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6
78화〉
오해
“서방··· 님?”
시우의 되물음에 히카리는 얼굴 가득 홍조만 띄웠다.
“어··· 무슨 말인지···.”
“내 손녀딸의 사윗감으로 인정한 건 아니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아이참. 제 서방님이 그런 사람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내 손녀딸이 한국에서 산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자주 가도록 할게요! 그쵸~ 서방님?”
“······.”
시우는 대체 자신이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생각했다.
저 영감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방님이란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의 대화 흐름.
“음.”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제가 왜···.”
“네놈. 히카리가 마음에 안드느니 어쩌느니 지껄이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찢어 죽여 주마, 라는 기운을 마구 풍기는 세이겐.
“그···런 건 아닙니다만.”
시우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으로 히카리를 바라봤다.
히카리는 그 얼굴을 마주하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대꾸했다.
“시우 님이 저를 위해서 목숨을 거시고 [카구츠치]와 싸워 주셨잖아요. 시우 님 덕분에 제 삶이 늘어났으니, 그 삶만큼 옆에서 함께하고 싶어요.”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또한 그ㅡ 말하기 부끄럽지만, 소녀의 몸을 만지시지 않았나요. 목덜미와 배와 가, 가슴 같은······.”
“お前を殺す!!(너를 죽이겠다!!)”
세이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자, 잠깐!! 다짜고짜 만졌다고 하면 안 되지!”
“黙れ!!(닥쳐라!!)”
세이겐의 눈에 시우는 자신의 손녀딸을 농락한 일개 파렴치한 양아치에 불과했다.
평생을 애지중지 키워 온 손녀의 몸에 손을 대고도 감히 모르쇠로 일관하다니!
“내 반드시 〈하야카와 가문〉과 거기 속한 신들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기필코ㅡ!!”
“할아버지! 제 서방님께 그러시면 안 돼요!”
“그렇지만 히카리··· 이 자식이 네 몸을 더럽혔는데···.”
“아니, 이 영감탱이가 손녀 말만 듣고 내 말은 듣지도 않아!”
“시끄럽다, 이놈!! 그렇다면 만지지 않았다는 소리냐?!”
“그건 다른 목적이 아니라···.”
【만졌다! 저 암컷 가슴 꾹 누르고 나중에 입도 맞췄다! 나 기억력 좋다! 에헴!】
“어머나··· 그, 그건 비밀이에요!”
프레는 모처럼 자신이 활약했다고 생각했는지 우쭐대며 날아다녔다.
저 새끼가.
시우는 목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차라리 적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라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노성을 터뜨릴 줄 알았던 세이겐이 침착했다.
시우는 상대가 진정했다 판단하고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영감님? 일단 제 이야기부터 들어 보시죠. 우선 입맞춤은 저는 금시초문이고··· 저도 치료 목적으로 손을ㅡ.”
“할복해라.”
“네??”
“할복하라고 했다.”
세이겐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내 손녀딸을 책임질 것이냐, 아니면 남자답게 자결할 것이냐! 택해라 이 새끼야!!”
“할아버지! 제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어요! 서방님께 너무 엄하세요!”
“하지만 히카리, 저 자식이 자꾸 말을 돌리지 않느냐!”
“서방님도 쑥스러워 그러실 거예요. 제가 워낙 이쁘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내 손녀딸은 일본 최고의 미녀 중 하나로 뽑히고 있다. 알고 있나, 얼간이.”
시우는 테이블 위에 양쪽 팔꿈치를 세우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받쳐 감쌌다.
대체 이게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저런. 보세요, 할아버지. 쑥스러워하잖아요.”
“에이! 사내놈이 이까짓 일로! 얼른 책임지겠단 말이나 하거라! 〈하야카와 가문〉의 일원이 되는 걸 영광으로 알고!”
시우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카구츠치]랑 한 번 더 싸우는 게 낫지.’
***
키이루는 호텔 로비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커피도, 신문도, TV도 재미없는 것투성이네.’
그는 뿔테 안경을 매만지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곧 미행을 나갔던 수하들에게서 연락이 올 터.
〈야마구치구미〉의 별동대인〈아카이 키츠네(붉은 여우)〉의 조장인 키이루는 이번 임무의 난이도에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도쿄의 HMCS가 대단하다고 해도 일개 사람일 텐데, 어른과 와카가시라(두목의 오른팔)의 걱정이 너무도 태산이었던 것이다.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둥, 〈야마구치구미〉가 관련된 걸 모르게 해야 한다는 둥.
그 결과가 〈아카이 키츠네〉의 전원 출동.
‘조장인 내가 이런 후진 나라에 직접 와야 할 정도란 말인가. 늙은이들의 걱정은 유난스러워.’
키이루는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야마구치구미〉라고 하면 전 일본 내에서 덜덜 떠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동네 ‘한구레’만도 못한 조직으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이노우에 카이는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였지만, 사상만큼은 나랑 비슷해서 좋았거늘.’
키이루는 조직의 재건 정도가 아니라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급진 개혁파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인 타오카 테루아키는 온건 보수파에 가까웠고, 쓸데없는 분쟁이나 마찰을 극도로 꺼렸다.
이번 일도 HMCS 헌터가 외국에 나왔기에 추진한 일일 터.
‘얼른 마무리 짓고 돌아가 늙은것들을 갈아 치우자고 해야겠어.’
조직의 그림자인 별동대인 만큼 지지하는 다른 조장만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일이었다.
“이야~ 오늘은 제가 좀 늦었네요.”
그때 맞은편 의자에 누군가 털썩 앉으며 말을 걸었다.
미행을 보냈던 수하 중 하나였다.
“조금 지각이긴 하네. 늦잠이라도 잔 거야?”
