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4
76화〉
부작용
『크르러어억··· 크르으윽!」
카구츠치는 땅바닥에서 꿈틀거리며 괴로워했다 .
검붉은 불길이 몸에 달라붙어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시전자의 의지로 끌 수 있지만, 문제는 현재 불을 다스릴 수 있을 만큼의 마력과 신력이 없다는 것.
[카구츠치]는 처음으로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아주 오랜 세월을 죽지 않고 살아온 존재이기에 거세되었던 공포.
「죽음.」
신령의 비늘이 녹아내리고 형체가 점점 쪼그라들었다.
자고로 신령의 모습이란 마력과 신력, 그릇에 비례하는 법.
그는 용의 모습을 유지할 만큼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 죽음의 공포마저 느끼자 정신력이 흐트러져 이미지를 구체화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신령의 모습이 녹아내릴 때,
[설화 : 빙하기]숨결마저 얼려버릴 것 같은 혹독한 냉기가 카구츠치의 전신을 휘감았다.
쩌저저저적!!
마치 액체 질소에 담가 버린 것처럼 그대로 얼음 감옥에 갇혀 버린 신령.
“불꽃이··· 꺼졌다.”
민시준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업화의 불길처럼 멈출 줄 모르던 [카구츠치]의 불이 폭한의 냉기에 사라진 것이다.
시우는 그곳에 다가가 주먹으로 얼음덩어리를 힘껏 내리쳤다.
꽈ㅡㅡㅡ앙!
다 깨지고 부서진 얼음 조각 사이에서 카구츠치의 영이 스멀스멀 모여들며 형체를 갖췄다.
그러나 그 몰골은 위엄 있던 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디작은 불 뱀 한 마리가 땅바닥을 기며 혓바닥을 쉭쉭 댔다.
시우는 놈의 목을 틀어쥐고 마력을 손에 듬뿍 실었다.
『너, 너 인간이면서 그 힘은···!』
“남이야. 뭔 힘을 갖든 무슨 상관이지.”
손끝에 힘이 살짝 들어가자 카구츠치는 몸을 버둥거리면서 발버둥 쳤다.
“선택해라. 이대로 종이처럼 찢겨 영영 사라질래, 아니면 내가 시키는 대로 복종할래.”
사실 시우는 카구츠치를 멸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계획했던 것처럼 심장도 제대로 부쉈고, 원하던 힘을 다시 쓸 수 있게 됐으니까.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히카리에 대한 약속은 지켜야겠지.’
『커억··· 크윽··· 왜 다른 가문 일에···!』
“대답은 둘 중 하나만 해라. 넌 질문할 권한이 없어.”
카드득!
사위를 압박하는 시우의 강렬한 마력이 카구츠치의 숨통을 조여 왔다.
불 뱀은 감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뱀의 목을 놓았다.
『대체 네 목적이 뭐냐.』
“처음에 내가 말하지 않았냐. 두들겨 팰 거라고.”
카구츠치는 작고 노란 눈알로 시우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우는 품에 감췄던 불상을 꺼냈다.
『그건ㅡ 대체 어떻게!!』
“혹시나 이걸 보험 삼아서 히카리와의 계약을 깨고 이 산으로 오려고 한 건 아니지?”
뱀은 경악하다 못해 허탈함까지 들었다.
당장 하야카와와 계약을 끊으려 한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여차하면 그렇게 하고 저 불상에 신령을 의탁하려 한 것이다.
『슈르륵.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지?』
“히카리와 재계약. 대신에 ‘주인’의 생명력을 소모하지 않게끔 부담은 네가 지는 방향으로.”
『고작 ‘그릇’ 따위한테 숙이는 계약을 하라고!!』
시우는 건조하고 서늘한 안광으로 뱀을 내려다봤다.
“그릇으로 뚝배기를 육포처럼 눌러 줄까?”
『···계약하겠습니다.』
하야카와는 어안이벙벙한 얼굴로 재계약을 진행했다.
시우의 감독하에 이루어졌기에 카구츠치는 딴짓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로써 재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야카와의 선언이 끝나자 계약은 무리 없이 성사되었다.
