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
5화〉
먹다
시간은 잠시 거슬러 시우가 게이트에서 나왔을 무렵.
“형···이라고요?”
윤승규의 질문. 그러나 민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십 년이 흘렀다.
제4계 마왕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던 파티.
쓰러진 적.
죽어 가던 마왕이 뿌린 빛살에 사라진 형.
민시준과 형의 제자들은 백방으로 시우의 행방을 살피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흔적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헌터 협회〉에 실종 의뢰를 내고, 전 세계에 있는 친한 헌터들에게 백방으로 수소문까지 했건만.
그 모든 노력을 포기한 게 5년 전.
그런 형이 작은 액정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세요.”
“네?”
바람에 꺼질 듯 희멀건 목소리.
윤승규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간 민시준의 옆에서 그를 보좌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수배 내리고. [제국 길드]에 있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서라도 찾으시라고요. 절대, 절대 붙으려 하지 말고 민시준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데려오세요. 얼른!!”
윤승규가 자리를 뜨자, 민시준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과연 형이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있다 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 없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있었다면 진작 자기를 찾아왔겠지.
그렇다면, 만약 십 년 만에 한국에 온 것이라면, 그는 어딜 먼저 갈 것인가.
“저···.”
신지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아직도 계신지 몰랐군요.”
“아, 아니에요. 제가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민시준은 물끄러미 신지수의 모습을 바라봤다.
착하고 어진 사람이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 일행, 그러니까 저희 형이랑 함께 보스를 끝마치고 나온 겁니까?”
“맞아요. 사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고 다 그분이 한 거긴 한데··· 어쨌든 같이 각성해서 나온 건 맞아요.”
“그렇군요. 예상보다 빨리 나왔을 테니 스킬도 괜찮은 걸 얻으셨겠네요.”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A등급 스킬이 나오기는 했어요.”
신지수는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A등급이라.”
민시준은 본능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A등급. 아직 최종 검사는 하지 않았다지만, 미리 잡아 두는 게 좋겠지. 최소한 B급 헌터가 될 소지는 있으니까.’
헌터의 급은 스킬과 종합적인 능력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A등급 스킬만 있어도 S급 헌터가 될 수 있고, 반대로 S등급 스킬이 있다 하더라도 A급 헌터가 될 수 있는 법.
하지만 보통은 A등급 스킬이면 A급 헌터가 되고, S등급 스킬이면 S급 헌터가 되고는 했다.
“저희 형 덕분에 나오셨다니 이야기가 편하겠군요. 저는 [제국 길드] 민시준입니다. 계약 조건 최대한 맞춰 드릴 테니, 저희랑 계약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민시준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 느닷없는 제안에 신지수는 꿈이라도 꾸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헌터들의 염원이라 여겨지는 헵타그램 중 하나 [제국 길드]에서, 그것도 영업부 직원이 아닌 민시준이 직접 명함을 건네주다니.
“네? 제, 제, 제국이랑요? 정말요? 이거 정말이죠? 그래 주신다면 저야 당연히 가문의 영광이一.”
“너무 방식이 양아치시네.”
순간 다른 음성이 끼어든다.
동네 건달의 그것과도 같은 껄렁껄렁한 목소리.
민시준은 그 갑작스러움에도 놀라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하얗게 물들인 머리와 검은색 슈트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귀공자 스타일의 남자.
그 모습은 민시준으로서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 누구도 헌터로 보지 못할 외모.
“류지환 헌터. 말씀 좀 가려서 하시죠.”
“아一 이거. 죄송하게 됐수다. 선배님한테 제가 너무 솔직하게 말을 했네요. 알다시피 제가 앞뒤가 똑같은 성격이라서.”
“그러게요. 똥물도 위아래가 있다는데, 생각 좀 하고 말하셔야죠. 개념 없이.”
“하하하. 그렇게 하겠수다. 선. 배. 님.”
류지환은 한쪽 입꼬리만 일그러트려 올려서 대꾸했다.
둘은 서로에 대한 살기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어떤 한 명이 마나를 갈무리하지 못하는 순간, 끔찍한 혈투가 시작될 것이다.
두 S급의 대결이란 건 단순히 치고 박고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일대에 경보를 내려야 할 정도의 사건.
신지수는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기가 층층이 무거워진다.
마치 거대한 호랑이와 용이 마주한 듯한 모습에, 그녀는 절로 눈물이 고였다.
“이거一 선수를 빼앗겼네요.”
이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터질 듯 부풀던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시선이 분산된다.
“···최성일 헌터.”
S급 헌터인 류지환에 이은 또 다른 S급 헌터의 등장.
