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67
69화〉
광명
노인은 몸을 일으켰다.
스르릉.
손발에 묶인 쇠사슬이 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더듬거리며 옆에 있을 밥그릇을 찾았다.
손에 쇠그릇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용물은 변함없다.
주먹밥 한 덩이와 찐 감자 하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려는데 입 안 가득한 상처가 씹는 것을 방해했다.
노인은 아릿한 아픔을 참으며 주먹밥을 조심히 씹었다.
벌써 며칠이 지난 건지 모르겠다.
오래전 두 눈을 다쳐 맹인이 된 노인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현재 자신이 묶여 있는 곳이 어두컴컴한 감옥인지, 아니면 환한 고문실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이따금 느껴지는 고통으로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
‘2호는 무사할는지.’
노인, 즉 3호는 다른 방에 갇혀 있는 2호의 안위를 걱정했다.
어차피 그녀를 고문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터.
‘그라믄 그냥 죽였을 수도 있을 킨데.’
지금 3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염없는 생각이 전부였다.
탈출을 할 수도, 그렇다고 자신을 심문하는 자를 역으로 칠 수도 없었으니.
시우라는 강자의 마력을 읽어 내는 과정에서 마나맥과 단전이 손상되어 스킬을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랑 2호가 잡혀 온 시점에 가 천슈에의 죽음은 확실한 길 테고. 아니믄 우리만 납치해 온 기가.’
3호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 보았다.
중간에 졸도한 탓에 전투를 끝까지 못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데려온 자들은 무척이나 과묵했다.
보통 이런 때에는 상대방과 짧은 대화라도 해서 정보를 얻어 내고 바깥소식을 들어야 하는데, 이자들은 경험이 많은 것인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들은 간혹 지껄였지만, 3호에게 도움 되는 말들은 아니었다.
3호는 수년 전에 잃은 자신의 눈을 더듬었다.
조직의 명으로 누군가를 처리하러 간 곳에서 오히려 적에게 당해 목숨만 간신히 부지해 도망쳐 왔던 기억.
상대는 괴물이었다.
그때도 ‘귀살단’의 몇이 목숨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 당시엔 지금의 1호, 2호, 4호가 없었던 시절.
반면 지금은 조직 내에서도 귀살단의 전성기라 일컫고 있으며, 이 전력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흔하지 않았다.
‘대체 금마는 뭐였을꼬.’
나타나자마자 4호를 단번에 압살하는 파괴력.
마력을 읽어 냈을 뿐인 자신이 기절까지 하게 된 상대.
자신이 강여화와의 전투로 피곤해서 그랬던 것일까.
끼이익.
잡념이 이어지던 와중,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3호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먹밥이 맛이 없다 안 카나. 차라리 요우티아오(油條, 중국식 꽈배기)라도 달라캐도.”
“끌끌. 아직도 입이 살았구먼.”
“어차피 단전도 디비진 늙은이인데, 그냥 마 풀어 주면 안 되나. 내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 줄꼬마.”
“돈 따위로는 거래될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상대도 본인 만큼이나 나이가 든 노귀.
단순한 말장난으로 이겨 낼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꼬? 하모 이 늙은이 몸뚱어리를 탐내는 건 아닐 테고.”
“끌끌끌. 오늘은 주인께서 오셨으니 밥이라도 제대로 씹고 싶으면 말을 골라 하는 게 좋을 거다.”
“주인···?”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는 노귀랑 말수는 적지만 반말로 틱틱거리는 건방진 놈만 왔었는데.
드디어 자신을 가둬 놓은 조직을 알 수 있게 된 것인가.
3호는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느꼈다.
주인이라 불린 자만 잘 구슬려 호의를 사게 되면, 2호의 상황도 알게 될 수 있으리라.
더 나아가서는 적합한 거래를 통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을 테고.
“그래서 그 주인이란 자는 은제 들어오시는 게인데?”
“이미 와 있다.”
순간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3호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대체 언제?’
눈은 멀어서 안 보일지언정 대신 귀나 코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들려오는 발소리로 분명 한 명이란 걸 눈치채고 있었는데.
