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4
96화〉
S급 게이트2
깊은 산중의 밤은 사물의 형체를 갉아먹고 산다.
어둠을 수놓는 달과 별도 높다란 나무에 걸려 그 눈빛을 잃고.
숲길엔 이따금 움직이는 야생동물의 발소리만이 가득하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바스락, 바스락.
모든 적막을 일깨울 소란스러움이 초입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둠을 가르고 서둘러 목표지점을 향해 달렸다.
흉측하게 일렁이는 S급 게이트 앞.
“으스스하게 생기긴 했네.”
완전 무장을 한 도경후가 게이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헌터 짓을 해 온 지 거의 20년이 되는 그조차 이런 꺼림칙한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겁이 난다고 해야 하나.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그는 본인이 떠올린 생각에 스스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헌터들이 그들의 무구를 정비하며 돌입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중에 몇 명이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긴장돼 보이시네요.”
“···강여화 헌터.”
인기척을 내며 다가온 목소리에 도경후가 앉은 채 고개만 돌렸다.
아주 예전부터 보아 온 새파란 애송이가 이제는 어엿한 S급 헌터가 되어 당당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네 같은 풋내기한테 나라를 맡겨야 하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대한민국 랭킹 2위씩이나 돼서 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래요.”
“흥. 2위는 얼어 죽을.”
도경후는 허리춤에 찬 도검을 빼서 날을 다시 점검했다.
오랜 세월 함께한 무기만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 자신을 구원해 준 건 동료가 아닌 언제나 손에 든 칼 한 자루였다.
“건재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이봐, 강여화.”
“예?”
도경후는 검날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녀석이 돌아왔다던데. 사실이야?”
“어디서 들으셨어요?”
“쯧, 어디겠어.”
도경후는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최대수.
“네, 돌아오셨습니다.”
“······그런가.”
강여화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산중의 어둠은 상대의 얼굴을 가리고 표정에 묻은 감정을 보이지 않게 했다.
“이번 게이트 클리어엔 오지 않는다던가?”
“그게··· 지금 국내에 없으십니다. HMCS 총본에 가셔서.”
“그렇군. 전력이 깎여서 아쉽게 됐어.”
도경후는 말을 마치곤 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제 들어갈 준비를 하지.”
그가 일어나 게이트 앞에 서자 다른 헌터들의 움직임이 멈추며 모두 한곳을 바라보았다.
불빛이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도경후의 우직함과 리더로서의 다부짐은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례 없는 S급 게이트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웅혼한 목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진다.
그 맑고 투박한 음성에 모든 헌터들이 집중했다.
“우방국의 도움도 없고 인접국의 지원도 없습니다.”
도경후는 사위를 훑으며 또박또박하게 말을 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형제자매가, 누군가의 부모가, 누군가의 자식이, 누군가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
“오늘 소명을 다해 영영 추억 속으로 묻히게 될 것입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렸다.
서로가 침묵을 나눈 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후는 좌중을 올곧게 바라봤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겨 낼 겁니다. 오늘 우리가 흘릴 피는 그 ‘언제나’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의 뜨거운 시선이 사람들의 면면에 닿고 어둠을 한 꺼풀씩 벗겨 내고 있었다.
“각 길드장들은 준비가 됐습니까!!”
도경후의 외침에 길드장들이 일사불란하게 대답했다.
“[서리혼 길드] 이예지 외 32명 준비 완료.”
“[제국 길드] 민시준 외 47명 준비 완료.”
“[백사자 길드] 최성일 외 44명 준비 완료.”
“[청화 길드] 강여화 외 50명 준비 완료.”
“[금강 길드] 류지환 외 25명 준비 완료.”
“[무량대수 길드] 길리온 외 57명 준비 완료.”
“〈한국 헌터 중앙협회〉 김은주 외 20명 준비 완료.”
“〈HMCS 한국 지부〉 황정구 외 18명 준비 완료.”
도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아비 길드] 도경후 외 29명 준비 완료.”
총원 331명.
대한민국 역대 모든 토벌 상황을 통틀어도 이만큼이나 많은 헌터가 모인 전례는 없었다.
[헵타그램]의 모든 길드장이 모인 적도 처음.‘하지만···.’
이 숫자는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S급 게이트 투입 전력에 비추어 보면 현저히 적은 편.
가장 적은 일본이 600명 이상이었고, 미국 같은 경우엔 2천 명이 넘는 헌터가 투입됐었다.
‘아니, 헌터 싸움은 숫자 놀음이 아니지.’
이 자리엔 현재 대한민국의 S+급 헌터 셋 중 둘이, S급 헌터 열 중 여섯이 모여 있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강자들이라 생각한다.’
도경후는 마음속에 자라나는 두려움의 불씨를 꺼트렸다.
이건 승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다.
오직 적을 죽이기 위한 싸움일 뿐.
“가자!! 놈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러!!”
***
에드워드는 시우의 부탁대로 공터와 마정석 3개를 준비했다.
근처에 공터가 없어, 급히 한 장소를 빌려 주변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준비한 것.
에드워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말 이거면 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항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글쎄 괜찮다니까.”
“이거 전에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거냐?”
“어··· 한 번?”
“······.”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에 에드워드는 대꾸할 말조차 잊었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너 이거 성공할 수 있겠냐. 차라리 전문 헌터를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이거에 전문 헌터가 어딨냐, 다 음지에서 활동할 텐데. 그리고 걔네들 찾아서 하는 것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게 더 빨라.”
