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0
41화〉
정리 정돈
두 개의 원이 생성되며 아홉 개의 문자가 각각 금빛으로 찬란히 빛난다.
맹렬히 뿜어 대는 빛살이 상처와 부상을 빠르게 치유한다.
근육과 내장이 복원되고, 뼈가 제자리를 찾고, 혈관을 비롯한 몸의 기관이 세포 단위로 수복된다.
“이번이 9번째인가.”
시우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갱생소는 아무나 데려오는 곳은 아니었다.
범죄자야 알 바 아니지만, 이런 애들은 죽을 만큼 패서 고쳐 쓰면 나쁘지 않다는 걸 많이 경험했던 터였다.
조금 전에 내장을 쏟아 냈던 하준태는 실성한 듯한 얼굴로 그 악마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아닙니다. 악마, 악귀의 재림입니다···.’
“제, 제발 용서해, 해 주시면···.”
경추가 으스러졌던 성창원은 바들바들 떨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이미 눈의 초점이 반쯤 흐려져 있었다.
“용서?”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냥 용서해 주면 깨달음이 없잖아.”
“깨, 깨달음이라니···.”
“인간이 언제 변하는 줄 알아?”
“모, 모르겠습니다.”
“바로 고통을 겪을 때야.”
시우의 발이 성창원의 턱을 후려갈겼다.
뻐거어어억!!
“그르윽!!!”
성창원은 턱을 감싸 쥔 채 몸을 뒹굴었다.
혀를 씹은 것인지 뭔지, 얼굴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됐다.
시멘트 바닥은 그들이 흘린 피와 분비물로 한참 전부터 더러워진 상태였다.
“씨발, 피 튀기잖아.”
시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하준태를 바라봤다.
언제 싼 건지, 오줌 지린내가 그에게서 풀풀 풍겨 나온다.
시우의 시선이 닿자, 하준태는 턱을 딱딱 부딪치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이미 A+급 헌터의 자존심 따위는 버린 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이제는 머릿속에 맴돌지 않는다.
그저 아프지 않고 싶다.
더 이상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이 지옥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구두 빨면 용서하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가 말했었나?”
시우가 무미건조한 투로 물었다.
“하, 하, 핥겠습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제가 핥도록 하겠습니다! 제, 제발 요, 용서해 주세요! 제 간절한 바람입니다! 앞으로 매일 깨끗이 핥도록 하겠습니다! 개가 되겠습니다!!”
하준태는 바닥에 개처럼 엎드리며 명령만 내려달라는 듯 애원했다.
“A+급 헌터가 어쩌고 하더니. 개판이군.”
[빙석폭약]원형의 마법진이 생성되며 아홉 개의 문자가 푸른 섬광으로 선연히 빛난다.
그 맹렬한 마력의 흐름 위로 소스라칠 듯한 냉기가 모여든다.
쩌저저적ㅡ
하준태 앞으로 수박만 한 얼음덩어리가 견고하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단단한 얼음 알갱이들이 탄환이 되어 웅크린다.
뭉쳐지나, 터질 것처럼 위태롭다.
이건 그저 단순한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하준태는 처음 보는 광경임에도 자신의 능력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마, 말도 안 되는··· 이, 이런 크기가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만···?”
능력의 실질 소유자인 그조차 아직 저런 크기의 얼음 폭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준태가 구현한 최대 크기는 기껏해야 단호박 정도의 사이즈.
‘재밌는 능력들이네.’
시우는 천부적인 마력 컨트롤과 본능적인 전투 경험으로 상대의 스킬을 한층 더 발전시켜 사용할 수 있었다.
쩍··· 쩌적··· 쩌···.
“히, 히이이익!!”
팽이처럼 돌아가는 얼음덩어리.
하준태는 엉덩방아를 찧은 그대로 발바닥을 뒤로 밀어 슬금슬금 멀어졌다.
이건ㅡ 위험하다!
“야.”
하준태가 움찔한다.
주변 공기를 얼려 버릴 듯한 목소리가 그의 심장에 틀어박히는 기분이다.
“도망쳐?”
“아··· 그···.”
우물쭈물하는 사이,
콰아앙ㅡ!!
때를 기다리던 [빙석폭약]이 사방으로 제 몸을 뻗쳤다.
날카로운 각을 가진 얼음 알갱이들이 폭탄처럼 쇄도했다.
콰드드드드드드!!
“끄어어어억!! 끄어어어!! 끄허억··· 억···!!”
수백 조각의 얼음 알갱이들이 탄환처럼 날아가 전방위로 아무렇게나 처박혔다.
