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0
72화〉
신령
주술사의 역량은 어떤 신과 계약하느냐에 따라 달랐다.
역량이 큰 주술사일수록 더 강하고, 더 높은 신과 계약하는 건 당연한 이치.
가령 쿠모 같은 경우엔 [카마이타치] 같은 A급의 신을 비롯해 급이 더 낮은 잡신들도 있어 역량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하야카와가 계약한 [카구츠치]는 일본 최고의 창조신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에게서 태어난 불과 대장장이의 신으로, S급 이상의 저력을 보유한 상급 영령이었다.
태어날 때 너무도 뜨거운 불 때문에 이자나미가 화상을 입어 죽었다는 [카구츠치]의 불꽃.
따라서 그런 신을 담는 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야카와’ 가문은 당대 최고의 주술사 가문 중 하나였고, 각 가문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신들이 있었다.
[카구츠치]는 하야카와 가문의 대표 신 중 하나로 그 위세는 손에 꼽혔다.높은 급의 신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가문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
– 할 수 있겠니, 히카리? [카구츠치]는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가문 그 누구와도 계약하지 않았단다.
– 해 볼게요! 실패하면 다른 신과 계약하면 되잖아요.
당주인 하야카와 세이겐은 내심 이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길 바랐다.
[카구츠치]는 정말 강한 신령이긴 했지만, 그만큼 다루기 힘들다는 가문의 기록이 있었으니.그러나 무슨 변덕인지 [카구츠치]는 히카리를 허락하고 그녀의 몸에 기거했다.
가문으로서는 엄청난 경사였으나, 문제는 그녀의 그릇이 상급의 신을 담기엔 부족했던 것.
그릇은 천천히 깨지고 금이 갔다.
내용물은 넘칠 듯 말듯 그릇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언제 산산이 조각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쿠ㅡㅡㅡ웅!
시우가 강대한 마력을 흘려 넣자 공명한 신이 몸 밖으로 형체를 드러냈다.
그릇이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일.
족히 20m는 넘을 거대한 불 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허공에서 똬리를 틀었다.
『뭐냐. 고작 인간 따위가 이 어르신의 잠을 깨우다니.』
카랑카랑하고 고압적인 음성이 뱀의 아가리에서 울렸다.
【식량아. 쟤 맛있어 보인다. 오랜만에 뱀고기 먹고 싶다.】
계약한 신의 모습을 처음 본 하야카와는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신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하야카와’ 가문의 12대 차기 당주 하야카와 히카리ㅡ.”
“어르신이고 나발이고 남의 집에서 얹혀살면 좀 조용히 살아야지.”
하야카와는 바짝 얼어서 카구츠치와 시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신을 팬다기에 비유인 줄 알았는데.
‘[카구츠치]는 정말 강한 영(靈)인데 싸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우리에게 S급 민시준 헌터가 있다고 해도 불가능해요.’
하지만 시우의 표정에선 그 어떤 불안이나 떨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건 특유의 나른함과 오만.
『슈르르. 오랜만에 받아 보는 공물치고는 입이 험하군. 이래서 공물은 어린 소녀가 좋은 법인데.』
【쟤 식량 먹고 싶어 한다. 나랑 똑같다. 역시 맛있는 거 보는 눈은 다 똑같다.】
미친놈들이.
시우는 그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하야카와를 일으켜 세웠다.
“자, 잠시만요. 저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신···.”
“잘 봐. 이름은 신이지만 생긴 건 그냥 몬스터 아냐?”
그녀는 반박하려 했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신을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은 대화가 가능하잖아요.”
“말하는 몬스터도 많아.”
“카구츠치 님은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신령인걸요?”
“그런 존재가 몬스터로 현현하는 사례도 있어.”
“하지만··· 선조 때부터 내려온···.”
“그렇지. 선조 때부터 주술사가 ‘부려 먹은’ 신인 거야.”
“······.”
“알겠어? 섬기는 신이 아니라고.”
시우의 단호한 어조.
하야카와는 두 눈만 껌뻑이며 대답할 말을 잊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신을 저렇게 표현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감히 ‘그릇’ 따위가 ‘내용물’을 부려 먹는단 말인가.
