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0
92화〉
새로운 시작
페타스코 강이 내려다보이는 미국 볼티모어의 고층 빌딩.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20층짜리 빌딩은 미적 감각까지 고려한 듯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햇살을 받아 내고 있었다.
시우는 1층 로비에 들어서며 귀찮아 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쓰인 〈GHQ, HMCS〉란 글자가 시우의 시선에 닿았다.
“민시우 헌터님. 블랙우드 부회장님께서 올라오시라고 합니다.”
직원의 안내에 시우는 안쪽 VIP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일반 엘리베이터는 에드워드가 있는 상층부까지 오를 수 없게 설계된 듯했다.
띵.
20층에서 문이 열렸다.
게스트실 내부는 엄청나게 넓고, 커다랬으며, 동시에 일관된 그레이 톤 덕분에 무척이나 삭막해 보였다.
시우는 아무 소파에나 가서 앉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화병에서 튤립 향이 풍겨 올랐다.
그때 안쪽 문이 열리며 아름답게 생긴 여자가 차를 내왔다.
“안녕하세요. 블랙우드 경의 비서인 안젤리나라고 합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부회장님께서 곧 나오실 겁니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갔다.
시우는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전입 신고식··· 귀찮다.”
“그렇게 생각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불경한 놈.”
때마침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에드워드가 들어왔다.
훤칠한 외모에 큰 키, 몸과 딱 어울리는 회색 슈트까지.
“전형적인 영국 앞잡이로군.”
“뭐라는 거냐. 이 트롤 항문에 처박아 버릴 놈아.”
둘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악수했다.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를 나눈 그들.
“근데 나 같은 낙하산이 앉아도 되는 거냐. 총본 소속되기 힘들다고 하던데.”
시우는 비서가 새로 가져온 쿠키를 먹으며 궁금했던 걸 물었다.
“괜찮아. 이래 봬도 실력주의기 때문에 총본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 특히 ‘도베르만’ 영상을 본 놈들은 절대 딴지 못 걸걸.”
초대형 스킬인 [유성우]를 쓰면서 접근전 실력까지 빼어난 헌터는 많지 않았다.
둘 중 하나만 잘해도 충분히 환영받을 만한데 둘 다 잘하면 버선발로 마중을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게다가 시우는 이번 작전의 초기부터 설계한 장본인인 데다가 장첸까지 잡았으니 혼자 다 해 먹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총본 소속이 되면 너도 수사하기 더 편할 거야. 말단이랑 끗발이 다르거든.”
에드워드는 총본의 계급 체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총본에는 특급·준특급·상급·중급·하급 총 다섯 단계의 등급이 존재.
상급이나 중급은 각 국가에 있는 HMCS 지부장들과 같은 지위이고, 준특급부터는 국빈 대우를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다.
참고로 총본에 존재하는 특급은 에드워드 C. 블랙우드 단 한 명.
“그런데 내가 곧장 상급으로 올라도 되는 거야?”
“엉. 웬일인지 늙은이들도 순순히 허락하더라고. 아마 너랑 나랑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테지.”
에드워드는 블랙 티를 호록 마시며 점잖은 포즈를 취했다.
“그러면 이제 전입식을 진행할까?”
“거창하게 하는 거 아니지?”
“너 따위한테 세금 1센트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럼 전입은 없었던 일로.”
“오ㅡ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1센트가 아니라 백만 달러를 낭비하고 싶다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람인 것을.”
에드워드는 해맑게 웃으며 시우의 등에 손을 얹고 방으로 이끌었다.
집무실로 들어온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임명장과 HMCS 수첩 하나를 건넸다.
“자, 여기.”
“···끝이야?”
“끝인데.”
“······.”
시우가 에드워드를 벌레 보듯이 바라봤다.
“아, 알았어. 에헴!”
에드워드는 그 눈빛에 못 이겨 자세를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청명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HMCS 국제 총본부〉 부회장인 에드워드 C. 블랙우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니, 그대의 피와 철을 정의 앞에 바쳐라. 그리하면 우리가 그대의 방패가 되고 그대의 총알이 될지니, 함께 악을 섬멸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한다.”
