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52
357화>
그리고, 숨.
드래곤의 심장이라 일컫는 코어.
“크흐으읍!!”
그 안에 담긴 힘 아니라 그 그릇 자체를 녹여 힘으로 만든다.
에테르의 힘은 소진하면 다시 채울 수 있지만, 그릇을 깨 버리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시우는 두 번 다시 코어를 사용하지 않을 작정으로 일곱 개의 심장을 녹여냈다.
아니, 어차피 계약이 끝났으니 시우가 사용할 수도 없다.
이제 돌아가는 배는 모두 불태운다.
『끄르으으으윽!! 이 자식이!!』
시우가 발한 최후의 힘에 바블레너의 몸뚱이가 부서져 갔다.
팔과 다리에 균열이 가며 파편이 열기에 타들어 간다.
바블레너는 몸에 남은 모든 마기를 바닥까지 긁어모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마지막 한 조각만 남기고 이뤄진 ‘신의 삶’이 이렇게 한순간에 끝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는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깨진 낯으로 시우를 노려봤다.
강대한 힘이 자신을 덮쳐 오고 공격의 여파가 사방을 분쇄하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오직 시우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왜 처음부터 끝까지 이놈은 나를 방해하는 걸까.
바블레너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점철된 안광을 했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눈에는 시우에 대한 살의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크으으으으윽!!”
시우는 마나맥이 조각조각 짓이겨지는 감각에 신음을 흘렸다.
코어를 녹여낸 힘이 너무도 강한 탓에 마나맥에서 온전히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쿨럭…! 식량, 뭐 하는 거야! 얼른 죽이지 않고…!】
시우는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또 다른 시우의 몰골을 바라봤다.
다 죽어 가기 일보 직전인 프레.
“이 미친놈아! 그게 말처럼 쉽냐!!”
시우는 프레의 모습에 다급함을 느끼며 버럭 소리쳤다.
계약을 끝냈기 때문에 프레는 더 이상 시우의 마력을 공급받아 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추가적인 마력 수급이 없으면 소멸할 수도 있는 상황.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죽여라, 얼른!】
그렇게 말한 프레는 거의 기다시피 해서 시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저리로 빠져 있어!!”
시우가 팔을 부들부들 떨며 프레를 야단쳤다.
지금 시우는 프레에게 힐을 줄 수도, 그에게 마력을 줄 수도 없는 상태였다.
프레의 꼴을 보면 바블레너의 공격이 스치기만 해도 사라질 것만 같은데….
【좁밥…! 너 혼자 못 하니까 그렇지…!】
프레는 힘겹게 말을 내뱉더니 시우의 형상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시우의 모습을 유지할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제기랄! 조금의 빈틈이라도…!’
시우는 녹여낸 코어가 바닥에 치닫고 있는 것을 느꼈다.
『크흐…흐!! 내가, 내가 신이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바블레너는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이미 자아가 붕괴하는 중인 듯 그의 표정은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상대의 전력을 깎는 요소가 되진 않은 모양이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대량 학살용 병기.
“크으윽…! 크아아악!!”
시우의 낯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사지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도 바블레너의 기세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야… 좁밥….】
“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전력을 쏟아 내는 거시다.】
프레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우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너 인마…!”
【마지막인 거시다….】
그는 프레의 모습을 살폈다.
진심이 느껴지는 탓에 차마 거절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야…! 그러면 마지막으로…! 지른다!!”
시우가 자신의 어깨에 앉은 프레에게 외쳤다.
이 공격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바블레너가 죽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라면 놈이 엉망진창이 되어 남은 동료들이 처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준비…됐냐?!”
【놈을 죽이는… 거시다!!】
시우가 남아 있는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서 바블레너를 향해 퍼부었다.
쿠과가가──────────!!!
번쩍거리는 불꽃이 전방을 가로지른다.
풍압에 피부가 뜯겨 나가는 것만 같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몸 안에 있던 코어의 힘이 전부 사라졌다.
