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50
355화>
최후의 전쟁
창백한 안색에 앳되고 가녀리던 소년의 모습은 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어둠을 갑옷처럼 두른 청년.
같은 동료를 다 먹어 치운 바블레너는 십 대 중반의 모습에서 이십 대 초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 또한 그런 성장에 만족한 것인지 자신의 팔과 다리를 감상했다.
웃자란 키와 탄력 있는 근육.
마치 가장 완벽한 형태의 육체를 그려 낸 것만 같은 모습이다.
『기분이 묘하군.』
바블레너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도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흡수만 하는 줄 알았더니.
대악마를 비롯해서 타천사까지 괜히 한자리에 전부 모이게 한 것이 아니었다.
바블레너는 마지막 총력전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리에 위협이 될 만한 부하나 동료, 동맹은 전부 밑거름이 될 재료에 불과했다.
『크흐흐.』
바블레너의 생각은 지극히 단순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 안에 밀어 넣은 대악마와 타천사, 크라켄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협업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공생(共生).
그들은 이제 남루한 자신들의 옷을 벗어 던지고 제4계 마왕을 이루는 세포가 된 것이다.
마왕의 몸 일부분이라니.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패배자는 그냥 죽여야 한다는 각박한 마족의 규율 속에서, 바블레너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택한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제1계 마왕은 고루했고, 제2계 마왕은 무력했으며, 제3계 마왕은 탐욕적이었다.
자신 외에는 마계를 넘어서 이 세상을 지배할 자가 없다고 굳건히 믿었다.
『나는 완전해졌다.』
바블레너가 그런 바람을 이룬 건 시우가 선사해 준 패배 덕분이었다.
* * *
십 년 전.
민시우에게 죽다 살아난 날이었다.
제4계 마왕은 시우의 제자들을 피해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몸을 피신하는 중이었다.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가 우연히 발동하는 바람에 민시우가 사라졌다.
언제 어느 틈에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니 일단 목숨부터 건지고 봐야 한다.
본래의 컨디션이라면 민시우의 제자들 따윈 그리 큰 상대가 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왕이 인간의 손에 죽는다?
마족 역사서에 기록될 영원한 수치이자 치욕.
차라리 실종되는 편이 더 낫지, 죽는 건 정말 아니었다.
제4계 마왕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던전의 깊은 곳으로 계속 내려갔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몸이 회복될 때까지 숨어 있을 심산으로 말이다.
『여긴….』
그러다 바블레너는 낯선 곳을 목도했다.
기이한 뼈들로 장식된 일종의 카타콤.
뼈들의 주인은 굳이 누구인지 찾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에인션트 디아블로’.』
한때 그들이 섬겼던 최강의 종족이자 마(魔)의 정점.
그 유해가 비밀리에 안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살아남았던 ‘에인션트 디아블로’ 중 누군가가 만든 것 아닌가 싶다.
바블레너는 전투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무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곳까지는 인간들이 쫓아오지 못할 것이란 걸 직감해서였을까.
그는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나 무기가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쓰레기에 가까운 잡동사니였다.
하긴, 마왕의 손에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는 사이에 그런 아이템을 빼돌릴 정신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는 마지막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무덤보다 조금 더 꾸민 것 같은 공간.
바블레너는 그곳에서 타원형으로 생긴 큼지막한 아티팩트 하나를 발견했다.
영롱한 빛을 깜빡이는 아티팩트는 뭔가를 담아 둔 항아리처럼 보였다.
바블레너는 무의식중에 손을 뻗었다.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힘의 근원 같은 것이다.
절대적인 힘을 발휘해 마족과 악마를 졸개로 부렸던 ‘에인션트 디아블로’의 능력.
바블레너는 그 원천의 핵이 바로 이것임을 직감했다.
만약 자신이 인간에게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평생 가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블레너는 아티팩트에 손을 대고 마기를 흘려 넣었다.
갖고 싶다.
그들의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에인션트 디아블로’의 능력을.
그들의 기술을.
다른 종족을 부렸던 강대한 힘을!
파지지지지직!
그 순간 아티팩트에서 짧은 빛이 뿜어졌다.
『아.』
바블레너는 자신이 마치 그 빛과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의 탐욕에 반응한 아티팩트가 마기를 듬뿍 받아먹으며 천천히 동화되기 시작했던 것.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제4계 마왕은 그렇게 칠 일 밤 칠 일 낮 동안 고통과 싸웠다.
서로의 욕망이 얽히고설키며 자아가 곤죽이 되도록 부딪혔다.
그리고 누군가의 자아만이 온전히 남게 되자, 바블레너는 던전을 나섰다.
『이제 내가 최후의 마왕이다.』
* * *
“저걸 무슨 수로….”
누군가의 입에서 본인도 모를 진심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서 바블레너의 행동을 바라만 봤다.
그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해 보였다.
빈틈투성이인 적의 모습에도 그 누구 하나 달려드는 이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가 없었다.
폭발적으로 뿜어지고 있는 아우라.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압도적 기세가 공간 전체를 무겁게 짓누른다.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고,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목이 뜯겨 나갈 것이란 게 직감적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
『흐음.』
바블레너가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그 단순하고 가벼운 행동에 주위의 공기가 딱딱하게 굳고 호흡이 가빠져 온다.
온 세상의 마기를 한 점으로 압축시킨 것만 같은 기세.
최강의 헌터라는 ‘미스틸 테인’도, 이계에서 온 이종족들도 얼어붙어서는 마력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상대에게서 짓쳐 오는 무시무시한 살의가 목 끝까지 겨눠진 기분.
