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2
84화〉
나락
가면 속에 있는 클라운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물들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각성자 마약.
물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이긴 하나, 두세 번의 거래로 얻을 양을 한 번에 구매한 탓에 그 감정은 더욱 고양되었다.
“물건은 잘 받았습니다. 덕분에 수급에는 한동안 차질이 없겠군요.”
“나도 거래가 잘 되어서 기쁘군.”
“그렇다면 다음 거래는 언제가 좋을까요?”
클라운의 물음에 장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귀살단〉이 새로 갖춰지고 한국에서의 문제가 잠잠해지면 그때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인데.
그렇다고 거래 당사자에게 ‘기약이 없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마약상 따위, 이 바닥에선 금세 잊히기 마련이었으니까.
“글쎄··· 내가 당분간 중국에서 조금 바쁠 것 같아서 말일세. 혹시 자네가 중국에 올 일은 없나?”
장첸의 말에 클라운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웃기 시작했다.
“재밌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거래의 기본은 ‘배송’인 거 아시죠? 만약 제가 중국에 가서 산다면 지금 가격의 20% 정도밖에 못 드립니다.”
맞는 말이었다.
음지의 거래는 물건을 구하는 것보다 물건을 거래 상대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훨씬 어려운 일.
그렇기에 그 비싼 가격에도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것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세관이나 국경에 헌터가 많아진 상황에서는 자국으로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장첸만 하더라도 마약을 싣고 〈나락〉까지 오는 데에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다.
우선 대성에게 부탁해 빌린 청도복 2명만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출.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해서 얻는 수익이 막대하기에 이 고생과 비용에도 타국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일단 내가 중국에서의 상황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에 이번이랑 같은 양으로 거래하시죠.”
클라운의 입에서 예기치 못한 제안이 나왔다.
“대금은 지금의 1.5배를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다음 달에 말인가?”
“네. 홍콩 최고의 마약상이신데 물건은 있으실 테고, 문제는 가격이겠죠.”
장첸은 손가락을 턱에 대고 고민에 빠졌다.
만약 이번에 〈아카이 키츠네〉에서 문제만 잘 해결해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저희끼리 얘기입니다만.”
클라운은 속삭이듯 은밀하게 말했다.
“대성에게 보고하지 않고 우리끼리 하는 ‘개인적’ 거래로 하셔도 됩니다.”
“······!”
장첸은 침음을 삼켰다.
그가 하는 모든 거래는 투자자인 대성에게 보고가 되어 일정 지분을 줘야만 했다.
그런데 만일 상대방이 비밀만 지켜 주고 거래만 잘 성사되면 어마어마한 수익이 그에게 남을 수 있었다.
‘그 금액이면 〈귀살단〉을 재건할 수 있다.’
장첸은 망설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고로 장사꾼이란 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법.
“자네처럼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야 어디든지 가서 팔아야겠지. 다음 달에 물건을 가지고 오겠네.”
“큭큭큭. 역시 장첸 님하고는 대화가 통해서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이만 가 보지. 〈나락〉의 공기는 나하고 안 맞아서.”
장첸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사실 그가 급히 자리를 뜨려는 이유는 〈아카이 키츠네〉가 한국 HMCS의 눈길을 끌어 줬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나락〉에서는 그 어떤 공권력도 힘을 쓰지 못하지만, 문제는 출구를 벗어나고부터다.’
가능한 한 빨리 선박이 정박된 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때 클라운의 느물느물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러지 말고 어떻습니까. 식사나 함께하시는 것이.”
장첸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껏 클라운은 단 한 번도 뭘 하자고 제안해 본 적이 없었다.
식사는커녕 가면 때문에 커피 한 잔도 안 마시는 놈이 이제 와 밥을 같이 먹자니.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가늠할 수 없어 장첸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갈 길이 바빠서···.”
쿠ㅡㅡㅡㅡㅡㅡㅡㅡ우우우웅!!!!