“아─”
시우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섬전이 빗발치는 전방이 눈에 들어온다.
안 돼.
부족하다.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그때 프레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뭇 처음 마주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서로 죽이네, 살리네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우의 새까만 동공에 맺힌 프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엉아가 지켜 주는 거시다.】
아니, 안 돼.
늘 그렇듯 내뱉는 말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결코 듣고 싶지 않았다.
시우가 손으로 프레를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모든 힘이 빠진 그의 손은 조금도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야.
프레의 날개가 시우의 뺨을 툭툭 때리더니 전방으로 사라졌다.
잠깐만.
시우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프레를 부르려는 순간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이 미친놈아.
누가 내 엉아야.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지막 힘을 쏟아 낸 시우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지 마.
* * *
프레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고요하고, 삭막하다.
온통 어둠뿐이다.
【여긴 어디인 거시냐.】
그는 조심스럽게 날개를 파닥거리며 사방을 날아다녔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공간.
쿵.
【으갹!】
프레는 힘껏 날아오르다가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응? 천장이 있는 거시다.】
그는 아픈 머리를 날개로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전방으로 파닥파닥 날아갔다.
쿵.
【으약!】
한참 날아가던 프레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온통 새까만 탓에 몰랐지만, 이곳은 꽉 막힌 어둠이었던 것이다.
프레는 퉁퉁 부어오른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어둡다.
춥다.
그는 뭔가 이상한 감정 하나를 떠올렸다.
아릿하면서 생각나고, 한편으로는 열받는….
뭐였더라, 그게.
프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홀로, 라는 기분이 원래 이런 거였나?
처음엔 신나게 돌아다니던 프레는 이젠 그게 즐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립다.
【응? 그게 뭐인 거시냐.】
자기가 떠올린 생각에 자기가 놀랐다.
삶이란 원래 어둡고 삭막한 거 아니었나.
그립다는 게 뭐지?
프레는 양 날개를 관자놀이에 대고 끙끙거리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게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뭐였더라… 분명 항상 같이 있던 건데….
아.
그 순간 프레의 마음속에 한 가지 파문이 일었다.
이 그리운 감정.
【치킨!!】
왜 이걸 까먹고 있었지.
프레는 기쁜 마음에 다시 허공을 날았다.
텅 빈 어둠이 그를 반겼다.
치킨인 거시다! 치킨! 치킨….
그런데도 뭔가 빠진 기분이 든다.
프레는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재수 없는 뭔가가 있었는─
쿠웅!!
멍때리며 날아가던 프레는 이번에 꽤 세게 머리를 박고 말았다.
바닥에 데구루루 구르던 프레가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꾸앙! 왜 때리는 거시냐, 좁밥!】
응?
좁밥?
프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야! 좁밥! 어디 있는 거시냐!】
프레는 복받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에다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온다.
아무리 기다려도 원하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식량! 이제 때려도 뭐라고 안 하는 거시다! 얼른 나타나는 거시다!】
프레는 당황한 목소리로 재차 불렀다.
그럼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이번엔 날아다니며 사방에다 소리쳤다.
【이젠 네 밥 안 뺏어 먹는 거시다! 술 적당히 마시는 거시다!】
혼자라는 감각이 이렇게 서글플 줄은 몰랐다.
프레는 날개가 빠질 때까지 시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 공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외로움.
아주 오래전이 떠오른다.
시우가 오기 전까지 항아리에 갇혀 아주 오랜 세월 혼자 지냈던 그때.
프레는 시우를 만남으로써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디 있는 거시냐! 왜 또 나를 혼자 두는 거시냐!】
사실 프레가 벗어났던 건 한 평 남짓한 어둠이 아니라 혼자라는 쓸쓸함이었다.
그는 시우가 내밀어 주었던 첫 손길이 떠올랐다.
물론 그 당시엔 물어 버렸었지만 말이다.
【식량! 좁밥! 엉아가 잘못한 거시다! 나 버리지 않는 거시다!】
프레는 새까만 여백이 짓누르는 감각에 무서워 몸을 떨었다.