『좋군.』
바블레너가 흡족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사위를 훑어보았다.
가벼운 흘김만으로도 그는 모여 있던 자들의 상태와 남은 마력량을 전부 파악했다.
마기 감지를 펼칠 필요조차 없었다.
『초월한 느낌이야.』
바블레너는 쓰나미처럼 흘러넘치는 마기를 호흡하여 가다듬었다.
괴물이라고 일컫기엔 그 무게가 너무도 부족하다.
이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 거대하고 장엄한 힘은 마치─
『나는 너희들의 신이다.』
바블레너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 허무맹랑한 소리에도 헌터들은 무어라 반박하지 못했다.
『너희들을 이끌어 주마. 내게 복종하라.』
얼음골 같은 살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는 사실상 협박에 가까웠다.
몇몇 사람들이 그 기세에 맞서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마력을 끌어 올리려 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공격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은 마왕이 코앞에 있다.
제발 스킬 한 방만…!
그러나 그런 불경스러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바블레너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꿇어라.』
쿠────────────우우웅!!
바블레너와 대치하고 있던 모든 자들의 몸이 기울며 바닥에 무릎을 처박았다.
이건 길리온 같은 언령술사의 스킬이 아니었다.
그저 ‘힘’을 주어 말했을 뿐이다.
바블레너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남자 하나가 꿋꿋하게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시우.』
콰드드드드드득─!!
해일 같은 마기가 시우를 향해 덮쳐 왔다.
끔찍할 정도의 압박에 시우를 제외한 주변 지반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짙푸른 에테르의 힘이 마기 속에서 오롯이 타오른다.
『아직도 저항하나.』
바블레너가 시우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고작 서 있는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쩌저저저적… 쩌저적!!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크레이터가 생성된다.
『이제 편하게 복종하는 게 어떤가.』
시우는 발걸음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점점 거세지는 압박에 맞섰다.
『대단하군. 그게 바로 네놈이 자랑하는 재생인가 본데.』
아이템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바블레너가 상처를 수복하고 있는 시우의 전신을 살폈다.
『널 흡수하면 그 재생력도 내 것이 되겠군.』
“아니, 그럴 순 없지….”
시우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놈에게서 산사태처럼 퍼부어지는 마기와 거센 기운에 전신의 뼈가 가루처럼 부서지는 듯하다.
한 어절을 내뱉는 것조차 턱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져 간다.
『크흐흐. 이제 네놈에게 거부권은 없다. 그냥 죽을지, 고통스럽게 죽을지 정도는 고르게 해 주지.』
시우가 있는 곳까지 한 발자국 남긴 바블레너는 그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이제 결말은 정해졌다.
신이 된 자신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어떤 걸 고를 테냐?』
거들먹거리는 놈을 보며 시우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 친구가 숨 고르기 하느라… 대답이 조금 늦었네.”
『……?』
“선택….”
시우가 바블레너를 향해 비척거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하겠다….”
둘의 사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너를….”
바블레너는 시우와 눈을 마주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우의 주먹이 어깨 뒤로 천천히 젖혀진다.
호흡이, 기세가 요동친다.
“죽이는 걸.”
7코어, 반룡(半龍)의 술(術).
* * *
─────────────────!!!!
한 줄기 격렬한 섬전이 수평으로 빛을 뿜는다.
수백여 미터를 날아간 섬전의 끝자락, 튕겨 나가는 상대를 향해 누군가의 주먹이 내리꽂힌다.
꽈───────────아아아앙!!!
바블레너의 육신이 지각을 파고들며 끝도 없이 내려갔다.
대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강격.
“하아.”
그 주먹을 휘두른 인물이 깊게 파인 구덩이를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룡의 술’은 각 코어에 담긴 용의 근원적 힘을 끌어내는 기술로써, 사용하는 코어에 따라 신체 일부분이 용의 비늘을 뒤덮은 듯 변하게 한다.
진갈색 팔과 새파란 어깨, 바람으로 이루어진 다리에 샛노란 몸통.
거기에 새까만 날개와 붉은 뿔, 금빛 안광까지.
반룡이 된 시우가 하늘 끝까지 치솟는 마력을 위시하며 서 있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
그 순간 바블레너가 처박혔던 지반과 다른 방향에서 굉음이 울려 왔다.
시우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틀었다.
『감히 이 내게─』
분노한 바블레너가 그를 향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뱉었다.
그는 변한 시우의 모습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모습 또한 마지막 발악일 터였다.
그리고 그 직감은 사실에 가까웠다.
“후우─”
시우는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생령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는 중이었다.
이젠 언제 어느 순간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무조건 죽는다.
사실 ‘7코어 반룡의 술’은 도박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왜냐하면 이 모든 힘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테르의 힘과 생령 에너지를 따져 보면─
‘30초도 안 된다.’
시우는 자신에게 내일이 없단 생각으로 최후의 연격을 발했다.
쿠구그그그───── 쿠와아아아──────!!!!
금빛 안광이 한 가닥 빛살로 남으며 적을 향해 질주한다.
『크흐흐흐! 이번엔 기필코 네놈이 먼저 소멸하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 힘껏 부딪쳐 보아라, 민시우!!』
바블레너가 온 세상의 어둠을 모조리 빨아들인 것 같은 기세를 육신에 둘렀다.
시우의 선명한 빛과 바블레너의 어둠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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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며, 천지가 거대한 섬광에 휩싸여 어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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