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8
50화〉
꼰대
살기나 격을 방출하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압박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닌, 죽지도 못하는 상태가 될까 봐 밀려드는 극한의 공포.
“재수강할래?”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에 성창원과 하준태는 개처럼 떨었다.
싫다는 거부의 말조차 입 안에서 부서져 나오지 않았다.
“정구랑 말 잘하더니, 왜 대답이 없어.”
“끄··· 아···.”
“뭐라는 거야. 제대로 말해.”
“그······.”
뭐라 지껄이려는데 성창원의 얼굴을 발견한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뭐야. 창원이랑 준태 아냐. 왔으면 나부터 찾아야지.”
〈HMCS 한국 지부〉 인사팀 박지철 과장.
그는 풍채 좋은 몸을 이끌며 성창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온몸에 걸친 명품이 샹들리에 빛을 받으며 반짝였다.
“아··· 과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일본 잘 다녀왔고? 준태도 반갑다.”
“안녕하십니까···.”
그들은 새하얀 안색으로 박지철과 악수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가?”
박지철은 가운데서 어깨동무하고 있는 시우를 보며 물었다.
나름 인사팀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그가 모르는 HMCS 헌터는 거의 없었다.
신입이거나 핫바지가 아닌 이상엔 말이다.
박지철은 고급 시계를 두른 팔로 자신을 가리키며 입꼬리를 올렸다.
“푸흐흐. HMCS 다니면서 나를 모르는 건 아니지? 어디 낙하산ㅡ.”
“이쪽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과장님.”
그때 옆에 있던 황정구가 대신 끼어들며 소개했다.
시우는 자신과 달리 상대를 봐 가면서 굽신거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시우 또한 강하게 나갈 게 불 보듯 뻔한 일.
그러기 전에 중간에서 대화의 흐름을 바꾸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아이고, 우리 황 팀장, 황정구 아냐. 오랜만이네.”
황정구는 시우에게 필사적인 눈짓을 보냈다.
제발 부탁이니 소란을 피우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호소.
시우는 평소 서류 작업을 도맡아 해 주는 자신의 상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워도 참아야지. 서류 쓰는 게 더 귀찮으니까.’
박지철은 황정구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네 소식은 잘 듣고 있다. 얼마 전에도 암살 조직 쳐부수고 잘 나가고 있다며? 이러다 곧 과장 직함 달겠어?”
“아닙니다. 박 과장님처럼 되려면 멀었죠.”
“하하하, 아! 그리고 [백사자] 추하민이랑 같이 했다며?”
박지철은 주로 잘 나가는 헌터들과 인맥 쌓는 걸 즐겼다.
헌터로서는 잘 나가지 못했던 그였지만, 조직 생활과 인맥 관리, 사내 정치질은 그의 적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 위치까지 오게 된 것도 그런 노하우들 덕분.
“요즘도 추하민이랑 친하게 지내? 나도 [백사자] 쪽 파이프 하나 만들려고 고민 중이거든.”
이런 인맥들이 쌓이게 되면 훗날 HMCS 정도가 아니라 메이저 길드 인사팀에 스카우트 될 수도 있다.
발 넓은 헌터는 어딜 가도 환영받기 마련.
게다가 [백사자 길드]면 대한민국 헵타그램 중 하나가 아니던가.
“나중에 언제 추 헌터 불러서 셋이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내가 거하게 쏠 테니까.”
“네, 한번 알아는 보겠습니다.”
황정구는 떨떠름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는 속셈이 너무 뻔히 보여 상대하기 싫은 타입이었다.
박지철은 잘 나가거나 연줄이 있는 헌터들만 편애하고 그렇지 못한 헌터들에겐 가차 없이 굴었다.
황정구, 성창원, 하준태도 HMCS에서 잘 나가는 헌터이기에 일부러 찾아와 아는 척을 했던 것.
그럼에도 황정구가 꼿꼿하게 나가지 않은 이유는 박지철이 헌터 선배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창원이랑 준태도 얼른 실적 내야지. 이러다 우리 정구한테 다 먹힐라.”
박지철은 느물느물하게 편 가르기를 했다.
‘요즘은 창원이보다 정구가 잘 나가니까. 줄을 살짝 건드려 줘야지.’
성창원이 자극받아도 굳이 자신을 욕하기보단 비교당한 황정구를 질투하기 마련일 터.
그리고 현장 헌터가 아무리 잘 나가 봤자 인사팀 평가 몇 마디에 승진을 누락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 날고 기는 A급 이상의 팀장급들도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 아니겠는가.
‘어휴, 씨발 꼴 보기 싫어. 자리에 미친 새끼.’
황정구는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지철은 성창원 편에서 황정구를 까 내렸었다.
왜냐하면 성창원이 한계를 극복하고 A+로 격이 올랐기 때문.
그런데 이제 와 다시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자니 옆에서 말조차 섞기 싫었다.
황정구는 대화를 대충 마무리하고 다른 자리에 가기 위해 시우에게 눈짓했다.
