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5
97화〉
S 급 게이트3
끔뻑. 끔뻑.
족히 2m는 넘을 것처럼 생긴 눈알 하나가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몇몇 헌터가 적의 존재를 외치자 장내는 순식간에 긴장의 파도로 넘실거렸다.
“다들 조용!!”
도경후가 마력을 담아 꾸짖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역시 가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라 그런지 무리를 통솔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저 빌어먹게 생긴 건··· 대체 뭐지.”
“도경후 헌터님이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최성일이 마력 실드를 구축하며 대답했다.
“혹시 길리온 헌터님은 알고 계신 정보가 있으신가요?”
김은주의 질문에 길리온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끔뻑. 끔뻑.
눈알은 그저 자리에 가만히 떠서 헌터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보가 없는 미지의 적에게 선제공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물러나야 할 것인가.
도경후, 길리온, 김은주는 눈짓으로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그냥 지나치기로 정했다.
게이트 안에서는 종종 적의 없는 몬스터가 존재하기도 했다.
때에 따라선 건들면 광분하거나 아니면 자폭하듯이 터져 버리는 놈도 있어 무조건 건드는 것도 위험한 일.
“자극하지 마라. 대신에 경계는 풀지 말도록.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놈이니까.”
헌터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적에게서 슬금슬금 거리를 벌려 방향을 바꿨다.
눈알 괴물은 여전히 눈꺼풀만 깜빡이며 공격해 오지 않았다.
“뭐야··· 생각보다 온순한 놈이네.”
“그러게. 혹시 공격해도 아무 반응 없는 거 아닐까?”
“그래도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 징그러워.”
헌터들은 자기네끼리 나름의 감상을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본 기이한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공격성만 없다면야···.
스르르르륵.
그때 사막의 모래더미를 헤집고 거대한 두 손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행운은 두 번 반복되지 않았다.
눈알보다 서너 배는 커다란 손바닥이 파리를 쫓듯 헌터들의 대열을 휩쓸었다.
쿠ㅡ 콰ㅡ 가ㅡ 가ㅡ 가ㅡ!!
“끄아아아악!”
“크허어어···!”
“이 씨바ㅡ 크으!”
십수 명의 헌터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지고 전열이 뒤틀렸다.
눈알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다들 다른 곳에 신경을 덜 쓴 탓.
이때 다른 손바닥 하나가 주먹을 움켜쥐더니 하늘에서 땅으로 직격했다.
쿠구그그그그ㅡ!!
대기를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쏟아지려는 찰나.
“멈춰~ 라~!”
길리온의 흥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 손의 움직임이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굳어 동작을 멈췄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언령술사, 길리온.
그녀는 말에 마력을 실어 대상에게 명령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명령하기엔 제약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능력은 전장에서 천금과도 같은 효과를 지녔다.
“꺼져~ 라~!”
빠ㅡㅡㅡ 악!!
두 손이 무언가에 처맞기라도 한 듯이 멀리 데굴데굴 날아갔다.
그녀는 흥, 하는 표정으로 내렸던 마스크를 올렸다.
빨간색의 마스크는 평소에도 그녀가 항상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마력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아이템이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ㅡ!! A팀은 앞쪽으로! B팀과 C팀은 후방으로 물러서!!”
“길드장님들은 모두 스킬을 준비해 주세요!”
도경후와 김은주가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쳤다.
멀리 나가떨어졌던 두 손바닥이 다시금 다가와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쾨ㅡㅡㅡ앙!!
허공을 가로막은 거대한 장막에 공격이 가로막혔다.
“[백사자]의 방패는 쉽게 뚫을 수 없을 거다.”
“나이스 플레이.”
그 틈에 민시준의 얼음이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두 손바닥의 움직임을 봉쇄했고,
[귀신의 눈 : 달 사냥꾼]도검후의 검이 섬광처럼 뻗어 나가 적들의 몸을 도륙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속격과 함께 얼음에 갇혔던 손바닥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이··· 이겼다!”
“역시 도경후 헌터님!”
“길드장님 멋있으십니다!”
최성일, 민시준, 도경후의 연계에 다른 사람들은 환호했다.
대한민국 최고 랭커들의 연합 공격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소란 떨지 마라. 아무래도 저 눈이 관찰자 역할을 하나 보군. 없애고 가야 하나.”
“글쎄요,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카운터형 몬스터일 것 같아서 걱정되긴 합니다.”
도경후의 의견에 민시준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내비쳤다.
“제가 괴물을 향해 방패를 형성할 테니, 아까처럼 또 연계해서 죽이는 게 어떨까요.”
최성일의 말에 도경후과 김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조심히 접근해서···.”
“에이, 씨바아아알. 뭘 그렇게 똥 마려운 개새끼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그때 뒤에서 듣고 있던 류지환이 답답하다는 듯 짜증을 냈다.
“류지환 헌터! 여기는 S급 게이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해서···.”
“거, 위험한 일 안 겪으려면 헌터를 하지 말아야지. 그냥 죽이면 될 일 아냐.”
김은주의 말을 자른 류지환은 마력을 응집했다.
기호와 술식이 공중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새빨간 마법진이 구축됐고, 이어서 4개의 불타는 창을 구현했다.
이글거리듯 타오르는 네 자루의 창이 불의 궤적을 흩날리며 눈알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저 빌어먹을 새끼!”
최성일은 다급하게 마력을 쏟아 냈다.
[엘 시드의 방패 : 열 겹의 장막]전방에 은은한 빛이 생기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장막이 펼쳐졌다.
퍼버버벅!
네 자루의 불타는 창이 눈알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길드장들을 포함한 모든 헌터들이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눈알은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몇 초의 침묵이 이어졌다.