“그래, 끝.”
에드워드는 흡족한 얼굴로 두 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애냐?”
시우는 픽 웃고는 수첩을 열었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CIA나 FBI의 수첩처럼 HMCS의 신분증이 박혀 있는 형태였다.
“그거 들고 보여 주면 어지간해선 다 오케이 할 거다. 각 국가에 속한 HMCS가 아니라 총본에 속한 HMCS면 대우가 다르거든.”
사실상 각성 범죄자를 조사하는 세계 유일무이의 국제기관이기 때문에 그 위세는 어떤 기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난 그딴 거 관심 없는데.”
“넌··· 그러겠지.”
【이딴 종이 쪼가리 말고 고기나 갖고 와라. 너희 둘 말이 너무 많다.】
“흠.”
“넌 어디서 저런 싸가지 펫을 구했냐. 버르장머리 없는 게 꼭 10년 전의 민시우를 보는 것 같군.”
“내가 뭘ㅡ.”
【역시. 좁밥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싸가지 없는 게 한결같다. 그나마 내 덕분에 사람 같아진 것이다.】
“호오. 프레라고 했던가? 말이 잘 통할 것 같은데.”
“둘 다 좀 닥치지?”
시우는 프레의 주둥이를 막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 이후 일정이 있어?”
“그럼 일정이 있지.”
“뭔데?”
“나랑 하는 저녁식사.”
***
도착한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레스토랑이었다.
입구에 가니 직원이 공손히 인사하며 예약된 자리로 안내했다.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된 그들은 자리에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된 음식들이 테이블 가득 차려졌다.
“돈 좀 썼겠는데?”
“말해 두지만 이건 공금 아니다. 내 사비 털어서 먹는 거야.”
“유명한 백작가 자제면서 이런 거로 생색내는 거 아니다.”
“선대께서 말씀하시길, 생색은 만들어서라도 내라고 하셨지.”
“그리고 그 선대는 도박으로 재산을 반쯤 날리셨고?”
“···남이 뭘 사 줄 땐 그 오크 주둥이를 닫는 게 어떤가.”
에드워드가 나이프를 들고 시우를 가리키자 시우는 웃으며 음식을 마저 먹었다.
“그나저나 저 펫··· 잘도 먹는군. 우리보다 더 잘 먹는데.”
립아이 스테이크를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프레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헌터들이 데리고 다니는 소환수나 사역마들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들의 주 양분은 음식이 아니라 마력이었기 때문.
【얌얌얌얌ㅡ 이거 하나 더 부탁한다.】
‘다음에는 공금으로 결제해야지.’
에드워드는 프레에게 웃어 보이며 속으로 다짐했다.
식사를 다 마친 뒤, 시우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무슨 할 말?”
“나 간다.”
“눈치는 빨라서.”
에드워드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네가 알아봐 달라고 했던 조직 있지.”
“···뭐 나온 거 있어?”
“〈판데모니엄〉이었나.”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HMCS 총본으로 전입을 한 이유도 이것이었다.
〈HMCS 한국 지부〉의 말단직에선 정보를 취합하기도, 끄집어내기도 무척이나 어려웠기 때문.
물론 백건호나 에드윈에게 부탁하면 그들은 충분히 알아내 줄 것이었다.
그러나 시우 성격에 그러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부탁은 부탁대로 하되 본인도 중심에 뛰어들어 정보를 얻어야 직성이 풀릴 터.
“처음에는 IZIZ 놈들이랑 연관이 있는 줄 알았거든. 요즘 일어나는 테러의 80%와 연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데··· 네 예상대로더라고.”
“하아.”
시우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건 예상대로가 아니기를 바랐건만.
왜 안 좋은 예감은 항상 틀리지를 않는지.
“그럼 그 새끼들은 결국ㅡ.”
“그렇지. 마족이랑 연관되어 있었어.”