그들이 여기 있어 봐야 좋은 꼴을 볼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후배님은 인상이 참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데 박지철의 말이 다시금 그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대선배들 어깨에 손을 함부로 올리면 쓰나? 요즘은 헌터들 기수 같은 거 없어? 나 때는 선배들 말이 칼이었는데.”
이 중에서 그가 무조건 내리누를 수 있는 상대는 시우밖에 없었다.
상대가 만만하다고 여기면 어떻게든 물고 뜯어서 아래로 끌어 내리는 게 박지철만의 헌터 길들이기.
옛 헌터 시절.
그는 약하다는 이유로 심한 차별과 무시를 받아 왔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급은 올라가지 않았고, 다른 헌터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굴욕감과 패배감 짙은 생활을 몇 년간 해 왔고.
결국 자리를 잡은 지금은 본인이 당했던 것들을 다른 헌터들에게 풀고 있는 것이었다.
“아··· 박 과장님, 제가 나중에 잘 타이를 테니까 이 정도만 하시죠. ”
“역시 우리 황 헌터. 사람이 참 착해, 응? 우리 땐 주먹이 먼저 나갔는데. 나도 참 많이 죽었다.”
박지철은 주먹을 쥐더니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예전이었으면 앞에서 눈도 못 마주치게 했을 텐데. 요즘 헌터들 참 편해, 그치? 황 헌터도 그렇고 창원이나 준태도 마음들이 여려서.”
이름이 불린 성창원과 하준태는 안절부절못하며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이 아니라, 잠자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시우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어이, 신참님. 그렇게 목 뻣뻣하게 굴다가 부러지는 수가 있어요. 내가 현역 아닌 걸 감사히 여기세요. 알았죠?”
박지철은 시우의 볼을 살짝 꼬집더니 뺨을 툭툭 쳤다.
“그, 그만하시죠, 과장님 저희 친해서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무척이나 괜찮습니다.”
“다른 자리로 이동해서 저랑 한잔하시죠!”
시우의 표정을 본 다른 사람들은 머리에서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더 자극하면 분명 이 판을 다 뒤집어엎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아이고, 노려보시네. 이 신참은 내가 HMCS에서 어떤 위치인지 모르지? 지부장님도 눈치 보는 게 이 박지철인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박지철은 어느 곳에서나 센 척하는 걸 좋아했기에, 이번 기회에도 어리숙한 헌터 하나를 잡아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킬 참이었다.
“신참님. 평생 HMCS에서 일할 거예요? 솔직히 대기업 가기 힘드니까 여기 와서 경력 쌓으려는 거잖아. 그런데 나를 자꾸 노려보고 목에 힘주면 대기업 가기 곤란해진다?”
사실 그가 굵직하게 연결 고리를 가진 대형 길드는 없었다.
안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같은 영업팀 직원들 정도.
하지만 이렇게만 얘기해도 급 낮은 헌터들은 벌벌 떨기 마련이었다.
그 이유는 HMCS에서 경력을 쌓고 중견급 헌터로 길드에 스카우트 되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
HMCS가 복지나 대우가 별로라고는 해도 경력으로써는 꽤 쳐주는 곳이었다.
“신참님. 대가리를 써야지, 몸 써서는 이 바닥에서 오래 못 버텨. 내 시계 보여? 이게 1억이 넘는 거야. 대가리 못 굴리는 티 내지 말고, 이제부터는 박지철 형님 똥 닦아 주며 산다, 그런 마음가짐을 먹으란 말야.”
박지철은 시우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가며 비웃듯 말했다.
이런 뿌듯함과는 별개로 황정구와 성창원, 하준태는 가시방석에 앉다 못해 물구나무를 선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씨발··· 오늘따라 이 인간이 대체 왜 지랄이야! 누구 여기서 다 뒤지는 꼴 보고 싶은가?’
시우의 영하로 뚝 떨어진 눈빛을 본 황정구는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했다.
식은땀이란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
누군가가 인파를 헤치고 천천히 다가왔다.
모든 사람의 인사와 악수를 받으며 주목을 이끈 존재는 이 연회의 주최자인 ‘HMCS 대한민국 지부장’ 백건호.
그의 옆에는 HMCS의 간부진들 및 지부장과 말이라도 섞어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박지철은 이때다 싶었다.
지부장과 친한 모습을 보여 주위 사람들에게 확인 사살을 꽂아 넣고 싶은 것이다.
백건호가 여기저기에 손을 흔들어 주고 악수도 해 주며 점차 다가오자, 박지철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ㅡ 이런 곳에 있었나.”
“예, 지부장님 인사팀 박지철입니다!”
박지철은 손을 흔들려던 백건호 앞으로 후다닥 다가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응? 어, 그래···.”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 독일 다녀오실 때 제가 뽑은 경호원이 임무를 잘 마친 것 같아 다행입니다!”
백건호가 며칠 전 독일행에 올랐을 때 박지철은 그의 호위 역할로 자신이 밀어주려는 헌터를 붙였다.
등급도 좀 되고, 무엇보다 [제국 길드]에 라인이 하나 있는 놈으로 말이다.
경호 임무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안면 트고 말동무해 주다 보면 정들고 친해지기 마련이었다.