그런 불경스러운···.
『나랑 계약한 계집이 아닌가. 저 망할 놈을 치우고 술이나 가져오거라.』
저는ㅡ 그게, 그러니까ㅡ.
손을 꽉 붙잡고 있는 시우의 단단한 모습과 허공 중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불의 뱀 사이에서,
하야카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릇으로서의 그녀와 히카리로서의 그녀가 서로 마음을 당겼다.
굽혀지지도, 그렇다고 꼿꼿이 서지도 못한 무릎이 마치 그녀의 감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저, 저는···.”
“설 거야.”
하야카와는 선명한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우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그녀를 따스하게 굽어보고 있었다.
“똑바로 설 거라고.”
“······.”
“두들겨 패는 건 내가 해 줄 테니까.”
“······.”
“너는 ‘히카리’로서 똑바로 서 있어.”
하야카와는 와락 쏟아지려는 감정을 참았다.
그녀의 입에서 실낱같은 “네”라는 대답이 눈물처럼 방울져 떨어졌다.
『슈르르. 두들겨 팬다니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공물과 그릇이 헛소리를 주고받는 게인가.』
마치 키우던 개가 발을 깨물어 체벌하려는 주인의 말투.
그 건조하고 냉랭한 안광에 맞선 시우는 한 치의 위축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 ‘그릇 따위’가 없으면 현현도 못 하는 주제에 더럽게 말 많네.”
『슈르르륵. 방금 뭐라고 떠들었지, 인간?』
“나이 먹어서 귀도 안 들리나 봐? 아니면 뱀이라 인간의 언어를 못 알아듣나.”
커다란 불 뱀은 따리를 풀더니 천천히 공중을 선회했다.
붉은 불꽃이 뱀의 몸뚱이를 타고 흐르며 캄캄한 밤하늘을 환히 밝혔다.
마치 승천하는 이무기의 모습이 그러할 것처럼, 뱀의 모습은 가히 신화적이었고 환상적이었다.
그 경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흐트러졌을 즘.
『슈르르륵!』
카구츠치가 엄청난 속도로 낙하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표독스럽게 생긴 아가리는 사람을 한입에 삼킬 것처럼 커다랬고, 튀어나온 이빨은 칼날처럼 뾰족했다.
“아, 안 돼!!”
하야카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불 뱀의 이빨이 시우의 목덜미로 향했다.
인간의 야들야들한 목은 곧 신령의 한 끼 식사가 될 터였다.
그때 시우의 발아래로 수백 개의 문자와 도형이 어지러이 빛을 발했다.
[철의 노래 : 가시밭]푸슈그ㅡ!!
쇠꼬챙이 수십 개가 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창처럼 기다랗고 뾰족한 그것은 불 뱀의 아가리를 사정없이 꿰뚫었고,
『크르르르!』
시우는 단도로 뱀의 모가지를 사정없이 잘라 냈다.
“설마··· 신을 죽일 수 있다니···.”
그 광경을 목도한 하야카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비명을 삼켰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가문의 그 누가 보더라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주술사는 신을 섬기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고작 이걸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시우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하야카와에게 말했다.
지금 카구츠치의 모습은 그릇이 있기에 현현된 것.
따라서 반은 육체가 있지만, 반은 영인 상태였다.
과연, 시우가 올려다본 하늘엔 불 뱀이 더 커진 불꽃을 휘감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슈르르. 이렇게 다쳐 본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군.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빈다면 고통 없이 먹어 주마, 벌레여.』
“처맞기 전에는 보통 다 그렇게 지껄이더라고.”
『슈르르. 알겠다. 천천히 구워 먹어 주지. 그릇은 뭐 하느냐! 어르신이 술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을 텐데!』
“그런 말 하기 전에 위나 확인하지, 그래?”
[카구츠치]는 머리를 쳐들었다.그러나 보이는 건 캄캄한 어둠과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뿐.
『슈르르··· 대체 뭐가···.』
시우를 바라보며 비웃으려던 불 뱀은 이번에야말로 기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시퍼런 냉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구체가 있었기 때문.