“······주인이라 카길래 나이 많은 조직 수장인 줄로만 알았네예. 이 목소리는 4호를 죽인 그 젊은 헌터 아인교?”
3호의 물음에 상대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심지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헷갈렸다.
단전이 망가진 지금, 마력 감지가 요원해진 탓이다.
‘사람이 와 있는 게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말하는 것 같데이.’
기척을 느끼기 어려운 상대다.
이거 하나만 놓고 봐도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란 촉이 왔다.
“보면 알겠지만은··· 지는 앞 못 보는 봉사인기라예. 암것도 모릅니더. 조직 말단으로 수발이나 든 게 다입니더.”
3호는 우선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짐승의 마음을 가졌어도 장애를 지닌 노인에게는 어느 정도 동정해 주기 마련.
“와 지를 델꾸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는 그저···.”
“왜 너였을까.”
이때 치고 들어오는 상대의 나지막한 음성.
“그건 잘모르게꼬, 주인이 오해하신 건 알겠십니더.”
“오해라.”
시우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터벅. 터벅.
그 작은 발걸음 소리에 3호는 귀를 쫑긋 세웠다.
맹인인 그는 상대의 목소리와 발걸음만으로도 간단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성별, 체격, 나이, 몸무게, 성격, 마나의 활용력 등등.
오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쌓아 온 경륜과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비슷하게 맞추는 건 가능했다.
‘···뭐꼬, 이건?’
3호는 당황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치밀하고 냉정한 성격.
그동안 보아 왔던 수많은 고수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노련함.
“한 놈은 뇌 안 쓰고 전투만 좋아하는 전투 광. 그러니 탈락.”
그때 시우가 입을 열었다.
“또 한 놈은 머리는 제법 돌아가지만, 나사가 빠져 있어서 탈락.”
“······.”
“마지막 여자는 네 명령에 움직이는 꼭두각시니까 탈락.”
“······.”
“그래서 널 데려왔다. 조직의 간부 이상일 테고, 실질적으로 귀살단을 운영해 왔을 너를.”
3호는 몇 번 입을 열려다 도로 다물었다.
틀린 말이 없었다.
단 하나가 있다면,
“가는 꼭두각시가 아이라 내 말만 듣는 순진한 아라 그럽니다. 나쁜 아는 아니라예.”
“그래서 살려 뒀다.”
“······예?”
“아직까지는.”
2호의 생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험한 꼴을 당한 건 아닐까.
부차적인 생각이 떠올랐지만, 3호는 우선 안도하기로 했다.
“그라믄 1호는 어찌 되었습니꺼?”
“1호가 누구지. 그 흑마법사 꼬맹이?”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우는 뜸 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죽였다. 태워서.”
“금마 만만치 않았을 낀데. 확실히 주인 마력이 대단해 보이긴 했심더.”
“나이에 맞지 않게 능력을 잘 다루는 놈이긴 하더군. 썩 강하진 않았지만.”
“···조직에서 들으믄 기절할 소리를 하시네예.”
천슈에는 미친 괴물이었다.
중국 뒷세계에서 유명한 无(우)가문이 일찍이 흑마법사로 키워 배출한 인물.
조직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임이 틀림없는데.
“귀살단은 이제 끝나뿟네.”
3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장첸이 조직에 명을 내려 귀살단에 대한 건 다 정리했을 것이다.
어차피 조직의 칼로 살아온 그림자들이니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일.
“조건을 제시하지.”
“뭔데예?”
“네 눈과 단전을 고쳐 주마.”
“······??”
“조직에 대한 정보를 다 넘겨.”
“크크. 그기 말이나 되는 소린기가? 늙은이 나이는 허투루 먹는 기 아닌기라.”
3호는 비웃듯이 대꾸했다.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도 눈을 고치려 숱한 노력을 해 왔다.
그간 번 모든 돈을 치료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료 포션도 써 보고, 잘 나가는 힐러에게 거금을 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게이트에서만 나온다는 치료제를 구하거나 이능을 통해 치료하는 자들도 찾아가 봤었다.
결론은 모두 실패.
“〈아가페 종단〉 상위 사제였던 사람까지 만나 봤데이. 성녀 빼고는 다 만나 봤지만, 치료 시기가 늦어져 불가능하다 카데.”