그때 알 수 없는 거대한 충격파가 〈나락〉 전체를 뒤흔들었다.
***
조금 전 〈나락〉의 외곽.
먹을 칠한 듯 새까만 어둠 아래로 수많은 헌터가 장비를 점검하고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평소 입는 헌터복보다 더 단단하게 무장한 채 한 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모두 준비됐나.”
〈대한민국 헌터 중앙 협회〉 부회장, S급 헌터 김은주.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관의 목소리에 헌터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HMCS 서울 지부 12명.
HMCS 경기 지부 26명.
한국 헌터 협회 소속 31명.
헵타그램 증원 헌터 20명.
총원 89명.
총괄 책임자 〈HMCS 국제 총본부〉 에드워드 C. 블랙우드.
작전 총지휘관 〈HMCS 한국 지부〉 백건호.
작전 부지휘관 〈대한민국 헌터 중앙 협회〉 김은주.
외부 감시조 조장 [백사자 길드] 추하민.
정보 탐색조 조장 〈HMCS 강남 지부〉 공길.
내부 투입조 조장 〈HMCS 강북 지부〉 황정구.
그리고.
돌격 조장 〈HMCS 강북 지부〉 민시우.
작전명 ‘도베르만.’
새까만 정복을 입은 백건호가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평소의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작전 지휘관의 얼굴을 한 그는 〈나락〉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떨궜다.
“오늘 이 시간부로 인천의 슬럼가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귀살단〉을 접한 뒤 시우의 주도로 꾸준히 계획된 작전.
여기에 아술과 백건호, 그리고 에드워드의 협조가 큰 바탕이 되었고 여기에 〈아카이 키츠네〉라는 우연이 변수가 되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호텔에서 키이루가 하야카와 히카리를 기다렸던 그 날.
이미 그의 존재는 시우의 마력 감지로 체크되어 있었다.
암살자가 내뿜는 독특하고 정제된 마력과 은은한 살기, 일본어로 지껄이는 와중에 들린 세이겐과 히카리의 이름까지.
그때부터 적귀에게 키이루를 마킹하라 일렀고, 그러다 우연히 장첸과 접촉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
현재 히카리를 노린 ‘장첸의 살수’ 쪽에는 강여화와 민시준, 적귀가.
시우를 노리는 〈아카이 키츠네〉엔 세이겐과 쿠모, 볼크가 마중을 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나락〉에서 뇌물을 받아먹은 공직자의 리스트를 얻어 그쪽에는 따로 HMCS를 보낸 상태.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어 볼까.’
모든 것은 시우의 계획대로.
평소 같으면 굳이 열심히 상대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 거를 건드린 대가다.’
시우는 〈귀살단〉이 강여화를 건드렸던 걸 잊지 않았다.
“돌격 조장. 에드워드 경에게서 허가가 떨어졌다. 투입 명령을 부탁하지.”
백건호가 시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락〉이 보이는 위치에 섰다.
벌레를 바라보는 눈빛을 하는 그의 모습에 곁에 있던 황정구나 추하민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시우는 단전을 열어 마력을 쏟아 냈다.
스포츠카가 공회전하듯이 마력이 쉴새 없이 격류하며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
“힘 좀 써 볼까.”
왼손과 오른손을 펼쳐 지금껏 지구로 돌아와서 해 본 적 없는 마력을 응집했다.
수백, 수천 개의 문자와 도형이 허공을 휘황하게 수놓으며 어둠을 밝히고 기하학적인 술식을 아로새겼다.
쿠······ 구구구구······.
장마철 먹구름이 밀려오듯 하늘에서 서서히 몰아치는 음산한 굉음.
[유성우]마법과 술식으로 이루어진 별의 비가 어둠을 찢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쾨ㅡㅡㅡㅡㅡㅡㅡ과과과강!!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장면처럼 지상에 쇄도한 유성들이 슬럼가 일대를 통째로 갈아 엎기라도 하듯 온 건물을 초토화했다.