그러나 류지환과는 악연이 있는 최성일인지라, 민시준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류지환과 민시준은 감정을 추슬렀다.
아무리 헌터법이 일반법보다 위에 있다고는 하더라도, 두 S급이 아무렇게나 싸워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악연이기에 나온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이었을 뿐.
“다들 협회의 연락을 받고 오셨나 봅니다.”
최성일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머지 넷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으니. 우리 셋이 이야기를 끝내면 될 것 같군요.”
7인의 S급 헌터가 세운 최강의 일곱 길드.
그중 셋이 이곳에 모인 것이었다.
“누가 제일 먼저 왔죠?”
“제가 먼저 왔습니다.”
“역시 [제국]의 민시준 헌터가 제일 빨랐나 보군요. 그다음이 [금강]의 류지환 헌터고.”
“네. [백사자]의 최성일 헌터가 마지막이십니다.”
최성일은 주변을 빙 둘러본 뒤에 언뜻 이해되지 않는단 얼굴을 했다.
“두 분이 싸운 것 치고는 뭔가 이상하네요. 건물이 부서지지 않은 건 둘째치고, 경비대만 당한 걸 보니 두 분의 짓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이게 협회에서 말한 ‘명부에 없는 각성자’가 한 짓이란 겁니까?”
최성일의 지적에 류지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딱 보니까 성격 꽤나 더러운 새끼겠구먼. 나오자마자 이 지랄병을 떠는 걸 보니 말야.”
“그러게요. 누군지는 몰라도 얼른 찾아야겠군요. 이만한 스킬을 각성했다는 건 그만큼 고급 인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뜻하는데. 두 분 앞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탐나네요.”
“큭큭. 먼저 찾는 놈이 임자로 할까, 그럼? 누구처럼 혼자서 날름 처먹으려다가 배탈 날까 봐 고민하고 있었는데.”
류지환의 노골적인 비아냥에도 민시준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사실 그가 가장 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포커페이스였다.
민시준은 원체 감정 표현에 솔직한 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드라는 거대한 사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필요로 했던 게 감정의 절제였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하나하나 잘라 내어 갔다.
민시준은 포커페이스를 지을 때마다 떠오르는 웃음이 있었다.
평생을 한결같은 얼굴로 살아온 남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아파도 늘 피식거리며 웃기만 했던 바보 같은 사람.
형.
“그럼 우선 각자 찾아보도록 하죠. 아마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여성분은 명함 하나씩 주고 스스로 고르라고 하죠. 부담스러우실 테니.”
“상관없수다. 걍 알아서들 하는 거로 하죠. 그럼 먼저 가겠수다. 선. 배. 님.”
“잘 가시죠. 입 더러운 후배님.”
“카악一 퉤!”
류지환은 그를 지그시 노려봤다.
‘언젠가는 그 잘난 낯짝을 깔아 뭉개 주마. 민시준.’
***
시우는 밖으로 나왔다.
고작 10년일 텐데. 서울은 그가 알던 곳과 선연히 다른 느낌을 전해 주었다.
하긴.
그 10년의 세월은 이계라는 곳에서 지낸 100년의 공백이 압축된 시간일 터.
낯선 것을 넘어서 전혀 새로운 곳에 당도한 느낌이다.
시우는 그가 알던 지구와 지금의 지구가 다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식량아, 여기가 네가 살던 곳이냐? 너 같이 생긴 것들이 너무 많다. 정신없다. 다 먹고 싶다.]
“후.”
이제는 오히려 내면에서 울리는 이 목소리가 더 낯이 익다.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보낸 시간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과거도 그도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차라리 이계가 더 정감 간다고 한다면··· 여기에 올 이유는 없어지는 걸까.
분명 기억에는 있는데, 문제는 기억에만 있다.
그 어떤 감정이나 추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지구의 모습.
시우는 변한 게 서울의 풍경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무인도에 갇혀 수십 년간 홀로 생활하던 조난자가 하루아침에 서울 한복판에 떨궈진 기분.
【너 왜 똥 먹은 표정이냐. 오고 싶다고 지랄할 땐 언제고. 네 얼굴이 꼭 식어 빠진 고기처럼 맛없게 생겼다.】
이 미친놈이.
시우는 잠시 스쳤던 공허 대신에 분노가 화르륵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 덕분에 우울증은 걸리지 않았다.
분노 조절 장애가 생겼다면 모를까.
“야. 너 치킨 처먹고 싶다고 했지.*
시우는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치킨! 우리 치킨 먹는 거냐? 나도 드디어 치느님 영접하는 것이다.】
시우가 이계에 있을 적, 밥을 먹을 때마다 ‘객식구’에게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열거하고는 했다.