영겁의 시간, 다시 혼자 지낼 자신이 없었다.
이제 외로운 건 질색이다.
【식─ 시우!!】
그 순간 어둠 한곳에 금이 가더니 선명하고 따스한 빛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도 그립고 그리운 온도다.
프레는 그곳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했다.
어둠을 뒤로한 채 나아간 그를 반긴 건 낯익은 손이었다.
따아악!
【꾸앙!!】
쩌쩌적──── 챙그랑!!
프레가 정신을 차렸다.
【엥?】
그가 눈을 뜬 곳은 시우의 품 안이었다.
시우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프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미친놈아, 누가 폼 잡으래?”
프레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고는─
【우앙!! 식량이가 제일 좋은 거시다!!】
시우의 얼굴을 와락 껴안았다.
* * *
프레가 모든 힘을 사용한 뒤.
시우는 넝마가 된 몸을 이끌고 죽어 가는 프레에게 다가갔다.
『ㄴ… 시, 신….』
저 너머에서 꿀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시우는 입술을 짓씹고 우선 프레에게 먼저 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미 코어도 없고, 마력도 다 사용했다.
하지만 시우는 가장 친한 친구를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넌… 살아 돌아오면… 나한테 죽었어.”
그렇게 중얼거린 시우는 자신에게 남은 하나가 있단 걸 깨달았다.
단전.
그는 단전을 희생해 마지막이 될 생령 에너지를 프레에게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우는 스킬을 잃었다.
“하.”
바블레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자아가 모두 소멸된 바블레너는 수백 개의 가시를 지닌 나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이제 저건 지성체가 아니다.
가까이 있는 생명체를 잡아먹고 사는 산호초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어? 너한테서 마력이 안 느껴지는 거시다.】
“너 살리느라 다 썼다.”
【그런 거시냐? 좋은 곳에 투자한 거시다.】
“…이런 걸 보고 투자 사기라고 하지.”
이제 바블레너는… 다른 헌터들이 처리해야만 한다.
멀리서 그의 동료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바블레너와의 전투가 워낙 치열하고 광범위했던 탓에 쉘터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러 갔었던 모양이다.
【평범한 사람이 되니까 어떤 거시냐?】
“이제 헌터는 지겹다. 조용히 시골에서 살아야지.”
시우는 꿈틀대고 있는 바블레너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과연 저걸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어딘가로 멀리 보내면 몰라도….
그 순간.
시우의 머릿속에 이상한 알림이 들려왔다.
「각성자 능력치 재조정.」
「능력치 계산 및 스킬 적합도 계산이 끝났습니다.」
「추정 가능.」
「보상이 완료됩니다.」
「튜토리얼 탑 종료.」
“뭐?”
시우는 당황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너 보상 이제 받은 거시냐? 왜 너만 주고 나는 안 주는 거시냐? 바블레너 내가 없앤 거시다!】
프레가 허공을 향해 방방 뛰며 소리쳤다.
시우는 왜 하필 지금, 이란 생각을 했다가 짐작하는 바를 떠올렸다.
“내가 스킬을 잃어서… 이제야 보상이 가능해진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평범하게 살려고 마음먹은 찰나에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시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운명인가.”
【엥? 내, 내가 너랑 친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까지 이어질 사이는 아닌… 꾸앙!! 왜 때리는 거시냐!】
시우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나저나 새 스킬이 뭐인 거시냐?】
프레가 머리를 만지작대며 물었다.
“새 스킬? 안 그래도 지금 써 보려고.”
【별 볼 일 없으면 넌 이제 식량보다 못한 거시다.】
“야.”
【왜 그러는 거시냐?】
“나 단전 새로 생겼으니까, 재계약하자.”
시우의 말에 프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보수는 무엇이냐?】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볼 줄 알았다.”
시우가 눈을 빛내며 웃음 짓는다.
“마력이랑 치킨.”
시우의 단전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마력을 피워 올렸다.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지며 눈부신 광휘가 사방을 물들였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