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5
77화〉
하야카와
– 선배님, 출근하러 오시는 길에 탈주한 몬스터 사냥 좀 해 주십쇼. 위치는 찍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라.”
시우는 전화를 끊고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잠을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피곤하다기보다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
이렇게 잠을 설친 까닭은ㅡ
【오늘 점심 뭐 먹냐? 나 님은 오랜만에 탕수육이 땡기는 것이다!】
어깨 위에서 나불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녀석 때문에.
이런 건 부작용이 아니라 참사라고 부르는 거다.
시우는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핑계를 대야 할까.
사실 헌터들 중에 몇몇이 소환수나 길들인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랭커들 같은 경우엔 데리고 다니는 소환수나 몬스터가 인기가 많아져 관련 굿즈를 파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렇게 생긴 놈도 있을까?’
보통은 다들 알 법한 것들을 끼고 다니는 것 같던데.
시우는 조수석에 둥둥 떠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까맣고 작은 몸통(얼굴뿐이지만)에 빨간 눈, 머리에 난 앙증맞은 뿔과 옆에 달린 작은 날개와 꼬리까지.
누가 봐도 소악마의 모습을 한 외모였다.
“음···.”
【뭘 보는 것이냐? 미안하지만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죽이고 싶군.
시우는 황정구가 보낸 주소로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널찍한 공원.
시민들은 다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하지만 이상한 점은 몬스터마저 시야에 없었던 것.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라.
시우는 한쪽에 차를 세우고 공원에 들어섰다.
순간 허공에서부터 이상한 굉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공원 바닥에 처박히며 산산이 부서지는 덩어리.
쾨ㅡㅡㅡ앙!!
그것은 커다란 덤프트럭 크기의 몬스터였다.
사인은 추락사.
그 거대한 괴물을 하늘로 던져 떨어트렸을 누군가가 멀리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왔다.
“흥! 이 나라는 괴수마저도 허약해 빠졌군!”
일본 전통 의상인 새까만 하오리에 줄무늬 하카마 차림의 늙은 노인.
그는 희고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시우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주 사납고 날카로운 안광.
시우는 저 노인이 엄청난 실력가이며, 동시에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묘한 살의가 느껴지네.”
【그렇다. 식량에게 분노하고 있다.】
“하는 수 없지.”
【무슨 스킬이 필요하냐? 말만 해라!】
“도망치자.”
【······??】
요즘 귀찮은 일을 수차례 겪은 탓에 시우는 어지간하면 얽히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카구츠치]와 싸운 게 불과 어제 일이다.
뜨끈한 목욕물에 몸이라도 푹 담그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출근하려 했더니, 아침부터 희한한 일에 엮이고야 말았다.
시우는 주차해 놓은 곳까지 총총걸음을 쳐 도망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기모노 차림을 한 십수 명의 사람들이 그의 길을 막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응···.”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뒤를 돌아보자 조금 전 보았던 늙은 영감이 매서운 눈빛으로 시우를 째려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게냐, 이 겁쟁이 놈!!”
“···저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너 같은 것을··· 이 비겁한 놈 같으니라고!”
“···?? 영감님??”
노인은 시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손에 쥔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만약 포기하겠다고 말한다면, 내 이번 한 번은 눈감고 없던 일로 해 주겠다.”
“······??”
“하지만!! 만약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쿠우우웅!!
노인이 지팡이를 거세게 내려찍었다.
지팡이 끝에서부터 파문처럼 일어나는 격한 마력의 진동.
“내 너를 간악한 도적으로 여기고 이 자리에 묫자리를 만들어 주마!”
“······.”
뭐라는 거야 미친 영감이.
시우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멀거니 노인을 쳐다봤다.
침묵이 이어지자 노인은 쑥스러웠는지 헛기침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그, 그 침묵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노기 어린 음성에 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뭘 포기하라는진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데요.”
“끌끌끌. 고얀 놈이로고. 어디 한번 해 보자, 애송아!!”
분노와 흥분, 즐거움 따위가 뒤섞인 표정.
