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3
75화〉
부나방
민시준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형이 힘을 많이 빼 놓은 편인데도 [카구츠치]의 강함은 여느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급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S급 게이트에서 볼 수 있는 상위급은 될 터.
대체 이 미친놈이 마력과 신력이 꽉 찼을 때 형은 어떻게 싸웠던 걸까.
‘여화 누나랑 같이 붙어야 좀 비벼 볼 만하겠는데.’
원거리 딜러이다 보니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피하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해 제대로 된 스킬을 발휘할 수 없었다.
민시준은 결계를 해제한 덕에 마력의 여유가 좀 있었지만, 그것도 상대가 맞아야 의미가 있는 일.
[카구츠치]가 공중으로 높이 치솟더니 한 발의 미사일처럼 지상으로 쇄도했다.놈은 마력과 신력을 비축하는 것인지 조금 전부터 근접 공격 위주로 민시준에게 치달았다.
그러나 불을 뿜을 수 없다고 해도 용은 용.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는 덕에 근접전은 불가능했다.
[청수: 워터 월]땅에서 샘솟은 거대한 물의 장벽이 화룡의 진로를 차단했다.
일반적인 꼬리 공격조차 너무 빠르기에 피한다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
하물며 상공에서 떨어지는 초고속의 속격은 도저히 피할 자신이 없었다.
그 때문에 공격 루트를 차단하는 게 그로서는 최선책.
물의 장벽 뒤에서 민시준은 숨을 골랐다.
수백 개의 숫자와 기호, 문자가 마력을 머금고 허공에 마법진을 생성했다.
민시준은 스태프 끝으로 마법진을 건드렸다.
그러자 마법진이 스태프 끝 마정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 응축됐다.
이제 준비는 모두 갖춰졌다.
물의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스태프로 증폭시킨 마법이 화룡의 몸뚱어리를 장벽 채로 얼려 버릴 것이다.
“······.”
하지만 1초, 2초가 지나도 장벽은 멀쩡했다.
그제야 민시준은 흠칫하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너무 당연한 함정에 빠져들기를 바란 것인가.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마력 파장을 전방위로 확장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민시준은 고개를 쳐들었다.
물의 장벽 꼭대기.
그 너머로 보이는 샛노란 안광이 벼락처럼 땅으로 내리꽂혔다.
“크으윽!!”
민시준은 다급한 마음에 스태프에 넣어 둔 빙결 마법을 구현했다.
콰드드드드드득!!!
허공을 얼려 버리는 냉기.
그러나 화룡은 그 틈 사이를 여유롭게 빠져나가며 민시준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렸다.
칼날 같은 어금니가 사신의 낫처럼 드리워졌다.
『크르르! 끝이ㅡ』
민시준 코앞까지 닥쳐왔던 용의 머리가,
쩌ㅡㅡㅡㅡ엉!!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땅이 뒤흔들렸다.
스킬도 뭣도 아닌 간단한 주먹질 한 방에.
“혀··· 형!!”
민시준은 울상을 짓더니 형을 꽉 껴안았다.
시우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더니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발적인 계획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받을 충격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형의 품에 안긴 동생은 혼잣말로 몇 번이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를 중얼거렸다.
혹여나 다시 형을 잃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과 불안에 맞서 싸워야만 했던 지난한 시간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형··· 이제 떠나지 마···.”
오랜 시간 동생이 견뎌왔을 가족의 부재.
시우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동생을 마주 안았다.
“그래, 형 어디 안 갈게.”
대형 길드의 수장이라고 하지만, 그가 볼 때는 여전히 어린 동생이었다.
언제나 못나고 철없는 형 때문에 마음고생만 하는 착한 동생.
쿠구우ㅡ
그때 바닥에 처박혔던 카구츠치가 몸을 일으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르르르ㅡ 분명 심장을 꿰뚫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냐.』
인간치고는 이상하게 강한 놈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해도 인간은 인간.
심장이 없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니던가.
“고맙네. 버러지 걱정도 해 주고.”