***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사막지대.
별마저 가리어져 보이지 않는 새까만 저녁,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암석 지대를 걸어가고 있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벼랑은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디면 죽음으로 끌어들일 것처럼 가팔랐다.
그는 익숙한 듯 어둠 속에서도 수월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남자.
그러나 주위는 똑같은 암석과 바위들 뿐.
메마른 사막의 바람이 가득한 이곳에는 인가나 빛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는 벼랑의 아래로 내려가더니 품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 바위에 가져다 댔다.
덜컹.
그러자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틈이 열리며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뚜벅. 뚜벅. 뚜벅.
차츰 실내등이 하나씩 보이더니 이윽고 거대한 규모의 연구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백여 명은 되어 보이는 연구원들은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다.
남자는 그 모습을 한참 둘러보다가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한쪽에 난 복도로 들어갔다.
다시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며 눈앞에 연구실 하나가 나타났다.
〈제4 연구실〉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붉은 조명이 가득한 방 한편에서 마법서를 읽고 있는 노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망령이 웬일이냐···.”
한참이나 말을 안 한 것인지 노인의 목소리에선 갈라진 바닥 같은 텁텁함이 느껴졌다.
남자는 구석에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노인 근처에 두고 그곳에 앉았다.
“박사,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지?”
“보면 모르느냐.”
박사라 불린 노인은 희끗희끗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연구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건 결과지 과정 따위가 아니야.”
“성급하고 조급한 것들.”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에서 입조심하지.”
“어차피 너밖에 없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만.”
남자는 품에 손을 넣어 검은 액체로 가득한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100㎖도 안 되어 보이는 양의 걸쭉한 액체.
그러자 병을 본 노인의 눈에 이채가 돌며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박사의 테이블에 병을 탁, 내려놓았다.
“다시 말하지만··· 박사, 당신은 중독이야.”
“크헬헬헬.”
그러나 박사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빈 주사기 하나를 들어 병 입구에 꽂아 액체를 쭉 빨아냈다.
그리곤 익숙한 듯 자신의 팔에 꽂아 검은 액체를 흘려 넣었다.
“이건 마약이 아니라고.”
“나도··· 안다.”
박사는 주사기를 빼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옆에 놓인 물을 들어 꿀떡꿀떡 들이마셨다.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이건 당신을 바꿔 놓지 못해.”
“오늘따라 망령이 말이 많군.”
“여기 오는 길에 혼자라서 심심했거든.”
“미친놈.”
박사는 그에게 눈을 흘기더니 다시 마법서로 시선을 돌렸다.
후드를 쓴 남자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곤 의자에 몸을 기댔다.
지금 박사가 읽고 있는 마법서는 흔하디흔한 책이 아니었다.
조직에서도 간신히 구한 흑마법서.
고대의 언어로 쓰인 그 책은 마법 회로 좀 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저 박사를 끌어들여서 연구하고 있는 것.
“우선 이번 달 안에 하나라도 시도해 보자고 위에서 의견이 나왔는데.”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그동안 연구한 거 있잖아, 하나만 먼저 해 보자고. 박사 대신 변명하는 내 입장도 생각을 해 주지?”
남자의 말에 박사는 입을 달싹이다가 혀를 찼다.
저 빌어먹을 망령 새끼가 어울리지도 않게 불쌍한 척을.
그러나 박사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마침 ‘힘’도 얻었겠다, 테스트를 하기엔 안성맞춤인 타이밍.
“좋다. 하지만 실험할 곳은 내가 정하겠다.”
“그 정도는··· 양보하지.”
박사는 손끝에다 마력을 모았다.
푸르렀던 마력이 새까만 마기로 뒤바뀌며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정해둔 곳은 있어?”
“이번에 인터넷으로 재밌는 곳을 하나 찾았지.”
그는 벽에 붙인 세계 지도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느 한 지점에 마기가 파고들며 새까만 자국을 남겼다.
“저기는··· 아, 뉴스에 나왔던?”
“한국이란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