입만 잘 털어도 고위직과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부장님 쪽에도 파이프 하나 놓고, 제국에도 하나 놓을 수 있겠지.’
이번 독일 회의는 구울 습격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지만, 독일 당국에서 철저한 조사를 위해 언론을 통제하여 사건을 축약해 보도했다.
따라서 대다수 HMCS 한국 지부 사람들은 사건의 규모가 어느 정돈지, 누가 사건을 수습했는지,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아는 게 없었다.
박지철이 독일에서 받은 정보도 짧았다.
사상자들이 많았지만, 한국인 사상자는 없다는 정도.
그리고 한국 헌터 한 명이 너무 잘 싸웠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게다가 백건호가 귀국하자마자 〈HMCS 한국 지부〉에서도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하지 않았던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고서는 그런 홍보를 하지 않을 텐데. 이래서 라인은 잘 만들어 놔야 한다니까.’
백건호 지부장은 이미 파이프 공사가 완료된 것이라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이제 함께 업혀 고공 행진만 준비하면 될 차례.
“아, 경호 담당 추천했던 자가 자네였나?”
“예, 맞습니다! 지부장님 옆에서 잘 보필하라고 교육시켜서 보냈었습니다.”
박지철은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굽신거렸다.
“그래? 그 친구 이름이 최인탁이었지?”
“하하하! 지부장님이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현재 경기 남부지부에 속해 있는 유망주입니다!”
“아, 그렇구먼.”
“지부장님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울 정도로 용감한 친구인데, 앞으로 HMCS를 이끌 인재라고 믿습니다! 저, 인사팀 박지철이 추천하는 최인탁 헌터입니다!”
박지철은 자신의 이름과 더불어 최인탁의 이름이 각인될 수 있도록 똑 부러지게 말했다.
이 정도면 백건호는 물론이거니와 옆에 있는 간부진들도 기억했으리라.
“날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백건호는 생뚱맞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이번 독일 구울 진압에서 최인탁 헌터가 잘 싸웠다고 HMCS에서 홍보 준비 중이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자네 그 헌터랑 연락은 해 봤나?”
“안 그래도 조금 전 통화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안 받길래···.”
박지철은 백건호의 반응이 냉담한 것을 느끼고 덩달아 말끝을 흐렸다.
“그놈은 경호원 자격으로 가 놓고선 과음한 탓에 구울이 아니라 숙취랑 싸우던데.”
“예?? 하, 하지만 경호하러 갔던 헌터가 잘 싸웠다고 이번에 마케팅을···?”
“그 친구는 내가 개인적으로 데려간 헌터였네.”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판단했던 박지철은 최인탁을 향해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 미친놈이! 대형 길드랑 연줄 있다고 오냐오냐해 줬더니··· 그 지랄을 해 놓고 나한테 말도 없이 잠수를 타?!’
최인탁이 연락을 안 받았던 이유가 단박에 이해가 됐다.
똥을 제 마음대로 싸 놓고 수습을 못 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따끔하게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짓이 너무 예뻐서 잘해 주려 한다는 게 그만···!”
박지철은 다시금 고개 숙였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수월하게 잘 풀린다 했다.
“뭐, 신경 쓸 거 없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으니까.”
“···면목이 없습니다.”
그는 구겨지는 이미지에 열불이 뻗쳤다.
‘최인탁 이 새끼, 평생 밑바닥 헌터만 하게 해 주마.’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얼굴 비쳤으니까 그만 가면 안 되나.”
시우의 권태 가득한 목소리.
백건호 옆에 있던 간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그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부장 앞에서 저게 할 소린가, 싶었던 것.
“야, 이 미친 새끼야! 너 정신 나갔어!”
박지철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시우를 째려봤다.
인사팀으로 돌아가면 이 자식부터 갈아 마시리라.
그는 황정구와 성창원, 하준태를 곁눈질하며 빨리 저놈을 치우라고 인상 썼다.
황정구는 이제 수습하는 걸 포기했다.
벌써 몇 번째 목숨을 구해 줬는지, 박지철은 모를 것이다.
따라서 황정구는 ‘나보고 어쩌라고’ 같은 표정을 지었고, 성창원과 하준태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박 과장, 자네 미쳤어?”
백건호가 사색이 된 얼굴로 박지철을 노려봤다.
“예? 지부장님··· 그··· 신입 놈이 건방지게 굴길래···.”
“이 자식이 자꾸 누구한테 놈놈 거려! 인사팀이면 현장직 헌터한테 욕해도 돼?!”
“아, 아닙니다! 펴, 평소엔 절대 욕하지 않습니다!”
백건호의 느닷없는 호통에 박지철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밉보였다간 자신이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우가 나긋나긋 입을 열어 분위기를 바닥으로 처박아 버렸다.
“아까 나한테 대가리 못 굴리고 몸 쓰는 것들이 나댄다고 했는데. 자기 똥이나 닦고 살라면서. 그래서 몸조심하려고 먼저 들어가렵니다.”
“너······!”
박지철은 삿대질과 동시에 백건호의 눈치를 살폈다.
백건호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써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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