“하하, 아니요. ‘물고기’를 관찰하느라 말이죠. 요즘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다니까요. 꽃무늬가 어찌나 예쁜지.”
수하는 미행 상대를 물고기에 비유하며 말을 이었다.
키이루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화에 응했다.
“뭘 관찰하는 취미는 괜찮지. 물고기는 잘 있어?”
“그럼요. 커다란 집도 만들어 줬는데, 거기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오는 길이에요.”
“물고기한테 집이라니, 나보다 상황이 낫네. 참, 오늘 미팅이 몇 시였지?”
“지금이 1시 20분이니까··· 2시로 알고 있습니다.”
수하는 생글생글 웃으며 질문에 꼬박꼬박 답했다.
정리하자면 작업 대상인 ‘히카리’란 헌터는 곧 호텔로 들어올 것이며, 그녀의 레스토랑 예약 시간은 2시로 되어 있다.
키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 업체에서는 몇 명이나 올 예정이래?”
“일단 두 명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분이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많지 않아서 다행이야. 사람이 많으면 대응하기 힘들거든. 미팅 대응은 확실히 하고 있지?”
“그럼요! 최고의 코스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놈들이랑 식사하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곧 최후의 만찬이 될 터였다.
키이루는 신문을 계속 읽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수하가 입을 열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거래 업체분들이 오신 것 같다고 하네요.”
“그래? 우리도 그럼 슬슬 준비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키이루는 흠칫 놀라며 조심히 다시 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젠장··· 넌 저게 누군지 모르냐?”
“글쎄요. 기모노 입은 할아버지? 정계 인물인가요?”
키이루는 수하의 무지에 어이가 없었다.
“넌 가서 똥이나 처먹어라.”
“예? 선배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심한 건 네 머리통이지 내 입이 아니야.”
수하는 키이루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지만, 조장의 저런 태도는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데 그러십니까?”
키이루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조심히 말을 이었다.
“일본 주술계의 거물이자 괴물. 하야카와 세이겐이다.”
“세이겐이라면ㅡ 7년 전 ‘교토 S급 게이트’ 때 활약했던 20인방 중 하나 말인가요?”
수하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인물의 이름을 떠올렸다.
‘S급 게이트’는 그 어떤 국가에서 일어나도 재앙이 될 수 있는 최악의 사태 중 하나.
전 세계를 통틀어 채 10건도 보고되지 않은 희귀 게이트였지만, 저 폭주를 막지 못해 2개 국가가 멸망했고 3개 국가가 파산에 이르렀다.
일본은 선진국인 덕에 충분한 자본과 인력으로 사태를 잘 막아 냈으나, 그마저도 피해가 제로는 아니었다.
“그래, 그 ばけもの(괴물) 세이겐.”
그때 S급 게이트 안에 들어가 치열하게 싸웠던 20명의 일본인 헌터가 있었다.
정부는 그들을 교과서에 실었고 국가 영웅으로 대접했으며, 20인방은 일본의 모든 헌터가 예를 갖추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키이루는 혀를 깨물었다.
그리고 작업 대상의 파일을 다시 확인했다.
이름 : ‘하야카와 히카리.’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어 놓은 성.
‘빌어먹을··· 파일을 제대로 보지 않은 내 탓인가.’
만약 키이루가 세이겐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마어마한 폭주사태가 일어났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선배님, 그럼 어떻게 하죠? 작전 개시하나요?”
“뭐?”
“예정대로 히카리만 죽이고 나오면···.”
“이 미친 새끼야! 그 작업 대상이 누군지 알아?! 세이겐의 손녀야! 넌 세이겐 앞에서 손녀를 죽이고 도망갈 수 있어?!”
키이루는 열이 올라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왜 아카이 키츠네를 전원 소집했나 했더니. 우리가 다 뒤지더라도 복수는 하고 오라 이 뜻이었구만.’
이래 놓고 ‘〈야마구치구미〉랑 저희는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증언하라고?’
노인네들의 계략에 넘어가 별동대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
혹여나 히카리의 암살에 성공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하야카와 세이겐은 주술의 달인.
증거를 다 지우고 흔적을 없앤다고 해도 과연 그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20인방은 서로 막역한 사이라고 했지. 만약 다른 20인방에게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아니,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조직이 끝날지도 모른다.
한 명 한 명이 탈인간이라 부르는 자들인데.
키이루는 우선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안 따라가도 됩니까?”
“어. 아무도 쫓아가지 말라고 해. 괜히 이상한 눈치 줘서 들키면 바로 좆 된다.”
“알겠습니다···.”
같은 조직원의 복수랍시고 저지르기엔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세이겐의 손녀 사랑은 주술 가문에서 유명한 이야기.
‘하지만 히카리를 죽이지 않는 것도 곤란하다. 조직 내에서 내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자칫 잘못하면 경질이 될 수도 있어.’
키이루는 조직에서의 체면과 자신의 목숨을 저울추에 올려놓고 비교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체면보단 목숨이 더 중요하지만···.
그때 다른 수하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냐.”
– 조장님. 근처에서 수상한 자들을 체크하다가 우연히 다른 조직과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ちくしょう!(제기랄!) 그렇게 들키지 말라고 했는데!”
–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들킨 게 아니라 서로 넌지시 알아챈 거라···.
수하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키이루는 난데없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저 가볍게 HMCS 소속 헌터 하나만 죽이고, 혼잡한 틈에 적당히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는데,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일까.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싸웠나?”
– 그게···.
“말을 확실히 해라!”
– 상대 조직 보스가 조장님을 한번 보고 싶어 합니다.
“뭐?!”
키이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일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조직 보스가 누구라는데?”
– 홍콩의 ‘장첸’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