어둠을 밝힌 그 거대한 힘 앞에 헌터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웬 잘 알지도 못하는 헌터가 돌격 조장을 맡았다고 구시렁거리던 자들은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그때,
“돌격조.”
시우의 서늘하고 살벌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박멸 실시.”
그의 몸이 〈나락〉으로 향했다.
***
철골이 보이던 건물은 무너지고 거리는 군데군데 반파되어 있었다.
슬럼가를 장악하고 있던 범죄자들은 죽거나 다쳐 허우적댔으며, 느닷없는 참사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시우는 죽어 나자빠진 입구의 부랑자들을 지나 〈나락〉의 내부로 향했다.
엄청난 굉음과 붕괴한 지반 때문에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자들이 쏟아졌다.
그는 단도를 꺼내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는 자들을 하나하나 베었다.
이곳에 ‘일반인’은 없다.
범죄자이거나 범죄에 가담한 자들뿐.
따라서 작전명 ‘도베르만’의 공통 명령은 전원 사살이었다.
예외는 〈나락〉의 핵심 간부와 ‘장첸’ 및 각성 마약의 국내 유통업자인 ‘클라운.’
뒤이어 따라온 돌격조가 시우를 보좌하며 거대 공동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무너진 지반이 떨어져 수십여 명이 죽은 중앙 공동은 비명과 음악이 뒤섞여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정구야. 음악 좀 꺼라.”
“네, 선배님.”
황정구는 쇠구슬을 던져 스피커와 음향 장비를 깨부쉈다.
“돌격조는 먼저 들어가서 쓸어 버릴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시우는 고개를 우두둑 꺾으며 마력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리곤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범죄자들을 찾아가 목을 썰어 대기 시작했다.
“황 헌터, 대체 저 사람 누구야?”
그때 경기 지부에 있는 친한 헌터가 혀를 차며 물었다.
그간 보아 온 HMCS 헌터들 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강한 힘.
조금 전 지상에서 마법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S급 헌터들 중에서도 그런 힘을 낼 수 있는 건 소수란 것을.
“글쎄요.”
황정구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을 이었다.
“존나 센 신입 아닐까요?”
***
“크윽! 대체 무슨 일이지!”
이때껏 〈나락〉이 침범당한 적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정부의 시선이 비껴간 곳을 무슨 목적으로 공격하겠는가.
그 같잖은 공명심조차 훗날 범죄자들의 먹이가 될 게 빤한데.
게다가 〈나락〉은 대한민국 랭커인··· ‘그’가 주인이란 게 명백할 터.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정부가 벌일 리 없었다.
“치우! 리우! 바깥 상황을 살펴다오!”
장첸의 명을 들은 그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몇 초 뒤, 치우 혼자 문 안으로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더니 소리쳤다.
“누군지는 몰라도, 급습당했다. 아무래도 한국 정부 같다. 안에 짱 박혀 있어라.”
“이런, 이런. 누군지는 몰라도 머리가 엄청 좋은 사람이 계획한 것 같군요.”
클라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아니요, 전혀요. 제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면 흠··· 재밌네요.”
장첸의 물음에 클라운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痴線!(씨발!) 왠지 이번 일은 시작부터 좆같다 했어! 여기서 잡히면 모든 게···!”
“진정하십시오, 대인. 제가 끝까지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운은 그 모습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탈출하도록 할까요?”
“방금 치우가 안에서 기다리라고···.”
“굳이 저 문으로 나갈 필요는 없죠.”
클라운은 방의 안쪽 구석진 곳을 살폈다.
튀어나온 돌에 약간의 마력을 불어 넣자 밋밋하던 벽지가 천천히 일그러지더니 돌계단으로 바뀌었다.
“큭큭. 계약하는 방에는 비밀 탈출구가 있거든요. 가시죠.”
클라운의 어두침침한 웃음 따라 그들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