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
7화〉
수수께끼
“그러니까 금강에서 그렇게 시켰다, 이거지?”
민시준의 물음에 윤승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와 대치했던 놈들을 잡아 족쳐 정보를 얻어 낸 것이다.
너무도 쉽게 불어 버린 정보는 이러했다.
[금강 길드] 류지환의 긴급 소집.《오늘 튜토리얼 탑 출구에서 나온 각성자를 잡아서 끌고 와라. 민시준과 닮은 놈일 것이다. 저항한다면 반 죽여도 좋다.》
“류지환 그 개자식···!”
민시준의 이빨에서 으득 소리가 난다.
최성일과 이야기할 땐 필요한 인재가 어쩌고 하더니.
실상은 민시준에게 중요한 사람인 걸 뻔히 알고 했던 행동이었다.
그 비열한 뱀 같은 놈은 다른 사람의 불행마저도 먹잇감으로 삼아 제 배 속을 채울 생각뿐이다.
“어떻게 할까요?”
민시준은 고민에 빠졌다.
형이 살아 돌아온 것을 공표한다면 어마어마한 파장이 날지도 모른다.
‘류지환은 둘째 치더라도 최대수가 알게 된다면···.’
과연 그 사람이 얌전히 형의 귀환을 반길 것인가?
그럴 리 없지. 살수라도 안 보내면 다행이게.
민시준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제국 길드]를 일구어 낸 그였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길드이건만.
이렇게 키웠음에도 최대수의 위치와 권력은 그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높아만 갔다.
괴물을 잡기 위해선 괴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상념들이 그의 지친 육신을 주박처럼 꽁꽁 묶었다.
‘한동안은 형의 존재를 숨겨야겠어. 형이 얼마나 강한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지만··· 최대수는 권력마저도 등에 업은 놈이니, 섣불리 공개했다간 오히려 공격을 당할지도 몰라.’
민시준은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형과 같은 1세대 최고의 헌터이자 대한민국 삼존三尊 중 하나.
그 엄청난 경험과 괴물 같은 강함이 대통령의 자리까지 만들었으니 말해 무엇할까.
‘우선은 형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민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급한 일 처리 때문에 형은 잠시 휴게실에서 경호원들과 있는 중이었다.
모처럼 만난 형인데 이게 무슨 꼴인지.
“우선 [백사자]에는 각성자를 찾아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정도로만 말씀하시고. 류지환 쪽 [금강]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마세요.”
“[금강]에서 먼저 연락이 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연락 안 올 겁니다.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를 들킨 마당에 섣불리 연락해서 들쑤시진 않겠죠. 그래도 만약 연락이 오면 이 사진들이랑 음성 파일 보내세요.”
민시준은 형을 덮쳤던 [금강 길드]의 C급과 D급 헌터들이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미리 찍어 둔 것들이다.
“네이브 실검 1위 하고 싶지 않으면 서로 좋게 좋게 가자는 말도 덧붙이고요.”
“알겠습니다.”
민시준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했다.
형에 대해 가까이서 지켜본 그 여자가 생각난 것이다.
“그리고 튜토리얼에서 나온 각성자. 최대한 저희 쪽으로 올 수 있게끔 조치해 주세요. 아무래도 곁에 두는 게 안전할 것 같으니까.”
***
“야, 너네 집 좋다.”
동생의 집에 들어간 시우는 진심 어린 감탄을 했다.
으리으리한 대리석 바닥에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널따란 거실, 고풍스러운 장식품들과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경까지.
옛날 영화나 TV에서만 보던 부잣집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 모든 것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동생 혼자 일궈 냈다고 생각하니, 시우는 괜한 뿌듯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끄아아아! 여기 너무 높다! 무너지면 다 죽는다! 얼른 나가라 식량! 옛날처럼 굴을 파고 들어가라!!!】
안에서 꽥꽥거리는 객식구의 비명을 무시한 채 시우는 집구경을 마저 했다.
“고생 많았겠네. 우리 동생 혼자 집 사느라고. 수고했다.”
“아냐, 내가 뭘··· 다 형한테 배운 기술로 번 건데.”
시우의 멋쩍은 칭찬에도 민시준은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이 세상에서 그가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대상이다.
애초에 이 집도 형과 함께 살 것을 가정하고 구매한 것이고.
‘퇴근하고 매일 혼자 쓸쓸히 캔맥주에 컵라면이나 먹었었는데.’
민시준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미소 지었다.
형이 있는 집이라니.
이 모습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자그마치 10년이다, 10년.
