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7
79화〉
기다림은 언제나
이곳은 마정석을 가공한 결계가 사위를 감싸고 있어 헌터들이 스킬을 쓰며 훈련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오늘은 그 연무장을 통으로 빌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여제 강여화.
그녀는 군데군데 경호 헌터를 배치해 보안과 안전까지 고려하며 훈련을 준비했다.
‘드디어 스승님한테 배우는 날이야!’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도 더디게 간 탓에, 그녀는 울 것 같은 기분을 달래며 지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길드장···님? 오늘 훈련하러 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강여화의 비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헤어숍을 다녀왔는지 정돈된 붉은 머리카락과 평소에는 보지 못한 짙은 화장, 그리고 몸에 착 달라붙어 매력적인 라인을 보여 주는 운동복까지.
“화보 촬영이 준비되어 있었나요···?”
“아니. 훈련하러 가는 거 맞는데. 왜···? 이상해?”
강여화는 비서의 반응에 걱정이 밀려들었다.
평소에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안 그래도 어색한데, 비서마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안 어울리나 걱정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의 착각.
“아뇨!! 정말 너무 이쁘세요.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완전 굿입니다! 그냥 길드장님이 잘 안 꾸미시다가 꾸민 걸 보니까 놀라서요.”
“아ㅡ 그래? 그럼 안 이상한 거 맞지?”
“물론이죠!”
비서는 생긋 웃었다.
그녀를 5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요즘처럼 밝고 기운차게 지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뭔가에 쫓기듯 안절부절못하고 사람 내부가 텅 빈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어느 날, 스승님이 돌아왔다고 하더니 그때부터는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계속 들뜬 모습을 보였다.
비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게다가 최대수와의 거래도 끝났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길드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오늘 그 스승님이라는 분과 훈련하세요?”
“으, 응? 어? 그, 그렇지.”
“저도 따라가서 봐도 될까요?”
“아, 안 돼!! 아직은···.”
강여화는 볼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거절했다.
“흐음~ 훈련 맞죠? 데이트 아니죠?”
“까, 까불지 마!”
비서는 ‘표정’이 생긴 강여화의 변화에 크게 감동했다.
“알겠습니다. 훈련 제대로 하고 오세요.”
“그래, 고마워.”
“길드장님, 파이팅!”
“···파이팅.”
***
드디어 약속한 시간.
강여화는 연무장에 먼저 도착해 몸을 풀었다.
170이 넘는 키에 날씬하게 뻗은 다리로 발차기하는 모습은 가히 화보라 불릴 만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몸을 움직였다.
재회하고 나서 계속 급박한 상황이 몰아치는 바람에 이런 일상적인 만남이 처음이라 더욱 긴장된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차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여화는 관심 없는 척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인기척이 뒤에서 들리자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오셨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점차 가라앉았다.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스승의 옆에는 민시준과 웬 할아버지, 그리고 인형처럼 생긴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깡화, 오래 기다렸어?”
“아, 아니요. 그런데 옆에는 누구시죠···?”
스승의 부름에 기쁜 마음이 살짝 올라오다가도 옆에 선 여자애가 신경이 쓰여 목소리 톤을 낮췄다.
“나는 〈하야카와 가문〉의 10대 당주 하야카와 세이겐이라 한다. 심심하다고 했더니 이리로 안내하더군.”
세이겐은 꼬장꼬장한 눈빛으로 강여화를 아래위로 훑었다.
이뻐서가 아니라, 그녀의 마력과 실력을 가늠해 보려는 것.
“이 영감님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 그리고 이쪽은 영감님의 손녀 하야카와 히카리야.”
시우가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소개하자 히카리는 기모노를 다소곳하게 여미며 허리를 숙였다.
“반가워요, 강여화 헌터님. 저는 〈하야카와 가문〉의 12대 차기 당주인 하야카와 히카리라고 해요.”
“아··· 네. 저도 반갑···.”