카구츠치는 투덜거리더니 현현을 끝내고 다시 하야카와의 심장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놈이 순종적으로 변했으니 히카리의 삶을 갉아먹는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모두 시우 님의 덕택이에요.”
하야카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시우의 손을 붙잡았다.
“앞으로 마력 컨트롤을 훈련하고 주술사로서 실력을 갈고닦으면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거야.”
“예, 알겠어요.”
“그리고ㅡ 이건 선물.”
시우는 하야카와의 배에 손을 올렸다.
하야카와는 흠칫하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전처럼 내빼거나 소리치지는 않았다.
그저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 소리만이 그녀의 마음을 대신해 줄 뿐이었다.
시우의 손바닥에서 웅혼한 마력이 뻗쳐 나갔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양 복잡한 문자가 술식을 구현하며 금빛 섬광이 번쩍이는 마법진이 생성됐다.
그 황홀한 빛의 삼매경을 사람들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하야카와는 배 속이 따뜻해지며 홧홧한 열기가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ㅡ?”
그녀가 계약한 신에게 빼앗겼던 생령.
충만한 에너지가 몸속에 물 흐르듯 퍼져 나갔다.
“나는 생령술사거든.”
시우는 그녀의 검고 차분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똑바로 서 있느라고 생했어, 히카리.”
하야카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눈을 글썽거리다가,
넘칠 듯 찰랑거리는 감정의 둑을 무너트렸다.
오늘의 마지막 눈물이라 믿으며 말이다.
***
중국 칭다오시의 항구 근처.
뒷골목의 이름 없는 술집인 ‘까만 간판’은 저녁부터 사람이 가득 찼다.
장첸과 그의 수하들 삼십여 명이 홀을 차지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
“대인! 물건을 다 싣고 가도 괜찮을까요?”
장첸과 한 테이블에 앉은 중간 간부 하나가 조심히 물었다.
지난번 귀살단의 암살 실패가 흉할 징조라며 조직 내에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실패한 적 없는 1호의 사망은 그 어떤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미친 괴물이 죽다니.
하지만 조직원들은 대놓고 장첸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원래 귀살단이라는 암살단 자체가 조직에 속해 있지만, 조직에서는 인식하지 말아야 할 존재였으므로.
“괜찮다. 한국에 있는 ‘Clown(광대)’이 알겠다고 했으니, 준비해 놨을 거야.”
“그 수상한 놈 말입니까?”
“입조심해라. 그래도 우리 조직 최대 고객이니까.”
클라운.
한국에서 물건을 대신 팔아 주는 브로커이자 장첸의 사업 파트너인 존재.
조직 그 누구도 클라운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클라운이라는 이름 또한 그 브로커가 말한 게 아니라 조직에서 임의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늘 광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수상쩍은 놈.
그의 정체나 진짜 이름, 직업, 그 어떤 것도 공개된 게 없다.
그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거래는 늘 순조로웠다.
각성자 마약을 배달하면 그가 돈을 준다.
그 뒤에 클라운이 한국에서 약을 팔아 돈을 번다.
그게 끝이었다.
“이제 막 브로커를 찾아 물꼬가 트인 시점인데 하필 벌레들이 꼬여서.”
장첸은 담뱃재를 털며 이를 꽉 깨물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대로 다시 암살을 시도할까요?”
“······아니. 거래가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 대성께 부탁해서 인원을 부탁한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언제 오는 겁니까? 곧 출발할 시간인데.”
간부의 말에 장첸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확실히 조금 있으면 배가 떠날 시간이다.
“오겠지. 대성도 이 사업에 투자를 많이 하신 분이니까. 아마 버리진 않을 거야.”
그때, 출입문이 부서지며 입구를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날아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게 이미 죽은 듯 보였다.
“뭐··· 뭐야! 웬 놈이냐!”
안에 있던 부하들과 간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각자 무기와 스킬을 준비했다.
뚜벅. 뚜벅.
골목의 어둠을 지나 가게로 들어온 두 명의 남자.
“진작 비켰으면 좋잖아. 그렇지, 리우?”
“맞아. 멍청한 것들은 다 죽어야 해, 치우.”
조그맣고 동그란 선글라스를 낀 청색 도복의 거한들은 실내를 보며 히죽였다.