“거, 보쇼. 다들 겁들만 처먹어서 저런 거 하나에 발목이 묶입니까.”
“이 개자식아!!”
도경후가 류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에이 씨바아알. 죽였으니 된 거 아뇨.”
“넌 돌아가는 대로 협회 차원의 경질이 있을 거다.”
“큭큭큭. 어이쿠 눈알 괴물보다 그게 더 겁나는데요.”
도경후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칼로 베어 버릴 듯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려는데,
“저, 저거 보세요!”
김은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눈알 괴물의 동공이 위로 움직이자 그 아래로 핏물이 고였다.
끔찍한 비명처럼 핏물이 땅으로 툭 떨어져 내렸고.
“ㅡㅡ막아라~!!”
위험을 감지한 길리온의 언령이 진영을 일깨우며 모든 헌터들의 마력 실드를 강제로 구축했다.
하늘이 울부짖었다.
천지가 진동했다.
그 순간, 괴물이 흘린 핏물과 같은 새빨간 벼락이 세상을 갈가리 찢어발길 것처럼 땅으로 내리쳤다.
***
“독일 헌터 여러분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지난번에 도움을 받았는걸요.”
〈독일 헌터 협회〉 부회장인 필릭스가 자신들을 마중 나온 〈HMCS 한국 지부〉의 공길과 마주 악수했다.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헌터 협회 소속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비상이라.”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우리도 얼른 출발하도록 하죠.”
그들은 승합차 여러 대에 나눠 타 S급 게이트가 일어난 강원도로 신속히 이동했다.
경찰과 군대의 도움으로 교통난을 겪지 않고 신호에도 걸리지 않으며 원래라면 족히 3시간은 걸릴 거리를 2시간 만에 완주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4시간 전쯤 정부 주축으로 구성된 300여 명의 헌터가 게이트에 진입했습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군요.”
“죄송합니다. 다른 헌터들은 2차 저지선과 3차 저지선, 그리고 청와대 인근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필릭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헌터를 안에 들여보내면 좋겠지만, 만일의 사태란 게 있었으니까.
“인접국에서도 거절한 지원을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뭘요.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들은 어느새 산을 가로질러 S급 게이트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도착한 곳에는 정체 모를 거한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가공할 위압감으로 물었다.
“누구냐?”
공길은 그 정체를 깨닫고 급히 다가가 필릭스 일행을 소개했다.
소개를 들은 남자는 위압감을 거두곤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런, 독일에서 오신 분들이었군. 처음 뵙습니다. 나는 대통령 최대수라고 합니다.”
“아··· 한국의 투신이셨군요! 반갑습니다, 〈독일 헌터 협회〉 부회장인 필릭스 리히터라고 합니다.”
필릭스가 반색하며 인사하자 최대수는 기쁜 듯 웃었다.
“독일의 전차가 직접 와 주다니, 영광이군요.”
“아닙니다! 투신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제가 더 영광입니다.”
“롤프 방겐하임에겐 미리 말을 들었습니다. 최대수라는 이름을 걸고 독일이 도움을 요청하면 대한민국도 함께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감사합니다!”
필릭스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SS급 헌터를 보고 공손히 대꾸했다.
“그런데 대통령님께서는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왜기는.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원 시원치 않아 게이트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1차 저지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하,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측근들 연락도 무시한 채 여기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곧 들어갈 테니 대통령님은 어서 청와대로···.”
“아, 아. 걱정할 거 없습니다. 겸사겸사 누구를 좀 기다리는 것이니.”
“예??”
그때 독일 측에 있던 다른 헌터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필릭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이미 4시간이나 지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일라는 초조한 듯 그를 재촉했다.
시우가 안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 순간에 한가로이 수다나 떨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군. 대통령님, 그러면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독일 헌터 여러분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나오면 꼭 같이 술 한잔합시다.”
“예!”
필릭스는 가볍게 목례하며 30여 명의 독일 헌터를 이끌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최대수는 홀로 우두커니 남은 시가를 마저 피웠다.
“후ㅡ 대통령인 게 한스럽구먼.”
***
시우가 마법진을 그린 지 7시간이 지났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등을 가득 적신 땀이 그가 얼마나 집중했었는지를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텅 빈 원으로 시작했던 술식은 바닥을 빼곡하게 채운 기하학적 무늬로 완성되었다.
“이건ㅡ 예술이군.”
에드워드가 감탄을 내뱉었다.
세계적인 대마법사급 헌터들이나 가능할 일을 힐러인 그가 혼자 해낸 것이다.
“마정석 줘 봐.”
시우는 받아 든 마정석을 마법진 가장 큰 틀 외곽에 적당한 거리를 띄워 올려놨다.
“너 이거 진짜 성공하는 거 맞냐?”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영국 왕실 소속 마법팀이 보면 기겁하겠군. 혼자서 이런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고 하면 당장 납치하려 할걸.”
“그래? 그러면 납치하기 전에 도망가야겠는데.”
시우가 눈짓하자 프레가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이거 실패해도 나 모른다.】
“실패 안 하니까 스킬이나 발동해 주지?”
원의 중심에 선 시우의 몸에서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일대에 바람이 몰아쳤다.
이윽고 시우의 몸에서 뻗어나간 마력이 마법진의 회로를 따라 물처럼 흘러나갔다.
쿠··· 구··· 구··· 구우···.
마력이 번져감에 따라 마법진에서 강한 빛살이 솟구쳐 나왔다.
거대한 원을 꽉 채운 힘이 마정석과 맞닿은 순간,
쿠ㅡㅡㅡㅡㅡ 웅!!
대지를 뒤흔드는 떨림과 함께 시우의 몸이 섬광에 지워져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