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3
44화〉
시체들의 새벽
구울은 죽음과 가까운 존재이며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개체다.
그것들은 무덤에서 태어나 햇빛 아래에서 생을 마감한다.
음과 양의 조화를 거스르고 생(生)의 인과를 비틀어 타오르는 잿더미.
혹, 마기가 진한 곳 근처에 우연히 사체가 많이 있다면 모를까.
이만큼의 물량은 절대 ‘우연히’ 생겨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 숲 어딘가에 인위적인 조건을 부여한 존재가 있다는 말.
“오셨습니까, 주인.”
새까만 도복 차림의 적귀는 어둠 그 자체인 양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수고했어. 마나는 좀 남았어?”
“예. 충분히 조절해 가며 있었으니 괜찮을 겝니다.”
“그래? 혹시라도 벅차면 아무 때나 빠져.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주인.”
“방향은 어디지? 아무래도 이쪽에서 마기가 느껴지는데.”
“맞습니다.”
시우는 가리킨 방향을 어둠 속에서 응시했다.
상황을 가늠키 위해 전방으로 마력을 펼쳤다.
“구울이 나오고 있는 곳이 저긴가.”
끈적하고 질퍽한 절망이 새까만 타르처럼 그림자 밖으로 흘러나오는 감각.
더럽고, 불쾌하며, 흉흉하다.
“어찌하시렵니까?”
“뭘 어쩌긴 어째.”
시우는 단전에서 마력을 뽑아 올렸다.
전신을 맹렬히 종횡하는 시퍼런 마력의 물결.
‘최대한 빨리 끝낸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마력 소모가 더해질 것이다.
구울을 다 죽이는 것보다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대처일 터.
“적귀, 서포트해라. 내가 휘저을 테니.”
“존명 받들겠습니다.”
시우의 일신이 잘 겨눈 화살처럼 숲을 질주했다.
캄캄한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일렁거리는 몇 개의 램프가 저 멀리서 어둠을 밝혀 왔다.
촤악ㅡ
단숨에 뛰어 어둠을 벗어난 그의 눈에 몇 명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고.
“뭐···!”
착지하기도 전, 시우가 재빨리 검을 휘둘러 두 명의 목을 베어 냈다.
발밑으로 피가 흩뿌려진다.
바로 반격이 올 거로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적 진영에선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시우는 남은 이들을 훑어봤다.
검은 로브를 걸친 두 명과 헌터복을 입은 세 명.
그들은 동료 두 명이 죽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저 태연히 모닥불에 둘러앉아 있을 뿐.
그중 가장 위험한 기운을 내뿜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킥킥킥. 거너··· 뭡니까, 이 개새끼는.”
로브 안에서 들려오는 쇠를 긁는 듯 탁한 목소리.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상태였으나, 시우는 그에게서 나오는 끈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부하들을 곧장 죽인 걸 보면 이번 회의에 참석한 헌터 중 하나이겠군.”
거너라 불린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 남성은 턱수염을 쓸며 대꾸했다.
“킥킥. 저희는 당신들에게 힘을 빌려 드리고 있습니다. 개새끼 정도는······.”
“진정하게, 이반. 우리가 처리하지.”
이반은 중얼거리며 모닥불을 쬐었다.
그 음산함을 느꼈는지 거너는 헌터 복장을 한 다른 두 명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로버트, 요한,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대장.”
“재주도 좋군, 이런 깊숙한 곳을 찾아내다니. 설마 [슈타이]에서 보낸 건 아닐 테고.”
명을 받은 로버트와 요한이 시우를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저릿저릿한 살기를 감추지 않았다.
사람과 싸우는 게 익숙한 듯 그들은 마력을 뿜어 가며 시우를 천천히 압박했다.
몬스터의 심리와 사람의 심리는 천양지차로 다른 법.
아무리 몬스터와 많은 전투를 벌인 헌터라 할지라도, 다른 헌터와의 싸움은 흔하지 않을 것이었다.
‘초보자 티가 팍팍 나는구나.’
만약 그들이었다면 처음 등장한 시점에서 두 명을 베어 낼 게 아니라 스킬로 난장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후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죄다 베어 버리면 끝나는 일.
하지만 시우는 처음 목을 벤 뒤엔 오뚝이처럼 멈춰 섰다.
다른 헌터와의 전투가 익숙치 않고, 다수 대 소수의 경험을 해 본 적 없다는 뜻.
로버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즐거웠다.
거너를 따라다니는 이유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
“이 새끼 내가 죽여도 되냐? 요한, 이번엔 네가 양보해라. 갈가리 찢어 놓고 싶어.”
“미친놈, 또 병이 도졌네.”
요한은 로버트의 말에 한 보 뒤로 물러섰다.