***
시우는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바로 잠이 들고 싶어서 불도 끄고 곧장 이불부터 덮었다.
아직 온전히 회복한 상태에서 쓴 힘이 아니라 반동이 어마어마했다.
만약 그 상태에서 마력을 더 끄집어내 썼다면 오는 길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3일 밤낮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지.”
사실 [카구츠치]가 100% 완전히 현현한 건 아니었다.
화룡의 모습은 하야카와라는 그릇과 불상이라는 보조 그릇을 합친 역량의 ‘총량’을 넘지 못했으니까.
만일 그 신령을 품고도 남을 만한 주술사라면 100%를 끄집어냈겠지만, 히카리의 능력으로는 그럴 수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카구츠치]는 잡신이나 한낱 지방신이 아니었다.
일본 창조신의 자식이 되는 순도 높은 신령.
오히려 그 힘을 전부 발휘할 수 있는 주술사를 만난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소멸시킬 생각으로 싸웠다면 시우도 더 간단히 일을 처리했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부작용이라는 게 뭐지.”
전투가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 프레와 했던 대화를 상기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풍경을 바라본 것처럼 몽롱한 기억.
그때 프레는 분명히 말했었다.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어차피 프레의 능력에 많이 기대는 편이 아니라 어지간한 거면 상관없지만···.’
다만 훗날을 생각하면 커다란 부작용은 안 된다.
IZIZ, 판데모니엄, 미스틸테인, 그리고···.
‘마족.’
아직 HMCS로서의 동선에서는 마주한 적 없지만, 머지않아 곧 마주하게 될 놈들.
시우의 존재가 더 드러나게 된다면 우선 마족에서 가만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딴 것들이랑 평화협정을 맺다니. 마왕이랑 싸운 의미가 없잖아.”
【마왕ㅡ! 나를 불렀나!】
갑작스러운 외침에 시우는 움찔하고 놀랐다.
전투 후에 속으로 계속 불렀는데 꿈쩍도 하지 않던 놈이 갑자기 소리치니 안 놀랄 수가 있나.
“누가 마왕이야.”
【그래, 바로 이 몸! 프레데터이시다!】
염병하네.
시우는 프레의 목소리가 멀쩡한 거에 안도했다.
부작용 어쩌고 지껄이길래 나이라도 확 들어서 늙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정도의 문제는 아닌듯하니 다행이다.
“너 잤냐? 조금 전까지는 불러도 대답 하나 없던 놈이.”
【잠든 게 아니다.】
“그럼 뭔데?”
【잠깐 눈을 감은 것뿐이다.】
“······.”
시우는 대꾸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욕밖에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맛없게 생긴 지렁이는 이겼냐?】
“이겼지, 당연히.”
【그러고도 지면 넌 좁밥이 아니라 폐기물인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가면 하야카와 몸에 부담될까 봐서 일부러 간당간당하게 이긴 거거든?”
【시끄럽다. 내게 치킨이나 육회를 바치거라.】
죽이고 싶다, 정말.
시우는 피곤한 와중에도 살의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면 바로 목부터 졸라 줄 테다.
“그런데 네가 말한 부작용이 이렇게 한 번씩 자는 거냐?”
【아니다. 자는 건··· 자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뭐냐고.”
【그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눈을 감은 것뿐이다.】
“그래? 그래서 부작용이 뭔데.”
시우는 거의 잠들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단 한 가닥의 정신 줄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
프레가 지금껏 부작용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처음이었고, 잠이 든 것도 처음이라 궁금했기 때문.
【부작용. 너도 보고 있다.】
“···뭔 소리야. 모르니까 물어보지.”
【눈이나 뜨고 말해라.】
시우는 불안한 느낌에 몸을 일으켰다.
피곤이 눈꺼풀을 내리누르고 있었으나, 쎄한 느낌이 너무 컸던 것이다.
달칵.
옆에 있는 무드 등의 불을 켰다.
【우하하하. 위대한 나를 보아라.】
“아······.”
시우의 눈앞.
【제법 위협적이지 않으냐.】
웬 손바닥만 한 동그란 인형이 올망졸망하게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