하준태의 몸에도 수십여 발의 얼음 알갱이가 파고들었다.
말만 얼음이지 산탄총이나 다름없는 위력.
그는 한참을 괴로워하다 온몸으로 피를 게워 냈다.
미칠듯한 통증이 그의 전신을 미꾸라지처럼 들쑤셨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듯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누가 마음대로 죽으래.”
시우는 손을 뻗었다.
금빛 찬란한 마법이 발동한다.
하준태의 몸이 회복된다.
기절하지 못했던 그는, 시우의 웃음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멘탈이 하나씩 찢겨 나간다.
***
“스승님! 왜 이렇게 늦었어요!”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시우는 자신의 집에 있는 신지수를 보고 물었다.
길드에 갔다가 볼일이 끝나면 지 집으로 갈 것이지.
여기가 무슨 사랑방도 아니고.
“제가 스승님 기다린다고 했더니, 길드장님께서 집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왔죠. 몇 시간 동안 할 것도 없어서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요!”
“그게 내 탓이냐.”
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얘는 도대체 겁도 없나.
남자들만 사는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다 하네.
하긴 처음 탑에서 봤을 때도 낯짝 두껍게 따라오더라니.
시우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어두울 땐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헉! 피다, 피!! 시우ㅡ 아니, 스승님 다쳤어요?! 웬 피를 듬뿍··· 어디 봐봐요!!”
“야. 좀 조용해. 내 피 아냐.”
시우는 재킷과 상의를 벗었다.
피가 너무 많이 묻어서 차라리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병신같은 두 놈 새끼 교육시키는 데 옷만 버렸다.
남는 것도 없는 장사네.
“와우···.”
나지막이 들리는 신지수의 감탄사.
“뭐?”
“아, 아니 그게 복근도 있고 잔근육도 엄청 많고··· 몸매가 엄청··· 하하하.”
“미친.”
또라인가.
시우는 옷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 오늘 수업할 거야?”
“네.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하아. 그럼 씻고 나올 테니까 기다려.”
시우는 저리 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어지간하면 오늘은 시원하게 캔맥주 한잔에 초밥이나 먹고 쉬고 싶은데.
“넵.”
그래, 열심히 배우는 자세는 좋지.
나중에 시준이네 길드에도 보탬이 될 테고.
“그러면 그냥 기다리지 말고 전신에 마나 돌리는 연습해. 쉬지 마라.”
” 네에···.”
신지수는 TV를 보려다가 시우의 말에 가부좌를 틀었다.
천천히 심호흡부터 한다.
단전을 천천히 개방해 마력을 조금씩 빼낸다.
너무 급하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마력을 무리하게 확 빼내는 일 따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을 조절하며 필요한 만큼만 빼내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그야말로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일.
게다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따위가 아닌,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마력’을 느끼고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라 절대 녹록한 게 아니었다.
“A급 헌터 정도면 명주실만큼의 마력을 뽑아낸다는 감각으로 해야지. 그 명주실로 단전에 있는 모든 마나를 비운다고 생각해. 일정한 양으로,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리듬으로.”
“어ㅡ 이게 얼만큼 중요한 훈련인가요?”
처음 시우에게 이 훈련을 들었을 땐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도 듣지 못한 조언이라 실효성에도 의문이 들었고.
“백 번의 목숨을 건 사투가 있다면, 그중 아흔아홉 번은 널 살려 줄 만큼은 된다. 그러니까 매일 해라.”
“으으, 알겠습니다.”
“참고로 게이트 들어가서 몬스터한테 스킬 쓰는 게 레벨 2짜리 훈련이라면. 이건 레벨 4 정도 되는 거야.”
신지수는 시우가 했던 말을 다시금 복기했다.
‘명주실 굵기의 마력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리는 감각으로.’
단전이 꼬물거리며 간지러운 감각이 든다.
그 실 같은 마력을 평소 마나가 흐르던 방향에 흘려서 천천히 몸 안에 돌린다.
무턱대고 마력을 뽑아 쓰던 감각과는 천지 차이.
신지수는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마가 땀으로 흥건히 젖는 걸 느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단 증거였다.
몇 분 뒤.
샤워를 마친 시우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다.
‘갑자기 더럽게 귀찮네.’
오랜만에 다른 사람 스킬로 놀았더니 재밌긴 한데 조금 피곤하다.
신지수는 아직도 가부좌를 틀고 연습 중이었다.
