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1
53화〉
파트너 변경
“길드장님, 어제 HMCS 연회장에 [백사자]와 [제국]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제국]··· 길드장이 직접 갔단 말이야?”
“네. [제국]의 민시준 길드장, [백사자의 최성일 길드장과 추하민 헌터도 직접 참여했습니다.”
강여화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민시준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 언저리에서 많은 감각이 소용돌이쳤다.
다른 이들이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건 견딜 만했지만, 민시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보는 건 마음이 쓰라렸다.
지독히 밀려오는 미안함과 서운함.
그 쓸쓸한 고독을 매일 알약처럼 집어삼키며 지난한 시간을 버텼다.
몇 번이고 털어놓고 싶었다.
울부짖으며 외치고 싶었다.
나도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하나뿐인 스승님을 위해 하는 짓이라고,
그러니 날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알아 달라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야. 우리는 청와대에서 시킨 작업에 집중하도록.”
“하지만 얼마 전 독일 기사도 그렇고··· HMCS에서 대대적인 개편을 한다는데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강여화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HMCS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긴 했지만, 솔직히 관심 밖의 일이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승에 관한 일뿐.
“거기서 눈여겨볼 사람은 성창원, 황정구, 공길··· 이 정도밖에 없을 텐데. 이 건은 굳이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
HMCS 서울 지부 3대 헌터.
저 셋을 제외하면 딱히 경계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 황정구가 추하민과 함께 킬러 조직을 와해시킨 것, 그리고 성창원이 입원하면서 유난히 조용해진 걸 빼면 별다른 특이 사항도 없었고.
“새로 들어온 헌터가 조직 개편에 중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민시준 헌터 측근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강여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길드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HMCS에 측근을 만들었다고?’
민시준은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형인 시우가 사라진 뒤 미친 듯이 앞만 보며 길드를 확장 시키고 키워 오기만 한 사람이다.
계산적이고 철두철미하며 오로지 [제국]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냉철한 두뇌.
그게 민시준이었다.
‘HMCS 개편에 [제국]과 [백사자]가 투자라도 했나? 거기서 이득 될 만한 게 있진 않을 것 같은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것보다도 민시준의 행보가 마음에 걸렸다.
“길드장님, 어떻게 할까요? 제 선에서 알아볼까요?”
“그래. 혹시 특이한 사항 있으면 따로 알려 주고.”
강여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타 길드에서 원성이 자자합니다. 너무 정부 측에 요구대로 하는 거 아니냐면서ㅡ.”
“적당히 아부하고 적당히 처먹어라, 이 말이겠지.”
“···어쨌든 [청화 길드]의 성장과는 반대로 헌터 업계에서는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강여화는 침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본인의 길드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시우를 되찾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
그럼에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승님이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서라도 보상해 줄게.’
***
“······이게 다 뭐지?”
【드디어 내 무서움을 알아본 것이다! 날 찬양하고 숭배하고 치킨을 바치는 것이다!】
시우는 출근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황정구, 성창원, 하준태, 지유리를 비롯한 HMCS 강북 지부 헌터들이 도열한 채 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선배님!”
“””오셨습니까!!”””
황정구가 선창하며 90도로 숙이자 다른 헌터들도 따라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우는 귀찮아진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아ㅡ.”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ㅡ.”
“정구야.”
“예! 선배님!”
“다 치워.”
“그··· 알겠습니다! 다들 해산!”
황정구는 변명하려다가 순간적으로 시우의 눈빛을 읽고 말을 바꿨다.
‘저건 정말 짜증 나서 짓는 표정이다.’
다른 헌터들은 후다닥 흩어지더니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황정구와 성창원, 하준태는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고, 지유리는 자리로 돌아가려다 성창원에게 붙잡혔다.
“너넨 왜 이래.”
안 그러던 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보기에 무척 불편하다.
그들은 시우의 질문에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이제부터 선배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황정구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나를 왜.”
