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
8화〉
헌터 특수 수사대
달빛이 든다.
은빛 서늘함이 몸을 훑고 아파트 옥상에 고요히 흘러내린다.
찬 바람도 불지 않건만. 몸이 시리다.
“후우.”
시우는 편의점에서 사 온 담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100년을 기다려 온 결과가 이렇다.
그대로 있기를 바랐던 것들은 흩어지고.
변하기를 바랐던 것들은 더욱 견고하고.
시우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알량한 시간이군.”
백 년이 아니라 딱 50년만 있다가 왔다면. 그랬다면 변할 수 있었을까.
괜한 잡념이 머릿속에 담배 연기처럼 뒤엉킨다.
고향에 간 샤오롱이야 둘째 치자.
백번 양보해서 강여화의 행보도 이해가 간다 치자.
그러나 정민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스승보다 먼저 죽는 제자가 어디 있냐.
썩을 놈.
시우는 난간에 머리를 기댔다.
서늘한 감촉이 이마를 식힌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곤 옆에서 헤실헤실 웃던 민준이.
그 구김 없는 웃음이 거대한 시간을 뚫고 와 시우의 눈 속에 보석처럼 박힌다.
한숨을 내쉰다.
【왜 어울리지 않게 청승이냐.】
내면에서 프레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울린다.
친한 친구가 어깨를 툭 치듯, 가볍고 깊은 손길이다.
“그냥. 생각보다 많이 변해서.”
【세상은 다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음식도 변하고, 땅도 변하고, 하늘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변하지 않길 바라는 자만 멍청한 거다.】
“······.”
프레는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읊어 나갔다.
그 조곤조곤한 음성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묻어 있는 듯하다.
【불멸의 내 종족도 마찬가지다. 가족들, 친구들 많았는데 다 없어졌다. 이제 나 혼자다. 다 변한다.】
100년 이상을 산 시우보다 몇 배는 더 살았을 존재.
시우는 프레가 겪었을 일들이 자신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나만이 유일한 인간이라면.’
그것에서 오는 외로움은 시우도 충분히 겪었던 거다.
이계에서 미치도록 느꼈던 감정이니까.
【······그러니까 너는 변하지 마라. 가만 안 둔다.】
이상한 결론이다.
모든 것들은 변할 수밖에 없다면서.
변하지 않길 바라는 자만 멍청한 거라면서.
그런데 나보고 변하지 말라니?
시우는 뜬금없는 프레의 엄포에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믿고 싶은 거라면. 다시 한번 더 멍청한 자가 되고 싶은 거라면.
“그래, 안 변할게. 죽는 한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변하지 마라.”
【알았다.】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시우는 옥상 난간에 새 담배를 올려 둔 채 먼 곳을 응시했다.
구름 속에 달이 숨는다.
“···너 다 피워라, 인마.”
제자의 죽음.
지구에 와서 해야 할 일이 생긴 순간이다.
시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
“형은 십 년 동안 하나도 안 변했네.”
민시준은 혼자만 늙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늙었다’라는 표현보다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맞지만.
그러나 시우는 옛날과 비교해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방부제 외모라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것인가. 이제는 오히려 시우가 동생으로 보일 정도다.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야.”
“혹시 불로불사··· 뭐 그런 거 아니지?”
“퍽이나. 제자들 때문에 늙어 죽겠다.”
사실 힐러들은 생명 에너지를 다루는 만큼 노화가 더디다.
〈신성 아가페 종단〉의 성녀 아리아는 벌써 십오 년 가까이 한결같은 외모를 고수할 정도.
게다가 시우 역시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힐 능력을 갖춘 헌터였으니.
노화가 더디다 못해 기어간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다.
시우는 픽 웃으며 동생이 사 온 옷을 훑어봤다.
이제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어 버린 민시준에게 옷 따위는 넘쳐났지만, 문제는 사이즈였다.
조금 더 다부지고, 키도 크고, 탄탄한 몸매인 시우에게 동생의 옷은 너무 타이트했다.
따라서 민시준은 다른 비서와 동행해 시우에게 필요할 것 같은 옷과 생활용품 따위를 한가득 사 왔다.
가격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가장 좋아 보이는 옷들을 백화점에서 긁어 오다시피 한 것이다.
“이, 이만큼을 사는 겁니까?”라고 묻는 비서에게 “확실히 부족하겠죠?”라며 옷을 더 골라 담은 민시준.
시준에게 형은 부모님 대신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시준을 업어 키운 형.
심지어 공부를 잘했던 형은 고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바로 헌터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집에 쌓인 빚을 갚기 위함이기도 했고.
민시준은 과거 형의 뒷모습이 떠올라 울컥, 목구멍을 비집고 뭔가가 나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스승이자 부모와 같은 형이 사라졌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상실감 그 이상이었다.
‘이제부터 형은 내가 지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류지환이 됐건 최대수가 됐건 반드시 지켜 낸다.’
그의 머릿속에서 몇 사람의 얼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났다.
형의 복귀를 달가워하지 않을 놈들.
옷을 대충 입은 시우가 거울을 보더니 말을 건다.
