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7
99화〉
발록
필릭스 일행은 숨을 헐떡였다.
많이 이동한 것도 아니고 괴수가 많이 들이닥친 것도 아닌데, 전진하는 것 자체가 지독한 어려움이었다.
평소 게이트에 들어갈 때보다 두세 배는 더 긴장하고 사주 경계도 쉬지 않기 때문에 체력을 많이 소진한 것.
“한국 헌터들이 어디까지 간 걸까.”
필릭스가 전방에 선 헌터에게 물었다.
“이 방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 탐색했을 때는 이쪽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러시아 S급 게이트〉 보고서를 읽어 보면 탐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필릭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통신 장비도 말을 안 듣는 곳에서 대체 무슨 수로 선발대를 찾는단 말인가.
“부회장님,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옆에 있던 라일라가 말했다.
“길드장께서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라일라가 나이도 어리고 둘이 친분도 있지만, 그녀 역시 독일을 대표하는 한 길드의 수장.
공적인 자리에서는 최대한 서로가 존중하는 말투를 사용했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게이트의 폭주를 막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른 쪽은 한국 헌터들이 잘 해내 줄 것이라 믿고, 우리는 우리대로 보이는 몬스터를 없애면 되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요. 미국의 게이트 클리어 방식도 여러 팀을 분산시키는 것이니까요.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필릭스는 라일라의 의견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공조하는 것보다는 따로따로 움직이며 괴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굳이 한국 헌터 팀을 찾지 말고, 몬스터에 대한 탐지만 하면서 진행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필릭스가 명하자 전방에 있던 탐지 헌터가 대답했다.
그는 곧장 마력 감지 범위를 넓혀 나갔다.
사람보다는 몬스터를 찾아 내기가 더 쉬운 편.
바로 그때.
“ㅡ부회장님.”
“왜? 뭐라도 발견했나?”
탐지 헌터는 사색이 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괴··· 괴물입니다.”
“괴물?”
“방금 저 방향으로 날아갔···.”
“우리도 그쪽으로 가지.”
그러나 탐지 헌터는 그의 말을 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불안한 시선으로 덜덜덜 몸을 떨었다.
“괴물··· 정말 괴물입니다···.”
***
섬광에 지워졌던 시우의 몸이 다시 섬광을 따라 생겨났다.
그가 눈을 뜬 곳은 본인의 집 지하실.
바닥에는 시우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그려 놓은 드넓은 마법진이 있었다.
미리 공명할 수 있는 마법진을 그려 놓았기에 시간이 이것밖에 안 걸렸던 것.
“하아··· 토할 것 같아.”
【나도 죽을 것 같다. 우웨에에엑!】
시우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이계에서 지구로 올 때보다는 낫지만.
시우는 바깥 공기를 쐰 후에 강원도를 향해 곧장 차를 몰았다.
도착한 산중은 우중충했고 여기저기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미약하게 남은 마력흔과 더럽게도 진하게 퍼져 나오는 기운을 향해 몸을 박찼다.
마치 ‘얼른 와라.’라고 부르짖는 듯 노골적인 격.
시우는 한 마리의 늑대처럼 길이 아닌 곳으로 내달려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도착한 재난의 근원지 앞에 아주 낯익은 인물 하나가 시가를 꼬나문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헤비급 복서나 프로 레슬러의 덩치를 빼다 박은 근육질의 거한.
“후우ㅡ 늦었다, 이 자식아.”
“약속 시간을 미리 정해 놓지 않아서 말이야.”
최대수의 타박에 시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는 터벅터벅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이질적이고 끈적거리는 마기가 게이트의 중심으로부터 흘러넘칠 듯 일렁였다.
지금껏 마주했던 게이트와는 그 구성이나 성질부터 다른 묘한 느낌.
“네놈도 이상한 걸 눈치챘나.”
최대수가 물었다.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선명하다고 해야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흔하게 봐 왔던 게이트들보다 힘의 집약력이 높네.”
“후우ㅡ 나도 설명은 안 되는데, 그냥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최대수는 연기를 내뿜으며 시우를 노려봤다.
“왜 째려.”
“너··· 어깨에 그 인형은 뭐냐.”