“저희가 아무리 까불어도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밑으로 들어오겠다?”
“네, 그렇습니다.”
성창원은 어렵게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서 정신과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회복하면서 그날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고쳐 간 덕에 헌터로서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무시하고 지내다 나중에 기회 봐서 역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연회장에서 시우가 어깨에 팔을 걸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느꼈던 압박감은 태어나 겪어 본 그 어느 공포와도 결이 달랐다.
A+급 헌터가 느껴 볼 리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
게다가 백건호와 호형호제를 하고, [제국 길드]의 길드장이 동생인데다가, 아수라 추하민이 스승이라 부른다?
이기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옛 격언은 이럴 때 써먹는 말이었다.
그 결말이 박지철이었다.
“이건 똑똑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시우는 성창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찌할까 고민했다.
감히 신입 직원이 A+급 헌터인 팀장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 누구도 항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구랑은 얘기된 거냐?”
“네, 선배님. 분란 만들지 않고 잘 지내겠다고 합니다.”
“그래?”
시우는 집단 내에서 파벌을 만들거나 자신만의 조직을 형성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귀찮았기 때문에.
대신에 옆에 오는 사람은 막지 않았고, 가겠다는 사람은 붙잡지 않았다.
“교육 다시 안 해도 될까? 난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인데.”
느물느물한 말투.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성창원과 하준태는 납빛으로 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있어 시우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아니라 이미 창공으로 치솟은 세계수와 다름없었다.
헌터로서의 힘도, 사회적인 위계도, 모두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
“자, 잘하겠습니다··· 보스.”
“저도 충성합니다.”
A+급 헌터로서 이만큼이나 커다란 무기력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 사이좋게 지내라.”
시우는 얼어붙은 지유리의 머리를 헝클듯 쓰다듬은 뒤에 황정구의 사무실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황정구와 성창원이 따라 들어왔고, 시우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사건 새로 들어온 거 있어?”
“네, 여기 정리해 놨습니다.”
황정구는 자연스럽게 서류철을 넘겼다.
시우는 파일을 하나하나 넘기며 사건을 검토했다.
HMCS의 유망주로서 범죄를 수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위험한 것 같거나 까다로울 듯한 임무를 가져가려는 것뿐.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것도 내가 할까?”
“선배님이 다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성창원 헌터랑 하준태 헌터도 복귀했고, 저도 현장에 투입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너랑 창원이랑 준태랑 여기에 가고, 나는 지유리랑 여기에 간다.”
시우는 두 장의 문서를 뽑아 한 장은 황정구에게 넘겼다.
“지, 지유리가 보스랑 같이 가는 겁니까?”
성창원은 겁먹은 얼굴로 황정구를 쳐다봤다.
차마 시우의 눈을 마주하며 물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네 부하 빌려주기 싫어?”
“아닙니다! 목숨을 바쳐 도우라고 하겠습니다!”
“목숨은 왜 바쳐 등신아. 죽을 것 같아도 살아남아야지.”
시우는 바짝 긴장해 있는 성창원의 머리를 토닥였다.
“선배님, 굳이 그 케이스를 고르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글쎄. 별 이유는 없는데. 너희들은 남자 셋이니까 어려운 거 하고, 나는 여자랑 가야 하니까 쉬운 곳 골랐어. 왜? 떫어?”
“······설마요.”
셋이 합친다고 퍽이나 선배님보다 강하겠네요.
어차피 시우의 인원 배치는 늘 옳았다.
적재적소에 적합 헌터를 넣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까라니 까야지.’
황정구는 제발 별일 없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
“보스님··· 이곳엔 왜 온 거예여?”
지유리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새까만 지우개로 지워 낸 듯 어둠이 어찬 산의 초입.
반항 한번 못해 보고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지유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시우는 그녀에게 그저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 타.
그렇게 차에 올랐고, 대화 하나 없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성창원과 하준태가 설설 기는 마당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는가.