3호는 이제 시우에게 말까지 놓으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거래를 하고 싶었으믄 제대로 된 조건을 가 와야지, 그딴 헛소리는 젖비린내 나는 아한테나 쓰그라.”
“그래?”
시우는 노인의 왼눈과 측두엽 부분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한테는 너도 젖비린내거든.”
3호는 움찔했으나, 상대의 실력을 생각해서 얌전히 있었다.
순간 따스한 금색 빛이 그의 왼눈 부위를 가득 채우며 찬란한 섬광을 발산했다.
당연히 느낄 수 없는 ‘빛’이거늘.
이상하게도 노인은 눈부시다는 감각을 느꼈고, 그 즉시 자신의 눈두덩이를 덮고 있는 손바닥의 따듯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뭐··· 무···?”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친다.
아주 오래전에나 느껴 봤던 이 감각.
노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우의 손이 노인이 둘러쓰고 있던 천 안대를 벗겨냈다.
“아ㅡㅡ.”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어두컴컴한 감옥 안에서 살다 이제야 바깥에 나온 자유인이 된 것처럼,
노인은 왼쪽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으며,
굵고 투명한 눈물을 흘려 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나?”
시우의 이죽거리는 말에 3호는 두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진실한 주인으로 섬기겠나이다.”
***
인천 공항 국제선 출국장.
“누님! 드디어 도착했어요!”
쿠모는 들뜬 목소리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첫 해외 출장이라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쿠모. 진정해요. 누나는 좀 피곤하답니다.”
“알겠습니다!”
하야카와는 쥘부채를 들어 얼굴을 반쯤 가렸다.
벚꽃이 수놓인 기모노 차림 덕에 수많은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지만, 정작 하야카와는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있었다.
‘한국은 어떤 술사들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하지만 싸워선 안 되겠죠? 아~ 고민이네요.’
쓸데없는 생각이 꽃처럼 머릿속에 가득할 때쯤, HMCS 헌터복을 입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너 뭐야?! 우리 누님한테 반한 거라면 내가 먼저니까 꺼져!”
교복 차림의 어린 소년이 한 발 앞으로 먼저 나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둬요, 쿠모. 누나의 인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누님!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는 누님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
“그건 맞아요. 저는 강한 낭군님이 아니면 결코 마음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시우는 살짝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이딴 일에 내가···.’
서류정리를 면제받아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던 찰나, 황정구로부터 부탁 전화가 왔다.
일본 HMCS에서 수사를 위해 직원들이 출장을 왔으니 마중 겸 안내를 나가 달라는 것.
– 슨배임! 누구 덕분에 서류 정리랑 뒷정리하느라 바빠서 그런데 부탁 좀 들어주시죠??
차마 거기서 싫다는 대답을 어떻게 하랴.
꽤 많은 인력의 헌터들이 시우와 최대수의 전투 현장 뒷정리를 위해 불려 간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전 〈HMCS 강북지부〉 2팀, 민시우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오신 분들 맞죠?”
“어머.”
하야카와는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죄송해요. 저는〈HMCS 도쿄지부〉 수사 1부의 부장 하야카와라고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누님의 보좌인 쿠모라고 합니다.”
둘은 시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나마 애들이라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시우는 그들을 안내해 자신의 차량에 태웠다.
뒷좌석에 앉은 그들은 시내 풍경을 보며 이따금 “우와!”나 “어머!” 같은 소리를 냈다.
그렇게 서울 시내로 진입해 예약한 호텔 숙소에 도착하고, 시우는 짐을 들어 그들의 방으로 안내했다.
“하야카와 씨는 이 방이고, 쿠모 씨는 바로 옆 방에서 지내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누님의 방 앞에서 누님을 지킬 거예요!”
“쿠모. 누나는 기뻐요. 베개랑 이불 정도는 허락할게요.”
“누님은 정말 관대하세요!”
시우는 미친놈들 곁을 얼른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관광인지 일인지··· 아무튼 잘 끝내시길. 저는 갑니다.”
“잠깐만요!”
“?”
시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혹시 이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신가요?”
그녀는 품에서 작은 아이템 박스를 꺼내 열었다.
그리고 시우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