민시준은 애써 괜찮은 척 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 배고플 텐데 저녁부터 먹자. 형이 최근에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一 그냥 이것저것 골라 왔어.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맛없으면 굳이 안 먹어도 돼. 무리해서 먹지 마, 형.”
민시준은 익숙한 듯 식탁 위에 음식들을 늘어놓았다.
세 종류의 치킨과 김치찌개, 찐만두, 곱창, 보쌈, 족발, 초밥, 육회, 사이다, 콜라, 여러 가지 맛 아이스크림까지.
【식량아, 이게 다 뭐냐. 난 오늘 천국에 있는 것이다. 저 수컷 너랑 닮았지만 너보다 훨씬 낫다. 너보다 서열 높다.】
둘이 먹는 식사란 걸 알고 사 온 건지, 아니면 뷔페처럼 먹으라고 사 온 건지.
그리 좁지도 않은 식탁이건만, 음식으로 꽉 차서 밥그릇 놓을 공간조차 부족했다.
“내 배 터뜨려 죽이려고?”
시우는 차려진 음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전부 그가 좋아했던 음식들이다.
시간이 흘렀어도 형의 식성을 잊지 않고 음식을 사 온 동생의 마음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과 낮에만 하더라도 낯선 서울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꼈었는데.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건가.
동생과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이지 않는 끈끈한 애착 같은 것이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는 기분이다.
“형, 얼른 앉아. 음식 식겠다.”
“그래. 고맙다.”
시우는 시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생의 얼굴은 못 본 사이에 조금 달라져 있었다.
늘 해사하게 웃던 녀석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지었고, 어린애 같던 얼굴도 이제는 좀 어른스러워졌다.
고작 십 년의 변화가 이럴진대.
나는 그전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문득 든 궁금함.
그러나 시우는 그 생각을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자.
그리고 현재는··· 음식이지.
젓가락을 들었다. 치킨은 낮에 먹었으니, 가장 맛있어 보이는 참치 뱃살 초밥부터 입에 넣었다.
【마, 맛있냐? 맛있냐? 치, 치느님 보다 맛있는 것이냐?】
우물···.
씹는 순간, 마치 머릿속에서 종이 치는 기분이다. 시우는 홀린 듯이 다음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이 맛이지. 이게 음식이지.
이계의 음식은 소죽이나 개밥 같은 느낌에 가까워 식욕이 생길 틈이 없었다. 혹은 말똥이나 썩은 달걀이랑 비교해도 무방하고.
시우는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매콤한 곱창을 가져다 먹고, 고소한 육회를 한 젓가락 집어서 먹고, 육즙이 가득한 만두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나, 나도 한 입만··· 누구 입은 입이고, 누구 입은 주둥아리인 것이냐! 프레데터도 생명이야, 생명!】
“와ㅡ 진짜 맛있다.”
“그래? 정말? 정말 맛있는 거지?”
“어. 장난 아닌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물론 낮에 먹은 치킨은 빼고.
“다행이다. 형 입맛이 변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거든.”
동생 시준은 환하게 웃으며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시준의 얼굴에서 예전 웃음이 보이는 듯했다.
시우는 그 모습에 동생의 마음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이계에서 자신을 챙겨줬던 유일한 존재는 프레데터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고맙다.”
“······응.”
민시준은 형이 먹는 모습을 보며 묻고 싶었던 수많은 질문을 꾹꾹 눌러 담았다.
먼저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형이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 같은 고민이 얼마나 지났을까.
젓가락을 내려놓은 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라지고 십 년 정도 지났다며?”
“맞아. 형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시우는 잠시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마왕을 처치한 날, 자신을 덮쳐 왔던 그 빛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시우는 동생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가감 없이, 그러나 최대한 담백하게 차근차근 풀어 설명했다.
이계에 떨어졌고, 프레데터를 만나 스킬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계의 종족들과 오랜 세월을 싸우며 결국 그 지역의 패자가 되었고.
계속 차원 이동에 관한 정보를 파헤쳤으며, 프레데터로 능력을 흡수하기 위해 이계의 온 지역을 두루 헤맸다.
드래곤에게만 있다는 정보를 얻은 뒤에는 드래곤을 찾아다녀 전투를 벌였고, 마침내 아홉 번째 드래곤을 쓰러트려 차원 이동으로 지구에 귀환하게 되었다.
【하하. 가소로운 놈들이었다. 감히 이 몸을 상대로 덤비다니. 물론 식량 혼자서는 힘들어 보여 내가 능력을 빌려줘 이길 수 있었다. 나한테 감사하거라.】
몇 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났다.
민시준은 형의 말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아마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구라 치지 마.”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준은 형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모두 사실이다.