『감히 이 어르신에게 몇 번이나 부나방처럼 달려들다니··· 곱게 죽이진 않겠다!』
화룡은 노기를 홧홧하게 뿜어대며 이빨을 드러냈다.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네놈은 반드시 죽이겠다.』
카구츠치의 저릿저릿한 마력과 신력이 한 곳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새까만 하늘에서 뇌성과 우레가 어둠을 찢어발기고 멀리 있는 숲의 나무들까지 우수수 몸을 떨었다.
후ㅡㅡㅡ웅
아가리가 벌려진 곳에 붉고 까만 열기가 빼곡하게 밀집했다.
‘이게 마지막 일격이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깨달았다.
이 하나만 막으면, 그러면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카구츠치]의 불길은 그 어떤 것으로도 끄기 어려운 신의 숨결.
서양 드래곤으로 따지면 일종의 ‘드래곤 브레스’인 이 기술은 전설 속에서 수많은 사람과 부족을 멸망시킨 재앙의 불꽃이었다.
일개 사람 한 명이 막아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시우는 두 차례 막아 내긴 했으나, 이번 불꽃은 마지막 사력을 다한 것이라 쉽지 않을 터였다.
하야카와는 시우의 전투를 뒤에서 바라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카구츠치]의 신력과 마력은 주술사인 그녀로서도 처음 접했을 만큼 강렬했다.
이 정도의 신력이면 〈하야카와 가문〉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문 당주들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
‘과연 저런 공격을 시우 님과 민시준 헌터 두 분이 막을 수 있을까요.’
적귀는 마후라가를 쓴 탓에 마력 고갈로 헐떡이며 상공을 멀거니 바라봤다.
저 마지막 공격은 마후라가 파괴력의 서너 배는 될 법했다.
‘이 노인은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주인님은 앞으로 이 세상을 바꾸셔야 할 분인데··· 지켜 드릴 방도가 떠오르지 않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적귀는 체념한 듯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았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은가.
시우는 옆에 얼어 있는 동생을 툭 쳤다.
“뭐해. 반격할 준비를 해야지.”
“하지만 저거를 무슨 수로···.”
“날려 버리면 되지 않겠냐.”
“······글쎄.”
동생의 떨떠름한 얼굴에 시우는 픽 웃으며 하나의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두어 발짝 앞으로 나서 화룡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륵!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라, 필멸자들이여.』
카구츠치는 몸에 있는 모든 마력과 신력을 쥐어짜 마지막 불꽃을 만들어 냈다.
그 아가리에 가득 모인 검붉은 불덩어리가 시우를 향해 운석처럼 떨어졌다.
대기를 이글이글 태우며 접근하는 불길은 이제껏 느껴 본 적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민시준은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이를 깨물었다.
타오르는 불길과 열기 때문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시우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태연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 긴장되네.”
그리고 양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수백 개의 도형과 문자가 회로를 구성하고, 그 길을 따라 마력이 질주했다.
연푸른 섬광이 사위를 밝게 물들이며 공간이 뒤틀렸다.
단전에서 빠르게 소진되는 마력에 시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구성된 ‘두 개’의 마법진.
“더블 캐스팅?!”
민시준은 화들짝 놀라 눈을 홉떴다.
그가 알기로 형은 더블 캐스팅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저건 재능도 재능이지만, 복잡함 때문에 실전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왼손과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데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해서 쓰는 차원.
시우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불길을 향해 두 손을 내뻗었다.
[삭풍 : 용오름] [삭풍 : 용오름]거칠고 날카로운 두 개의 바람이 마법진에서 현현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휘이이이이잉!!
카구츠치의 불덩어리와 시우의 바람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엄청난 풍압과 돌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바람에 스친 것들은 찢어지고 부서졌으며, 화염에 스친 것들은 타 버리고 재로 변했다.
『크르르르! 고작 그딴 바람으로 내 화염은 꺼트릴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었다.
그 어떤 세찬 바람을 가져다 불어 대도 저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더 강하게 타오를지도 모를 일.
시우는 조소를 흘렸다.
“이딴 바람이 네 불꽃을 꺼트릴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맹렬한 두 용오름이 서로 비틀리며 꼬아졌다.