“그리고 시우 님의 아내 될 사람이기도 해요.”
강여화는 몸을 돌처럼 굳혔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불씨로 살아났다.
그녀의 시선이 시우에게로 천천히 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얼른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다 엎어 버리기 전에.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안광에서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우는 이 거대한 오해와 이상하게 꼬인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애지중지하는 손녀딸을 자기 같은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건가.
아니, 애초에 아무 관계도 아니긴 하지만.
【식량이 저 암컷의 가스ㅡ음! 읍읍읍!!】
시우는 있는 힘껏 프레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자식은 눈치도 분위기 파악도 다 배 속에 처넣고 소화시키는 모양인가 보다.
“암컷의 가스···?”
“헛소리니까 듣지 마.”
“그런데 어깨에 그건 뭐예요?!”
“이거ㅡ 내 펫이야.”
입을 막은 손가락을 와드득 깨무는 프레의 이빨이 너무도 아팠지만, 시우는 결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주워들은 말을 아무거나 내뱉는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으읍!! 읍읍읍! 으으으읍!!】
프레는 억울하단 듯 날개를 퍼덕여 항의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강여화는 다시금 따가운 눈초리로 시우와 히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시우는 말하기 껄끄럽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였고, 히카리는 뭐가 좋은지 그저 생글생글 웃고 있기만 했다.
“그냥 내가 목숨을 살려 준 것뿐이고··· 별 사이 아닌···.”
“어머나, 서방님 그게 어떻게 별 사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제 생명을 구해 주셨으니, 히카리의 남은 삶은 서방님 거예요.”
“아니··· 영감님, 반대 좀 하시죠.”
“끌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 않은가. 히카리의 문제는 이제 둘이서 알아서 하게.”
세이겐은 시우가 곤란한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운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시우와 간단한 모의 전투를 하고 그를 대해 보니 좋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십몇 년 전에 한국에서 최대수와 자웅을 다퉜다는 엄청난 헌터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름이 똑같단 말이야. 이 친구의 나이를 가늠하자면 아니겠지만···.’
제대로 붙어 본 게 아니라서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나, 시우의 강함은 세이겐이 최근 만나 본 자 중에서도 손에 꼽혔다.
단순한 우연인 건지, 아니면 인연이 있는 건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 따라다니는 것.
그사이 시우는 여화에게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다.
당연하게도 시우에겐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히카리의 일방적인 마음에 중점을 둬서 말이다.
“스승님··· 이 제자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요?”
“전혀 아니지, 깡화야. 난 무관하단다.”
“서방님, 훈련은 언제 하시는 건가요?”
“하야카와 씨. 스승님에 대한 그 호칭은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삼가시죠.”
“어머나, 여화 헌터님. 혹시 ‘우리’ 사이를 질투하시는 건가요?”
“···스승님, 교육에 앞서 대련을 먼저 하고 싶은데요.”
강여하와 히카리는 노골적으로 기 싸움을 벌이며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영감님. 좀 말리지 그래요?”
“무슨 헛소린가. S급 헌터와의 대련은 돈을 줘도 해 보기 어려운 일인데.”
사실 세이겐은 시우가 ‘제자와 훈련’을 한다고 해서 작은 학원 같은 걸 운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따라와 보니 S급 헌터 민시준에다가 강여화 헌터마저 있는 것이 아닌가.
둘의 명성은 일본에까지 퍼져 있었고, 특히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드는 강여화의 실력은 꽤 상당한 축에 속한다고 들어 왔던 터.
‘이거, 참. 옆에서 보니 나도 근질근질하구먼.’
시우와 했던 잠깐의 전투로 몸이 살짝 달아올랐던 세이겐은 강자들을 연달아 보니 새로운 투쟁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형. 나 그냥 갈까 봐. 무섭다.”
그때 민시준이 다가와 소곤거리며 여자들을 가리켰다.
이러다가는 둘 다 진심으로 싸우기라도 할 모양.