시우는 분필 하나를 들고 공터 바닥에 거대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름이 족히 10m는 넘을 것 같은 원을 그린 시우는 다시 그 안에다 몇 개의 원을 그려 넣었다.
“너 정말 이걸 다 그릴 생각이냐.”
“어쩔 수 없어. 공간 이동 마법은 스킬 하나 쓴다고 구현되는 게 아니거든.”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스파이나 첩보, 혹은 테러와 같은 위험한 일에 사용될 확률이 높기에 불법이라 규정한 것.
따라서 현재 시우가 하려는 짓도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
물론 걸린다고 하더라도 에드워드의 힘으로 무마시킬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글쎄··· 6시간에서 7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참고로 그게 비행시간보다 짧은 건 알고 있지?”
‘그 시간에 차라리 비행기를 타자’고 말하려던 에드윈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눈치만 빨라 가지고는.
【좁밥 또 이상한 짓 한다. 그거 외워서 그리는 미친놈이 어딨냐. 차라리 엉아가 태워다 주겠다. 대신에 술 한잔 사는 것이다!】
“미친놈인가?”
【넌 어려서 아직 술맛을 몰라 그런다. 세상 오래 살면 엉아처럼 술이 달달하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닥치세요, 제발.”
시우는 프레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다음부터 그놈들이랑 만나게 되면 절대 술은 안 마시겠다고 해야겠다.
‘이래서 애들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니까.’
시우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큰 틀을 잡아 갔다.
현재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공간 이동]의 마법진.
적어도 천 개 이상의 원과 도형, 기호, 문자를 그려 넣어야 하며 그 술식을 점검할 때 마력이 막히는 지점이 없어야 한다.
마법진을 구현해 스킬을 사용하는 헌터 중에 이런 회로를 기억하고 다니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다.
특히나 이런 복잡한 술식은 책을 보고 그려도 똑같이 그리기 어려운 법인데, 시우는 그걸 아무런 자료도 없이 본인의 경험으로만 재구성하고 있었던 것.
“대체 이딴 걸 왜 외우고 있는 거냐.”
“너도 이계에서 백 년 동안 뻘짓하고 있어 봐라. 뭔들 안 하게 되나.”
“그래도 이런 짓은 안 하지, 마법 오타쿠 같은 놈아. 이러니 여자가 없지.”
【맞다, 이 오타쿠 같은 놈아. 평생 홀아비로 늙어 죽어라. 암컷들 놔두고 몸통 박치기도 못 하는 고자다.】
“···정신 사나우니까 둘 다 입 좀 다물어.”
시우는 한숨을 내쉬며 열심히 마법진을 그려 나갔다.
그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댄 채 빈 여백에 술식을 채웠다.
에드워드는 그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장난으로 놀리긴 했지만, 시우는 불세출의 천재나 마찬가지였다.
숱한 헌터를 만나 보고 인사를 감행하고 기관을 이끌어 온 에드워드가 봤을 때, 시우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은 한 국가에 한 명이 있기도 힘들었다.
엄청난 마력에 방대한 지식, 거기다 최대수와 맞먹는 전투력까지.
‘예전엔 그나마 인간미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넘사벽 괴물이 되었단 말이야.’
그는 시우가 3시간째 그리고 있는 마법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마력이 흐를 획의 길이와 형태, 다른 획과의 융화까지.
이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야 하는 일이건만.
시우의 손은 막힘이 없었고, 그가 말한 것처럼 6시간 만에 완성할 듯이 원을 점차 채워 나갔다.
***
s급 게이트 내부에 들어간 헌터들은 잔뜩 긴장한 채 사위를 주시했다.
사방은 사막과 같은 황무지였고, 전방 3km 너머쯤부터 숲이 보였다.
“초입부터 몬스터가 달려들지 않은 건··· 운이라고 봐야 하나.”
“혹시 모르죠. 의외로 몬스터 수가 별로 없는 걸지도.”
도경후의 말에 옆에 있던 강여화가 대꾸했다.
간혹 재수가 없는 경우엔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우선 계획했던 대로 A, B, C팀으로 나뉘어 이동하겠습니다. 진행 방향은 같지만 약간의 격차만 두고 따라가는 것이니 서둘러 주세요.”
김은주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팀으로 이동했다.
전방을 맡게 될 A팀의 최성일, 황정구, 도경후.
중간에서 앞뒤의 보조를 맡게 될 B팀의 길리온, 민시준, 이예지.
마지막으로 후방을 맡게 될 C팀의 류지환, 강여화, 김은주.
“좋아. 먼저 우리 A팀부터 출발하도록 하겠다. 10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따라오도록.”
도경후가 말하자 B팀과 C팀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팀에 속한 백여 명의 헌터들이 각자 자기가 속한 팀의 리더를 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모두 이곳에 오기 전 한 번은 S급 게이트에 대한 자료를 뒤져 보고 들어왔다.
그러나 자료는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다.
결국 지난 아홉 건의 S급 게이트는 이름만 다를 뿐, 각기 다른 재난을 지닌 공포 그 자체였던 것.
“우리 진짜 서포트만 하면 되는 걸까? 전투시키진 않겠지?”
헌터 중 하나가 옆에 있던 동료에게 소곤대듯 물었다.
“S급 처음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도경후 헌터님이나 길리온 헌터님이 있으니 괜찮···.”
“왜?”
“저게··· 뭐···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눈알 하나가 끔뻑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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