덩달아 화염도 그 안에서 휘몰아치다가 어느새 바람 안에서 하나의 순환이 돼 버렸다.
『이게 무슨···!』
거대한 용오름이 순식간에 카구츠치를 집어삼켰다.
지독한 화염의 회오리가 신령을 가두고 이글거리는 불길과 칼날 같은 바람으로 난도질하기 시 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그러나 그 비명조차도 회오리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다.
세상 어떤 것도 태워 버릴 수 있는 불꽃이 카구츠치의 비늘을 뒤덮자 카구츠치는 한 마리의 뱀처럼 괴롭게 뒹굴었다.
신령은 필사의 기운을 끌어 올려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터어엉!!
카구츠치는 나갈 수 없었다.
시우의 명대로 민시준이 화룡을 중심으로 결계를 쳐 놨기 때문.
『끄르르으아악!! 이 괘씸한 것들이!』
한 가문의 두려움이었을 신령은 칼바람과 화마에 뒤엉켜 지옥 같은 고통을 겪게 됐다.
그때 시우를 향해 적귀와 아술이 다가왔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돌아가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말도 없이 죽겠어. 걱정들도 많으시네.”
한시름 놓은 적귀는 긴장으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 냈다.
시우의 실력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매번 볼 때마다 새롭게 놀라게 된다.
아술은 물건 하나를 꺼내 시우에게 내밀었다.
“찾아냈어? 역시 감지 능력이 장난 아니시네.”
시우의 칭찬에 아술은 멋쩍은 듯 허허 웃었다.
이번 작전에서 그가 받은 명령은 단 하나.
– [카구츠치]가 신력을 공유하게 될 물건을 찾아라.
하야카와 히카리라는 계약된 그릇의 힘을 빌려 현현한다고는 하나, 신의 힘을 그녀 혼자 감당하기는 불가능.
따라서 신력이 높은 ‘무언가’와 동기화할 확률이 높았다.
굳이 망한 절터에 와서 신령을 불러낸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작은 불상이라.”
흙이 묻고 여기저기 금이 간 불상이었지만, 미묘한 기운이 있었고 그사이엔 [카구츠치]의 기운도 느껴졌다.
“어지간히 나를 죽이고 싶었나 본데.”
이 불상 덕분에 [카구츠치]가 현재의 화룡으로 현현할 수 있었던 것.
자칫 잘못해서 하야카와가 죽기라도 하면 그릇을 잃은 신령도 사라지기 마련이니.
“그렇다면 이게 [카구츠치]의 분신 같은 겁니까?”
“아니. 쉽게 말해서 히카리의 리스크를 줄여 줄 수 있는 제2의 그릇 같은 거지.”
말을 마친 시우는 아직도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화룡을 응시했다.
‘이 정도면 괴롭힐 만큼 괴롭혔으니 정신을 차렸으려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놔두면 언젠가는 죽게 될 테지만, 목적은 신령의 죽음이 아니라 길들이기니.
빼내 줘야겠지.
시우는 조금 전 도박을 통해 새로이 쓸 수 있게 된 힘을 상기했다.
이계에서는 사용했지만, 지구로 돌아온 뒤에는 쓰지 못했던 힘.
한 방울의 잉크가 고요한 물에 떨어져 퍼지듯,
시우의 단전을 타고 새로운 힘이 전신에 고루 흩어져 뿌리를 내렸다.
까드드드득!!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끓어오르는 힘을 억누르기 위해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시우는 자신의 회복 스킬을 전신에 고루 흩뿌렸다.
어마어마한 힘에 갉아 먹히던 육신이 금빛 치유를 받아 다시금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제 균형이 맞는 것 같다.
그는 허벅지에 꾸욱 힘을 주고는 곧장 하늘로 뛰어올랐다.
가공할 만한 점프력에 민시준은 입을 떡 벌렸다.
시우는 있는 힘껏 발을 휘둘렀다.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결계와 발차기에 맞아 지상으로 쏘아져 나가떨어지는 카구츠치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하고야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