“너 혹시 HMCS에 연줄 좀 있냐?”
“HMCS? 거기는 갑자기 왜?”
어젯밤 시우는 십 년간 무엇이 변했는지를 컴퓨터로 대강 훑어봤다.
물론 디테일하게 다 살필 순 없었지만, 대강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제4계 마왕의 패배.
당시 주축이 되었던 헌터들의 승승장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1세대 헌터.
1.5세대를 이은 2세대 S급의 출현.
7명의 S급 헌터가 세운 7개의 길드.
최대수의 대선 출마.
「검색어 : 헌터 살인 사건」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기관.
〈HMCS(헌터 특수 수사대)〉.
경찰력으로는 수사하기 어렵거나, 범죄의 질이 너무 나쁜 비각성 범죄자, 그리고 각성한 모든 범죄자에 대한 수사권 및 체포권을 가진 집단.
모든 나라마다 하나씩 존재하는 기구이며, 국가에 속한 기관이 아닌 별도의 국제기구로 분류된다.
쉽게 말해 헌터 범죄의 최전선에서 뛰는 기관.
“왜기는. 들어가게.”
자신의 제자였던 정민준.
그를 지켜 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죽인 놈의 낯짝 정도는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릴 테니까.
“그곳에 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거기는 다른 사람의 입김이 더 강한 곳이라서. 이예지 헌터라고, 같은 S급인데 2세대 헌터야. 현 [서리혼 길드] 수장이기도 하고.”
이예지라.
시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인터넷을 하면서 얼핏 얼굴을 본 것 같다.
이쁘장하게 생긴 여우 인상이었지 아마.
별명, 차가운 나이팅게일.
봉사도 많이 하고, HMCS를 통해 헌터 범죄자를 척결하거나, 길드에서 기부도 많이 하는 편이어서 대중들에게 인기도 좋다.
그런데 워낙 도도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추천서는 써 줄 수 있어. 애초에 보수가 적어 헌터들이 기를 쓰고 들어가려 하는 곳은 아니지만··· 절차가 복잡한 것보단 낫지.”
“그래. 추천서든 뭐든 써 줘 봐. 어차피 낙하산인데 끗발이 있는 빽이면 더 좋지.”
시우는 속 모를 미소를 지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안 좋은 생각을 할 때 흔히 보이는 미소였다.
“형 혹시 조사가 필요한 거면 차라리 [제국]에 있는 정보팀에게 부탁해 볼게. 괜히 그곳에 들어갔다가 위험해지면 어떡하려고?”
민시준은 HMCS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를 상대하는지 대강 들은 바가 있다.
헌터 등록을 하지 않은 각성자들은 대개 범죄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둠에서 살게 된다.
S급 헌터인 이예지마저도 죽을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정도니, 그 위험도란 상상 이상의 것.
그러나 시우는 단순히 정보를 얻으려 HMCS에 발을 담그려는 게 아니었다.
수사권, 기소권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권력들.
“아서라. 난 내 일 남한테 못 맡겨.”
“형, 헌터가 하는 건 ‘전투’지만, 걔들이 하는 건 ‘살인’이야.”
“내가 지는 거 봤어?”
못 봤다. 그래서 더 두렵다.
십 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게 아니었기에.
과연 형의 전투 감각이 지금 시대에도 통용이 될 것인가.
“알았어. 그리고 이게 오늘 신문에 나온 최대수야.”
시우는 신문을 받아들었다. 굵은 헤드라인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대통령 최대수라.”
시우는 그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렸다.
190이 넘는 키에 거대한 근육질을 가진 최고의 전투형 헌터.
금강역사라는 별명답게 몬스터가 나오는 지역을 초토화하는 어마어마한 전투력.
투신 최대수.
그랬던 그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었다.
심지어,
「대한민국 헌터 랭킹 1 위, 유일한 SS급 헌터」라는 타이틀을 얻은 채 말이다.
“재밌네.”
“···응?”
“대통령이건 뭐건 나랑은 상관없어. 내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아니, 생각을 해 봐. 형이 돌아온 걸 알게 되면 그 자식이 가만히 있겠어?”
“시준아.”
시우는 자신의 동생을 자애롭게 바라봤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마음 약한 동생.
그 때문에 지구에 돌아온 것이다.
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 위해.
“그놈은 내가 안 찾아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야.”
쿠구구구구.
시우의 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바늘처럼 찔러 나온다.
그 서슬푸른 살기에 민시준은 피부가 저릿저릿함을 느꼈다.
마나를 개방한 게 아니었음에도, 민시준은 시우의 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새끼가 제명으로 살다 뒈지고 싶다면 말이지.”
시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금 전과는 다른 살기 어린 미소.
‘아, 생각났다.’
민시준은 형의 살기를 통해 과거 그의 별명을 떠올렸다.
헌터끼리의 싸움이 잦았던, 위계질서가 하나도 없어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굴러가던 초창기 헌터계.
변변한 길드도 없어 모든 것들이 힘의 논리로 정해지던 1세대.
그런 마귀굴에서 끔찍한 악명을 떨쳤던 이름.
광견, 미친개 시우.