동료의 성정을 잘 아는 그로서는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귀찮은 게 하나 있다면 조각 조각난 시체를 치우는 게 번거롭다는 것.
로버트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알 가득 시우의 모습을 채워 넣었다.
“너는 오늘 Allmacht(알마흐트)의 부활을 위한 초석이 된다. 먼 타국까지 와서 개죽음당한 거라 여기겠지만, 영광으로 알아라.”
로버트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날렸다.
그러나 시우는 아무 방비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아주 귀찮은 투로 말이다.
“치워.”
나무 뒤편에서 한줄기 섬광이 번뜩이며,
슈ㅡㅡ웅!
로버트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거어어억···.”
“로버ㅡ!!”
당황한 요한.
곧이어 시우의 팔이 움직이고,
퍼거어억!
바스타드 소드가 요한의 얼굴에 쑤셔박혔다.
“그기익? 꾸게?”
요한은 이상한 말을 몇 마디 지껄이더니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헌터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콸콸 쏟아지는 피가 다른 이들의 발을 적셨다.
“뭐ㅡ 뭐야, 대체!!”
거너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무하다 못해 지독한 농담을 보는 기분이다.
“알마흐트를 다시 세우기 위해 그 개같은 시간을 버텼거늘··· 감히 이름도 모를 동양 원숭이 따위가!!”
분노를 터뜨리는 거너의 발아래,
수백 개의 도형이 술식을 이루며 보랏빛 마법진이 형태를 갖추었다.
[독아 : zwölf Speere(열두 개의 창)]의지를 입어 공중에서 현현되는 거너의 스킬.
독액을 품은 롱 스피어 열두 개가 자줏빛 형을 띠며, 무시무시한 살기가 시우에게 짓쳐들어왔다.
콰과가가가강!!
사람은 당연하고, 거대한 몬스터조차도 갈가리 짖어발길 것 같은 선연한 예기(銳氣)가 시우가 있던 자리를 모조리 찍어 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거너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인상을 구겼다.
“이 씨발!! 네까짓 동양 놈이 어떻게 내 스킬을 막은 거야!!”
시우 주위를 감싼 두꺼운 얼음 장벽이 그 모든 공격을 막고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야 별거 아니니까?”
“개··· 개같은 소리 집어치워! 그 엿 같은 년을 죽이기 위해 고안한 스킬인데··· 감히··· 감히!!!”
그의 목소리는 끓어 넘치는 분노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거너는 단전의 모든 마력을 쥐어짜 다시 한번 술식을 전개했다.
이번에는 눈앞의 놈을 갈가리 찢어 놓으리라!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게,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줄 테다!
그러한 각오로 창을 소환하려는 찰나,
“킥킥킥, 게임 오버ㅡ!”
푸욱!
이반의 손가락이 거너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끄··· 르윽??”
거너의 눈알이 안쪽으로 돌아갔다.
콰지익!
이윽고 터져 버리는 머리통.
“킥킥킥킥··· 거너 씨. 고작 알마흐트 따위에게 ‘우리’가 협조하고 있는데··· 이 개새끼가··· 킥킥킥.”
이반은 뭐가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머리칼이 월광에 흩날린다.
“너는 뭐 하는 개새끼죠?”
물음을 던진 이반은 피에 흠뻑 젖은 손을 혀로 가져갔다.
그의 입가엔 조커처럼 귀까지 찢어진 흉터가 있었다.
“그냥 산책하는 사람인데.”
“킥킥킥. 재밌네요. 개새끼가 헛소리도 지껄이고.”
“너는 뭐 하는 개새끼냐?”
이반은 시우의 말이 뭐가 재밌는지 낄낄대더니 로브 소매를 걷었다.
너덜너덜한 붕대로 둘둘 싸매진 팔뚝.
“저는요, 웃는 사람입니다. 킥킥킥. 웃으면 개새끼들이 내 말에 복종하거든요.”
【젊은 나이에 맛이 갔다. 나 집에 가서 치킨이나 먹고 싶다.】
이반 옆에 있는 다른 로브는 그들의 모습에 관심 없다는 듯 멀거니 구경만 했다.
시우는 적들을 찬찬히 관찰하며 대꾸했다.
“그래. 근데 너한테 죽은 애는 말을 안 들었나 보지?”
“킥킥킥. 거너는 ‘우리’가 아닙니다. 그는 고작해야 [슈타이]를 누르고 싶어 했던 열등감 덩어리의 개새끼였죠.”
아, 그런 건가.
시우는 방금 이반이 던진 말과 거너가 말했던 ‘엿 같은 년’을 파악했다.
이번 HMCS 지부장들이 모인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들면 [슈타이 길드]와 길드장인 라일라는 처참하게 무너질 터.