“······.”
【무엄한 놈! 나는 인형이 아니라 이 세계를 지배할 마ㅡ 읍! 읍읍!!】
“심심해서 키우는 펫이다.”
“펫치고는 못생겼군.”
【닥쳐라! 이 외눈깔ㅡ 으으읍!! 읍읍!】
시우는 프레의 입을 틀어막았다.
“넌 계속 여기 앞에서 지키고 있을 작정이냐.”
“후우ㅡ 아니. 기다리던 거 끝났으니 돌아가련다.”
“뭘 기다렸는데?”
최대수는 대답 대신 연기를 내뿜더니 정말로 가 버렸다.
“이상한 놈.”
시우는 게이트에 들어서기 전 심호흡을 골랐다.
단전을 열어 마력을 전신에 순환시켰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디뎌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진입했다.
***
길리온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큰 충격으로 그녀의 몸은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를 노린 공격일 테지만 길리온의 순발력으로 어깨에 그친 것.
“ㅡㅡㅡ!!”
그 비참한 순간,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이 움찔하며 검 손잡이를 그러잡았고, 도경후의 몸이 섬광처럼 돌진했다.
동료가 죽는 순간 멍청히 서 있기나 하려고 20년간 이 자리를 버텼던 게 아니다.
그의 검강이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어 가며 웅혼한 격을 분출했다.
파도와 같은 그의 격 해방이 불씨가 되어, 몇몇 헌터들도 공포를 물리치고 마력을 끄집어 모으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데에에에.』
발록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태연히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서는 긴장도 분노도 다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감정이란 걸 느끼기나 할까, ‘저것은’.
느릿느릿하게 끄는 평온한 말투와는 달리 전신에서 칼날처럼 뻗쳐 나오는 흉악한 기운이 기괴하고 무서웠다.
발록은 무덤덤한 시선으로 도경후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세 개의 손가락이 활짝 펼쳐지려는 바로 그때.
단전에 있는 모든 마력을 끄집어낸 길리온이 절규하듯 언령을 내질렀다.
“멈춰ㅡㅡ!!”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친 그녀의 언령에 발록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찰나라도 좋다.
극히 짧은 순간이라도 좋다.
저 망할 괴물의 목을 베어 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신체 능력을 올려 주는 각종 버프 스킬이 도경후에게 쏟아졌고.
“크아아아아악!!”
그의 번개 같은 속격과 함께 강여화의 눈부신 화살이 적에게 짓쳐 들어갔다.
[풍화랑 : 일발필중] [귀신의 눈 : 태산일섬]모든 마력이 집중된 한 발의 바람과 산도 베어 버릴 막강한 강격.
두 헌터의 가공할 위력이 발록의 심장을 꿰뚫고 목을 베어 냈다.
투욱ㅡ 데구르르.
땅바닥에 나뒹구는 악귀의 머리.
잠깐의 정적과 함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으아아! 살았다!!”
“씨발 저게 대체 뭐야! 뒤지는 줄 알았잖아!”
“얼른 치료할 사람 치료하고 정비합시다!”
참았던 불안과 고통을 한껏 내뱉는 그들의 얼굴엔 눈물과 웃음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아니야.”
그러나 도경후는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었다.
마력 감지 능력이 탁월한 헌터들도 그와 같은 얼굴이었다.
쉬리리리릭.
땅바닥에 나뒹굴던 발록의 머리와 잘린 목의 단면에서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까드드··· 크드드드···.
그것들은 서로 엉겨 붙더니 기묘한 소리를 내며 합쳐졌고, 발록의 몸은 말끔하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도경후도 길리온도··· 그리고 다른 S급 헌터들도 그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나를 왜 죽이는데에에.』
절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을 후벼 팠다.
그 순간.
[Explosionspunkt(폭발점)]한 줄기 불꽃이 지평선을 가르고 날아왔다.
소실점에 맞닿은 빨간 잉크처럼, 부지불식간에 들이친 검붉은 불길은 발록의 몸을 처박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쿠과아ㅡㅡㅡㅡ아아앙!!
마치 미사일이 폭격한 듯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괴물의 몸이 터져 나갔다.