“당장 무슨 말을 해 줄 필요는 없어.”
시우는 이해한다는 듯 동생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직접 겪은 당사자도 믿기 힘든 내용이다.
하물며 5년 10년도 아닌 100년간 겪은 일이다.
몇 시간 들었다고 해서 그 사건들이 사실로 와닿을 리는 만무한 일.
“형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상상이 안 되는 것들이라.”
“알아, 인마.”
시우는 육회를 한 입 집어 먹었다. 오래 말을 했더니 다시 배가 꺼지는 기분이다.
그는 우물거리며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최대수가 대통령이라며?”
오히려 질문을 들게 될 줄 몰랐던 시준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어떻게 알았어?”
“탑 안에서. 내가 있던 곳이랑 몇 년이나 다른 건지 조사하다가 우연찮게 대통령이 누군지 물었거든.”
“그랬구나··· 형 많이 놀랐겠네. 하필이면 그놈이 대통령이 돼서.”
“놀라기는. 우스울 따름이지.”
“정말 미안해.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시우는 컵에 따라진 맥주를 들이켰다. 술도 이계보다 지구가 훨씬 낫다.
거기는 말 오줌이나 술이나 맛이 거기서 거기였다. 물론 말 오줌을 먹어 본 건 아니지만.
차가운 컵에 따라진 맥주는 단숨에 시우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시원하다, 식도도 머리도.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 너나, 다른 애들이나.”
시우는 무덤덤한 투로 안심시켰다.
빈말을 하지 않는 그였기에, 민시준은 그 문장에 담긴 깊은 뜻을 한 번에 헤아릴 수 있었다.
“형이 있었으면, 만약 그랬다면 다 달라졌을 거야.”
그 깊은 자조에 시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헛된 위로는 듣는 이에게나, 전하는 이에게나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하니까.
“그나저나 너 길드 단장이라며. 형 없이도 잘했다.”
그냥 길드도 아닌, 국내 굴지의 길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헵타그램 중 하나, [제국 길드].
게다가 보유한 던전이나 게이트도 어마어마했고, 민시준의 사업 수완도 좋아 마정석을 가공한 아이템도 상당히 큰 매출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길드이자 잘 나가는 아이템 공방. 거기에 딸린 수많은 헌터 인력들과 엄청난 자본.
최대수가 군침 흘릴 만하네.
시우는 단번에 최대수의 속내가 눈에 보일 듯 훤하게 느껴졌다.
어떤 의미로는 참 한결같은 놈이야.
“그래서 말인데,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내 생각엔 형 컨디션도 다 안 돌아왔다고 하니까, 컨디션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어디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
“왜? 최대수 때문에?”
민시준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한 시우가 역으로 질문했다.
“···눈치챈 것 같으니까 돌려 말하지 않을게. 형이 얼마나 강한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 하지만 최대수는··· 옛날의 놈과는 차원이 달라! 못해도 2년, 아니 1년 만이라도 준비를 해 놓자.”
그는 동생의 얼굴을 살폈다. 필사적이다.
시우도 대충은 신지수를 통해 들은 게 있었다.
최대수가 얼마나 괴물인지에 대해서.
“시준아.”
“···응.”
“형이 알아서 할게. 걱정 마.”
그러나 겁나지 않는다.
괴물은 최대수 혼자만 된 게 아니다.
시우는 맥주를 다시 따르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가 가장 궁금했던 내용은 지금부터였다.
“그나저나 애들은?”
“애들?”
“제자들.”
시우는 미묘하게 변한 민시준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 다 떨어져 살아. 연락도 안 한 지 좀 됐어.”
“그렇구나. 다들 건강하지?”
민시준은 잠깐 숨을 들이켰다가 조용히 내쉬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깊은 날숨이었다.
“우선 샤오롱은 자기 고향으로 갔어.”
“샤오롱은 그럴 것 같더라. 여화는?”
“강여화는······ 최대수 쪽으로 돌아섰고.”
흠, 이건 좀 의외네.
시우는 입에 남은 맥주 맛이 쓰게 느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화가 그럴 줄이야.
“민준이는?”
이번에는 대답이 상당히 느리다.
시우는 자신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뜸을 들이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렇게 대답을 고르고 고른 시준이 입을 열었다.
“죽었어.”
······.
침묵.
시우는 예상치 못한 연이은 대답에 감정이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죽어? 누구한테?”
민시준은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 힘겨운 도리질에 시우는 마음이 뻐근해져 왔다.
“사체가 있으면 알 수 있잖아.”
시우의 말에 민시준은 혓바닥으로 말라버린 입술을 적셨다.
“그게··· 사체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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