은 헌터라면 모를까, A급 스킬을 가진 헌터라면 기본 신체 능력치도 어느 정도는 올랐을 터.
시우는 설렁설렁 지켜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저기, 스승님.”
“왜.”
“이름이나 호칭으로 불러 주세요. 야가 뭐예요, 제자한테. 너무 정 없잖아요.”
신지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거, 정 되게 따지네.”
시우는 눈썹을 찌푸렸다.
숲 아래에서부터 인기척이 들리며 몬스터가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 코가 예민한 놈들답다.
잠시 뒤, 발 빠른 몬스터들이 언덕 아래에까지 다가왔다.
그들은 시우와 신지수, 그리고 바닥에 놓인 엘크를 쳐다보며 이를 드러냈다.
몹시도 흥분한 표정.
– 크르르르
“준비해.”
“음, 네!”
“쫄지 마. 너 안 뒤진다.”
“그러길 바랄게요.”
신지수는 잔뜩 긴장한 손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대답했다.
손바닥은 차가운데 땀은 그칠 줄 모른다.
그녀는 시우가 선물해 준 스태프를 손에 꽉 쥐었다.
아무래도 전투형 헌터가 아니기 때문에, 창이나 칼보다는 스태프가 나을 거라며 길드 창고에서 하나 가져왔다고 했다.
끝에 단창이 달려 있어 가벼운 공격도 가능한 형태.
“그리고 나한테 대우받고 싶으면.”
시우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덮쳐오는 괴물들의 시선을 끌 요량이다.
“실력으로 증명해.”
쉬ㅡ익
시우의 신형이 사라지며 다가오던 고블린 전사의 양팔이 잘려 나갔다.
-크르르륵!
“시작해.”
“어, 어떻게요?”
“마나라는 에너지에 의지를 불어넣는다고 생각해. 스킬을 구체화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 넣어.”
“네!”
신지수는 시우의 말에 추상적인 자신의 스킬을 생생하게 그려 보기 시작했다.
[마인드 컨트롤 : 블러드 라인]마력이 단전에서 흘러넘치며 곧 신지수의 의지를 넘겨받았다.
그녀는 시우가 잘라 낸 고블린 전사의 팔을 잡아 스킬을 발동했다.
한 개의 커다란 원에 9개의 문자와 다양한 술식이 새겨졌다.
푸른색 빛살이 아직 살아 있는 고블린 전사와 그의 잘린 팔에 흩뿌려졌다.
‘윽!! 뭐야, 이 느낌은!’
신지수는 단전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량이 급격하게 느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실타래처럼 한 올 한 올 풀리던 마력이, 스킬을 쓰는 것을 기점으로 공중에서 떨어지는 밧줄처럼 휘리리릭 소모되는 것이었다.
신지수의 한쪽 무릎이 땅으로 떨어졌다.
단전이 뻐근하게 아려 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컨트롤은 스킬을 많이 사용하고, 마나를 많이 다룰수록 느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 순간이 처음인 셈.
결국, 펑펑 흘러 나가던 마력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끊겨 버렸다.
유지할 힘을 잃어버린 스킬 마법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쩌적, 갈라져 갔다.
“꺄아악!”
챙강!
공중에서 산산이 깨져 버리는 스킬.
마치 유리창이 깨져나가듯 빛의 조각들이 신지수와 고블린 전사 사이에서 붕 뜨더니 마나화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지수는 스킬 실패의 리바운드로 몸이 저 멀리 튕겨 날았다.
아무리 첫 시도라지만, 엄연한 A급 스킬.
따라서 리바운드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신지수는 공중에서 이를 악물었다.
‘제발! 죽기 싫어! 이제 각성했는데!!’
땅바닥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몸은 그녀로서 제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곧 다가올 충격에 저도 모르게 힘을 꽉 줬다.
터억.
“윽!!”
그러나 그녀의 몸은 충격이 아닌, 웬 따뜻한 품에 폭 안기게 됐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곳엔 나른한 표정의 시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두근.
“···스, 스승님···?”
죽게 하지 않을 거야.
그의 무심한 음성이 다시 들리는 것 같다.
신지수는 새빨개진 얼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입술만 슬쩍슬쩍 깨물었다.
“너.”
나지막하게 시작된 말.
이 찰나의 순간이 마치 몇 시간과도 같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시우의 눈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유독 턱선이 날렵해 보인다.
시우의 입이 열렸다.
“다시 삽질하면 나한테 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