말을 걸려던 시우는 그녀의 상태를 보고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흠. 내가 나왔단 것도 모를 정도라.’
모처럼 받은 제자인데 말이 많은 것만 빼면 배우려는 자세는 아주 좋다.
생각보다 센스도 썩 바닥은 아니고.
흐르는 마력의 양이나 속도도 나쁘지 않다.
물론 아직은 초보답게 어리숙하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질 일.
그는 싱긋 웃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네.’
***
시우는 귀찮은 발걸음을 뗐다.
분명 본인이 자원해서 들어간 곳인데도,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HMCS를 그만두기엔 메리트가 너무 많은데.’
시우에게 돈이나 복지는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 실컷 잡아 족치고 운반꾼들만 고용해서 사체를 가지고 나와도 큰돈이 된다.
그리고 동생이 대형 길드의 길드장인데 돈이 필요할 리도 없었고.
그런 그에게 있어 좋은 조건이란, 언제든지 성격대로 일을 처리해도 뒷수습해 줄 조직이 있다는 것.
심지어 합법으로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시우에게로 쏠렸다.
평소 시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오셨습니까, 선배님!!”
황정구가 후다닥 나오더니 90도로 인사했다.
시우는 고개를 까딱이곤 사위를 훑었다.
왜 이래, 분위기가.
“저ㅡ 자, 잠시만 제 방으로 오시겠습니까?”
“그래.”
황정구는 가장 상석에 시우를 앉히고 곧 준비한 차를 늘어놓았다.
커피, 홍차, 녹차.
그를 향한 황정구의 배려였다.
“무슨 일이야?”
“그··· 혹시 지난번 출동하셨을 때 성창원과 하준태를 보셨습니까?”
“응, 왜?”
거침없는 대답에 황정구는 다시 말을 머뭇거렸다.
“혹시 싸, 싸우셨습니까?”
“싸우진 않았는데.”
“아ㅡ 다행이다. 사실···.”
“내가 일방적으로 반 죽였지.”
황정구는 시우의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건만.
그는 아무것도 말리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그 사실··· 지금 그 둘 어딨는지 아십니까?”
“모르지.”
“헌터 정신 병원에 있습니다.”
“아하.”
감탄사인지 웃음인지 모를 짧은 감상이 터졌다.
“둘 다 실성해서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린다고 하더군요. PTSD가 너무 심해서 작은 통증에도 기겁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
시우는 관심 없다는 얼굴로 커피를 들었다.
정신력 약한 저들 탓이지.
황정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황을 보면 성창원의 스킬로 엘리게이터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랬겠지.”
“그래서 성창원이나 하준태의 이상 증세가 몬스터의 소행은 아니라고 합니다. 또 A+급 헌터 둘이 실성했는데 바바리안 엘리게이터 탓으로 돌리기에도 무리가 있고요. 게다가 지유리가··· 민시우 헌터님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은 안 하고?”
“네. 그냥 지나가다 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맞은 건 용케 이야기를 안 했네.
시우는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황정구에게 눈짓했다.
“그래서··· 조만간 감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감사? 뭘 근거로?”
“일단 정황 증거만 갖고 조사를 하는 거겠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민시우 헌터님은 정확한 신분이 없으시니까···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황정구가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시우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토닥였다.
【좁밥 또 착한 척 유세 떤다. 어깨 두드릴 시간에 치킨이나 사 와라. 5분 준다.】
미친 새끼가.
“네가 신경 쓸 거 없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들어온 사건 있다며? 그거나 줘 봐.”
황정구는 준비했다는 듯 서류철을 시우에게 공손히 건넸다.
“뭐 하는 놈이야?”
“브로커입니다. 지하 세계에서 꽤 알아주는 놈인데 하도 용의주도해서 찾기가 쉽지 않은 놈입니다. 웬만한 추적형 헌터로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HMCS에서도 몇 년 전에 잡을 뻔했다가 놓친 적이 있고요.”
시우는 놈의 간단한 행적과 저지른 사건들을 읽어 나갔다.
주요 거처는 아시아 전역.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야?”
“네. 마카오랑 홍콩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수배령을 내렸지만, 전문가들이 추측하기로는 허울뿐인 수배령이라 하더군요.”
“그놈이 이번에 우리나라에 온다, 이거지?”
시우는 알았다는 듯 서류를 내려놨다.
“서류 안 가져가십니까?”
“다 기억했어.”
“우선 HMCS 간부진들만 아는 내용이니 선배님도···.”
“알았어, 인마. 입 다물고 있을게.”
장첸이라.
이름 한번 희한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