노인이 수신호를 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시우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대체로··· 마력을 다루고 있네.’
널따란 마력 감지를 퍼뜨리고 있던 덕에 시우는 그들의 실력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딱히 약하다고 하긴 그렇지만, 강한 것도 아닌 정도.
“미안하지만, 근육통 때문에 힘 조절을 못 해서.”
[뇌전 : 금빛 늑대]허공에 아로새겨지는 술식과 마력의 조화가 눈부신 섬전을 뿜어내며 수십 마리의 금빛 늑대를 소환했다.
화살처럼 쏘아지는 전격의 늑대들이 닥치는 대로 기모노 차림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순간,
[イワナガヒメ(이와나가히메) : 산신의 정령]콰드드드드득···!!
땅바닥이 솟구치며 돌덩이로 만들어진 곰들이 금빛 늑대를 찢어발겼다.
“끌끌. 그딴 강아지 새끼로는 내 수하들의 수염 하나 자르지 못할 것이다!”
시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저 영감탱이, 처음에 지팡이 찍을 때 미리 작업을 해놨군.’
뇌전의 공격은 모든 공격 중에서도 가장 빠른 축에 속했다.
그런데 준비 동작도 없이 바윗덩어리를 소환시켜 금빛 늑대를 막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시우의 마력 감지 내에서는 말이다.
“계속 그렇게 도망만 칠 것이냐! 이 천하의 몹쓸 놈 같으니!”
노인은 다시 한번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쿠ㅡㅡㅡ웅!!
마력과 신력의 파장이 땅속을 헤집고 다니더니 거대한 두 개의 바위 주먹을 만들어 냈다.
엄청난 흙먼지와 돌가루를 떨어트리며 상공으로 치닫는 암석.
두 개의 바위산이 솟구친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주먹들은 곧장 시우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너무도 거대한 탓에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해 보였으나, 실제로는 파도가 급습하듯 빠른 속도였다.
“빌어먹을 영감탱이가ㅡ.”
시우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경천동지할 광경을 바라봤다.
보통 노인네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의 괴물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대로 피해 버리면 되는 거긴 한데ㅡ
“보고서가 늘면 정구한테 미안하잖아!!”
이 일대가 초토화되면 복구하는 비용과 과정도 만만치 않을 터.
[땅의 울음 : 뿌리의 숨결] [땅의 울음 : 뿌리의 숨결]시우는 더블 캐스팅을 시전했다.
수백 개의 도형과 문자가 기하학적인 회로를 그리며 마법진을 구성했다.
그 회로를 따라 격류하듯 마력이 질주했고, 곧 눈부신 청록의 빛이 대지를 횡단했다.
두 개의 주먹이 시우의 머리통을 박살 내려는 찰나,
카드드드드득!!
“주먹이··· 멈췄어?!”
노인은 기함을 내질렀다.
저 강격은 이날 이때껏 그 누구도 멈춰 세우지 못했던 기술이었다.
시우가 피할 것이라 예상하고 길목에 다른 함정을 준비해 놨거늘.
노인은 눈앞의 상대가 어떻게 제 주먹을 멈추게 한 것인지 눈을 부릅뜨고 관찰했다.
땅속에서 피어올라 온 수백 개의 나무 덩굴이 바위의 밑바닥에서부터 칭칭 감겨 와 두 주먹을 굳게 붙들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력 컨트롤과 섬세함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방어.
저 짧은 시간에 이토록 대담하게 주먹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끌끌끌. 대단하군, 대단해.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내로군.”
“이제 됐습니까?”
시우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말을 이었다.
“〈하야카와 가문〉의 당주님?”
“이런ㅡ 들켜 버렸군.”
10대 당주인 하야카와 세이겐은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내 애지중지하는 손녀딸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고 하길래, 감사 인사차 왔네.”
“두 번은 받고 싶지 않은 인사군요.”
“끌끌끌. 간신히 합격일세. 공격이 형편없었거든.”
세이겐은 지팡이를 바닥에 쿵, 하고 내리치며 중얼거렸다.