민시준은 형의 눈빛에서 과거 그의 모습을 스치듯 볼 수 있었다.
***
“단장님. [제국] 민시준 헌터에게서 문서가 하나 왔습니다.”
“그래? 웬일이지.”
그녀는 비서가 건넨 서류 봉투를 찢어 문서를 확인했다.
눈으로 대충 문서를 훑은 이예지는 다시 볼 것도 없이 파쇄기에 문서를 밀어 넣었다.
드드드득
비서는 갈려 나가는 문서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안 좋은 내용인가요?”
“응? 아냐. 누구 좀 꽂아 달라고, 청탁이네.”
“처, 청탁이요? [제국 길드] 민시준 단장님이??”
평소 을곧고 고지식한 성격의 민시준이 이런 부탁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이예지의 표정은 무덤덤 그 자체였으니.
“그러게. 이 사람도 그런 걸 부탁할 때가 있네.”
그저 슬쩍 지나가는 웃음이 전부였다.
비서는 이예지의 반응이나, 민시준의 청탁이나 매한가지로 놀라워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참. HMCS 강북지부 팀장님 오늘 스케줄 있으셨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연락 달라고 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비서.
이예지는 잠시 펜대를 놀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녀처럼 무표정으로 깐깐하게 살아가는 민시준이 누군가를 부탁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
HMCS 강북지부 팀장 황정구는 아침부터 똥 씹은 얼굴이다.
그는 정치하곤 거리가 먼 타입이라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성격도 괴팍한 탓에 HMCS 팀원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일하는 척을 했다.
“이 씨발···!”
쾅!!!
결국 폭발한 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쩍 하니 갈라진 나무 테이블이 바닥에 쿵 떨어진다.
삽시간에 얼어붙은 사무실 공기.
“티, 팀장님. 왜 그러세요?”
참다못한 부팀장이 다가가 묻는다.
부팀장이지만, 그는 황정구 같은 전투 헌터가 아니기에 그를 막을 힘이 없다.
“이년은 가끔 사람을 빡치게 한다니까.”
“누구··· 말씀이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이예지 그 X년이지.”
그 도발적인 욕에 부팀장은 기겁을 했다.
그리곤 행여 누가 들었을까 싶어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팀장··· 아니, 정구 형! 우리 이예지 관리자님 욕은 안 하기로 했잖아. 솔직히 형 같은 성격에 팀장 소리 들으며 온전한 일자리 갖고 사는 것도 다 이예지 헌터 덕분인데.”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내 팀원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이년이 오늘 낙하산을 하나 꽂겠다잖아. 씨발 뒈질라고.”
노지식은 “형이 싸우면 질 텐데.”라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이예지는 당당한 S급 헌터였고, 황정구는 A급 헌터였으니.
단순한 계급으로 따지자면 이예지는 사자, 황정구는 표범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신입 오면 존나게 갈구고 부려 먹어. 알았어? 낙하산이라고 봐주고 어쩌고 하기만 해 봐. 다 뒤집어엎어서 이예지 년 앞에다 패대기쳐 버릴 테니까.”
똑똑.
“저, 팀장님. 신입이라는 사람이 왔는데요.”
황정구의 낯빛이 변한다.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그것처럼 독이 오른 표정이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들 신입이 들어온단 말을 처음 들은 덕분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야, 비켜! 비켜!! 나와!!”
황정구는 그 무리를 제치고 앞으로 갔다.
그곳엔 오늘 들어오기로 한 신입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건방진 자세로 서 있었다.
“이 씨발럼이. 여기가 네 집 안방이냐? 주머니에서 손 안 빼!!”
황정구가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 위압 가득한 태도에 주변에 모여 있던 팀원들도 적잖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런 기분의 황정구는 아무도 말릴 수 없기 때문.
“씨발, 낯짝도 어리게 생긴 새끼가, 낙하산 타고 왔다고 뻐기냐? 낙하산 타고 절벽 아래로 떨어트려 주랴?”
기어이 황정구는 상대의 멱살을 틀어쥐고 벽에 쾅 하고 밀쳤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에 주변 공기가 무거워졌다.
A급 헌터 정도면 마나를 쓰지 않아도 격이란 게 있기 마련.
모두가 숨죽인 채 그 둘의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 표정 하나 안 바뀌는 것 좀 봐? 내가 너 낙하산이라고 못 칠 것 같아? 낙하산을 꽂든 뭘 하든, 팀원은 내 소관이라고!!!”
그 쩌렁쩌렁한 외침이 통한 것일까.
상대가 슬며시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
그 모습을 본 황정구가 미소를 짓는 순간, 상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온다.
“누군가 했더니. 너 병구냐?”
“······뭐??”
황정구는 당황했다.
자신의 본명은 부팀장도 모르는 건데.
“나야.”
“······.”
“나라고. 손모가지 자르기 전에 손 치워.”
“무슨··· 어···? 어??”
“치워, 씨발아.”
낙하산의 목소리가 섬뜩한 칼날처럼 들린다.
황정구의 본능이 비명을 지른다.
아.
이 목소리.
이 얼굴.
이 눈빛.
그리고 이 압박감.
틀림없다.
광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