그저 순종하고, 반항하지 않고, 까불지 않는 것.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체 이 시간에 이딴 곳은 왜 왔을까.
“저기여. 너무너무 무섭거든여··· 이런 한밤중에 여자 하나 딸랑 데려오신 이유가···.”
시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지?’
지유리는 B+급 헌터였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걸로 무섭지 않을 텐데.
“아··· 아니에여. 죄송해여 보스님···.”
시우는 그저 궁금해서 쳐다봤을 뿐이지만, 겁먹은 지유리는 사과부터 했다.
“발밑이나 조심해.”
“네에···.”
이따금 들리는 산짐승의 소리와 어둠으로부터 전해지는 오싹한 한기.
푸드드득.
“꺄악!”
지유리는 기어코 시우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그녀의 뒷덜미를 축축하게 만들고 오감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시우는 그녀를 잠시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무서운 것에 대한 저항성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B+급 헌터가 되어서 이런 불분명한 공포를 무서워할 줄이야.
“너···.”
“자, 잠깐만여! 말 잘 들을 테니까 놓으라고 하지 마세여, 보스님!”
지유리는 도화지처럼 창백해진 낯으로 애걸하듯 말했다.
거절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빛이었다.
“···놓으라고 안 했어. 손잡아 줄 테니까 잡고 따라와.”
“가, 감사해여··· 보스님.”
지유리는 갑작스러운 시우의 제안에 감동 아닌 감동을 받았다.
비록 말투나 표정은 무뚝뚝했지만, 행동이나 배려는 다른 헌터들에게선 볼 수 없는 세심함이 있었다.
어디 성창원이나 하준태가 이런 배려를 해 준 적 있었나.
지유리는 시우의 손을 다소곳이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서늘한 공기를 잊게 해 주었다.
“저기요ㅡ 보스님. 우리 어디 가는 거예여?”
“사건 파헤치러 가지.”
“무슨 사건인데여?”
“귀신 출몰.”
지유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뭐가 나온다고?
“그··· 아··· 귀, 귀신을 닮은 몬스터인 거져? 예를 들면 좀비라든가, 혹은 레이스 같은?”
“글쎄. 정말 귀신 같다고 쓰여 있던데. 물리 공격이 효과가 없었다고.”
“그러면 우리도 갈 필요 없는 거 아닐까여! 공격이 안 듣는다니까!”
“물리 공격이 안 통하는 상대라.”
시우는 이날 처음으로 지유리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엄청 재밌겠는데.”
“하하··· 그러게여.”
끌려가듯이 붙잡혀 터덜터덜 걷던 지유리는 시우가 단순히 숲이 아닌, 어떤 건물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깊은 산중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외진 지역에 있는 커다란 건물 한 채.
“우리 여, 여기 들어가여?”
“응. 분위기 좋네.”
철조망과 그 위에 표지판이 덕지덕지 붙은 출입구.
시우는 쇠사슬이 칭칭 감긴 철조망 앞에 섰다.
「출입금지」
「무단으로 침입 시 목숨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경고!」
「야간에는 특히 조심!! 무조건 금지!!」
「소유주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음!」
“보스니이이임··· 우리 제발 돌아가면 안 될까여??”
지유리는 울기 직전이었다.
경고판은 깨끗하지도 않았다.
군데군데 슨 녹과 알 수 없는 얼룩이 가득했다.
“여기 열쇠가 필요한데 정구 놈이 안 챙겨 줬네.”
“그, 거봐여!! 우리 그냥 돌아가여! 네?!”
“실례합니다.”
지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우는 쇠사슬을 잡아 뜯고 철조망을 열었다.
“뭐해. 안 들어오고. 거기서 지키고 있을래?”
“아니여··· 갈게여···.”
지유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우의 손을 잡고 졸졸 따라갔다.
그들의 눈앞으로 거대한 폐병원이 음산한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