“물론 자네가 진심으로 싸웠다면 달라졌겠지만 말이지.”
마력과 신력이 퍼져 나가며 바위들이 땅속으로 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따라오게. 손녀딸과 함께 말을 나누고 싶으니.”
“밥이라도 준다면야.”
【밥을 먹는 것이다!!】
시우의 어깨 위에서 인형처럼 가만있던 프레가 방방 뛰며 소리쳤다.
세이겐을 포함한 십수 명의 사람들 눈이 동그래지며 침묵이 이어졌다.
“어··· 그··· 복화술···.”
【복화술?! 술도 먹는 것이다!!】
시우는 입을 다물었다.
***
어느 고급 호텔의 VIP 전용 레스토랑.
안내된 방으로 들어가자 다소곳한 기모노 차림의 히카리가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우 님!! 그리고 할아버지!”
“끌끌. 이제 할아비는 두 번째인 거냐.”
“아이, 참! 그런 거 아닌 거 아시잖아요!”
뭔 망할 테스트라며 공원 하나를 개박살 낸 사람은 어디 가고, 평범한 할아버지가 된 세이겐.
자연스레 상석에 앉은 그는 시우에게 앉으라 권했다.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안색이 무척 좋아 보이는구나.”
“그럼요. 이게 다 옆에 계신 시우 님 덕분인걸요. 그런데 시우 님··· 어깨에 그건 무엇인가요?”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할 마ㅡ 읍! 읍!!】
시우는 프레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새로운, 그··· 펫이야.”
“아, 그러시군요! 시우 님을 닮아 멋지고 귀, 귀여운 것 같아요.”
히카리는 볼을 살짝 붉히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주술사가 아닌가?”
“네. 평범한 헌터입니다만.”
“평범한 헌터는 [카구츠치]를 때려눕힐 수도 없고, 생명력을 주입할 수도 없네만.”
세이겐의 눈빛에는 이제 날카로움이 없었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과 강자를 향한 존중만 눈에 담겼을 뿐.
“어쩌다 보니 그런 능력도 있게 됐습니다.”
“뭐, 헌터의 기술은 함부로 캐묻는 게 아니긴 하지. 하지만 옆에 있는 펫은 특이하긴 하군.”
【나는 펫이 아니다! 이놈이야말로 내 식ㅇㅡ 읍!! 읍!!】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입 좀 다물자.”
시우는 소곤대듯 프레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프레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시우를 한참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고맙게 됐네. 나도 주술사 가문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자네가 말한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특히 [카구츠치]는 아무나 제압해서 이길 수가 없는 신령일세. 만약 가문 차원에서 일을 진행했다면 나로는 어림도 없었을걸. 상성이 안 좋거든.”
세이겐은 착잡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이제 다 끝난 일이잖아요.”
히카리는 선 고운 예쁜 얼굴로 환히 웃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과거의 선택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히카리는 [카구츠치]를 제압하자마자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연락했다.
그 길로 세이겐은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고.
“손녀딸의 웃음이 그 무엇보다 좋은 선물이군. 끌끌끌. 가문의 당주로서 반 정도는 허락을 하겠다.”
“할아버지! 만나 보고 허락해 주시기로 했잖아요!”
“뭔 허락··· 저 이만 가도 되나요?”
【어딜 가냐! 먹고 가기로 나랑 약속했다!】
시우는 가문 일에 왜 본인이 끼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자를 밀치고 조심히 밖으로 나가려는데,
“앉게나!!”
“앉아 주세요!”
그들의 외침에 시우는 뻘쭘하게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결심한 게냐, 히카리?”
“네! 저는 마음을 정했어요.”
“하아ㅡ 이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는 게로군.”
세이겐은 못마땅한 얼굴로 시우를 째려봤다.
“그렇다면 할아비도 한동안 지켜보기로 하겠다. 이게 조건이다.”
“알겠습니다, 부끄럼 없는 모습 보여 드리도록 할게요.”
히카리는 시우를 향해 그 어떤 때보다 해사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쵸ㅡ 서방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