그 자리에 대신 올라가기 위해 〈알마흐트〉라는 조직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이었다.
“그럼 너네는 뭐지?”
“ㅡㅡ.”
시우의 물음에 이반은 미소를 지우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정적이 어둠을 몰고 사위를 감싼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잠시 찾아온 고요.
이반의 어깨가 점차 들썩인다.
소름 끼치는 광기가 고요를 갉아먹는다.
쇠를 긁는 듯한 이반의 웃음이 숲 가득히 차올랐다.
“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킥. ”
시우는 본능적으로 두어 발 물러났다.
미친놈처럼 웃는 그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찐득거리고 불길한 전조.
그 흉흉한 근원적 악(惡)이 이반의 마력과 뒤섞이며 물방울에 검은 잉크가 퍼지듯, 그의 몸을 감쌌다.
아득한 암흑이 사위의 어둠을 살라 먹고 제 모습을 키워 간다.
부글부글부글부글 .
이반은 양팔의 붕대를 풀어 냈다.
그곳엔 선혈 가득한 상처가 수두룩하게 있었다.
“글세요오~~~~~ 제가 누굴까~~~~~~~~!!”
이반은 손톱으로 제 팔을 깊게 누르더니 깊숙이 힘껏 찢었다.
찌지지지지직!
새빨간 핏물이 땅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더러운 점액질이 타들어 가는 듯한 악취가 피어오르며,
– 끄이이이이
핏물은 이윽고 수많은 구울로 변했다.
“킥킥킥킥. 자아~~~ 시작해 볼까요~~.”
사령술사 이반의 눈알이 까맣게 물들었다.
***
화르르르륵!
– 꾸에에에에
헌터들은 파도처럼 들이치는 구울 떼에 정신이 아득해갔다.
벌써 한 시간은 족히 지났을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구울의 수는 줄지 않고 있었다.
“아아! 젠장맞을!! 게이트에서 나오는 놈들 아니었어?! 왜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오고 지랄이야!”
“아무리 게이트라도 이건 너무 많은데···.”
“[슈타이] 길드장님. 혹시 이 근처에 대량 학살이 일어난 곳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런 곳은 없습니다.”
라일라는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몬스터의 발현이 최대한 적은 곳으로 골라잡은 회의장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거대한 게이트가 생긴다?
혹은 마력 이상으로 자연 발생한 구울이 생긴다?
이건 확률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누군가 소환한 거 아니겠습니까?”
“오우ㅡ 금일 있습니다, 할로윈? 이건 살아 있는 시체들의 새벽! 나는 제조하는 자! 멕시코 살사 소스를!”
“마르티네즈, 상한 재료로 신성한 음식을 만드는 건 요리사에 대한 모독이야. 이따위 것들은 벨기에 와플로 만들면 그뿐!”
“이봐!! 마르코! 에펠탑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프랑스 새끼가 감히 벨기에를 욕해!?!”
마르코가 벨기에 와플을 비하하자, 벨기에 출신 헌터 파스칼이 소리를 빽빽 질렀다.
“다들 조용. 다음 웨이브가 또 들이닥친다.”
라일라는 손을 들어 다른 사람들의 잡담을 제지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소행 같은데··· 설마 사령술사라도 있나.”
“에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래 봐야고작 몇 마리 소환하는 게 끝일 텐데. 인간이 그만한 마기를 담을 수 없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스킬은 순수한 마나를 에너지원으로 한다.
자연에 흘러넘치는 풍부하고 자비로운 원소 자원.
하지만 어떠한 스킬들은 마나가 아닌 마기를 원천으로 현현된다.
인과를 무시한 채 세상의 이치를 거슬러 오르는 비틀린 능력.
사령술사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물론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마기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에, 사령술을 터득한 헌터라도 이만큼의 구울을 뽑아내기는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슈테판.”
“예, 부르셨습니까.”
라일라의 부름에 부하가 즉시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네 스킬로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라.”
“알겠습니다.”
슈테판은 그림자에 녹아내리듯 모습을 감췄다.
색적과 미행에 특화된 그의 스킬은 난전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구울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이 사태의 근간을 찾기 위해 발을 놀렸다.
‘분명 어딘가 마력이나 마기가 짙은 곳이 있을 텐데.’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숲은 너무 넓었고, 광활했다.
슈테판은 스킬을 강하게 운용했다.
근처에서 흉흉한 기운 하나가 또렷이 느껴졌다.
‘저기다!’
그는 급박한 임무란 걸 자각하고 힘껏 내달렸다.
‘분명 이곳에서 마ㅡ’
하지만 슈테판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퍼걱.
깨져 버린 그의 머리를 짓밟고, 누군가 걸음을 옮겼다.
Dulachán.
목 없는 기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