“한국 분들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필릭스와 다른 독일 헌터들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ㅡ 대체 누구신지?”
김은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희는 이번 한국의 S급 게이트에 지원을 나온 〈독일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입니다. 저는 부회장인 필릭스 리히터라고 하고요.”
“필릭스라면··· 그 유명한?”
‘독일의 전차’.
가공할 파괴력을 지녀 어지간한 몬스터는 스킬 한 번에 죽인다고 하는 독일의 막강한 전력.
“지원이 아예 없는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김은주는 손을 맞잡으며 반가운 내색을 했다.
“일단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 독일 헌터 분들도 도망치시오!!”
그때 도경후의 일갈이 다시금 사람들을 일깨웠다.
“방금 죽은 거 아닙니까?”
“아니오!! 놈의 마기가 전혀 흩어지지 않았소!”
필릭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즉각 알았다.
왜냐하면 폭발한 허공에서 발록의 신체가 다시 뭉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보다 더 많은 마기를 그러모으며 말이다.
***
“빌어먹을···!”
게이트 출구로 향하던 40여 명의 헌터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전투가 지속 불가능한 중상자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헌터로 이루어진 무리였는데,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몬스터들이 그들의 길목을 가로막아 버린 것이다.
거대한 한 쌍의 발과 커다란 입.
게이트에 처음 들어와서 목격했던 눈알과 손바닥의 한 몸체인 것 같은 외형.
“쿨럭!”
중상을 입은 헌터 하나가 각혈을 했다.
다들 표현하진 않았지만, 엄청난 고통과 아픔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무리의 리더인 황정구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금 전투가 가능한 헌터는 그를 포함해 5명 정도가 전부.
S급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저놈들을 피해 게이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100% 죽는다.’
그는 현실을 직시했다.
[염동]에 마력을 다 때려 박는다 해도 기껏해야 놈들을 잠깐 멈추게 하는 게 전부일 터.몸도 성치 않은 중상자들이 그 틈에 게이트 밖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만약 우리를 따라 밖으로 나오면···?’
몬스터를 없애고 게이트 안에 붙잡아 놔야 할 헌터들이 도리어 그들을 밖으로 유인해 낸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딱 하나 방법이 있기는 한데.
황정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방법이 먹힐지는 모른다.
밑져야 본전이니.
그는 다른 네 명의 전투 헌터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내가 신호하면 반대 방향으로 뛰어서 들어가.”
“예···? 대체 뭘 하시려고···.”
황정구는 [염동]으로 날린 나이프와 쇠구슬을 괴물의 몸에 처박으며 좌측으로 냅다 뛰었다.
『아··· 파··· 아···!!』
거대한 입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오른발이 황정구가 뛰는 방향으로 박차 나갔다.
빠아아아아아아악!!
길가의 돌멩이라도 된다는 듯 오른발은 황정구를 후려 찼다.
너무도 재빠른 움직임에 황정구는 마력 실드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크어어억!!”
그는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한 채 바닥에 나자빠졌다.
갈비뼈가 서너 대는 나간 듯했다.
『죽··· 어··· 어···!!』
큼지막한 입이 일그러지며 역겨운 음성이 다시 튀어나왔고.
“화, 황정구 헌터님!!”
거대한 오른발이 무참히 그를 짓밟았다.
“아······.”
몇몇 헌터들이 눈물을 흘려 냈다.
그야말로 처참한 죽음이었다.
『뭐··· 야··· 아···?!!』
그런데 괴물의 입에서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발아래에 있어야 할 황정구의 시체가 없었던 것.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 달려갔던 황정구가 지금 자신들의 곁으로 와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헌터와 말이다.
“정구야. 너 어디 가서 허락 없이 얻어터지고 다니지 말랬지?”
“서, 선배님···.”
시우는 정구의 머리를 탁, 때리며 그의 몸을 치료했다.
“약해 빠져서는.”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괴물들을 향해 섰다.
“얘넨 뭐 이렇게 생겼냐.”
『입··· 닥··· 쳐···!!』
근처에 있던 왼발이 발을 박차며 헌터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바쁘니까 빨리빨리 하자.”
시우의 몸이 샛노랗게 물들며 번개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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