“이딴 건 고기가 아냐.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어 가는 삼겹살 정도는 돼야 고기지.”
“야. 치킨을 어디 이딴 육포 같은 질긴 고기랑 비교를 해. 치킨은 입에 넣는 순간 녹아.”
“한우라고 있어. 꽃등심이나 제비추리 구워서 먹으면 넌 다른 고기는 입에 맞지 않게 될 거다.”
이런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언급을 했던 음식, 치킨.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감정이 변했다고 한다면.
과연 냄새나 맛과 같은 것은 어떨까.
시험해 보면 되지.
그는 눈에 띄는 치킨집을 찾아 들어갔다.
띠리링.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밝은 목소리가 시우의 입장을 반겼다. 아직 시간이 시간인지라 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시우는 빈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그가 있었을 적에는 기껏해야 양념과 후라이드, 간장 정도가 전부였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이야.
생전 처음 보는 이름에다가 비주얼도 일반적인 통닭과는 다르다.
치킨 전문점이 아니라 치킨 레스토랑에 들어온 착각마저 든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귀여운 인상의 직원이 다가와 묻는다.
시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메뉴판 구석에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네, 알겠습니다! 맛있게 해서 갖다 드릴게요!”
그녀는 곧바로 뼈를 담을 통과 치킨 무, 과자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잠시 뒤.
“주문하신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직원은 시우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고는 사라졌다.
하아.
【나 치느님 본다. 치느님 피처럼 붉고 암벽처럼 단단하게 생겼다. 마치 스톤 골렘과 파이어 골렘 같다. 우람하게 생기셨다.】
시우는 먼저 냄새를 맡았다.
기름에 튀긴 닭 냄새가 양념과 함께 후각 세포를 찌릿하게 자극했다.
그 냄새가 주는 고양감이 시우의 날 선 신경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잊고 있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었던 냄새.
“마치 엊그제 맡았던 기분이네.”
콧속 신경세포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에 신호를 보낸 탓일까.
시우는 마른 스펀지에 물을 빨아들이듯 치킨과 관련된 기억 하나를 순식간에 떠올렸다.
힘든 알바를 끝내고 돌아가는 퇴근길.
통닭 한 마리를 사 가면 유난히 반가운 얼굴로 그를 반기던 사람.
‘너 형이 보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통닭이 보고 싶었던 거야?’
‘둘 다!!’
시준이, 내 동생.
지금은 얼마나 더 컸으려나.
【주접 그만 떨고 음식 내놔라. 다 식는다.】
이 개같은 놈이 진짜···.
시우는 자신의 감상을 방해한 놈을 향해 인상을 쓰고는 손을 가져다 치킨에 댔다.
【맛없으면 너 죽인다.】
“닥치고 처먹어.”
시우의 손끝에서 새까만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치킨 조각 하나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소리조차 없는 기민한 움직임.
“어때?”
【······나는 내 모든 생을 손해 보고 살았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는 닭 다리 하나를 가져다 자신의 그릇에 놓고는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아, 욕이 나오려 하네.
시우는 두 눈을 감고 천천히 그 맛을 음미했다.
맛의 소용돌이, 맛의 폭풍, 맛의 회오리가 그의 미각을 각개격파하고 있었다. 침샘이 찌릿하며 엄청난 양의 침이 물밀듯 흘러넘쳤다.
미쳐 버리겠다.
100년간 내가 먹었던 것들은 대체 무엇?
【이건 치느님 아니라 치왕, 치대왕, 치황제, 이런 이름으로 물러야 한다. 우리가 죽였던 드래곤보다 치느님이 더 위대하다.】
“내가 말했지? 맛있을 거라고.”
[알았으니 어, 얼른 더 내놔라! 너 혼자 다 처먹지 말아라! 남은 것은 다 내 것이다!】“내 돈이야. 미친놈아.”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양념치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번엔 순식간에 세 조각이 사라졌다.
“야, 너 혼자 다 처먹냐?”
【오오, 만약 치킨을 먹기 위해 개종을 해야 한다면, 난 오늘부터 치느교로 개종하겠다. 나 너 따라서 이곳에 오길 잘했다.】
“그래, 그래야지.”
【처음에 지구로 간다고 했을 땐, 웬 병신같은 생각인가 싶어서 싸우다 함께 죽으려 했다. 그때 안 죽길 잘했다.】
하, 꼭 쓸데없이 2절을 붙여요.
시우는 치킨을 다 먹고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참고로 계산은 신지수에게 계약금 명목으로 받은 십만 원으로 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이냐.】
“어디긴.”
시우는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음색은 치킨을 먹을 때하곤 달리 씁슬한 느낌이 가득 묻어 있었다.
“집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