[빙석폭약]빠가가가가각!!!
한껏 응축된 얼음이 폭발하며 수십 개의 날카로운 파편이 적의 몸통을 찢고 관통했다.
『슈르르르르···! 귀찮게 하는군! 이까짓 걸로 이 어르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나?』
불의 신인 카구츠치는 싫어하는 한기가 몸을 파고들자 짜증을 내며 화를 일으켰다.
몸통을 감쌌던 불꽃이 끓어오르는 살의에 화답하듯 더욱 진하게 타들어 갔다.
『아무래도 술을 가져올 줄 모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술 대신 벌레라도 씹어 먹어야겠다!!』
짜증으로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쾨ㅡㅡㅡㅡ아
강대한 격이 화마처럼 사방으로 솟구쳤다.
그 이루 말하기 힘든 신력의 방대함에 내부 결계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크ㅡ 더럽게 세네!”
민시준은 자신의 스태프에 더 많은 마력을 쏟아부었다.
한껏 잡아 둔 기운이 결계를 부수면 이 근방 일대가 초토화될 수도 있었다.
“이제 시작이로군.”
가부좌를 틀고 있던 적귀는 시우가 준비해 준 주구를 좌르륵 늘어놓았고,
아술은 특유의 마력 감지를 통해 시우가 명령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슈르르르!』
시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불 뱀의 모든 움직임과 격의 기세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떨릴 정도의 위압감.
인간의 그것과는 결 자체가 다른 분노에 하야카와는 압박감으로 실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간 자기 몸에서 힘을 빌려주었던 존재라고는 믿기 힘든 끈적한 기운.
만약 ‘이것’이 힘의 실체란 걸 알고 있었다면, 그녀는 감히 싸우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계약조차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건 신 같은 게 아니었다.
하나의 재앙.
격의 기운이 점차 드세지더니 근처에 있던 절 건물이 가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수컷 벌레는 질겨서 좋아하지 않으나··· 건방지니 너부터 씹어 주지.』
순간, 한 줄기 새빨간 벼락처럼 [카구츠치]의 몸이 땅으로 내달렸다.
시우는 반사적으로 몸에 돌고 있던 마력을 공회전시켰다.
스포츠카의 엔진처럼 마력이 전신에 질주하며 온몸 구석구석으로 기운을 내뻗었다.
[철의 노래 : 신의 방패]사자 얼굴이 새겨진 세 겹의 거대한 방패가 전방을 가렸다.
시우의 예상대로라면 놈은 돌진하는 게 아니었다.
앞부분에 쏠려있는 마력의 상태가 무언가를 ‘쏟아 낼’ 것처럼 보였기 때문.
푸회ㅡㅡㅡㅡ 아악!!
카구츠치의 입에서 깊고 어두운 불길이 살아 숨 쉬듯 꿈틀대며 시우를 덮쳐 왔다.
“그 불은 절대 닿아선 안 돼요!”
하야카와는 다급히 소리쳤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불태울 수 있는 불 중의 불.
방패로 미리 막아 시우에게 불길이 닿진 않았다.
하지만 세 겹의 방패 중 두 겹의 방패가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고, 남은 하나도 열기 때문에 서서히 마나 입자로 되돌아갔다.
『슈르르. 주술사도 아닌 것이 이상한 기술을 쓰는군. 정말 나를 없애기 위해 인간 놈들이 보낸 것이냐?』
불 뱀은 샛노란 눈알을 부라렸다.
인간 주제에 신을 이겨 먹으려 했던 자는 그 평생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감사히 여기며 공양을 지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카구츠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좋다. 그리 원한다면 이 어르신이 본격적으로 네놈들을 상대해 주겠다.』
신령의 몸이 바르르 떨리며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헉··· 크윽!”
그 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던 하야카와가 심장을 부여잡더니 털썩 쓰러졌다.
찢어질 듯한 격통에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마치 생명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간 느낌.
그녀의 입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고,
달빛 아래에 팔다리가 자란 괴상한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댔다.
“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