“그러지 말고. 영감님, 우리 대련이나 하죠.”
“대련··· 자네와 나 말인가?’
세이겐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재미없으니까, 팀 먹고 싸우게 하는 건 어때요.”
“호오ㅡ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시우와 세이겐은 서로를 바라보며 기쁜 듯 마주 웃었다.
***
그렇게 성사된 3대 2의 매치.
시우와 세이겐이 A팀, 민시준과 강여화, 히카리가 B팀을 먹고 팀전을 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규칙을 설명합니다.”
시우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A팀은 공격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 B팀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각자 착용한 스마트 워치에 데미지 양이 표시되는데 0%가 되는 순간 탈락. 한 팀이 전멸할 때까지 한다. 이해 안 되는 사람?”
그때 여화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스승님, 팀킬 해도 됩니까?”
“···안 됩니다.”
“서방님, 같은 편을 없애도 되나요?”
“···그게 바로 팀킬입니다.”
“형, 혹시 스스로에게 데미지를 줘서 빨리 끝내도 될까?”
“···본인의 공격은 데미지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내가 식량이를 없애서 B팀이 이기게 할 것이다!】
“···너랑 나는 한 몸입니다.”
세 사람과 프레는 모두 ‘쳇’하는 표정을 지었다.
“끌끌끌. 한국에 와서 이렇게 재밌는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러다 귀화라도 할 판이네.”
“제 옆에 있으면 지루하진 않을 겁니다.”
시우는 동전 하나를 꺼내 엄지손가락 위에 올렸다.
“이게 바닥에 닿는 순간 시작합니다.”
띵ㅡ
하늘 높이 튕겨 올라가는 동전.
휙, 휙, 한 바퀴씩 면이 뒤바뀌며 푸른 하늘을 천천히 유영하는 동전에 모든 이의 시선이 모였다.
숨이 멎고 긴장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렇게 낯선 이들과 뒤섞여 단체 대련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시준도 강여화도 그래서 더 압박을 느꼈다.
자신들의 수준이 낮게 평가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시우에게 전가되는 것.
딸그랑.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는 찰나, 다섯 명에게서 폭발적인 마력이 솟구쳐 나오며 대기를 뒤집었다.
먼저 강여화가 세이겐을 향해 몸을 박찼다.
“끌끌. 네 스승에게 갈 줄 알았더니. 아니면 스승을 편애하는 것인가.”
“편애라니, 스승님이 워낙 강해서 처음부터 아웃되고 싶지 않아 세이겐 님께 온 겁니다.”
강여화의 단전에서 뿜어진 마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들어차며 그녀의 육체를 고양시켰다.
악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선의도 없는 마력은 세이겐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와나가히메 : 산신의 정령]땅바닥이 우수수 흔들리더니 돌덩이로 이루어진 3m 크기의 호랑이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아이들은 일반 짐승들보다 아플 걸세.”
“그래 보이는군요.”
강여화가 호랑이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마풍 : 바람살]민시준의 스태프 끝에서 발한 마력 입자들이 커다란 진을 이루며 바람의 화살 십여 개를 순식간에 쏘아 냈다.
퍽! 퍼걱! 빠각! 퍼억!
돌로 된 호랑이의 몸 틈 사이로 바람의 살이 연이어 내리꽂혔다.
“고작 그런 거로는 내 호랑이가 무너지지 않을 텐데.”
“알다마다요. ‘흩어져라.'”
마력이 담긴 시동어가 전달된 그 즉시, 박힌 살들이 돌덩이 내부에 수백, 수천 갈래로 쪼개지며 돌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녔다.
파가가가각!!
호랑이들이 휘청거리며 돌무더기가 깨지고 금이 갔다.
곧이어 강여화의 올곧은 정권이 두 마리의 머리뼈에 전해졌고, 순식간에 돌 부스러기만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거ㅡ S급 상대로 내가 너무 교만했군.”
세이겐의 눈빛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